고려 말 야은(冶隱 : 길재), 포은(圃隱 : 정몽주)과 더불어 삼은(三隱)중 한사람인 목은(牧隱)선생 묘는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의 기린산기슭에 있으며 무학대사의 소점지로 알려진 곳이다. 한산이씨는 목은선생 외에 사육신의 한사람인 이개(李塏)선생과 당대의 대문장가인 이산해(李山海)선생 등 조선조에서 문과급제자 195명을 배출한 명문이다.
목은선생의 묘소는 문헌서원뒤편에 아늑하게 숨겨진 곳으로 완전한 장풍국(藏風局)이 인상적이다. 지난번 다녀온 당진의 구예선생 묘를 연상시킬 만큼 우렁 속 같이 깊이 숨겨져 있는데 구예선생 묘가 백호작국(白虎作局)이라면 이곳은 청룡작국(靑龍作局 : 좌청룡이 앞으로 나가 안산을 겸하여 둘러싸서 국을 이룬 것)이며 내당(內堂 : 내명당)은 그보다 좁은 편이다.
묘소 앞에 이르러 혈장(穴場)을 올려다보니 둥글게 부풀은 순전(脣氈)이 인상적이었다. 혈장에는 두 개의 묘가 있었는데 위에는 목은선생 묘가 있고 아래에는 선생의 삼남(三男)인 이종선(李種善)의 묘가 있었다. 혈증(穴證 : 혈이 될 수 있는 증거)을 찾아보기 위해 혈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선익(蟬翼)과 뇌두(腦頭)와 소분합(小分合)등의 형태가 없어 순전이외에는 이곳이 혈이라는 증거를 찾는데 실패하였다.
다시 입혈맥(入穴脉 : 혈성머리에서 혈로 들어오는 맥)을 따라 위로 한참을 올라가도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용의 기운을 모으기 위한 속기처(束氣處 : 잘록한 부분)가 없고 온산의 기운을 모아 최종적으로 탈살시키고 정화하기위한 굴곡(屈曲 : 산 뱀이 꿈틀거리며 내려오는 듯한 형태)과 기복(起伏 : 가파르게 내려쏘지 않고 완급을 조절하는 형태)을 볼 수가 없고 단지 곧고 가파르며 비교적 넓게 내려오니 혈을 맺으려는 의지를 엿 볼 수가 없었다. 입혈맥의 본분을 망각한 듯하여 실망하였다.
다시 혈장으로 내려와 양쪽 옆을 면밀히 관찰하였으나 선익의 흔적이 없고 옆에서 혈장 중심을 상하로 살펴보아도 내려오는 기운을 멈추게 할 만한 돌기(突起)한 뇌두(腦頭 : 혈 바로 뒤에 약간 솟은 곳)도 없었다. 문득 이곳이 과연 진혈(眞穴)일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무학대사님의 안목까지 의심할 수는 없고 다만 나의 안목이 법안(法眼)에 머무르고 신안(神眼)이 열리지 못한 것을 탓 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 혈장은 위의 입혈맥부터 그대로 아래로 쏠려 내려와 중간에 머물지 못하고 모든 기운이 순전 쪽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목은선생의 자리보다는 아래의 이종선선생자리가 기운이 최종적으로 멈춘 곳이고 위에는 완전히 멈추지 못하고 지나가는 곳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이에 대하여 한 회원님이 묻기를 위의 자리는 넓고 아래는 좁은 것 같은데 어찌 아래가 더 낫다고 하느냐고 반문하였다. 답하기를 혈장이 좁으면 뱀이 개구리를 삼켰을 때 복부의 배부른 부분같이 원만(圓滿)한 곳이 기운이 모인 혈이 되지만 이곳처럼 위에서부터 변화 없이 넓게 내려오면 오히려 기운이 흩어져 퍼질 수 있으니 약간 좁게 마무리한 곳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치 동춘당 송준길선생의 혈장이 너무 넓게 펼쳐져서 그 아래의 좁게 마무리된 자제의 자리로 모든 기운이 모여든 경우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다시 눈을 돌려 사(砂 : 주변의 산봉우리)를 둘러보니 백호가 내당(內堂)의 물길을 막아 그 끝이 수구(水口)가 되었으며 청룡이 겹겹이 중첩되어 감싸고 앞으로 나가 안산을 겸하고 백호 끝을 감싸 둘렀으니 풍수의 기본인 장풍(藏風)이 잘되었다. 백호보다 청룡이 발달하였으니 좌선궁장방륭(左先弓長方隆 : 좌청룡이 길게 나가 앞으로 둘리면 장손이 융성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허(虛)한 곳이 없이 장풍이 완전하니 모든 후손들이 고루 안정될 곳이다.
그러나 해임방(亥壬方)이 상대적으로 약간 요함(凹陷)해 보이고 내명당(內明堂)이 평평하지 못하고 좁은 편인 점은 아쉬웠다. 우선룡(右旋龍 : 용이 청룡 쪽에서 와서 백호 쪽으로 돌아옴)에 좌선수(左旋水 : 물길이 청룡 족에서 백호 쪽으로 흘러감)로 음양이 배합되었다. 만약 외수(外水)가 우수도좌(右水倒左 : 외명당의 물이 백호방에서 청룡 쪽으로 흐른다면)라면 길게 뻗어 나간 청룡이 역수사(逆水砂)가 되니 더욱 길하다하겠다.
내려오는 길에 종친회장님을 만났는데 이곳은 족보상 계좌정향(癸坐丁向)이며 형국으로는 기린하전형(麒麟下田形)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곳은 대지(大地)는 못되지만 대체로 편안한 자리로 생각된다. 돌아오는 길에 한산모시타운 주차장에 버스를 멈추고 한산 소곡주 한잔씩 나눠 마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