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스크랩] ‘道’의 존재론 -『老子』철학의 형성과 전개Ⅰ-

장안봉(微山) 2013. 12. 4.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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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學志 제159집(2012년 9월),

 

 

‘道’의 존재론*

 

- 地下의 서적과 紙上의 서적을 통해 본『老子』철학의 형성과 전개Ⅰ-

 

이 승 률

 

<차 례>

1. 머리말
2. 곽점본의 ‘도’: ‘도’의 초월성
3. 마왕퇴본과 현행본의 ‘도’: 초월적 ‘도’에서 내재적 ‘도’로

4.『노자』 이외의 도가문헌에서의 ‘도’ 철학의 전개와『노자』적 포용의 철학의 탄생
5. 소결

 

 

<국문요약>

 

『노자』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紙上의 서적인 현행본이 거의 유일한 판본이었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이후 마왕퇴본‧곽점본‧북경대본과 같은 地下의 서적이 차례로 출현함에 따라,『노자』의 성격과 내용 및 성립 문제와 관련된 전대미문의 많은 정보를 새롭게 제공받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정보의 양만큼 많은 문제점들이 노정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사마천이 지은『사기』 「노자열전」의 기록을 무비판적으로 믿는 信古적 관점이 학자들 사이에서 더욱 강세를 띠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자』를 보는 대부분의 학자들은,『노자』는 춘추말기나 전국초기에서 현행본이 성립된 시기에 이르는 수백 년 동안, 일부 의 예외를 제외하고 내용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노자』는 곽점본에서 마왕퇴본 및 현행본에 이르는 수백 년 동안, 철학사상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 본고의 기본 입장이다. 그것을 ‘도’라는 개념을 통해 보면, 도는 곽점본 단계에서는 만물로부터 초월해 있는 실재로 인식되었지만, 마왕퇴본과 현행본 단계에서는 만물에 내재하고 편재해 있는 실재로 인식이 전환되게 된다.

존재론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사회나 정치를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에도 근본적인 변혁을 일으키게 된다. 즉, 모든 사람에게 사회정치적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노자』특유의 사회분업론과 포용의 철학이 마왕퇴본과 현행본 단계에서 비로소 탄생하게 된다. 

 

핵심어:『노자』, 곽점본, 마왕퇴본, 현행본, 도, 사회분업론, 포용의 철학

 

* 이 논문은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의 인문학 심화 연구 지원 사업을 통해 수행된 연구임.
**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 연구교수, 동양철학.

 

 

1. 머리말

 

『노자』철학은 어떻게 형성되고 전개되어 갔을까? 아마도 이런 물음은『노자』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문제일 것이다. 성립시기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노자』는 司馬遷이 『史記』 「老子列傳」에서 묘사했듯이 先秦시대의 어느 한 시기에 한 두 사람에 의하여 저술된 것인가? 아니면 수백 년 동안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인가?

처음부터 현행본(王弼本)의 체제와 같이 전 81장 5천여자의 형태로 유통되고 있었는가? 아니면 여러 장이나 편이 단편적으로 유통되다가 나중에 집성된 것인가?

철학사상은 성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는가? 아니면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는가?

 

만약『노자』가 선진시대의 어느 한 시기에 한 두 사람에 의하여 저술되었고, 처음부터 현행본의 체제와 동일한 형태로 유통되었으며, 철학 사상도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면, 특별히『노자』철학의 형성과 전개의 문제를 다루어야 할 이유는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만약『노자』가 선진시대 이래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고, 그 체제도 처음에는 현행본과 달랐으며, 철학사상도 내용의 양적 증가에 따라 질적으로 큰 변화를 수반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왜냐 하면 만약 후자와 같이『노자』철학이 형성 전개되어 온 것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앞으로 우리가 ‘『노자』철학은 이것이다’라고 말하거나 정의내릴 때 ‘역사적 전개’의 실상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자』철학의 형성과 전개의 문제는 紙上의 『노자』, 즉 현행본만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판본이었던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추론적 논의는 있었다.

예를 들면 武內義雄, 馮友蘭, 津田左右吉, 木村英一 등은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역사적 배경, 중국 고대 고전들의 형성과 성립의 일반적인 정황, 주요 개념이나 사상의 출현 시기, 『사기』노자열전에 나타난 복수의 저자들의 문제(老耼‧老萊子‧太史儋), 현존 『노자』판본 사이의 글자 수의 현격한 차이, 내용상의 모순이나 타 학파로부터의 영향 관계 등의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어,『노자』가 한 시기에 한 두 사람에 의하여 저술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1)

다만 이 시기는 중국 고대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주는 출토문헌이 없었던 시기였던 만큼, 논리적인 추론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고, 따라서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형성되고 전개되어 왔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실상은 제시해주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반면 현행본『노자』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기본적 내용은 춘추말기의 노담이나 關尹 등과 같은 한 두 사람이 저술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은 학자들에 의하여 제기되어 이 두 가지 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2)

 

1) 武內義雄, 『老子原始 附諸子攷略』, 京都: 弘文堂書房, 1926, 92쪽;

馮友蘭, 『中國哲學史』 上冊, 北京: 中華書局, 1961, 213쪽(初出: 1930);

津田左右吉,『道家の思想と其の展開』, 東京: 岩波書店, 1939, 37쪽;

木村英一,『老子の新硏究』, 東京: 創文社, 1959,19쪽 등. 郭店楚簡 『노자』출토 이후에는 李澤厚 등이 동일한 견해를 제시한다(「初讀郭店竹簡印象記要」, 『道家文化硏究』17, 北京: 三聯書店, 1999, 420쪽).

2) 唐蘭, 「老聃的姓名和時代考」, 『古史辨』4, 海口: 海南出版社, 2005, 236쪽(初出:1933);

呂振羽, 『中國政治思想史』, 上海: 黎明書局, 1937; 高亨, 『老子正詁』, 北京: 中國書店, 1988, 171~174쪽(初出: 1943);

郭沫若, 『十批判書』, 北京: 東方出版社, 1996, 184쪽(初出: 1945);

任繼愈, 『老子今譯』, 北京: 古籍出版社, 1956, 61쪽, 63쪽등(郭沫若은 環淵과 關尹을 동일인물로 보고 『도덕경』은 환연이 노담의 遺說을 밝혀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 후에 나온 任繼愈, 『老子新譯』(修訂本),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1985, 9쪽;

張岱年, 「老子“道”的觀念的獨創性及其傳衍」, 『老子與中華文明』, 西安: 陝西人民敎育出版社, 1993;

陳鼓應,『老莊新論』,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1992,51쪽;

趙吉惠, 「郭店楚簡與二十世紀≪老子≫文獻硏究」, 『歷史文獻硏究』 18, 武漢: 華中師範大學出版社, 1999, 170쪽 등도 모두 이러한 설과 맥락을 같이 하는 예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른바 출토문헌이라는 地下의 『노자』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즉, 1973년 湖南省 長沙市 馬王堆 3호 漢墓에서 帛書 『노자』 甲‧乙本이 출토되고,

그 20년 뒤인 1993년 湖北省 荊門市 郭店 1호 楚墓에서 楚簡『노자』 甲‧乙‧丙本이 출토됨으로써, 이 문제에 관한 실증적 연구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또, 2009년에 北京대학에서 기증받은 죽간에 漢武帝 시기의 『노자』가 포함되어 있어, 이 자료가 공표될 경우 『노자』철학의 형성 전개와 관련된 연구는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3)

 

그러나 지하에서 출토된 『노자』라 하더라도 자료적 의미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전국시대 죽간본인 곽점본 및 한대 텍스트인 마왕퇴본과 북경대본은 서사연대가 다른 것은 물론, 분량도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즉, 마왕퇴본과 북경대본의 분량은 현행본과 유사하지만, 곽점본은 그 ⅓인 1,666자에 지나지 않는다.4) 이러한 사실을 놓고 학계에서는 크게 다음의 두 가지 설이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초록본설 내지는 발췌본설이고, 또 하나는 형성과정설 내지는 변화발전설이다. 이 두설은 다시 몇 가지 설로 세분된다.

 

3) 北京대학에서 기증받은 漢代 竹書 및 『노자』에 관해서는 北京大學出土文獻硏究所, 「北京大學藏西漢竹書槪說」, 『文物』 2011-6, 北京: 文物編輯委員會, 2011, 49~56쪽; 韓巍, 「北大漢簡≪老子≫簡介」, 『文物』 2011-6, 北京: 文物編輯委員會, 2011, 67~70쪽 참조.
4) 이 수치는 裘錫圭, 「郭店≪老子≫簡初探」, 『道家文化硏究』 17, 北京: 三聯書店, 1999, 26쪽, 주①에 의한다.

 

 

먼저 전자의 경우는

①곽점본은 춘추말기나 전국초기의 5천여자로 된 원본『노자』의 초록본 내지는 발췌본이라는 설,5)

②곽점본은 유가 해석의 영향을 받은 『노자』판본으로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초록본이기는 하지만『노자』원본에 가까운 초록본은 아니라는 설,6)

③곽점본은 定本을 축약한 것이고 유가가 ‘道를 원용하여 儒로 들어간’(援道入儒) 산물이며, 곽점 갑본은 經典에 해당하고 을본과 병본은 傳注에 해당한다는 설,7)

④곽점본은 鄒齊지역의 思孟學派 유가 학자가『노자』원본의 문장을 대폭 수정하여 발췌한 판본이고 현행본이 노자사상의 직계라는 설,8)

⑤곽점본은 稷下道家 傳本의 초록본이라는 설9) 등으로 구분된다.

 

5) 高明, 「讀郭店≪老子≫」, 『中國文物報, 1998. 10. 28; 李學勤, 「先秦儒家著作的重大發現」, 『中國哲學』20, 沈陽: 遼寧敎育出版社, 1999, 14쪽;

王博, 「張岱年先生談荊門郭店竹簡≪老子≫」, 『道家文化硏究』17, 北京: 三聯書店, 1999, 24쪽;

裘錫圭, 위의 글, 1999, 27~28쪽, 30쪽; 陳鼓應, 「從郭店簡本看≪老子≫尙仁及守中思想」, 『道家文化硏究』 17, 北京: 三聯書店, 1999, 68쪽;

雷敦龢, 「郭店≪老子≫: 一些前提的討論」, 『道家文化硏究』 17, 北京: 三聯書店, 1999, 120쪽;

王博, 「關於郭店楚墓竹簡≪老子≫的結構與性質-兼論其與通行本≪老子≫的關係」,『道家文化硏究』17, 北京: 三聯書店, 1999,158쪽;

高晨陽, 「郭店楚簡≪老子≫的眞相及其與今本≪老子≫的關係-與郭沂先生商討」, 『中國哲學史』1999-3, 北京: 中國哲學史學會, 1999, 81쪽;

唐明邦, 「竹簡≪老子≫與通行本≪老子≫比較硏究」, 武漢大學中國文化院 編, 『郭店楚簡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 武漢: 湖北人民出版社, 2000, 54~55쪽;

程水金, 「郭店簡書≪老子≫的性質及其學術定位」, 武漢大學中國文化院 編, 『郭店楚簡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 武漢: 湖北人民出版社, 2000, 502쪽;

淺野裕一, 「郭店楚簡太一生水と『老子』の道」, 『中國硏究集刊』 26, 大阪: 大阪大學中國學會, 2000, 3쪽; Gao Ming, “Some Observations concerning the Transcription and Punctuation of the Guodian Laozi”, The Guodian Laozi: Proceedings of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Dartmouth College,May 1998, Society for the Study of Early China and Institute of East Asian Studie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2000, p65;

福田一也, 「『老子』と儒家思想」, 『中國硏究集刊』 31, 大阪: 大阪大學中國學會, 2002, 24쪽;

李學勤, 「論郭店簡≪老子≫非≪老子≫本貌」, 『中國古代文明硏究』, 上海: 華東師範大學出版社, 2005(원저: 2002), 234~236쪽;

朱淵淸, 『再現的文明: 中國出土文獻與傳統學術』, 上海: 華東師範大學出版社, 2001, 142쪽;

孫以楷, 「太史儋與≪老子≫無關-與郭沂先生商榷」, 『安徽大學學報』(哲學社會科學版) 2003-4, 合肥: 安徽大學, 2003, 15쪽 등. 그밖에 澤田多喜男도 형식은 불명하지만 어떤 원본이 있고 곽점본은 어떤 목적을 위하여 실용에 적합한 것을 서사한 것이라고 한다. 다만 그 원본과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郭店本『老子』攷(二)」, 『東洋古典學硏究』 17, 東廣島: 東洋古典學硏究會, 2004,33쪽). 그리고 王中江은 곽점본은 關尹의 제자가 전한 傳本인데, 부장할 때 상징적으로 일부분만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郭店竹簡≪老子≫略說」, 『中國哲學』 20, 沈陽: 遼寧敎育出版社, 1999, 107쪽).

6) 沈淸松, 「郭店竹簡≪老子≫的道論與宇宙論-相關文本的解讀與比較」, 『中國哲學』 21, 沈陽: 遼寧敎育出版社, 2000, 176~177쪽.
7) 周鳳五, 「郭店竹簡的形式特徵及其分類意義」, 武漢大學中國文化院 編, 『郭店楚簡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 武漢: 湖北人民出版社, 2000, 54~55쪽.
8) 黃人二, 「讀郭簡≪老子≫幷論其爲鄒齊儒者之版本」, 武漢大學中國文化院 編, 『郭店楚簡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 武漢: 湖北人民出版社, 2000, 493쪽, 497~498쪽.

黃人二는 갑본은 ‘경’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병본은 ‘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太一生水』와 동일한 양식에 속한다고 하여 周鳳五와 유사한 견해를 제기한다. 그에 반해 김홍경은 『노자』와 『呂氏春秋』와의 친연성 등을 근거로 『노자』는 『여씨춘추』와 관련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진 제작설’을 주장한다.(「『노자』의 형성-마왕퇴, 곽점 문건 등에 기초한 진 제작설 시론-」, 『시대와 철학』 18-3, 2007, 21쪽)
9) 黃釗, 「竹簡≪老子≫應爲稷下道家傳本的摘抄本」, 『中州學刊』 2000-1, 鄭州: 河南省社會科學院, 2000, 68쪽; 同, 「竹簡≪老子≫的版本歸屬及其文獻價値探微」, 武漢大學中國文化院 編, 『郭店楚簡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 武漢: 湖北人民出版社, 2000, 484쪽.

 

 

그리고 후자의 경우는

①곽점 1호묘의 ‘戰國中期偏晩’설에 의거하면서, 곽점본이 가장 이른 시기의 텍스트이고 마왕퇴본‧현행본의 순으로 변화 발전되었다는 설,10)

②곽점 1호묘의 ‘전국중기편만’설을 비판하면서, 형성 발전 단계에 있는 가장 오래된 텍스트라는 설,11)

③원 노자는 B.C. 350년 전후에 성립되었고 今本 노자(마왕퇴본과 현행본)는 전국말기에 성립되었다는 설,12)

④곽점본과 현행본 사이의 관계의 가능성을 선집모델‧기원모델‧병행모델의 3가지로 설정하고 그 중 기원모
델과 병행모델에 가능성의 중점을 두는 설,13)

⑤노자는 총서나 루스리프식(loose leaf) 텍스트라는 설,14)

⑥곽점본 중 갑본을 춘추말기의 노자(老萊子)가 지은 것이라 하여 ‘춘추 노자’로 명명하고, 그 후 여러 단계의 많은 노자가 수집되고 변화 발전되어 전국말기에 5천여자의 노자가 형성되었다는 설,15)

⑦노자와 그 사상 체계는 노담(춘추말기)‧노래자(춘추전국 사이)‧태사담(전국중기)의 세 시기를 거치면서 증보되고 발전되었으며 곽점본은 그 이후의 選輯本이라는 설,16)
⑧‘經說 패턴’과 ‘單傳宗衍’이라는 관점에서 郭甲→郭甲+郭乙→郭甲乙 +郭丙→郭甲乙丙+丁…→백서본 초고와 같은 단계로 형성되어 갔다는설17) 등으로 구분된다.

 

10) 崔仁義, 『荊門郭店楚簡≪老子≫硏究』, 北京: 科學出版社, 1998, 12쪽, 26쪽, 29쪽, 34쪽;

許抗生, 「初讀郭店竹簡≪老子≫」, 『中國哲學』 20, 沈陽: 遼寧敎育出版社, 1999,93쪽;

同, 「再讀郭店竹簡≪老子≫」, 『中州學刊』 2000-5, 鄭州: 河南省社會科學院,2000, 76~77쪽.

단, 許抗生은 곽점본의 저자를 춘추말기의 노자라고 명언하지만 崔仁義는 명언하지 않는 점에 차이가 있다.

11) 池田知久, 「尙處形成階段的≪老子≫最古文本-郭店楚簡≪老子≫」, 『道家文化硏究』
17, 北京: 三聯書店, 1999, 181쪽; 谷中信一, 「從郭店≪老子≫看今本≪老子≫的完成」, 武漢大學中國文化院 編, 『郭店楚簡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 武漢: 湖北人民出版社, 2000, 438~439쪽.

아울러 池田知久는 荀子학파와의 대항이라는 관점에서 곽점본의 成書연대 내지는 抄寫연대를 전국말기, 즉 B.C. 265년 전후~B.C. 255년보다 약간 늦은 시기로 본다(『郭店楚簡老子の新硏究』, 東京: 汲古書院, 2011). 그에 반해 谷中信一은 곽점본을 B.C. 300년 전후의 텍스트로 보고 齊나라 稷下學宮을 중심으로 한 黃老사상이 『노자』 5천언의 형성을 촉진시켰다고 한다. 그밖에 小池一郞은 문체 분석의 방법을 통하여 곽점본은 마왕퇴본 내지는 현행본의 祖型이라고 한다(「郭店楚簡 『老子』と「老子」の祖型」, 『言語文化』 2-3, 京田邊: 同志社大學言語文化學會, 2000, 321쪽).

12) 向井哲夫, 「郭店楚簡『老子』について」, 『唯物論と現代』 23, 京都: 關西唯物論硏究會, 1999, 95쪽, 97~98쪽. 向井은 곽점본을 원 『노자』의 사본으로 간주한다. 楠山春樹도 곽점본을 B.C. 300년경에 成書된 것으로 보고, 원본의 성립은 그보다 반세기 정도 소급되는 것으로 가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 하에『노자』의 형성사를 원본→곽점본 →백서본‧현행본의 순으로 생각한다(「郭店楚簡から見た『老子』の形成」, 郭店楚簡硏究會 編,『楚地出土資料と中國古代文化』, 東京: 汲古書院, 2002, 17~19쪽, 23쪽).
13) Harold D. Roth, “Some Methodological Issues in the Study of the Guodian Laozi Parallels”, The Guodian Laozi: Proceedings of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Dartmouth College, May 1998, Society for the Study of Early China and Institute of East Asian Studie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2000, p87.
14) 丁四新,『郭店楚墓竹簡思想硏究』, 北京: 東方出版社, 2000, 36~47쪽. 丁四新은 발췌본설에 반대하면서,『노자』는 춘추말기의 노자의 저작이지만 노자 한 사람에 의하여 완성된 것이 아니라 점차로 완전해지고 변화 발전하여 현행본의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그 대체적인 규모는 전국초기나 그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이미 형성되었지만, 전국중기에서 약간 늦은 시기까지 그 구조는 산만한 상태였다고 한다. 李存山은 丁四新의 설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곽점본‧마왕퇴본‧현행본은 각각 장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어느 한 쪽보다 노자사상의 최초의 형태에 더 가까운 우월성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한다.(「≪老子≫簡、帛本與傳世本關係的幾個“模型”」, 『中國哲學史』 2003-3, 北京: 中國哲學史學會, 2003, 74쪽)

15) 王必勝‧崔仁義, 「春秋≪老子≫及其作者-兼論郭店楚簡≪老子≫的命名」, 武漢大學中國文化院 編, 『郭店楚簡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 武漢: 湖北人民出版社, 2000, 506~507쪽, 511쪽.
16) 晁福林, 「論老子思想的歷史發展」,『孔子硏究』 2002-1, 濟南: 齊魯書社, 2001, 22~23쪽, 31쪽, 33쪽.
17) 程一凡, 「從郭店本看≪老子≫一書的形成」, 『管子學刊』 2004-2, 淄博: 齊文化研究院,2004, 53쪽, 56쪽. ‘경설 패턴’이란 곽점 갑본은 ‘經’에 해당하고 을본과 병본은 ‘경’을 해석한 ‘說’에 해당한다는 의미로, ‘單傳宗衍’이란 곽점본은 백서본 초고의 직계 조상이기 때문에 그 관계는 필연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程一凡의 ‘경전 패턴’설은 周鳳五(앞의 글, 2000)의 ‘경전ㆍ전주’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곽점 초묘는 도굴의 피해를 입었고, 또 전국시대에는 우리가 모르는 『노자』의 異本이 더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설이 정확하고 완전하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곽점본, 마왕퇴본, 북경대본, 현행본 사이에 철학적으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곧 전자의 설보다는 후자의 설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18)

그리고 본고의 고찰을 통하여 밝혀지겠지만, 실제로 이들 텍스트 사이에는 내용적으로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현재의 조건 하에서 『노자』철학의 형성과 전개를 일단 ‘곽점본→마왕퇴본→북경대본→현행본’으로 설정하고 분석 고찰하고자 한다.(차후에 또 다른 전국시대 텍스트가 출현할 경우 본고의 내용을 재고해야 할 가능성은 있다) 다만 북경대본은 아직 공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고의 논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편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중국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곽점본을 원본『노자』의 초록본이나 발췌본으로 보고 있는데, 그 경우 내용의 변화‧발전이나 가감 등을 상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유가‧묵가‧법가와의 대립 문제나 ‘有生於無’의 문제 등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러한 점은 사실은 변화 발전설로 분류한 연구들에서도 대부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19)

또, 춘추말기에 공자의 선배인 노담이『노자』를 지었다는『사기』 노자열전의 기술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것도 공통된 특징 중의 하나이다. 다만 郭沂와 같이 이러한 설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학자도 있는데, 그는 곽점본을 춘추말기의 노담의 저작으로 보고 백서본과 현행본을 전국중기의 태사담의 저작으로 간주하면서, 태사담이 노담의 책을 고치거나 첨삭하거나 새로운 단락‧장절을 첨가함으로서 개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노담과는 대비되는 태사담의 사상의 특징으로, 이론 사유의 玄虛化와 사변화, 인생론과 정치론의 권모술수화, 도덕론의 非儒化를 든다.20)

그러나 필자는 물론 초록본설이나 발췌본설에 동의하지 않지만, 郭沂의 설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곽점본을 노담의 저작으로 보고 현행본을 태사담의 저작으로 보는 것은『사기』노자열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信古적 방법론에 입각한 견해라는 점에서 성립하기 어려우며, 태사담의 사상적 특징으로 든 위의 세 가지는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내용 그 자체에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곽점본의 ‘自然’을 ‘도의 자연’으로 이해하거나, 현행본 제25장의 ‘도’를 ‘物’로 이해하는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18) 단, 후자의 설이라 하더라도 이미 언급했듯이 학자들마다 의견이 상당히 다르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한 필자의 입장이나 견해를 밝히기 위해서는 전자와 후자를 포함한 기존 연구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물론, 형성과 전개라는 관점에서 본『노자』철학의 전모를 밝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논문은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첫 번째 결과물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19) 그밖에 劉笑敢은 곽점본을 초록본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今本 『노자』는 古本『노자』의 고유의 기초 위에서 발전해 온 것으로 그 내용에 근본적인 곡해나 왜곡은 없다고하여, 형성 과정 중의 근본적인 변화나 전개는 상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곽점본에서 마왕퇴본 및 현행본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언어형식이 동일해지는 현상(趨同)과 사상관념의 초점이 집중되는 현상(聚焦)이라는 관점에서만 보고 있기 때문인 것
으로 보인다.

(「從竹簡本與帛書本看≪老子≫的演變-兼論古文獻流傳中的聚焦與趨同現象」, 武漢大學中國文化院 編, 『郭店楚簡國際學術硏討會論文集』, 武漢: 湖北人民出版社, 2000, 473쪽)

아울러 유가와의 대립 문제와 관련하여, 초록본설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노자』 5천여자의 단계에서는 반유가적인 성향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程水金은 반대로 춘추말기에 노자는 禮樂仁義와 같은 과거의 문화전통을 극력 비난했지만, 전국시대에 이르러 그러한 전통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주장한다.(앞의 글, 2000년, 503쪽)

20) 郭沂, 「從郭店楚簡≪老子≫看老子其人其書」, 『哲學硏究』 1998-7, 北京: 中國社會科學院哲學所, 1998, 47쪽;

同, 「楚簡≪老子≫與老子公案-兼及先秦哲學若干問題」, 『中國哲學』 20, 沈陽: 遼寧敎育出版社, 1999, 119쪽, 132~133쪽;

同, 『郭店竹簡與先秦學術思想』, 上海: 上海敎育出版社, 2001, 673쪽, 707쪽.

張吉良, 「從老聃≪老子≫到太史儋≪道德經≫」, 『江西社會科學』 1999-2, 南昌: 江西省社會科學院, 1999, 7~8쪽;

尹振環, 「也談楚簡≪老子≫其書-與郭沂同志商榷」, 『哲學硏究』 1999-4, 北京: 中國社會科學院哲學所, 1999, 33쪽도 노담을 곽점본의 저자로 보고 태사담을 백서본과 현행본의 저자로 본다. 참고로 일찍이 羅根澤이 현행본의 저자를 태사담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老子及老子書的問題」, 『古史辨』 4, 海口: 海南出版社, 2005, 308쪽(初出: 1933))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초록본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물론, 변화 발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조차도『노자』철학의 형성과 전개라는 측면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내용을 분석하고 고찰한 연구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 논문 및 앞으로 계속될 연구에서 『노자』철학의 형성과 전개를 다루는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울러 마왕퇴본과 현행본은 세세한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내용상의 근본적인 변화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것은 곧『노자』는 마왕퇴본 단계에서 텍스트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결코 없는 것은 아니다.

그에 반해 곽점본과 마왕퇴본 사이에는 내용상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그렇다면 노자 철학의 형성과 전개를 문제 삼을 경우 그 비교대상은 자연히 ‘곽점본⇔마왕퇴본‧현행본’이 될 것이다.
그런데 곽점본에서 마왕퇴본‧현행본으로의 철학사상의 변화 양상을 보면 크게 다음의 두 가지 패턴이 있다. 하나는 곽점본의 문자를 변경하여 내용의 변화를 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는 그다지 많지 않고
내용상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도 많지 않다.21)

또 하나는 곽점본의 장에 내용을 첨가하거나 새로운 장을 추가함으로써 내용의 변화를 꾀하는 방식이다. 곽점본과 마왕퇴본‧현행본을 비교해 보면, 후자와 같은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우선 텍스트와 내용에 이러한 특징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하 논의를 전개하기로 한다.

 

21) 예를 들면 郭沂(앞의 글, 1998, 51쪽)도 지적하듯이, 곽점 갑본 제3~4호간(제66장)의
“聖人之才(在)民歬(前)也, (以)身(後)之. 亓(其)才(在)民上也, (以)言下之.”라는 문장은 겸손사상을 논하고 있는 문장인데, 여기서는 성인이 ‘身’을 뒤로 하고 ‘言’을 낮춘다는 겸손의 태도를 취하는 것을 원인으로 백성들을 앞에서 선도하고 위에서 군림한다는 결과가 도출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마왕퇴 갑본 제62~63행에서는 “是以聖人之上民也, 必以亓(其)言下之. 亓(其)先[民也], 必以亓(其)身後之.”라 하고,

현행본에서는 “是以欲上民, 必以言下之. 欲先民, 必以身後之.”라 하여, 곽점본의 ‘在’자가 모두 ‘欲’자로 되어 있다. 그런데 ‘欲’자를 쓰게 되면 ‘上民’과 ‘先民’이 겸손의 결과가 아니라 목적이나 지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어 의미가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2. 곽점본의 ‘도’ : ‘도’의 초월성

 

『노자』철학의 형성과 전개의 문제를 다룰 때 가장 먼저 논의해야 하는 것은 ‘도’ 개념 및 그와 관련된 철학이다. 왜냐 하면 누구나 인정하듯이 ‘도’ 개념이야말로『노자』철학의 가장 핵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선진시대에 도가철학자들은 이 세계는 ‘一’이면서 ‘無’를 특징으로 하는 ‘도’의 세계와 ‘多’이면서 ‘有’를 특징으로 하는 ‘만물’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2세계론’을 처음으로 주창하였다.22)

『노자』의 세계관 또한 ‘2 세계론’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세계관은 이 시기의 양대 顯學인 유가나 묵가의 세계관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도가만의 독특한 세계관이다. 왜냐 하면 유가의 경우는 도를 말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人道, 즉 인간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진행시켜 왔다는 점에서 ‘1세계론’의 특징을 갖고 있고,23) 묵가의 경우는 이 세계를 ‘天‧鬼‧人’의 상중하, 즉 천상세계‧귀신세계‧인간세계의 3층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3세계론’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24)

 

22) 도와 만물의 2세계론 및 후술할 도의 形而下化에 관해서는 池田知久, 「中國思想史における「自然」の誕生」, 『中國-社會と文化』 8, 東京: 中國社會文化學會, 1993, 19쪽;
同, 『老莊思想』, 改訂版, 東京: 放送大學敎育振興會, 2000, 143~148쪽도 함께 참조.
23) 子貢이 스승인 孔子로부터 天道에 관한 것을 들을 수 없었다고 술회한 것이나(『論語』 「公冶長」), 孟子가 王道정치 실현의 철학적 근거로서 性善을 주장한 것이나(『孟子』 「梁惠王上」/「公孫丑上」/「告子上」), 荀子가 道를 人道에 국한시킨 것에 의하면(『荀子』 「儒效」), 선진 유가의 주된 관심은 인간세계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진 유가의 세계관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1세계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단, 『순자』의 경우는 도가의 2세계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다른 기회에 논하기로 한다.
24) 묵가의 3세계론에 관해서는 福永光司, 「墨子の思想と道敎-中國古代思想における有神論の系譜-」, 『吉岡博士還曆記念 道敎硏究論集』, 東京: 國書刊行會, 1977;

졸고, 「上博楚簡≪鬼神之明≫鬼神論與墨家世界觀硏究」, 『文史哲』 2011-2, 靑島: 山東大學文史哲編輯委員會, 2011, 15~17쪽 참조. 참고로 福永은 묵가의 세계관을 ‘三部世界觀’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도’는 곽점본에서는 ‘만물’의 세계를 존재하고 운동하고 현상하게 하는 궁극적 근원적 실재로 규정하고 있으며, 도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작용이나 생명력은 무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의 도 및 도와 만물의 관계 설정은『노자』내부에서 향후 일관되게 전개되어 가는 하나의 기본 구도였다. 이러한 2세계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곽점본의 다음의 문장이다.

 

【원문①】흩어져 있지 않고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 무언가가 하늘과 땅이 탄생하기 전에 존재하고 있었다. 맑고 고요하며 홀로 자립하여 아무런 움직임도 없지만, 이 세계를 낳은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아직 그 이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별명을 지어 ‘도’라고 해두자. 내가 무리하게 이름을 짓는다면 ‘크다’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 커다란 도에 운동이 발생하면 점차로 멀어지게 되고, 멀어지지만 결국은 다시 근원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도도크며, 왕도 크다. 광활한 영역에 4가지 커다란 존재가 있는데, 왕도 그 중 한 자리를 차지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만물의 자생성을 본받는다.25)

 

25)곽점 갑본 제21~22호간(제25장), “又(有)X(狀)蟲<X(昆)>X (成), 先天X(地)生. 敓(涗?)X(穆)X(獨)立不亥(改), X(可)X(以)爲天下母. 未X(知)亓(其)名, X(字)之曰道.X(吾)X(强)爲之名曰大. 大曰X(遣),X(遣)曰X<遠>, X<遠>曰反. 天大,X(地)大, 道大, 王亦大. X(域)中又(有)四大安(焉), 王凥(居)一安(焉). 人X(法)X(地), (地) X(法)天, 天X(法)道, 道X(法)自肰(然).”(‘X’자에 관해서는 大西克也, 「「國」の誕生-出土資料における「或」系字の字義の變遷-」, 郭店楚簡硏究會 편, 『楚地出土資料と中國古代文化』, 東京: 汲古書院, 2002, 468~469쪽 참조)

異體字나 假借字의 경우는 어떤 글자의 이체자 혹은 가차자인지를 ‘( )’에 넣어 표기했고, 誤字의 경우는 어떤 글자의 오자인지를 ‘< >’에 넣어 표기하였다. 缺字의 경우는 그것이 추측 가능할 경우 ‘[ ]’에 넣어 표기하였다. 脫字의 경우도 ‘[ ]’에 넣어 표기하였다. 또, 곽점본의 缺文은 마왕퇴 갑본에 의거하여 보충했지만, 갑본에 결문이 있을 경우에는 을본에 의거하여, 을본에 결문이 있을 경우에는 현행본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이하 동일.

아울러 곽점본과 마왕퇴본의 저본으로는 國家文物局古文獻硏究室 編, 『馬王堆漢墓帛書〔壹〕』, 北京: 文物出版社, 1980; 荊門市博物館 編, 『郭店楚墓竹簡』, 北京: 文物出版社, 1998을 이용하였다.

단, 필자가 사진 도판을 직접 보고 또 선행 연구를 참조하여 문자를 고친 부분도 많다. 그리고 곽점본과 마왕퇴본을 해석하거나 내용을 확정할 때에는 許抗生,『帛書老子注譯與硏究』, 增訂本, 杭州: 浙江人民出版社, 1985(초판:1982); 高明, 『帛書老子校注』, 北京: 中華書局, 1996; 李零, 『郭店楚簡校讀記』,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2002; 廖名春, 『郭店楚簡老子校釋』, 北京: 淸華大學出版社, 2003; 池田知久,『老子』, 東京: 東方書店, 2006; 同, 앞의 책, 2011 등을 참조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池田知久의 연구로부터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 다만 번잡을 피하기 위하여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일이 주를 다는 것은 생략하였다.

 

* 입력되지 않는 字를 X 표기하고 아래 이미지로 출력하였음.

 

 

 

 

‘하늘과 땅이 탄생하기 전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도가 형이하의 유형적 존재 중 대표 격인 하늘과 땅보다도 더 근원적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고, ‘이 세계를 낳은 어머니’라는 것은 도의 多産性을 상징함과 동시에,26) 그러한 도가 천하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궁극적 실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도에 운동이 발생하면 점차로 멀어지게 되고, 멀어지지만 결국은 다시 근원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만물이 어머니인 도에서 나와 도로 복귀하는 운동성을 의미한다. 이로써 여성성과 모성을 의미하는 ‘어머니’(母)가 남성성과 부성을 의미하는 ‘아버지’(父)보다 가치적으로 우위에 있다는『노자』특유의 철학이 정립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柔弱’과 같이 여성성 및 모성과 관련된『노자』적인 모든 가치와 윤리가 여기에서 비롯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남성성과 부성이 우선시되고 가치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여겨졌던 당시의 일반 상식과는 상반된다는 의미에서 ‘마이너스철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27)

 

26) 곽점 갑본 제23호간(제5장)의 “天X(地)之X(閒), 丌(其)猷(猶) X(橐)X (籥)與. 虛而不X(竭), X(動)而(愈)出.”도 천지의 다산성을 의미한다. 여기서 ‘천지’는 의미상 ‘도’에 상응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도의 다산성은 마왕퇴 갑본 제102~103행에서 “浴(谷)神[不]死, 是胃(謂)玄牝. 玄牝之門, 是胃(謂)[天]地之根˪. 緜(綿)緜(綿)呵若存, 用之不菫(勤)˪.”이라고 하듯이 마왕퇴본으로 그대로 계승된다.

27) 마이너스란 우리말로는 ‘부정’을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부정’은 사물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의미에서의 부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통 세간에서 ‘일반 상식적으로 부정하는 것’, 또는 ‘일반 상식적으로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부정이다. 중국 고대에 도가철학자들은 세간에서 일반 상식적으로 부정적이고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플러스적인 효과를 거
둘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가장 마이너스적인 것이 가장 플러스적인 것을 실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마이너스가 플러스를 낳는 원천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가 여기서 곽점본『노자』의 철학을 ‘마이너스철학’이라고 규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도가철학자들이 ‘도’를 궁극적 근원적인 실재로 규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莊子』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형한 것을 유형한 것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유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가”,
“사물을 사물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다”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듯이,28) 도는 일반 사물과 같은 유형한 존재와는 달리 형체가 없거나 형체를 넘어선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곽점본에서 “진정한 형상은 형체가 없다”29)라고 한 것은 이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는『周易』 「繫辭上傳」의 표현을 빌리면 ‘형이상’적 존재인 것이다.30)

 

그런데 원문①에는 ‘도’와 관련하여 간과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철학적 특징이 있다. “맑고 고요하며 홀로 자립하여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라고 하는 부분과 “아직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도가 그 어떤 존재에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독립성’과 함께 만물로부터 초월해 있다는 ‘초월성’을 의미한다. 그것이 초월성을 의미하는 것은, 도가 만물의 세계에 내재해 있고 편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두루 운행해도 위태롭지 않다’(周行而不殆)는 구절이 위의 문장에 없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31) 그리고 후자는 인간 인식에 대한 도의 ‘초월성’을 의미한다. 도는 형체가 없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언어라는 수단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이론적으로 정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곽점본에서 “도는 항상 이름이 없는 존재이다”라고 할 때의 ‘無名’은 인간의 ‘知’와 ‘言’에 대한 도의 독립성과 초월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개념이다.32) 그러나 인간이 그것을 파악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작용이나 생명력은 무한하다는 것이 도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33) 그런 의미에서 곽점본 단계의 2 세계론의 특징은 도의 세계에 가치의 중점을 두는 ‘도 본위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28)『莊子』, 「知北遊」, “知形形之不形乎.”; 同, “物物者非物.” 단, 「知北遊」편에서 전자의 문구가 포함되어 있는 장과 후자의 문구가 포함되어 장의 의미가 완전히 다른 점에 주의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는 도는 ‘形形之不形’한 존재이기 때문에 감각으로 파악하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점에 논의의 주안점이 있다고 한다면, 후자의 경우는 ‘物物者非物’(=‘形形之不形’)한 도, 즉 천지가 존재하기 전에 그것을 존재하게 한 형이상학적인 도를 상정하는 것을 부정하고, 천지의 영원한 지속성이나 그 속에서의 만물의 일체성이 바로 도라는 것을 논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전자의 경우는 도의 초월성을 주장하는 데 주안점이 있고, 후자의 경우는 도의 초월성을 부정하는데 주안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후자의 문장에서 “冉求問於仲尼曰, 未有天地, 可知邪. 仲尼曰, 可. 古猶今也. ……無古無今, 無始無終. ……死生有待邪. 皆有所一體.”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전자에 가까운 것은 「在宥」편의 “物而不物, 故能物物. 明乎物物者之非物也.”이다.

29) 곽점 을본 제12호간(제41장), “天<大> (象)亡(無)坓(形).” ‘大象’은 곽점 병본 제 4~5호간(제35장)에서 “ (執)大(象), 天下(往). ……古(故)道[之出言], ……”이라고 하듯이 ‘道’를 가리킨다.

30) 郭沂(앞의 글, 1998, 50쪽)는 곽점본에는 현행본과 같이 심오한 내용이 담긴 글자나 장절이나 단락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고, 李澤厚(앞의 글, 1999, 420쪽)는 곽점본에는 형이상적인 것과 관련된 篇章이 없다고 하지만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곽점본 단계에서 이미 형이상의 근원적인 도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31) ‘周行而不殆’라는 구절은 마왕퇴본에도 없고 현행본에만 있다. 澤田多喜男 또한 이 구절이 도의 편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앞의 글, 2004, 24쪽) 그렇다면 후술할 도의 내재성과 편재성은 마왕퇴본 단계에서 현행본 단계로 내려가면 갈수록 더욱 강화되어 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박원재는 제25장을 포함하여 자구상의 차이가 존재하는 장들에 대하여 “『노자』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차이인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하고,(「郭店 竹簡本 『老子』에 대한 몇 가지 검토」, 『東洋哲學』 13, 2000, 285쪽)

정세근은 “곽점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노자』에 대한 전통적 해석이 크게 뒤바뀔 것은 없다”고 하지만,(「곽점 초간본『노자』(老子)와『태일생수』(太一生水)의 철학과 그 분파」, 『철학연구』 58, 2002, 176쪽)

필자는 이들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제25장에 해당하는 문장만 하더라도 위의한 구절의 유무에 따라 의미상 근본적인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32) 곽점 갑본 제18호간(제32장), “道X(恆)亡(無)名.” 아울러 곽점 갑본 제13호간(제37장), “X (爲)而X(欲) X(作), X(將) X(定)之X(以)亡(無)名之X(樸).”; 곽점 을본 제12호간(제41장), “道[襃亡(無)名.]”도 참조.
33) 곽점 병본 제5호간(제35장), “而不可(旣)也.” 마왕퇴본과 현행본은 ‘不可’ 앞에 ‘用之’가 있고 ‘而’자가 없다. 아울러 앞에서 인용한 곽점 갑본 제23호간의 문장도 도의 작용의 무한성을 의미한다.

 

 

3. 마왕퇴본과 현행본의 ‘도’ : 초월적 ‘도’에서 내재적 ‘도’로

 

이처럼 도를 인간을 포함한 만물 세계의 바깥에 있는 독립적이고 초월적 실재이자 도의 세계에 가치의 중점을 두는 도 본위의 철학은 원문 ①이 마왕퇴본과 현행본에도 있기 때문에 후대에도 계승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의 초월성과 도 본위의 철학이라는 종래의 입장이 계승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도가 만물에 내재해 있고 편재해 있다는 새로운 철학이 등장하게 된다.

앞 장에서 지적했듯이 현행본 단계에서 원문①에 ‘두루 운행해도 위태롭지 않다’는 구절이 삽입되어 있는 것
은 그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새로운 철학은 도의 세계 뿐만 아니라 만물의 세계도 도와 동질의 가치가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통하여 가능하게 된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현행본 제1장에 해당하는 마왕퇴 갑본의 다음의 문장이다.

 

 

【원문②】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항상 불변한 도가 아니다. (도를)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은 항상 불변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은 만물의 시원이고,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항상 욕망이 없는 태도를 견지함으로서 신묘한 세계를 보고, 항상 욕망이 있는 태도를 견지함으로서 명료한 세계를 본다. 이러한 (유명의) 도와 만물 양자는 동일한 근원에서 나온 것으로,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다.

이 양자로부터 출발하여 심오한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또 거슬러 올라가면, 마침내 많은 신묘한 것이 있는 문에 도달하게 된다.34)

34) 마왕퇴 갑본 제93~94행(제1장),

“•道可道也˪, 非恆道也˪. 名可名也˪, 非恆名也.

无名,萬物之始也˪. 有名, 萬物之母也˪. [故]恆无欲也, 以觀其眇(妙)˪. 恆有欲也, 以觀其所噭(曒).

兩者同出, 異名同胃(謂)˪. 玄之有(又)玄, 衆眇(妙)之[門].

” 현행본의 경우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 이하, 본고에서 인용하는마왕퇴본의 문장은 현행본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마왕퇴본만 인용하기로 한다.

 

 

이 문장의 서두에서는 인간이 언어나 지적 사유 능력으로 도를 고정화하거나(可道) 이론화하는(可名) 순간, 그 도는 항상 불변한 절대적인 도가 아니게 된다고 하고 있다.

이때 말하는 도란 “이름이 없는 것은 만물의 시원”이라고 할 때의 ‘무명’의 도, 즉 이 장의 저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衆妙之門’으로서의 근원적인 실재를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무명’의 도는 원문①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도는 “끝이 없어서 이름을 붙일 수 없다”35)고 한 점은 이 점을 더욱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문①과 다른 점은 ‘무명’의 도를 말함과 동시에, ‘有名’의 도를 말하고 있는 점이다. ‘유명’이 도를 가리킨다는 것은 그것을 ‘만물의 어머니’로 규정하고 있는 점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왜냐 하면 이미 언급했듯이 ‘어머니’라는 것은 도를 상징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원문①에서도 “별명을 지어 ‘도’라고 해두자. 내가 무리하게 이름을 짓는다면 ‘크다’라고 부를 수 있겠다”라고 하고는 있지만, ‘별명을 지어’(字)라든가 ‘무리하게’(强)와 같은 단서를 붙이고 있듯이, 이때의 ‘명’은 어디 까지나 ‘부정적 매개’라는 소극적 의미밖에 없다. 부정적 매개가 필요한 이유는 아무리 도가 ‘무명’한 실재라 하더라도, 인간이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언어화 내지는 개념화라는 매개가 수반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36)

따라서 ‘字’나 ‘强’은 도에 이름을 부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무명의 존재라는 것을 견지하려는 의도를 언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35) 마왕퇴 갑본 제117행(제14장), “尋(繩)尋(繩)呵不可名也.”

36)『韓非子』 「解老」편에서『노자』제1장의 “道之可道, 非常道也.”를 해석하는 자리에서 먼저 物과 道의 차이에 관하여 “夫物之一存一亡, 乍死乍生, 初盛而後衰者, 不可謂常. 唯夫與天地之剖判也具生, 至天地之消散也, 不死不衰者謂常. 而常者無攸易, 無定理. 無定理, 非在於常所, 是以不可道也.”라고 말한 뒤, “聖人觀其玄虛, 用其周行, 強字之曰道. 然而可論.”이라고 지적한 것은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그에 반해 ‘유명은 만물의 어머니’라고 하여 어떠한 부정적 매개도 없이 도의 ‘유명’을 말하게 되면,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도에 이름이 부여되어 도가 형이하의 만물과 동일한 차원으로 내려오게 된다.

둘째, 도가 개별 사물에 내재하고 편재하게 된다.

셋째, 도가 개별 사물에 내재하고 편재하게 되면, 만물의 세계도 도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된다.

 

첫 번째 의미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도가 형이하의 만물과 동일한 차원으로 내려오는 의미를 갖게 된다고 한 근거 중의 하나는, 그래야만 “양자는 동일한 근원에서 나온 것으로,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양자는 ‘유명’의 도와 만물을 가리킨다.37)

 

다음으로 두 번째와 세 번째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도가 이와 같이 만물의 차원으로 내려오게 되면, 만물의 세계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던, 그런 의미에서 초월적 존재였던 종래의 도가 만물의 세계와 매우 밀착하게 된다. 도가 만물의 세계와 밀착하게 된다는 것은, 도가 각각의 사물 속에 내재하고 편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후술할 도의 내재성과 관련된 문장과 함께 “도는 물이 계속 넘쳐흐르듯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다”라는 말은 도의 작용이나 생명력의 무제약성과 함께 편재성을 함축하고 있다.38)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초월적 절대적 실재에서 내재적 편재적 실재로 의미의 전환을 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도를 ‘무명’의 초월적인 도와 ‘유명’의 내재적인 도라는 두 종류로 구분하여 보는 관점은 곽점본에는 없고 마왕퇴본에 이르러 처음 등장한 새로운 철학이다.

이러한 후자의 내재적인 도를 개념화한 것이 바로『한비자』의 ‘道理’ 개념이다. 이 ‘도리’는 만물의 개별적 ‘리’의 총화를 가리키고, 그것이 곧 ‘도’라는 것을 의미한다.39)

 

 

37) 池田知久는 양자는 형이상의 도와 형이하의 만물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원문②에서 형이상의 도에 해당하는 것은 ‘無名’의 도, 즉 ‘玄之又玄’하여 도달한 ‘衆妙之門’으로서의 근원적인 도가 그것에 해당하는데, 이것을 양자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同出’이라는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無名’이나 ‘衆妙之門’으로서의 도보다 더 근원적
인 도는 논리상 있을 수 없다. 池田知久, 앞의 책, 2006, 178쪽,【注釋】(七).

38) 마왕퇴 갑본 제162행(제34장), “道[渢(汎)呵, 其可左右也.]”
39)『韓非子』, 「解老」,

“道者萬物之所然也, 萬理之所稽也. 理者成物之文也, 道者萬物之所以成也.

故曰, 道, 理之者也. 物有理, 不可以相薄. 物有理, 不可以相薄, 故理之爲物之制, 萬物各異理, 而道盡稽萬物之理, 故不得不化. 不得不化, 故無常操. 無常操, 是以死生氣禀焉, 萬智斟酌焉, 萬事廢興焉.”

『莊子』 「秋水」편에서 “知道者, 必達於理.”라고 할 때의 ‘道’와 ‘理’의 관계도『한비자』와 동일하다.

 

 

그렇다고 도의 내재화가 마왕퇴본 단계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그 가능성은 곽점본 단계에서부터 이미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생각된다. 즉, 위에서 인용한 곽점 갑본 제18호간에서는 도는 항상 이름이 없는 존재라고 하면서, 제19호간에서는 도의 비유적 표현인 ‘가공하지 않은 원목’(樸)을 가공하기 시작하면 그로부터 이름이 있는(有名) 다양한 기물들이 탄생한다고 한다.

제20호간에서 도와 천하의 관계를 ‘小谷’과 ‘江海’의 관계로 설명한 것은 바로 그런 점을 비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40) 제19~20호간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만약 ‘有’ 를 특징으로 하는 만물 세계의 ‘名’이 ‘樸’(=도)을 가공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면, 그 어떤 하찮은 존재라도 개별 사물에 도가 내재해 있고,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물도 무가치한 존재는 없다는 철학으로 전개될 잠재적 가능성은 내포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곽점본 단계에서는 잠재적 가능성만 있었을 뿐, 실제로 그러한 철학으로 전개되지는 못하였다.

 

그에 비해 마왕퇴본의 단계가 되면, “원목은 다듬어서 가공하면 사람들의 생활에 유용한 그릇이 되는데, 성인이 이러한 그릇을 잘 활용한다면 백관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될 것이다”41)라고 하여, ‘원목=도’를 가공하여 만든 ‘그릇=만물’을 성인이 활용해야 할 유용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장은 만물이 도에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 도가 만물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유용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왕퇴본의 다음의 문장을 보면 그러한 사실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40) 곽점 갑본 제18~20호간(제32장), “道X(恆)亡(無)名. X(樸)售(雖) X(細), ……X(始) X(制)又(有)名. …… X(譬)道之才(在)天下也, 猷(猶)少(小)浴(谷)之(與)江X(海) .”
41) 마왕퇴 갑본 제149~150행(제28장), “楃(樸)散[則爲器, 聖]人用則爲官長.”

 

 

【원문③】천하의 만물에는 시원이 있는데, 그것을 천하의 어머니로 삼겠다. 그 어머니를 체득하여 그 자식을 알고, 그 자식을 알고 다시 그 어머니를 지킨다면, 죽을 때까지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다.42)

42) 마왕퇴 갑본 제29~30행(제52장),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X(旣)得亓(其)母, 以知亓(其)[子,X(旣)得亓(其)子], 復守亓(其)母˪, 沒身不殆.”

현행본 제52장의 문장을 상/중/하단으로 나누면, 중단에 해당하는 문장은 곽점 을본 제13호간에도 있지만, 상단에 해당하는 이 문장은 곽점본에는 없다. 뿐만 아니라 중단에 해당하는 문장은 마왕퇴 갑본의 경우 그 앞에 ‘•’ 부호가 찍혀 있는데, 이것은 分章을 의미하는 부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제52장의 문장은 처음에는 중단만 있다가 마왕퇴본 단계에서 상단이 추가되고, 마왕퇴본 단계에서 아직 하나의 장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것이 현행본 단계에서 하나의 장으로 합쳐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도와 천하 만물의 관계를 의인화하여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그것은 곧 천하 만물을 시원적 존재인 도의 ‘자식’이라고 명확히 규정함으로서, 자식인 천하 만물이 도의 핏줄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천하 만물은 도에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 도의 성질까지 이어받은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천하 만물에 도가 내재되어 있는 관계를 한층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장의 저자는 어머니인 도에 대해서는 체득하고 지킬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자식인 천하 만물에 대해서는 알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곧 도뿐만 아니라 천하 만물도 알아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가능한 철학이다.43)

“有인 만물이 (인간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無인 도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것은 ‘무’를 특징으로 하는 도의 내재성 및 ‘유’의 유가치성을 존재론적으로 규정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44)

 

도가 만물에 내재해 있고 그런 의미에서 만물도 가치가 있다는 철학이 더욱 전개되면, 마왕퇴본에서 “도는 만물의 주인이다. 선한 사람이 보물과 같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며, 선하지 않은 사람도 갖고 있는 것이다”45)라고 하는 것과 같이, 선한 자뿐만 아니라 선하지 않은 자도 갖고 있다는 철학으로 전개된다. 선하지 않은 자도 갖고 있다는 것은, 관점을 달리 하면 선하지 않은 자에게도 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것이 정치철학으로 전환되면 성인은 백성들 중 선하고 신실한자(善者/信者)뿐만 아니라, 그와 반대로 선하지 않고 신실하지 않은 자(不善者/不信者)도 선하고 신실한 자와 동등하게 처우함은 물론, 어떤 사람이나 사물도 버리지 않고 잘 살린다는 철학으로 전개된다.46) 이것은 모든 사물이 도에서 탄생한 이상, 일반적으로 정치 사회에서 배제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선하지 않은 자나 신실하지 않은 자에게도 그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철학이다.

덕을 체득한 자(=성인)는 국가 간의 정치 군사적 증서(右券)를 관장하고, ‘덕이 없는 자’(無德)는 세금 징수(徹)를 관장한다는 일종의『노자』적 사회분업론47)도 도의 내재성과 편재성이 기반이 되었을 때 가능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43) 이 점에 관해서는 池田知久, 앞의 책, 2006, 56쪽, 99쪽, 215쪽도 함께 참조.
44) 마왕퇴 갑본 제111행(제11장), “有之以爲利, 无之以爲用.” 이 장에서는 인간에게 유익한 有의 구체적인 예로 수레(車), 식기(埴器), 방(室)을 각각 들고 있다.

45) 마왕퇴 갑본 제50~52행(제62장), “[道]者, 萬物之注(主)也, 善人之X(寶)也, 不善人之所X(保)也. ……人之不善也, 何[棄之]有˪.”
46) 마왕퇴 갑본 제23~24행(제49장),

善者善之, 不善者亦善[之, 德(得)善也. 信者信之, 不信者亦信之, 德(得)]信也.”;

同 제146~147행(제27장),

“是以聲(聖)人恆善X(救)人, 而无棄人, 物无棄財˪. 是胃(謂) (疊)X(明). 故善[人, 善人]之師. 不善人, 善人之齎(資)也˪.”
47) 마왕퇴 갑본 제91~92행(제79장), “和大怨, 必有餘怨˪, 焉可以爲善. 是以聖[人執]右介(契), 而不以責於人. 故有德司[介(契), 无]德司勶(徹). 夫天道无親, 恆與善人.”

단, 이 문장에서 “천도는 편애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항상 선한 사람을 돕는다”고 하는것은 사실은 모순이다. 이렇게 모순을 범하게 된 이유는 어쩌면 善人에게는 하늘과 귀신이 반드시 상을 내린다는 묵가 天鬼論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4.『노자』이외의 도가문헌에서의 ‘도’ 철학의 전개와『노자』적 포용의 철학의 탄생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우리는『노자』의 도가 곽점본에서 마왕퇴본및 현행본으로 형성 전개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근본적인 의미 변화를 겪는 그 구체적인 실상을 확인하였다. 근본적인 의미 변화란 존재론적으로는 초월적인 도에서 내재적인 도로 철학이 변화하고 전개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초월적인 도에서 내재적인 도로의 철학적 전개는 사실『노자』에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장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초기 도가철학을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제물론」편 ‘南郭
子綦‧顔成子游’ 문답48)에서는 다음의 이중의 도가 주창되고 있었다.

하나는 “천지와 나는 나란히 실재하고 만물과 나는 하나다”라고 할 때의 도이고, 또 하나는 인간과 대지가 불어서 내는 소리는 무수히 다르고 무언가가 그것들에게 스스로 소리를 내도록 하고 있는데, “그렇게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할 때의 도이다.49)

전자는 모순율의 부정을 통하여 하나이자 ‘無’를 특징으로 하는 천지만물의 세계가 도라는 ‘만물제동의 도’를 의미하고, 후자는 이와 같이 천지만물을 하나이게 하는 그 무엇이 바로 도라는 ‘존재론적인 도’를 의미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다른 말로 ‘眞宰’ 내지는 ‘眞君’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은 실재하고 있지만 무형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그 어떤 조짐도 없는 존재이다.50)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진재나 진군, 즉 도는 인간의 육체나 정신에서는 구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사실 「제물론」편에서는 존재론적인 도에 관해서는 논의가 거의 없고, 만물제동의 도에 논의가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만물제동의 도의 세계는 감정판단, 가치판단, 사실판단, 존재판단과 같은 인간의 모든 판단이 부정되고 배제됨으로서-이러한 단계가 곧 ‘사물이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단계이다(以爲未始有物)-근원적인 ‘무’의 세계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러한 세계는 「제물론」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아를 상실하는 것(喪我)을 통하여 도달하게 되는 세계이다.

 

48) ‘南郭子綦‧顔成子游’ 문답이 초기 도가철학을 대표한다고 지적하고 있는 선행연구로는 池田知久, 「莊子-「道」の哲學とその展開」, 日原利國 編, 『中國思想史』 上, 東京: ぺりかん社, 1987, 65~66쪽;

同, 앞의 책, 2000, 101쪽, 118쪽 참조.
49)『莊子』, 「齊物論」, “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同, “夫吹萬不同, 而使其自己也, 咸其自取. 怒者其誰邪.”

50)『莊子』, 「齊物論」, “若有眞宰, 而特不得其朕. 可行已信, 而不見其形. 有情而無形.”

 

 

그러던 것이 시대가 내려와서 「知北遊」편의 단계가 되면, 도는 만물에 내재하고 편재해 있다는 철학으로 전개되게 된다. ‘東郭子‧莊子’ 문답은 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로, “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어디에나 있다”라고 하면서, 땅강아지, 개미, 돌피, 피, 기와, 벽돌, 심지어는 대변과 소변에도 있다고 한다. 이 문답에서는 이러한 도의 내재성과 편재성을 나타내는 말로 ‘두루’(周), ‘널리’(徧), ‘모두’(咸)라는 개념을 제시한다.51)

그밖에 “옛날에 도술이라고 불리던 것은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어디에나 있었다”라고 하는 것도 이것과 일맥상통하는 문장이다.52) 이처럼 그 어떤 하찮은 사물에도 도가 내재해 있다는 철학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사물에는 일정 정도의 가치와 장점이 있다는 철학으로 전개되게 된다. 「제물론」편에서는 유가와 묵가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천하」편에서 유묵을 포함한 제자백가 철학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의 명찰’(一察)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데에는,53) 이와 같이 도와 만물의 2세계론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51)『莊子』, 「知北遊」,

“東郭子問於莊子曰, 所謂道惡乎在. 莊子曰, 無所不在. 東郭子曰, 期而後可.

莊子曰, 在螻蟻. 曰, 何其下邪. 曰, 在稊稗. 曰, 何其愈下邪. 曰, 在瓦甓. 曰, 何其愈甚邪. 曰, 在屎溺.

東郭子不應. 莊子曰, 夫子之問也, 固不及質. ……汝唯莫必, 無乎逃物. 至道若是, 大言亦然. 周徧咸三者, 異名同實, 其指一也.”

아울러 ‘大言’은 曹礎基가 지적하듯이 도에 관한 언론을 의미한다.(『莊子淺注』, 北京: 中華書局, 1982, 334
쪽)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은 「제물론」편에서는 ‘大言炎炎’이라 하여 ‘言’을 부정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言’을 긍정하고 있는 점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池田知久,『莊子』下, 東京: 學習硏究社, 1986, 補注 131, 552쪽 참조.

52)『莊子』, 「天下」,

“古之所謂道術者, 果惡乎在. 曰, 無乎不在.” 그밖에 「則陽」편의 “今計物之數, 不止於萬. 而期曰萬物者, 以數之多者, 號而讀之也. 是故天地者, 形之大者也. 陰陽者, 氣之大者也. 道者爲之公.”도 도의 편재성과 관련이 있다.

53)『莊子』, 「天下」, “天下大亂, 賢聖不明, 道德不一. 天下多得一察, 焉以自好. ……皆有所長, 時有所用. 雖然不該不徧, 一曲之士也.”

 

 

앞 장에서는 도의 초월성에서 내재성과 편재성으로 철학이 전개됨에 따라『노자』적인 사회분업론이 새롭게 주창되게 되었다고 논급하였다.
그런데 분업론은 사실은 유가 쪽에서도 주창하고 있었다.『순자』의 ‘分’ 철학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노자』의 사회분업론과『순자』의 ‘분’ 철학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순자』의 ‘분’ 철학은 王者의 이상적인 정치를 논하는 「王制」편에 잘 나타나 있는데, 거기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고 버리지 않는다”(兼覆無遺)고 하고는 있지만, “현명하고 유능한 자는 서열에 관계없이 등용하고, 나약하고 무능한 자는 때를 기다릴 것도 없이 그만두게 하며, 극악무도한 자는 교화할 것도 없이 베어버리고, 평범한 사람들은 정치를 기다릴 것도 없이 교화시킨다. 이처럼 구분이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하더라도 종묘의 昭와 繆(穆)과 같이 위계질서가 확실히 잡혀 있다”고 하고,

또 사악한 언설이나 행동을 하는 백성들은 교화하여 그들의 언행을 잠시 살핀 뒤 “상을 내려 독려하거나 형벌로 징계하여 정해진 일에 정착하면 생활을 보장하지만 정착하지 못하면 버린다”고 한다. 더구나 재능이나 행동이 세상에 반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여 용서하지 않는다고까지 하고 있다.54)

이렇듯『순자』의 ‘분’ 철학은 尙賢論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賢愚를 명확히 구분하고, 상벌로 강제하며, 극악무도(元惡)하거나 갱생의 여지가 없는 자를 사회에서 철저히 격리시키거나 제거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묵가의 상현론도 내용의 차이는 차치하고, 현우의 구별은『순자』보다 더욱 철저하다. 즉, 현명하고 유능한 자에게는 부귀와 영예를 주지만, 어리석고 무능한 자에게는 부귀의 기회를 주지 않음은 물론 가까이 하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55) 또 이러한 묵가의 상현론이 상벌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즉,『순자』와 『묵자』의 분업론과 상현론은 기본적으로 현우‧선악의 철저한 차별과 상벌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4)『荀子』, 「王制」,

“賢能不待次而擧, 罷不能不待頃而廢, 元惡不待敎而誅, 中庸不待政而化. 分未定也則有昭繆也.

……故姦言・姦說・姦事・姦能, 遁逃反側之民, 職而敎之, 須而待之, 勉之以慶賞, 懲之以刑罰, 安職則畜, 不安職則棄. ……才行反時者死無赦.”

참고로 태조의 사당을 중심으로 2ㆍ4ㆍ6世가 왼쪽에서 정렬하는 것을 昭라고 하고, 3ㆍ5ㆍ7世가 오른쪽에서 정렬하는 것을 繆 즉 穆이라고 한다.

55)『墨子』, 「尙賢上」,

“譬若欲衆其國之善射御之士者. 必將富之貴之, 敬之譽之, 然后國之善射御之士, 將可得而衆也. 況又有賢良之士, 厚乎德行, 辯乎言談, 博乎道術者乎. ……不義不富. 不義不貴. 不義不親. 不義不近.”

 

 

이것은 앞 장에서 살펴본『노자』의 사회분업론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왜냐 하면『노자』의 경우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도 버리지 않고 살린다는 사회정치적 기회 보장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마왕퇴본의 단계에서『노자』가 ‘不尙賢’을 주장하게 되는 것은56) 바로 이러한 철학사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묵가나 순자와 같은 능력주의(賢賢主義)를 추구하는 상현론에 의하여 자칫 초래하게 될 무한 경쟁사회를 비판ㆍ부정하고자 하는 것에 첫 번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또, 그러한 무한 경쟁에 의하여 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정치적으로 배제됨으로서 권력으로부터 소외당하고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여 생계와 생명에 위협을 받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에 두 번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장자』 「천하」편에서 관윤과 노담에 대하여 “항상 모든 사물을 널리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에게도 모질게 하지 않는다. 궁극에 도달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57)라고하여 최고의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사회정치적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노자』의 ‘포용의 철학’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56) 마왕퇴 갑본 제97~99행(제3장), “不上賢, [使民不爭. ……弗爲而已, 則无不治矣].”

57)『莊子』, 「天下」, “常寛容於物, 不削於人. 可謂至極. 關尹ㆍ老耼乎, 古之博大眞人哉.”

 

 

‘포용의 철학’을 의미하는『장자』 「천하」편의 ‘寬容’이라는 개념은『노자』에는 보이지 않지만, 다음의 문장에 보이는 ‘容’이라는 개념이 그 것과 상통한다.

 

【원문④】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고요함을 철저히 지킨다면, 만물은 일제히 생장하기 시작하고, 나도 만물이 도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대개 만물은 왕성하게 자라면서 각각 그 뿌리로 되돌아간다.

⒝이것을 고요함이라고 한다. 이러한 고요함은 사물이 (도가) 명령한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도가) 명령한 곳으로 되돌아감으로서 (세계의) 항상 불변성이 성립하게 되는데, 이러한 (세계의) 항상 불변성을 아는 것이 진정한 지혜이고, 항상 불변성을 알지 못하는 것이 망령된 것이다. 망령되면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 세계의 항상 불변성을 알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고, 모든 것을 포용하면 공평무사하게 되며, 공평무사하게 되면 이상적인 왕이 될 수 있고, 이상적인 왕이 되면 천과 같은 존재가 되고, 천과 같은 존재가 되면 (만물을 포용하는) 도를 자신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다. 도를 자신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으면 영원불멸해져서 죽을 때까지 위험에 빠지지 않게 된다.58)

58) 마왕퇴 갑본 제122~124호간(제16장),

“⒜至虛極也, 守X(靜)表(篤)也, 萬物旁(竝)作, 吾以觀其復也. 天<夫>物雲( )雲( ), 各復歸於其[根.

⒝曰X(靜). 情(靜)]是胃(謂)復命.

⒞復命, 常也. 知常, X(明)也. 不知常, X(妄). X(妄)作兇(凶).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沕(沒)身不X(殆).”

 

 

이 문장에서 ⒜는 주체(이상적으로는 王, 현실적으로는 군주)의 ‘無爲’(虛‧靜)를 원인으로 객체인 만물의 ‘自然’(자생성: 竝作)이 결과로서 도출된다는 ‘자연’ 사상에, 만물이 근원적 존재인 도에서 태어나 도가 명령하는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復命 사상이 결합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59)
마왕퇴본에서는 복명을 특징으로 하는 도와 만물의 존재론적 구조를 ‘고요함’(靜)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이 문장에서 주체에게 ‘고요함’이라는 무위의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도와 만물 2세계의 존재론적구조가 바로 이러한 ‘고요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59)『노자』의 ‘자연’ 사상에 관해서는 졸고, 「郭店楚簡 老子의 ‘自然’ 思想과 그 展開」,『東洋哲學硏究』 53, 2008, 207~244쪽 참조.

 

그런데 이 문장에서 포용의 철학은 ‘세계의 항상 불변성’(常)을 아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하고 있는데, 세계의 항상 불변성을 아는 것이란 곧 만물이 도가 명령하는 곳으로 복귀 내지는 귀복하는 메커니즘을 자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도를 자각할 경우 인간 사회나 정치 세계에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이유는, 도는 개별 사물처럼 용량이 유한한 그릇(器)과 달리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모든 사물을 하나도 빠짐없이 즉 무한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그 용량에 한계가 없는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장자』 「天道」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과 완전히 동일하다.

 

"대개 도는 아무리 큰 것을 넣어도 여유가 있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버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물이 다 갖추어져 있다. 너무나도 넓어서 어느 것 하나 포용하지 않는 것이 없고, 너무나도 깊어서 헤아릴 수가 없다.60)"

60)『莊子』, 「天道」, “夫道, 於大不終, 於小不遺. 故萬物備. 廣廣乎其無不容也, 淵乎其不可測也.”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포용의 철학은 마왕퇴본 단계에 이르러 새롭게 등장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곽점본에는 원문④ 중 ⒜와 유사한 문장만 있고 ⒝ 이하의 문장이 없는 것을 통하여 알 수 있다.61)
원문④가 이러한 철학을 주창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군주가 포용의 철학을 실천하면 그 결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서 사회 국가의 통합을 이룰 수 있고(公), 사회 국가의 통합을 이루게 되면 왕이 될 수 있으며(王), 왕이 되면 천과 같은 위대한 존재가 되고(天), 천과 같은 존재가 되면 도가 귀복을 명령하고 만물을 무한히 포용하는 작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되며(道), 그렇게 되면 왕 자신의 영생을 얻게 됨은 물론(久) 자신의 권력까지도 영속시킬 수 있다(不殆)고 하는 점에 있다. 즉, 一君萬民의 일원적 지배가 가능하고 그것을 계속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61) 곽점 갑본 제24호간의 “至(致)虛X<X(極)>也, X(守)中(盅)X(篤)也, 萬勿(物)方(旁) X(作), 居X(以)須X(復)也. 天道X(X) X(X), 各X(復)亓(其) X(根).”

참조. 그밖에 곽점 갑본 제22~23호간에 “天大, X(地)大, 道大, 王亦大. X(域)中又 (有)四大安(焉), 王凥(居)一安(焉). 人X(法) X(地),X (地) X(法)天, 天X(法)道”라 하여 원문④의 ⒞와 유사한 문장이 있지만 ‘容’자가 없는 점에 주의.

 

 

5. 소결

 

그런데 이러한 포용의 철학은 도의 입장에서 인간을 포함한 만물에 대한 세간적인 가치판단이나 사실판단을 부정하고 배제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사실은 만물제동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만물제동의 철학을 처음으로 정립시킨 「제물론」편이나 곽점본 단계에서는 왜 사회정치적 기회 보장이나 포용의 철학이 주창되지 못했던 것일까? 거기에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물론」편의 경우는 진재‧진군과 같이 도를 초월적인 존재로 보고, 또 ‘喪我’라는 표현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듯이, 話者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주체성과 가치는 인간 내부에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곽점본의 경우도 도를 초월적인 존재로 보는 것은 동일하며, 또 원문①과 같이 인간을 ‘천‧지‧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四大’의 하나로 자리 매김하기는 했지만, 그때의 인간은 어디까지나 ‘왕’ 한 사람에 국한시키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본다면, 포용의 철학은 도가 만물에 내재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만물의 세계도 도의 세계와 동질의 가치가 있다는 쪽으로 전개되고 나서야 비로소 등장한 새로운 철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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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 2012. 8. 6 심사일: 2012. 9. 5 게재확정일: 2012. 9. 7

 

 

 

 

 

Ontological Analysis of Dao (道: Way)

: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Laozi (老子) Philosophy Viewed through Traditional Literature and Excavated Literature

 

Yi, Seung-Ryul

 

The Laozi was practically the only current text within traditional literature until the 1960's. However, with the finding of excavated literature, such as the Mawangdui Laozi, Guodian Laozi, and Beijing Laozi after the 1970's, much new information emerged concerning the nature and establishment of Laozi, along with other matters. Along with the new data, many problems have also surf aced. One of the most important issues concerns the reinforced historical view of scholars who uncritically believe the records of “Laozi's biography” (老子列傳) in the Historical Records (史記) written by Sima Qian. The majority of scholars who view Laozi from this perspective strongly adhere to the position that there were almost no changes in the content of the current text during the establishment process between the period of revolution. However, this study suggests that there have been fundamental changes in the basic philosophy of Laozi during the period between the Guodian Laozi, Mawangdui Laozi, and current texts that span several centuries. The concept of Dao during the Guodian Laozi stage was considered an actual existence that transcended all things in the universe. However, during the stages of Mawangdui Laozi and the current text, this concept was viewed as something existent in all matters. Such significant changes in ontology also naturally affect epistemology. Therefore, although sensuous cognition was completely denied during the Guodian Laozi stage, it was partially recognized during the Mawangdui Laozi and current text stage. Such changes in ontology and epistemology have resulted in fundamental changes in social and political perspectives. The philosophy of tolerance and the theory of social division of labor in Laozi, which suggests equal social and political opportunities for all human beings, stem from the Mawangdui Laozi and the current text stage.

 

* Research Professor of the Foundation Academic Platonica, Seoul, Korea.

 

Key Words: Laozi, Guodian Laozi, Mawangdui Laozi, Current Laozi, Dao, Theory of social division of labor, Philosophy of tolerance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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