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스크랩] 이광려의 ?독노자오칙(讀老子五則)?에 대한 독법(讀法)?

장안봉(微山) 2013. 12. 4.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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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려의 「독노자오칙(讀老子五則)」에 대한 독법(讀法)

 

 

김윤경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한국철학 전공

 

 

Ⅰ. 서론
Ⅱ. 「독노자오칙」에 대하여
Ⅲ. ‘도(道)’와 ‘명실(名實)’
Ⅳ. ‘명실(名實)’과 선악(善惡)ㆍ직부직(直不直)의 문제
Ⅴ. 왜 선악(善惡)ㆍ직부직(直不直)을 중시하는가
Ⅵ. 결론

 

 

I. 서론

 

강화학파1) 안에서『노자』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2) 『노자』관련 저작으로는 이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광려3)(1720-1783)의 「독노자오칙(讀老子五則)」4)을 필두로, 이충익의 『초원담로(椒園談老)』가 있으며, 안타깝게도 본문이 유실되고 서문만 남아 있는 신작(1760-1828)의 『노자지략(老子旨略)』 서(序)가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노자』주석서가 총 5종5)에 불과한데, 강화학파 안에서『노자』에 대해 두 권의 주석서(‘신작’의 것은 본문이 유실되었지만)와 한 편의 논설이 나왔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1) 민영규는 ‘강화도라는 지역을 구심점으로 하면서, 하곡철학을 기본으로 하고, 하곡 정제두로부터 시작하여 위당 정인보까지 이어지는 학맥을 강화학파라고 규정하였다.
‘강화학’이라는 명칭은 그에 의해서 처음으로 제기되었는데, 그는 이와 같은 새로운 명칭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정제두로부터 내려온 학문의 특징을 보면 ‘양명학’이라는 사상체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학문적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위당 정인보 선생의 행장에 나타난 몇 가지 문제」,『 ?강화학 최후의 광경?(우반, 1994), 79-80쪽).
2) 이광려와 이충익은 노자를 호칭하는 데 있어서도 ‘노씨(老氏)’로 폄하하지 않고 ‘현성(玄聖)’, ‘노군(老君)’이라고 하는데, 이런 점을 통하여 그들의 사유 안에서 『노자』라는 저서의 위상을 볼 수 있다.
3) 이광려(1720-1783)의 본관은 전주, 자는 성재(聖載), 호는 월암(月巖) 또는 칠탄(七灘)이다. 이덕성(李德成)의 셋째 아들인 진수(眞洙)의 아들이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임명된 적이 있으나 관직에는 나가지 않았으며 당색으로는 소론에 속한다. 『이참봉집』 서문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를 정리해 본다면, 그의 문집은 사후(64세에 졸) 23년만에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서문을 쓴 사람이 이만수, 신대우 이충익이었는데 그
가운데 이만수는 “선생은 스스로 호를 일컫지도 않았으며 스스로 문학을 좋아하지도 않았기에 상자 안에 모아둔 것도 없었거니와 문집 중에 실린 것들도 다 한때 그를 따라 노닐던 사대부들이 입으로 외우고 귀에 익숙했던 것들이라 문집을 기다려서 전해 질 것도 아니었다”라고 평하였다. 실제로 그는 영정조 연간의 최고의 시인으로 뽑혔으나 시를 많이 남기지는 않고 장편을 짓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광려는 정제두의 제자로
서 을해옥사로 인해 귀향을 간 이광사, 이광명을 대신하여 가학을 잇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형법에 관한 『무일록(無冤錄)』을 연구하고 구황작물로서의 ‘고구마’ 에 관심을 갖는 등 실용적인 학문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정양호, 「월암이광려론」,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1)』(한국정신문화연구원 , 1993), 11-28쪽 참조).
4) 『李參奉集』, 한국문집총간 237(민족문화추진회 편, 영인표점본, 1999).
5) 조선시대 『노자』 주석서는 총 다섯 권으로 이이(1536-1584)의 『순언(醇言)』, 박세당(1629-1703)의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 서명응(1716-1787)의 『도덕지귀(道德指歸)』,이충익(1744-1816)의 『초원담로(椒園談老)』, 홍석주(1774-1842)의 『정노(訂老)』가 있다.

 

 

더구나 이광려ㆍ이충익ㆍ신작 이 세 사람의 관계를 보면, 이광려가 이충익의 친척 아저씨이자 스승이었고,6) 신작은 이충익과 이종사촌 간으로 학문적 교유가 있었다.7) 이러한 점은 이들의 저작이 강화학파의
『노자』이해를 밝힐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는 점을 반증한다. 따라서 필자는 ‘강화학파의 『노자』이해’라는 연구의 첫 단계 작업으로써, 이광려의 「독노자오칙」의 『노자』이해 특징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광려의 「독노자오칙」은『노자』에 대한 논설로, 논리를 이끌어가는 중심 개념은 ‘명(名)’과 ‘실(實)’, ‘선(善)’과 ‘불선(不善)’, ‘정직(直)’과 ‘부정직(不直)’이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이광려가 왜 ‘명실(名實)’, ‘정직(直)과 부정직(不直)’ 등의 도덕 규범을 중심으로『노자』를 이해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문제는 몇 가지 의문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이광려는『노자』를 이단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당대의 학자들의 『노자』에 대한 관심은 ‘『노자』가 왜 이단인가’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단 논의의 수단으로서『노자』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대 유자들의 『노자』언급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두 번째는 그가 주된 주제로 삼았던 ‘명실(名實)’, ‘선(善)과 악(惡)’, ‘직(直)과 부직(不直)’의 문제가 가지는 철학적 함의에 대한 부분이다.
역대의『노자』주석서를 보면 그 안에 당대의 철학적 문제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위진시대의 왕필은 『노자주(老子注)』에서 당시의 대표적 철학적 논제였던 ‘유무론(有無論)’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고,8) 노(老)ㆍ불(佛)의 사상적 논쟁이 치열했던 시대를 살았던 당대(唐代)의 성현영(成玄英)은 『노자의소(老子義疏)』에서 도가(道家)와 불가(佛家)를 접목시켰으며,9) 그리고 송ㆍ명대에는 ‘이학(理學)’과의 관계 속에서『노자』주석이 전개되었다.10)

조선시대의 『노자』주석서들을 보아도 저자가 당시의 여러 내재적, 외재적 요인들에 의해 고민했던 철학적 문제가 무엇인가가 드러난다. 율곡은『순언』에서 유교의 수신 덕목인 ‘경(敬)’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박세당은『신주도덕경』을 통해 성리학적 본체론을,11) 서명응의 경우는『도덕지귀』에서 『노자』의 형이상학을 ‘태극음양론(太極陰陽論)’의 해석체계로 주석하였다.12)

그렇다면 이광려가 이상의 조선시대 주석서와 달리 ‘선과 악’, ‘직(直)과 부직(不直)’의 문제를 중심으로『노자』를 이해하고자 한 이면에는 저자의 철학적 관심에 따른 해석기제가 투영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의 제자이기도한 이충익의『초원담로』도, ‘유무론(有無論)’을 중심으로 ‘선과 악’의 문제
를 논의하는데,13) 이러한 측면을 본다면『노자』에 대한 강화학파만의 이해방식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그가 『노자』를 이해하면서 말하는 ‘선악(善惡)’과 ‘직부직(直不直)’의 문제에 어떠한 해석기제가 있는가에 주목하고자 한다.

 

6) 이충익, 『椒園遺藁』, 「李參奉集叙」, “君於忠翊, 父屬而師道也.”
7) 이충익은 신작의 아버지 신대우의 묘표를 남기었으며, 신작은 이충익의 묘표를 남기었다(『石泉遺稿』, 卷3, 「椒園公墓表」).
8) 『노자』에서 ‘有無’를 논한 1장, 10장, 40장 등에서 ‘貴無論’의 견해를 드러내었다.
9) 成玄英은 『老子義疏』 2장에서 ‘無’의 개념을 ‘空’과의 관계성 속에서 풀어내며, 이밖에 12장에서는 ‘色卽是空’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불교로 『老子』를 이해하였다.
10) 劉固盛, 『宋元老學硏究』, 儒道釋博士論文叢書(巴蜀書社, 2001), 106-163쪽.

11) 김학목, 『박세당의 노자』(예문서원, 1999); 최일범, 「박세당의 유무론」, 『도교학연구』제13집(1994).
12) 졸고, 「서명응의 『도덕지귀』에 나타난 태극관」, 『동양철학연구』 제48집(2006).
13) 이충익은 『老子』 2장의 ‘有無相生’ 부분에서 선과 악의 문제로 확대시켜 해석하며, 그의 문집인 『초원유고』에는 「眞假說」이라는 논설이 따로 들어 있다(졸고, 「이충익의 『椒園談老』에 드러난 有無觀‒ 왕필 『老子注』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도교문화연구』제28집, 2008).

 

 

II. 「독노자오칙」에 대하여

 

『노자』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그 안에 녹아 있다. 따라서 ‘주석을 어떤 방향으로 하는가’ 혹은 ‘어떻게 이해하는냐’에 따라『노자』의 각각의 장들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유교적 ‘수신(修身)’의 차원에서
『노자』를 볼 수도 있고, ‘양생(養生)’의 측면에서 볼 수도 있으며, 처세술, 혹은 정치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할 수도 있다. 그만큼 81개 장 안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독노자오칙」은 이광려의 문집인『이참봉집』권4 가운데 들어 있는 「노자」에 대한 독후감 형식의 논설이다. 논의의 중심이 된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노자』81개 장 가운데 어떤 장을
『노자』의 대의가 있는 장으로 보았는가가 중요하다. 그가 「독노자오칙」 안에서 인용하고 있는『노자』의 장은 1장, 2장, 39장이다.

 

그 각각의 장들이 포함하고 있는 대체적인 내용을 보면,『노자』 1장은14) 『노자』의 중심개념인 ‘도’에 대해 설명하는 장으로, 주로 도’의 형이상학적 위상을 ‘명(名)’과의 관계에서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리고 2장은15) 미(美)와 악(惡), 유(有)와 무(無) 등의 상대적인 개념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유를 밝힌 부분이며, 39장16)은 하늘이 ‘일(一)’을 얻어 맑은 것처럼 왕과 제후도 ‘일’를 얻어 천하의 우두머리가 된다고 하는 장이다. 천리와 인사를 동일한 구조로 보는 장으로 귀함과 천함이라는 상대적인 개념들이 서로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14)『老子』, 1장,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15) 2장,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傾, 聲音相和, 前後相隨.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不居. 夫唯不居, 是以不去.”
16) 39장,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其致之一也. 天無以淸將恐裂, 地無以寧將恐發, 神無以靈將恐歇, 谷無以盈將恐竭, 萬物無以生將恐滅, 侯王無以貞而貴高將恐蹶. 故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是以候王自謂孤寡不穀. 此其以賤爲本邪. 非乎. 故致數輿無輿. 不欲碌碌如玉, 落落如石.”

 

 

이광려는『노자』의 위의 세 장의 의미를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크게 다섯 부분으로 정리한다.

 

첫째 단락은『노자』 1장에 대한 설명이면서『노자』전체에 대한 개괄적 성격도 띄고 있다. 여기서 이광려는 ‘가도(可道)’와 ‘상도(常道)’, ‘가명(可名)’과 ‘상명(常名)’의 관계를 들어서 도(道)와 명(名)을 이해하고 『노자』를 명(名)의 ‘유무(有無)’에 대한 설명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그는 1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은 모두 ‘명’을 말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둘째 단락은『맹자』의 “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인(仁)’과 ‘불인(不仁)’일 뿐이다”17)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노자』의 2장을 ‘명(名)’과 ‘실(實)’의 관계로 설명하고 이 ‘명실(名實)’의 관계로 인해서 선과 악이 생기게 된다고 보았다.

17)『孟子』, 「離婁上」, “孔子曰道二. 仁與不仁而已.”

 

셋째 단락은『노자』39장을 인용하여 왕과 제후가 ‘고(孤)’, ‘과(寡)’, ‘불곡(不穀)’이라고 칭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즉 ‘고(孤)’, ‘과(寡)’라는 이름에는 교만하지 말라는 ‘명(名)’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넷째 단락과 다섯째 단락은『논어』 「公冶長」에서 공자가 비판한 ‘미생고’ 를 통하여 그가 정직한 사람이 아니며 나아가 직의 명을 해친 사람이었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이상의 논의들을 종합해 본다면 그는『노자』의 1장으로는 ‘도(道)’와 ‘명(名)’이라는 틀로서 세상을 이해하는 형이상학적 논의들을 펼치고, 2장으로는 ‘선악(善惡)’의 문제들을 ‘명실(名實)’의 구조로 이야기하며, 39장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명실(名實)’의 합일이 가능한 조건들을 제시하게 된다.

 

 

III.‘도(道)’와 명실(名實)

 

1.‘도(道)’와‘명(名)’에 대한 규정

 

이광려는『노자』 1장에 대한 언급에서 ‘도(道)’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한다. 노자 1장은 “道可道 非常道”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구절에서의 ‘도’는 수많은 주석가에 의해 다양하게 정의되어 왔다. 조선시대『노자』주석에서 이이ㆍ박세당ㆍ서명응ㆍ홍석주는 모두 ‘도’를 ‘태극’ 혹은 ‘체(體)’라는 형이상학적 본체로 해석했다. 성리학적 형이상학 안에서『노자』를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노자』 1장의 ‘도’를 무엇으로 해석하는가는 주석가의 주석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인 것이다. 이광려는 1장의 ‘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道라는 것은 길이니 사람들이 함께 다니는 것이다. 사람에게 도가 있는 것은 마치 길과 같은 것이므로 도를 길에다 비유했는데, ⓑ이미 도라고 말하면 名인 것이다.
태어나서 갖춘 것이 아니면 도는 항상 명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도라고 하지만 항상 명이 없다.18
)

 

18)『李參奉集』, 「讀老子五則」, 한국문집총간 237권(민족문화추진회, 1999) (以下는 모두 「讀老子五則」이라고 적는다),

道者, 路也, 人所共由也. 人之有道, 猶夫道路然, 故以道喩道, 旣曰道, 已名之矣.

夫非其生而俱者, 則道常無名, 不得不謂之道而常無名.”

 

ⓐ의 ‘도’를 사람들이 함께 다니는 길이라고 비유한 것은 소강절의 언급과도 유사하다. 소강절은 『皇極經世書』 「觀物篇」에서 “도(道)라는 것은 길이니 도는 무형이지만 그것이 행해짐은 일에서 드러난다”19)라고
하였다. 인간의 삶 속에 무형의 도가 작용하는 바탕을 ‘길’로서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의 ‘길’이라는 표현은 우리의 인식으로 구분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로서 비유한 것이지만, 초점이 되는 부분은 “人所共由”의 ‘길’의 기능적 측면으로 도가 인간의 삶 속에서 작용하는 측면을 말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조선시대 기존의 주석서에서 ‘道’를 밝히기 위해 또 하나의 형이상학적 본체를 유비시키는 형태와는 다르다. 예를 들면 박세당은『신주도덕경』 1장에서 “도는 체(體)이고 명(名)은 용(用)이다. 도는 명을 용으로 삼고 명은 도를 체로 삼는다”20)라고 하였으며, 서명응은 “도는 『易』에서 말하는 ‘태극’ 이것이고 名이라는 것은 『易』에서 말하는 ‘음양’ 이것”21)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광려는 ‘도’를 ‘태극’ 혹은 ‘체용’의 ‘체’로 규정하지 않고 ‘로(路)’라는 구체적 사물로 비유하고 그 기능적 측면을 부각시켜 설명함으로써, ‘도’를 형이상학적 본체로 비유하기보다는 ‘도’의 작용적 측면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19)『皇極經世書』, 「觀物篇」, “夫道也者道也, 道無形, 行之則見于事矣.”

20) 박세당, 『신주도덕경』, 1장 주, “道者體, 名者用. 道以名爲用, 名以道爲體.”
21) 서명응, 『도덕지귀』, 1장 주, “道者, 易所謂太極, 是也.…名者, 易所謂陰陽, 是也.”

 

 

ⓑ에서 보면 우리의 현실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도는 애초에는 ‘무명(無名)’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도’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명(名)’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인식을 통해 규정하는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도(道)’ 자체는 무명(無名)이지만, 이미 부르는 순간 명(名)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노자』원문의 ‘道可道 非常道’ 에서의 ‘도’를 언어로 형용할 수 없다는 측면과 같다. 즉 원문에서의 ‘도’를 우리가 언어로 한정하는 순간 도의 의미를 다 담을 수 없다’라는 의미와 상통하는 것이다. ‘도’의 속성이 언어로 규정되기 힘들고, 그것이 규정되는 순간 ‘명(名)’의 영역에 떨어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다시 ‘명’을 언어로 한정되지 않는 ‘무명(無名)’의 세계와 언어로 한정되는 ‘유명(有名)’의 세계로 나눈다.

 

 

ⓐ無名이라는 것은 항상되어 사라지지 않지만, 有名이라는 것은 항상될 수 없기 때문에 ‘可道’이지 ‘常道’가 아니며, ‘可名’이지 ‘常名’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可道면 常道가 아니고 可名이면 常名이 아니기 때문이다. ⓑ名은 천지에서 비롯되었지만 천지가 그로 인해 비롯하는 바가 있게 되니 그 이름은 없는데 그 물은 있는 것이다.

이미 물이 있으면 무엇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유명은 만물의 어미라고 한 것이다. 비록 물과 똑같이 이름을 붙였지만 다른 물과 더불어 物로 볼 수 없으니 이것이 바로 물의 어미라고 한 것이다.22)

 

22) 「讀老子五則」,

“無名者常不去, 有名者不可常, 故曰可道而非常道, 可名而非常名, 可道則非常道, 可名則非常名.

名始於天地而有天地之所始焉, 無其名而有其物.

旣有矣, 不得不言, 故曰有名萬物之母, 雖與物共名. 不可以與物而物之. 乃物之母也.”

 

 

우선 주목할 것은 ⓐ에서 보듯이 이광려는『노자』원문의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의 구두를 무명(無名) 유명(有名)에서 했다. 구두점을 ‘무(無)’와 ‘유(有)’에서 찍느냐 무명(無名) 유명(有名)에서 찍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노자』1장에서 제시하는 형이상학 체계의 구조가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 “무(無)는 천지의 시작을 이름하고, 유(有)는 만물의 어미를 이름한다”라고 해석되는데, 이때의 ‘무’와 ‘유’는 독립적 개념으로 쓰이게 되고 나머지는 그 개념을 설명하는 서술어가 된다.23)

그러나 무명 유명으로 구두를 하게 되면 “무명은 천지의 시작이고 유명은 만물이 어미이다”가 된다. 이 두 개의 문장을 비교해 본다면 해석상의 큰 차이가 없는 듯이 여겨진다. 그러나 문제는 앞 문장과의 연결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앞 문장은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다. 전자의 경우는 ‘도’를 설명하기 위해 ‘무’와 ‘유’라는 개념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 되고, 후자의 경우는 명 가운데 무명과 유명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이 된다.

즉 ‘명(名)’이라는 대개념 아래 그것이 나뉘어진 ‘무명’과 ‘유명’이라는 소개념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광려는 ‘무명’과 ‘유명’을 ‘명’의 분류로 보았다. 그는 무형무상(無形無象)의 ‘도(道)’의 측면을 말하기보다는 그 도를 규정하는 ‘명’을 중시한 것이다. 따라서 바로 뒷문장에서 ⓑ“명은 천지에서 비롯되었지만 천지가 그로 인해 비롯하는 바가 있게 되었다”라고 말을 한다.

 

23) 이충익은 유와 무에서 구두하였다. 이런 점에서도 이광려는 이충익과 달리『노자』 1장을 무명 유명으로 보려는 관점이 강하다고 여겨진다.

 

 

"노자에서 말하는 ‘천지의 시작(天地之始)’과 ‘만물의 어미(萬物之母)’라고 한 것은 바로 名의 有와 無에 관해 말한 것이므로 두 가지 말이 아니다.24)

24) 「讀老子五則」, “其曰天地之始, 萬物之母, 乃名之有無耳. 非二言也.”

 

따라서 그는 ‘천지의 시작(天地之始)’과 ‘만물의 어미(萬物之母)’라고 말한 것은 ‘명(名)’의 ‘유무(有無)’라고 한다. “왜 도(道)의 유무가 아니라, 명(名)의 유무인 것인가?” 그에게서 ‘유무’는 ‘도’에 대한 술어가 아니라
‘명’에 대한 술어인 것이다. 그는 도는 규정되는 순간 ‘명(名)’이 되고 그 ‘명(名)’에 ‘무명(無名)’과 ‘유명(有名)’의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일반적인『노자』주석에서 무명 유명 혹은 무와 유는 도에 대한 술어이지 명에 대한 술어는 아니다. 왕필을 예로 들자면 그에게서 ‘무명’은 ‘무’와 동일한 경계로 ‘도’의 세계의 술어이고 ‘유명’은 형체가 드러난 유의 세계의 술어이다.25) 그래서 왕필은 ‘명(名)’과 ‘칭(稱)’를 구분하면서 “명은 대상(객관)에서 생겨나고 칭은 나(주관)에게서 나온다”26)라고 못 박는다.
그에게서 ‘명’은 ‘대상’을 통해서 규정되는 유의 영역일 뿐이다. 그러나 이광려에게 있어서의 ‘명’은 단순한 대상에 따른 이름이 아니라 무명의 영역과 유명의 영역을 모두 포괄하는 대개념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노자』에서 이토록 ‘명(名)’에 대해 설명하려 하는가?

 

25) 왕필, 樓宇烈校釋,『王弼集校釋』, 『老子道德經注』(華正書局, 中華民國 81), 1쪽,

“凡有皆始於無, 故未形無名之時, 則爲萬物之始. 及其有形有名之時, 則長之, 育之, 亭之, 毒之, 爲其母也. 言道以無形無名始成萬物, <萬物>以始以成而不知其所以<然>, 玄之又玄也.”

26) 왕필, 樓宇烈校釋,『王弼集校釋』, 『老子指略』(華正書局, 中華民國 81), 197쪽, 「老子指略」,
“名也者, 定彼者也, 稱也者, 從謂者也.”

 

 

2. 명실(名實)의 합일(合一)로서의 도(道)

 

이광려는 ?독노자오칙?에서 왜 ‘도’를 설명하기보다는 ‘명’을 설명하는데 큰 의미를 두는 것일까? 그리고 명(名)의 ‘유무(有無)’는 어떠한 의미를 포괄하고 있는가?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이 장을 전개해 가겠다. 우선 그는 왜 ‘명’을 설명하고자 하는가? 다음의 글을 보자.

 

 

ⓐ이것이 도덕경의 첫 장인데,

두 번째 구절에 가서 바로 명을 말한 것은 名을 바탕으로 삼아 實을 구분하고, 드러난 것을 통해서 미묘함을 아는 것이니 그 의미는 언어의 밖에 있다.

그러므로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又曰玄之又玄. 衆玅之門”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마음에 두고서 묵묵히 아는 것이지(心存黙識) 名으로써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아래 2장에서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대체로 그 名을 말한 것의 나머지에 불과하다.27)

 

27) “其曰天地之始, 萬物之母, 乃名之有無耳. 非二言也.

此爲經之首章.

而第二句便說名. 所以因名辨實. 由顯而識微. 意在言外者也.

故曰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又曰玄之又玄. 衆玅之門.

此以心存默識. 而不可以名言也.

自此以下第二至末章. 葢其名言之餘耳.”

 

 

그는『노자』1장에 두 번째 구절부터 ‘명’을 드러낸 이유가 명과 실을 구분하라는 의미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드러난 것(名)’을 통해서 ‘미묘함’(實)을 아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여서 그 의미, 즉 ‘실질’은 언어로 드러난 기호 속에는 없다고 말한다. 요약하자면 우리는『노자』에서 언어로 드러난 수많은 ‘명’들 속에서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실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광려는 ⓑ에서 그 실질을 알아가는 방법은 ‘심존묵식(心存黙識)’일 뿐이지 드러난 의미만으로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서 ‘명’의 유무란 원문에서 ‘천지지시(天地之始)’와 ‘만물지모(萬物之母)’로서 구분되기도 했지만, 현상의 세계 속에서 언어로 규정되는 명의 세계가 ‘유명(有名)’이고, 언어로 규정되지 않는 세계가 ‘무명(無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명(名)’ 속에서 ‘실질’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 ‘1장은 명이 어떠한가를 밝힌 장이며 2장에서 나머지 81장까지가 명의 드러남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 명 속에서 ‘실질’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다. ‘명’으로 규정된 세상 속에서 올바른 실질을 찾아나가는 것을 중시하는 일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도’의 측면보다는 ‘명(名)’으로 드러난 현실 세계에서 ‘허명(虛名)’에 가리워진 실질을 찾아내는 작업을 의미하는 것이다.

 

 

"옛날에 성인이 백성들에게 임해 세상을 다스리면서 오랫동안 어긋나게 하지 않았던 것은 이 도를 썼기 때문이다. 名과 實은 다르지 않아서 실정과 거짓이 드러나지 않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도 풍속이 어긋나지 않게 함으로써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선이 좋은 줄을 알지 못하게 하여 선에서 분리되지 않게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지극한 선이다. 오직 그 선이 좋은 줄을 안 연후에는 선의 실질에 이익됨이 없고, 악의 實情에 덜어짐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악이 나쁜 줄을 몰라서 날로 악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28)

28) “古昔聖人之臨民御世. 能久而不失者. 用此道耳. 명실(名實)不二. 情僞不見. 歷數千百年而風俗不失. 使天下不知善之爲善而不離於善. 乃所謂至善也. 惟其知善之爲善而後. 無益於善之實. 無損於惡之情. 乃不知惡之爲惡而日趨於惡矣.”

 

무명과 유명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도’는 ‘명’과 ‘실(實)’이 다르지 않고, 실정과 거짓이 드러나지 않아서, 실질이 명에서 분리되지 않았다고 보고있다. 그는 이렇게 ‘명’과 ‘실질’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지극한 선(至善)의 상태로 보았다. 하지만 ‘명’이라는 이름에 치중하는 순간, 명과 실질은 분리되어 악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지선’의 상태란 명과 실이 합일되어 있는 상태이다.

왕양명이 ‘지선’을 ‘양지’의 심체로 이해한다면,29) 이광려는 ‘지선’을 ‘명실(名實)’이 합일된 상태라고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지(良知)’의 상태를 규명하는 용어는 다르지만 ‘양지’가 도덕적 실천 행위가 가능한 근거이듯이 이광려의 명실(名實)이 합일된 ‘至善’의 상태는 도덕적 실천행위가 가능한 근거이다.

 

29) 왕양명은 『傳習錄』 2조목, 228조목, 317조목에 걸쳐 ‘至善’은 ‘마음의 본체’라고 말한다.
이 아래부터 인용된 『傳習錄』은 『王陽明全集』(姚延福 編校, 上海古籍出版社, 1992)과 정인재ㆍ한정길 번역의 『전습록』(청계출판사, 2001)을 참고하였다.

 

 

IV. 명실(名實)과 선악(善惡)ㆍ직부직(直不直)의 문제

 

1. 명실(名實)의 관계로 본 선악(善惡)

 

이광려는 ‘명’과 ‘실질’이 합일되지 못하였을 경우 어떠한 현실적 혼란이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하여,『노자』 2장에 관심을 가진다. 81장 가운데 이 2장은 이광려가『노자』를 이해하는 관점이 다 이 속에 녹아 있다고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노자』2장은 ‘유무상생(有無相生)’을 말한 장으로 미(美)와 악(惡), 선(善)과 불선(不善)의 관계성에 대해서 언급되는 장이다.
그가 『노자』2장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가치 대립의 문제가 온축된 장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함으로써 당시의 시대적 모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그는 「독노자오칙」의 상당 부분을 미(美)와 악(惡), 선(善)과 불선(不善)의 대립적 개념에 대한 언급으로 할애하였다.

 

 

ⓐ공자는 말하기를 “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인과 불인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제2장에서 즉 ‘미와 악’, ‘선과 불선’을 말하였다.

ⓑ도가 흥하고 폐함, 천하가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어찌 다른 데에 있겠는가?

오늘날 논리를 세우고 책을 저술하여 남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이 어찌 다른 데에 있겠는가?

美라는 것은 美의 실질이고 善이라는 것은 善의 실질이지만 미가 미가 되고 선이 선이 됨은 그 名이니, 여기에서 名과 實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선과 악이 생기는데, 도의 흥망과 천하의 치란이 여기에 달려 있다.

2장의 ‘有無相生’에서부터 ‘前後相隨’까지는

ⓒ유무, 난이, 장단, 고하, 음성 전후는 명이 드러난 것이다.

有이면서 無이고 어려움이면서 쉬움이어서 그 名이 항상될 수 없으니 道의 안에서는 훼손된 것이다.30)

 

30) “孔子曰道二. 仁與不仁而已. 所以此第二章. 卽言美惡, 善與不善也,

夫道之興廢. 天下之治亂. 豈有他哉.

今所爲立言著書. 苦心喩人者. 又豈有他哉.

美者美之實. 善者善之實. 而美之爲美善之爲善. 其名也. 명실(名實)形矣.

善惡之所由生. 而道之興替. 天下之治亂係焉.

有無之相生云云. 至前後之相隨勢也.

有無也難易也長短也高下也音聲也前後也者. 名之所形也.

有而無 難而易. 而名不可常矣. 而毁於道焉.”

 

위의 문장을 보면, 이광려는 ⓐ에서『孟子』 「離婁上」에 “도에는 두가지가 있으니 인(仁)과 불인(不仁)일 뿐이다”라는 공자의 말과『노자』2장을 같다고 보았다. 이런 부분은 이광려가 유학자의 시각에서『노자』를 이해하고 있는 측면이라 하겠다. 「離婁上」에서 이 부분의 내용은 군자가 성인이 되려면 요순을 본받아야 된다는 취지에서 나온 문장이다.

그래서 주자도 주석하기를 “요순을 법 받으면 군신의 도리를 다하여 인할 것이고, 요순을 법 받지 않으면 군주에게 불경하고 백성을 해쳐 불인(不仁)할 것이니, 이 두 가지 이외에 다시 다른 길이 없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저기로 들어가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31)”라고 하였다. 즉 성인을 본받으면 인(仁)이고, 성인을 본받지 않으면 불인(不仁)이라는 것이다.
31) “法堯舜, 則盡君臣之道而仁矣. 不法堯舜, 則慢君賊民而不仁矣. 二端之外, 更無他道. 出乎此則入乎彼矣, 可不謹哉.”

 

그런데 이러한 내용과『老子』2장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노자』 2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하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아는 것은 저 추함 때문이고, 모두 선을 선하다고 아는 것은 저 불선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와 무가 상생하고(有無相生)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 이뤄지고 길고 짧은 것이 서로 드러나며 높고 낮음이 서로 차이 나며, 음절과 음률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가 서로 뒤따른다. 그러므로 성인은 무위의 일에 처하고, 말이 필요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32)"

32)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傾, 聲音相和, 前後相隨. 是以聖人處無爲之事.”

 

『노자』원문에서는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불선이라는 상대적인 인식 안에서 우리는 미(美)와 선(善)을 인식한다는 것이다.33) 따라서 뒤에 ‘유무상생(有無相生)’이란 유(有)의 세계와 무(無)의 세계가 서로 상대의
세계에 의지해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유는 무로 인해 유의 이름을 가지고, 무는 유로 인해 무의 이름을 가진다. 이광려가 이 구절과 같은 의미를 지녔다고 본『맹자』의 구절과는 의미가 다르다.

『맹자』의 “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인과 불인일 뿐이다”는 ‘인(仁)과 불인(不仁)’ 가운데 ‘어떤 것이 인(仁)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라면,『노자』의 “천하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저 추함일 뿐이고, 모두 착한 이를 착하다고 여기는 것은 저 불선일 뿐이다”에서의 미(美)와 악(惡), 선(善)과 불선(不善)은 그 상대적인 관념들이 ‘상생(相生)’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으로 보인다.

33) 陳鼓應, 『老子註釋及評介』(中華書局, 1984), 64쪽.

 

이러한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광려는『맹자』의 ‘인(仁)ㆍ불인(不仁)’ 문제와『노자』의 2장이 일맥상통하다고 보았다. 그는『노자』2장에 대해 곧바로 ⓑ“도가 흥하고 폐함, 천하가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어찌 다른 데에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즉 왜 세상이 혼란한가이다. 그는 다시 ‘미(美)라는 것은 미(美)의 실질이고 선(善)이라는 것은 선(善)의 실질인데 거기에서 명과 실이 드러난다’라고 답한다. 그 명에 ‒ 예를 들면 ‘미(美)’와 ‘선(善)’ ‒ 걸맞는 실질이 없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선과악이 생기고 세상이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이다.

 

따라서『노자』2장에서의 유무(有無), 난이(難易), 고하(高下), 성음(聲音), 전후(前後)가 대립되는 구조는 모두 명과 실이 일치하지 못해서 생기는 결과로 ⓒ에서 말하는 도의 훼손인 것이다. 이를『맹자』에서 인용된 공자의 말에 비추어본다면 성인의 교화에 의해서 그 대립되는 구조가 일치될 때가 바로 명과 실이 온전히 일치하는 것이고,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광려는 선과 악의 개념들이 존재하는 구조를 ‘명실’의 구조 안에서 이해하였고, 왜 세상이 혼란스러워졌는가에 대한 문제에 해답을 구하고자 한다. 이는 조선 후기를 살았던 유자로서의 문제의식이『노자』를 해석하는 데 반영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앞장에서도 말했지만 이광려는『노자』1장의 무명 유명을 명의 술어로 보며,『노자』2장을『맹자』의 “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인과 불인일 뿐이다”의 구절과 동일한 구조로 연관하여서 보았다. 그는『노자』2장의 원문에서 ‘미(美)와 선(善)’ 이라는 두 개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대립할수 밖에 없는 현실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이해한『노자』2장은『맹자』구절의 성인을 본받는 것이 인(仁)이고 성인을 본받지 못한 것이 불인(不仁)이라고 하는 것에 훨씬 더 가깝다.

 

결국 그는 인(仁)ㆍ불인(不仁), 선(善)ㆍ악(惡)이 혼재하는 세상이 있는 이유는 Ⓑ에서 말한 것처럼 미(美)가 미(美)라는 이름에 걸맞는 실질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악이 되는 것이고 선(善)이 선(善)이라는 실질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불선이 된다고 보았다. 즉 ‘선’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실질을 갖추지 못할 때 그것이 ‘악’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의미들을 ‘직(直)’의 문제에서 더욱 피력한다.

 

2. 직(直)ㆍ부직(不直)의 문제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광려는『노자』가운데 1장과 2장, 39장을 중심으로『노자』를 이해하고 있는데, 1장을 통해 ‘도’를 규명하고, 2장을 통해 선과 악의 문제들을 규명하려고 했다면 39장에서는 2장의 연장선상에서 ‘귀천(貴賤)’의 문제를 제기한다.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기반으로 삼는다.”(39장)
이 貴는 천함에서 나온 이름이고, 그 高는 낮은데서 나온 이름이다. “이런 까닭으로 왕과 제후는 자신를 ‘孤’, ‘寡’, ‘不穀’이라고 칭한다”(39장)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귀함이 천함을 근본으로 삼았음을 볼 수 있고, 옛사람들이 이름(名)을 만든 뜻을 또한 볼 수 있다.34)"

34) 「讀老子五則」, “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是貴名於賤. 高名於下也. 是以侯王自謂孤寡不穀.

此有以見貴以賤爲本. 而古者制名之義. 亦可見矣.”

 

 

여기에서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기반으로 삼는다. 이런 까닭으로 왕과 제후는 자신를 ‘고(孤)’, ‘과(寡)’, ‘불곡(不穀)’이라고 칭한다(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 是以侯王自稱孤寡不
穀)”가『노자』본문의 내용이다.

이광려는 이에 대하여 39장에서의 왕과 제후가 자신의 이름을 ‘고(孤)’, ‘과(寡)’, ‘불곡(不穀)’이라고 한 것에서 그러한 ‘名’을 만든 의의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노자』2장의 연장선 안에서 39장을 이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왕’이라는 이름 안에는 그 나라 사람 가운데 평범한 사람들보다 심한 미천한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항상 지녀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실질’의 의미를 그 속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 부조리의 모든 원인이 ‘명실(名實)’이 일치하지 않은 데 있다고 보고, 자연스럽게 ‘명’과 ‘실’이 어긋난 사람의 대표로서 『論語』의 「公冶長」에 등장하는 미생고를 예로 들어 ‘직’, ‘부직’의 논리를 피력한다.
「독노자오칙」에서 이 부분은 다섯 단락 가운데에 두 단락으로 미생고를 통렬히 비판한다.

사실 이 부분은『노자』의 본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부분이 없다. 아마도 그는『노자』2장과 39장을 통해 ‘명실(名實)’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 명실이 일치하지 않은 하나의 실례로 이 두 단락을 할애한 듯하다.

 

 

"미생고는 정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는 처음에 정말로 있는 것은 있다 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한 자였다. 그가 이윽고 정직이 정직이 됨을 알고 나서 이에 그 이름에 탐이 나서 정직하려고 한 것이다. 이미 이름에 탐이 나서 정직하려고 하였으니만큼, 비록 있는 것을 있다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하더라도 정직한 것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없으면서도 있다고 하고 이웃에서 빌려다주는 것에 있어서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미생고의 정직하지 못함이 오히려 백성을 속이는 행위보다 심하다고 한 것이다.35)"

35) 「讀老子五則」, “微生高未嘗不直也. 其始也固有有而無無者也. 旣而知直之爲直. 於是乎吝其名. 求爲之直焉耳. 夫旣吝於名而求爲之直. 雖有有無無. 不足以爲直. 况無而爲有而至於乞隣乎. 故曰微生高之不直. 猶甚於罔之爲也.”

 

여기서의 미생고는 ‘직(直)’이라는 이름만을 탐하여 거짓된 행위를하는 자이다. 그는 겉으로는 ‘직’이라는 이름에 맞는 실질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직’에 위배된 거짓된 행동(不直)으로 위장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부직’은 백성을 속이는 행위보다 심하다고 하였다. 미생고의 인위적인 태도인 ‘부직’도 또한 명과 실이 분리된 결과이다. 그런데 그는 왜 이렇게 미생고를 유독 비판하는가?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에 정직하지 못한 자는 매우 많지만 성인이 일찍이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미생고에 대해 이웃에서 그 초를 빌린 일을 꾸짖으며, 정직하지 못하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부직함이 미생고보다 심한 사람이 없는가? 이는 그렇지 않다. 미생의 일은 매우 미미한데 불과하고 천하에는 도적질하고 거짓말하는 자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정직하지 못함은 정직하지 못함으로 끝나지만 미생고의 일은 이미 정직하지 못한 데다가 또한 정직을 해쳤기 때문에 성인의 말은 그 직을 해치게 됨에 대해 말한 것이다.

… 저 정직하지 못한 것은 정직과 마주하면 정직이 드러나지만 정직을 위해서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은 그 정직하지 않음이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이때의) 그 ‘정직’이라는 것은 그 정직으로써 정직을 어지럽혀 그 정직이 마침내 없어지고 마니 어찌 매우 해가 되지 않겠는가?36)"

36) 「讀老子五則」, “世之不直者甚多也. 而聖人未嘗言. 獨於微生高譏其乞隣之一事. 謂爲不直. 則天下之不直. 無甚於高者乎. 是不然. 微生之事乃甚微. 而天下之盜行而僞言者. 乃不可勝言也. 雖然他人之不直者. 不直而已矣. 微生之事. 旣不直矣. 又害直大焉. 聖人之言. 爲其害直而言之也.

… 夫不直者. 猶對直而直見焉. 直而不直者. 不但不見其不直.而所謂直者. 以直亂直而遂亡焉. 豈不甚害矣乎.”

 

그는 미생고의 ‘직’을 위한 ‘부직’이 단지 ‘부직’의 차원이 아니라, ‘직’을 해치게 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그의 ‘부직’을 비판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악한 일이라고 여기는 도둑질보다 더 안 좋은 일이 됨은 선을 행한다고 하면서 그 선의 실질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광려가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은 유학의 인의(仁義)를, 실천의 이상으로 상정해 놓고도 그 허울 좋은 이름만을 탐할 뿐 실제적인 행위가 뒤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즉 학문에 있어서 지행이 합일되지
않은 자들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부직(不直)’을 행하는 사람보다 더 악하다고 보았다. 물론 이러한 비판의이면 구조에는 ‘명실(名實)’의 합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는 유학의 도덕적 실천 덕목인 인의(仁ㆍ義) 등이 진정한 행위에의해서 드러나지 못하고 왜곡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V. 왜 선악(善惡)ㆍ직부직(直不直)의 문제를 중시하는가

 

여기까지 이광려의 「독노자오칙」에서의 ‘도’에 대한 규정과, 그가『노자』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큰 개념으로 삼았던 선(善)과 악(惡) 직(直)과 부직(不直)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노자』를 이해하는 다양한 독법이
있다는 것을 전제할 때, 그의 이러한 관심들은 그의 사상적 체계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여겨진다.

이를 통해 보건대 그의 선(善)과 악(惡)ㆍ직(直)과 부직(不直) 등에 대한 관심과 ‘직(直)’을 가장한 ‘부직(不
直)’한 자의 사례로서의 ‘미생고’에 대한 강한 비판은, 그의『노자』독법에서의 주안점이 도덕적 실천의 문제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는『노자』안에서 ‘선’과 ‘악’의 원인을 찾으려 했고 더 나아가 직ㆍ부직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러한 화두에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우선 그가『노자』를 해석하면서 가졌던 직부직(直不直), 선불선(善不善), 인불인(仁不仁)의 문제는 명과 실이 일치하지 않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가 강조하는 명실(名實)의 합일은 도덕적실천에 있어서의 실천하려는 생각과 행위 사이에 조금의 간격도 없어야 한다는 그의 도덕실천의 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대는 일찍이 자장이 허리띠에 적었다는 것은 안연이나 염백우가 “더 말씀해 주십시오” 한 것만 못하다고 말하였다. 말씀을 듣자마자 이내 실천한다면 허리띠에 쓸 만한 겨를이 없다.37)"

37)『椒園遺藁』, 「李參奉集敍」, “君嘗言子張之書紳, 不如顔冉之請事斯語. 聞斯行之, 不容復書紳爲也.”

 

이 글은 이충익이 「이참봉집서」에 쓴 고인을 회고하는 글로 이광려가 지행합일을 강조했던 일화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의 말을 통해 본다면 올바른 도덕적 실천은 ‘지(知)’와 ‘행(行)’ 사이에 조금의 간격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그의 ‘지행합일’의 실천론은 그의 ‘선ㆍ악’, ‘직ㆍ부직’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상통한다고 여겨진다.

 

그의 이러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지금까지의 ‘선악(善惡)’, ‘직부직(直不直)’의 논의와 연결이 된다. 이광려가 말하는 ‘선’이라는 것은 ‘선’이라는 ‘명’에 걸맞는 실질적인 실천행위가 수반되는 것을 의미하고, ‘직’이라는 것도 ‘직’이라는 ‘명’에 걸맞는 실질적인 실천행위가 있을 때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다 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과 ‘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행위가 진실한가(直), 거짓이 없는가(不直)를 반추해 보아야 가능하다.

 

매순간마다 심의 ‘진위(眞僞)’를 살펴보는 공부법은 바로 ‘양지(良知)’의 ‘즉각성’이 있기에 가능하다. 양명학에서는 지행합일이 가능한 근거를 ‘양지’에 둔다. 즉 우리는 행위를 할 때 우리의 행위가 그 명에 걸맞는 실질을 담고 있는가를 매번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의 공부법은 앞에서 언급한 ‘지행합일’이 양명의 종지라는 것38)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양지의 즉각성을 바탕으로 진가를 구별해 내는 양명학 공부법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한다면 바로 양명이 말하는 ‘양지’의 ‘시비지심(是非之心)’인 것이다. 양명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있다.

 

38) 왕양명은 『傳習錄』(『王陽明全書』, 上海古籍出版社, 2006) 권3, 96쪽.

‘지행합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반드시 내가 주장하는 근본 취지를 이해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의 학문은 앎과 행위를 둘로 나누기 때문에 어떤 한 생각의 발동이 비록 선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아직 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금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지행합일을 말하는 것은 바로 한 생각이 발동한 곳이 곧 행위를 한 것임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발동한 곳에 선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곧 그 선하지 않은 생각을 극복해야 한다. 반드시 그 뿌리까지 철저히 (제거하여) 한 생각의 불선도 가슴속에 잠복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주장하는 근본 취지이다”

(此須識我立言宗旨, 今人學問, 只因知行分作兩件, 故有一念猣動, 雖是不善, 然卻未曾行, 便不去禁止. 我今
說箇知行合一, 正要人曉得一念發動虛,
便卽是行了, 猣動虛有不善, 就將這不善的念克倒了, 須要徹根徹底不使那一念不善潛伏在胸中, 此是我上上言宗旨).

 

 

"양지는 다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은 다만 (옳음을) 좋아하고 (그름을) 싫어하는 것이다. 단지 (옳음을) 좋아하고, (그름을)싫어하기만 한다면 곧 옳고 그름의 분별을 다하게 된다. 단지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만 한다면 곧 온갖 일의 모든 변화를 다하게 된다. 또 말씀하셨다. 是非 두 글자가
하나의 커다란 표준이다. 그것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39)

39) 『傳習錄』, 권3, 111쪽. “良知只是箇是非之心: 是非只是箇好惡, 只好惡就盡了是非, 只是非就盡了萬事萬變.” 又曰: “是非兩字是箇大規矩, 巧處則存乎其人.”

 

양명은 ‘양지’가 ‘시비지심’이라고 밝힌 후 양지의 시비 분변에 의해서 ‘선’에 나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사사물물마다 양지의 시비지심에 준거하여 즉각적으로 선악을 판별해 나아가는 것이다.

양명은 또 “그대가 다만 자신의 양지를 속이려 하지 않고 착실하게 그것에 의거하여 행한다면 선은 곧 보존되고 악은 곧 제거될 것이니, 그러한 곳이 얼마나 온당하며 시원스럽고 즐거운가? 이것이 바로 격물의 참된 비결이며 치지의 실질적인 공부이다”40)라고 말하였다.

즉 양지의 속이지 않는 공부법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광려가 왜 강렬히 ‘미생고’를 비판할 수밖에 없는가를 알 수 있다. 미생고가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광려의 문집인 『이참봉집』과 이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독노자오칙」 어디에서도 ‘양지’의 공부법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상과 같이, 그가 왜『노자』를 ‘명실(名實)의 합일’이라는 전제 아래서의 ‘선악(善惡)’과 ‘직부직(直不直)’의 문제로 이해했는가를 살펴본다면, 그의 양명학적인 도덕실천 공부 방법이『노자』의 해석에도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0) 『傳習錄』, 권3, 92쪽.

“爾那一點良知. 是爾自家底準則. 爾意念著處, 他是便知是, 非便知非, 更瞞地一些不得.

爾只不要欺他, 實實落落依著他做去, 善便存, 惡便去, 他這裡何等穩當快樂, 此便是格物的眞訣, 致知的實功.”

 

 

VI. 결론

 

지금까지 강화학파의 한 사람인 이광려의『노자』논설인 「독노자오칙」을 통해서 그의『노자』해석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에 대한 연구는 강화학파에서 두 권의 주석서와 한 편의 논설이 나온 사실과 정제두로부
터의 학맥의 흐름을 보건대, 강화학파만의『노자』이해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시작점에 있는 이광려의 「독노자오칙」을 보면, 그는『노자』1장, 2장, 39장을 인용하면서 ‘명’과 ‘실’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선악(善惡)’, ‘직(直不直)’의 도덕적 실천 문제를 제기하는 특징이 있었다. 이 논문의 논의는 이광려가 왜 「독노자오칙」에서『노자』의 ‘도’를 ‘선과 악’, ‘직과 부직’의 문제와
연계해 논의하는가에서 출발하였다.

 

이광려는『노자』 1장의 ‘도(道)’를 ‘명실(名實)’의 관계 속에서 보았다.
그는 ‘도’를 언어로 규정하는 순간 ‘명’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명(名)’에는 ‘무명(無名)’과 ‘유명(有名)’이 있다고 보았다. 일반적으로『노자』1장에서의 ‘무명’과 ‘유명’은 ‘도’에 대한 술어인데 반하여 그는 ‘명’을 대개념으로 놓고 ‘유무’를 ‘명’의 술어로 보았다는 특징이 있다. 즉 그에게서 ‘명’은 단순히 대상의 이름이 아니라 현현하는 도를 현실 속에서 규정한다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또 그는 ‘명’과 ‘실질’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지극한 선(至善)의 상태로 보았다.

왕양명이 ‘지선(至善)’을 ‘양지(良知)’의 심체로 이해한다면, 이광려는 ‘지선’을 ‘명실(名實)’이 합일된 상태라고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선’을 명명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양지’가 도덕적 실천 행위가 가능한 근거이듯이 이광려의 명실(名實)이 합일된 ‘지선(至善)’의 상태는 도덕적 실천행위가 가능한 근거인 것이다.

 

이광려는『노자』2장의 미(美)와 악(惡), 선(善)과 불선(不善)의 대립을『맹자』의 “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인(仁)과 불인(不仁)일 뿐이다”의 구절과 동일한 구조로 연관하여서 보았다. 그는 ‘인(仁)’과 ‘불인(不仁)’의 상대적인 가치가 대립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원인이 무엇인가에 더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래서 그는 인ㆍ불인ㆍ선ㆍ악이 혼재하는 원인에 대하여 미가 미라는 이름(名)에 걸맞는 실질(實)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악이 되는 것이고 선이 선이라는 실질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불선이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논어』 「공야장」에 등장하는 ‘미생고’의 일화를 통해 그의 ‘부직(不直)’함을 통렬히 비판하는데 이때의 ‘부직’도 마찬가지로 ‘명실(名實)’의 합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직(直)’이라는 이름(名)만을 위한 ‘직’은 ‘부직’이고, 이러한 거짓된 행위는 ‘직’이 가지는 본래의 의미를 해치게 된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 이광려가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은 유학의 인(仁), 의(義)를 실천의 이상으로 상정해 놓고도 그 허울 좋은 이름만을 탐할 뿐 실제적인 행위가 뒤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즉 학문에 있어서 지행이 합일되지 않은 자들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말대로라면 진정한 의미의 ‘지선(至善)’을 행하기 위해서는 허명(虛名)에 머물지 않도록 실질적인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광려의 ‘직(直)’을 가장한 ‘부직(不直)’한 자의 사례로서의 ‘미생
고’에 대한 강한 비판은『노자』를 읽으면서도, 주안점이 도덕적 실천의 문제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도덕적 실천이 가능한 심의 상태를 양명은 ‘양지’인 ‘시비지심’이라고 밝힌 후 양지의 시비 분변에
의해서 ‘선’에 나아간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사사물물마다 양지의 시비지심에 준거하여 즉각적으로 선악을 판별해 나아가는 것이다. 양지의 속이지 않는 공부법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광려가 왜 강렬히 ‘미생고’를 비판할 수밖에 없는가를 알 수 있다. 미생고가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광려의 문집인『이참봉집』과 이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독노자오칙」 어디에서도 ‘양지’의 공부법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상과 같이, 그가 왜『노자』를 ‘명실(名實)의 합일’이라는 전제 아래서의 ‘선악(善惡)’의 문제로 이해했는가를 살펴본다면, 그의 양명학적인 도덕실천 공부 방법이『노자』의 해석에도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광려가『노자』에 대한 논설에서 ‘선악(善惡)’과 ‘직부직(直不直)’의 문제를 중시했던 이면에는 이러한 양명학적 도덕실천에 대한 관심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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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문 요 약

 

조선시대 후기 강화학파(江華學派) 안에서 『노자』에 대한 관심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학파 안에 남아 있는『노자』 저작으로, 이광려(1720-1783)의 「독노자오칙(讀老子五則)」이 있고, 이충익의 『초원담로(椒園談老)』가 있으며, 신작(1760-1828)의 『노자지략서(老子旨略序)』가 있다. 이 논문에서는 그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이광려의 「독노자오칙(讀老子五則)」을 통하여 조선시대 강화학파의 『노자(老子)』이해의 단면을 고찰하였다.

 

이광려의 「독노자오칙(讀老子五則)」에서『노자』이해의 특징은 ‘명실(名實)’의 구조로서『노자』의 ‘도(道)’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직(直)’과 ‘부직(不直)’, ‘선(善)과 불선(不善)’의 문제를 논의하는 점이다. 그는 ‘도(道)’를 언어로 규정하는 순간 ‘명(名)’이 되며, 그 ‘명(名)’에는 ‘무명(無名)’과 ‘유명(有名)’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명(名)’과 ‘실질(實質)’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지극한 선(至善)의 상태로 보았다. 그러므로 불인(不仁)ㆍ악(惡)ㆍ부직(不直)의 발생은 명실(名實)의 분리(分離)에서 비롯된 것이다.이러한 구도의 해석은 다분히 양명학적 이해의 경향이 엿보인다.

왕양명이 ‘지선(至善)’을 ‘양지(良知)’의 심체로 이해한다면, 이광려는 ‘지선(至善)’을 ‘명실(名實)’이 합일된 상태라고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선(至善)’을 명명(命名)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양명학에서 ‘양지(良知)’가 도덕적 실천 행위가 가능한 근거이듯이, 이광려의 ‘명실(名實)’이 합일된 ‘지선(至善)’의 상태는 도덕적 실천행위가 가능한 근거이다. 이광려는 『노자(老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양명학에서 강조하는 도덕적 실천의 문제를 중시하였다.

 

 

투고일 2009. 10. 11.
수정일 2009. 12. 2.
게재 확정일 2009. 12. 7.
주제어(keyword) 강화학파(江華學派, Kanghwa shool), 노자(老子, Lao-zi), 독노자오칙(讀老子五則, Dok-no-ja-oh-chik), 초원담로(椒園談老, Cho-won-dam-ro), 노자지략(老子旨略, Noja-gi-rak), 명실(名實, Meong-sil), 지선(至善, Extreme good), 양지(良知, Yang-gi)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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