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재지 : 안동군 풍천면 병산리 31
1613년(광해군 5)에 愚伏 鄭經世 先生 등 유림의 공의로 西厓 柳成龍 先生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尊德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2년에 선생의 아들인 修巖 柳袗을 배향하였으며, 1863년(철종 14) ‘屛山’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사적 제 260호로 지정되어 있다. 3월과 9월 初丁日에 향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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晩對樓 내부 |
병산서원 입교당(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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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선생 묘소(안동군 풍산읍 수리) |
○ 柳 成 龍 (1542, 중종 37~1607, 선조 40) 豊山人. 자는 而見. 호는 西厓로 立巖 仲郢의 아들이요, 謙菴 雲龍의 아우이다. 퇴계 선생의 문인으로 날때부터 瑩粹하여
선생께서 ‘이 아이는 하늘이 낸 아이이다.’라고 稱歎하였다. 講明踐履로 선생의 淵源正脈이 되었다. 명종 19년 進士試에
합격하고 명종 21년(1566) 別時文科에 급제하여 湖堂과 大提學을 거쳐 光國과 扈聖의 兩勳에 封하였고 豊原府院君이 되었다.
官은 領議政으로 임진왜란 때 出將入相하여 經世大業이 당시 제일로 士林에서 泰山北斗와 같이 추앙하였다.
도학ㆍ문장ㆍ덕행ㆍ글씨로 명성을 떨쳤다. 시호는 文忠 이다. 문집 및 『懲毖錄』이 있다. 屛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입교당에서 본 만대루
○ 柳 袗 (1582, 선조 15~1635, 인조 13) 豊山人. 자는 季華, 호는 修巖으로 西厓 成龍의 셋째 아들이요, 寒岡 鄭逑의 문인이다. 1610년(광해군 2)에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遺逸로 出仕하여 持平에 이르렀다. 네고을의 수령으로 나가서는 선정을 베풀었다. 학문의 연원이 있어 誠敬工夫에
篤實하였다.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屛山書院에 從享되었다. 문집 3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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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巖 先生 遺墟碑(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우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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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도(야송 이원좌 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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