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왕릉 여행 [09] 지역별 왕릉군(13) - 사릉지구 관리소

장안봉(微山) 2012. 12. 26. 18:15

왕릉 여행(9) - 지역별 왕릉군(13)

13. 사릉지구 관리소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사릉(陵)
사릉은 조선 제6대 단종(端宗)의 비(妃)인 정순(定順)왕후의 능으로 단릉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정순왕후는...
조선 왕조 시대, 가장 비운의 여인인 정순왕후는 세조가 즉위하고 단종이 상왕의 자리에 오를 때는 의덕대비에 봉해졌으나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있는 유배지로 보내지고 정순 왕후도 부인으로 강봉되었으며, 단종이 사사되면서 정순 왕후는 궁궐에서 추방당해 동대문 밖 숭인동 산기슭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정순왕후는 단종의 억울한 죽음에 아침 저녁 산봉우리에 소복하고 올라 단종의 유배지인 동쪽을 향해 통곡하였으며, 정순왕후가 동쪽을 향해 통곡하였다고 하여 그 산봉우리는 동망봉(東望峰)이란 이름으로 유래 되었다. 또한 정순왕후는 세조가 내린 집과 식량을 끝끝내 받지 않았다고 하며, 자줏물 들이는 염색업으로 힘든 생활 속에서도 여생을 때묻히지 않고 살았습니다.

▲ 사릉 관리사무소

▲ 수목 양묘장(관리소장님 설명중)

▲ 사릉 가는 길목의 소나무들

사릉은...
한많은 일생을 살았던 정순왕후는 춘추 82세(1521년)로 승하하여, 대군부인의 예우로 양주 남쪽 군장리의 해주정씨 묘역에 모셔졌으며, 그 후 177년이 지난 숙종 24년(1698년)에 단종 복위와 더불어 정순왕후로 추복되어, 종묘에 신위가 모셔지고 능호를 사릉이라고 하였습니다. 살아서 생이별을 해야 했던 두 분은 죽어서도 같이 있지 못하고 떨어져 있어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사릉에는 유난히 많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능역에는 소나무로 둘러싸여 그 소나무 가지들이 단종이 모셔져 있는 강원도 영월 장릉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정순왕후의 애틋한 그리움을 후세에 전해주고 있는 듯 하다고 하여 1984년에는 사릉의 소나무 두 그루를 영월 단종의 능인 장릉에 옮겨 심어 두분의 한맺힌 넋을 풀어주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뒷 이야기는 영월의 장릉편에서...

▲ 홍살문 앞에서...

▲ 최근에 보수가 끝난 정자각

▲ 해주정씨 묘역에서 바라 본 사릉

사릉은 비공개 능으로...
사릉은 홍유릉에서 멀지 않습니다. 차로는 홍유릉에서 의정부 방향으로 10분 정도 거리이며, 잘못하면 사릉을 지나치기 쉽습니다. 송능교를 지나면 오른쪽에 소나무들이 많은 곳이 나옵니다. 이 곳이 사릉입니다. 사릉 관리사무소는 길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릉은 현재 비공개입니다만, 1973년부터 1980년까지, 그리고 1986년,1987년에는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였으나 1988년부터는 비공개 능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관련자에게 뒷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개를 해도 하루에 관람객이 채 10명도 되지 않는 날이 많았었다고 합니다.

 

문화재청이나 해당 지역 지자체에서 조선조 왕릉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을 수 있도록 홍보와 개선 방안(영월의 단종제와 연계 등)을 연구하고, 2005년부터는 비공개 왕릉들을 점차적으로 공개하는 분위기인데 사릉 역시, 한시적이라도 공개를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사릉 능역 전경

▲ 사릉 능역 후경(정자각 보수 당시)

최근들어 왕릉 답사 매니아들이 많이 늘고, 왕릉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비록, 비공개 왕릉이라고 하더라도 사전에 관리사무소에 연락해서 협조를 요청하면 답사를 허락해 줍니다. 지금은 궁능 관리소측에서도 옛날처럼 권위의식적이고 무조건 안된다는 식은 아니더군요.

광해군 묘는...

◈ 광해군 묘(光海君 墓)
광해군은 조선조 제15대 임금으로 조선조의 두 번째 폐위(廢位)된 임금이며, 광해군묘는 군묘(君墓)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일반인의 묘보다도 못한 것 같습니다.

광해군은...
선조(宣祖)는 왕비 의인왕후(懿仁王后)에게 후사가 없어 후궁이었던 공빈김씨(恭嬪金氏)의 소생인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였으나, 말년에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가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아서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결국, 선조는 승하 직전, 당시 적자인 영창대군이 2살밖에 안되어 왕위를 광해군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이것이 뒤에
인조반정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인조반정은...
광해군은 형이었던 임해군(臨海君)과 이복 동생인 영창대군을 유배후 살해하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에 유폐시키는 등의 실정으로 반정의 싹을 키우고 말았습니다. 특히 영창대군을 교동에서 살해할때, 방안에 가두고 불을 때어 질식해 죽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실정에 대항해서 반정군은 인조반정에 성공하여 인목대비로부터 능양군(綾陽君)을 왕위에 오르게 하고 광해군을 강화로 유배 시켰으며, 이후에는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그 곳에서 67세의 천수를 다했습니다.

▲ 광해군묘 초입 전경

▲ 광해군묘 뒷 모습(출입구에서)

▲ 묘역 우측 망주석 윗부분이 깨짐

광해군의 묘는 어디에...
한 번 가본 사람들은 몰라도 처음가는 사람들은 광해군의 묘를 찾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사릉에서 송능교를 건너서 사릉천을 따라 한 참을 올라가면 영락교회 공원묘지가 있습니다. 이 공원묘지 도로를 따라서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언덕 오른쪽 철책에 안내판과 조그마한 철문이 있으나 문은 잠겨있으며, 비공개 능으로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철책에서 내려다 보면 광해군묘의 뒷 모습만 보입니다.

 

몇 차례 광해군의 묘에 가면서 어렵게 철책을 넘어야 하고, 묘역 뒤로 내려가게 되어 있어서 참배하는 마음이 편치않아서 사릉 관리소장님께도 옆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출입구를 만들 수 없느냐고 말씀도 드렸으며, 2005년에는 다른 출입구를 계획하고 계시다고 하시더니 결국, 2005년에 공원묘지 입구 우측으로 문을 내어 측면으로 돌아서 들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 새로 만든 광해군 묘역 출입구

▲ 광해군 묘를 옆으로 돌아 들어가게 새로 만든 길

광해군 묘의 입구를 아래로 만들어...
4년여 조선조 능원묘를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제1차 능원묘 답사 오프라인 모임(2006.08.15)을 가지면서 제일 궁금했던 곳이 광해군 묘의 입구를 새로 내었다는 출입문이었습니다. 직접 확인해보니 묘역 바로 뒷편의 출입문에서 50미터 정도 아래에 출입문을 새로 내어 위 우측 사진처럼 옆으로 돌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왕가묘들은...

사릉 관리소에서는 사릉을 포함해서 문화재로 지정된 광해군묘, 성묘, 안빈묘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릉과 광해군 묘는 찾기 쉬워도 성묘와 안빈묘는 찾기가 쉽지 않으며,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광해군 형인 임해군 묘도 있어서 찾아가는 길만 간단히 소개합니다.

성묘는...

광해군 묘를 돌아 나와서 산속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서 조금 올라가다가다 보면 우측에 풍양조씨시조묘라 쓰인 돌기둥이 있습니다. 이 길로 접어들어 마을에 차를 세울 수 있는 곳까지 들어가서 차를 주차하고 가옥 사이로 올라가면 맨 위에 풍양조씨의 사당인 풍양제 건물이 보입니다.

 

건물 좌측에는 신도비가 있으며, 신도비 좌측 산길로 올라가면 풍양조씨 시조묘가 있습니다. 그 뒤로 올라가면 100여미터 전방에 성묘가 보입니다. 성묘는 광해군 어머니의 묘로 능으로까지 추봉되어 석물들은 다른 왕릉에 비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 성묘 초입 전경

▲ 풍양조씨 사당(풍양제)

▲ 풍양조씨 시조묘

얼마 전에 성묘의 도굴 현장이 발견되었다는 보도나 기사를 보셨을 겁니다. 도굴이 진행 중에 발견되어 다행히 도굴 미수에 그쳤습니다만, 앞으로는 문화재로 지정된 능원묘에 대해서는 문화재청 산하 기관에서의관리가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는 도굴로 인하여 지반이 침하되어 망주석이 많이 기울어져 있으며, 쓰러지지 않도록 고석에 끈을 연결하여 놓았더군요.

▲ 성묘 전경

▲ 성묘 봉분 전경

▲ 성묘 후경

성묘(成墓)는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후궁 공빈 김씨의 묘입니다. 공빈 김씨는 광해군을 낳았으며 광해군이 세살 때 사망하였다. 선조의 뒤를 이어 광해군이 즉위하자 추숭하여 자숙단인공성왕후(慈淑端仁恭聖王后)로 삼고 전호(殿號)를 봉자(奉慈)라 하였으며,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공빈도 함께 서인으로 강등 되었고 능호(陵號)도 성릉(成陵)에서 성묘(成墓)로 바뀌게 되었다.

성묘 도굴 미수 현장 발견...

[문화재청] 성묘(광해군 어머니 묘) 도굴 미수 현장 발견
[연합뉴스 보도자료 2006-01-24 12:15]


문화재청(청장 유홍준·兪弘濬)은 지난 1월 18일 서오릉 순창원 도굴 미수사건과 관련하여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는 서울 및 수도권에 소재한 능·원·묘 117기에 대하여 일제점검을 실시(2006.1.20∼1.21)한 결과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릉리에 있는 성묘(成墓, 광해군 어머니묘)에서 도굴 미수로 추정되는 현장을 추가로 발견하였다.

 

성묘의 도굴 미수 현장은 봉분 좌측 곡장(전 벽돌 기와담장) 바깥으로 약 8.6m 떨어진 경사지에 낙엽과 잡목 등으로 입구(가로1.0m, 세로0.8m)가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었으며, 도굴 갱은 깊이14.5m로 파들어가 도굴을 시도하였으나 봉분중심의 강회다짐층인 회곽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즉시 현장을 확인하는 한편 도굴 현장을 유지 보존하고 경찰에 신고하여 정밀감식과 발굴전문기관의 정밀조사를 실시토록 할 예정이다.

 

이번 도굴 미수 사건과 관련하여 문화재청은 직접 관리하고 있는 서울 및 수도권소재 능·원·묘에 대하여 연차적으로 고성능의 무인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관할 경찰서 등 유관 기관과의 협조체재와 야간순찰을 강화하여 조선왕능 문화재 보존·관리를 철저히 해 나갈 계획이다.

 

성묘는 조선 제14대 광해군(光海君)의 친어머니인 공빈(恭嬪)김씨의 묘로 공빈은 선조 10년(1577년) 25세로 사망하여 현재 위치에 안장되었는데 광해군이 왕이 되자 성릉(成陵)으로 승격하였다가 인조반정 이후 성묘(成墓)로 강등되었다.

 ▲ 도굴 당시 갱도 입구 모습

 ▲ 도굴 갱도 현재 모습(2006.08.15)

임해군묘는...

성묘를 돌아 나와서 다시 산길로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 임해군묘(臨海君墓)라는 큰 돌표식(아래 좌측 사진)이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산 방향으로 올라가면 왼쪽 산등성이에 묘가 보입니다. 그 묘가 임해군 묘인줄 알았는데, 올라가는 중간에 길 옆 임해군묘는 우측이라는 돌표식이 또 있습니다.

 

화살표 방향의 좁은 산길을 올라가면 작은 갈래길들이 나오는데 왼쪽으로는 가지 말고 직진이나 오른쪽으로 계속 올라가야 합니다. 한 5분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 언덕에 임해군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임해군묘 바로 앞에도 묘 1기 가 있는데 누구의 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 임해군 묘지 입구

 ▲ 임해군 묘역

 ▲ 임해군 묘역내 석물

성묘와 광해군 묘, 임해군 묘는 삼각형의 지형적인 구도를 이루고 있으며, 직선 거리로는 아주 가깝습니다.임해군은 광해군의 형으로 광해군의 골육상쟁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였으며, 동생인 광해군 역시, 사후에는 성묘 가까운 곳으로 유택을 삼아서 임해군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머니와 두 형제 모두 사후에라도 가까운 곳에 함께 있으니 아마도 형인 임해군은 동생을 용서하고 지금은 사이좋게 지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안빈묘는...

사릉 관리 능원묘 중에서 안빈묘가 제일 찾기가 어렵습니다. 사릉 다음에 바로 가도 되고 위의 능원묘들을 둘러보고 맨 마지막에 가셔도 됩니다. 하단에 전 사릉 관리소장님께서 자세히 그려주신 약도를 보시면 쉽게 찾아 갈 수 있으나 굴다리를 지나면서부터는 표지판이 없어서 안빈묘를 찾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아래 왼쪽 사진의 순환도로 좌측에서 우측으로 굴다리가 있으며, 굴다리를 건너서 50여 미터 정도 사진의 차량이 있는 곳의 조금 못미쳐서까지 올라오면 사진의 우측 산자락 나무숲 사이로 묘역이 보입니다.

 

안빈묘는 성묘의 도굴로 인하여 최근에 철책을 둘러 놓았으며, 입구에는 첨단 경비구역이란 표지판과 함께 묘역 주변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놓아서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습니다.

▲ 첨단 경비구역 설치로 밖에서만 바라보며...

▲ 안빈묘 입구 주변 전경

▲ 안빈묘 전경

▲ 안빈묘 후경

안빈묘(安嬪墓)는 조선 제17대 왕 효종(孝宗)의 후궁 안빈 이씨의 묘이다. 안빈 이씨는 숙녕옹주(淑寧翁主)를 낳았으며, 병자호란 후 봉림대군(효종)과 함께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 갔었고 숙종 19년에 사망하여 안빈(安嬪)으로 진호되었다.

사릉 주변 왕가묘 위치도

사릉 소재지 :
경기 남양주시 진건면 사능리 산 65-1

 

광해군묘 소재지 : 진건면 송릉리 산 59외

 

성묘 소재지 : 진건면 송릉리 산 55

 

안빈묘 소재지 : 진건면 송릉리 산 66

 

좌측 약도는 지금은 정년 퇴직하신 당시사릉 관리소장님께서 그려주신 약도입니다.

 

지도보다도 상세하여 지도 대신으로 올립니다.

사릉지구 관리 능원묘 위치도

맨 아래의 빨간 깃발이 사릉이며,

 

중앙의 빨간 깃발이 안빈묘,

 

영락교회 공원묘지 옆에 있는 빨간 깃발이 광해군묘,

 

광해군묘 우측의 빨간 깃발이 성묘,

 

맨 위의 빨간 깃발이 임해군묘입니다.

출처 : 한국의 능원묘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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