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전(表箋)
본직을 사면하고 예경 절차의 상고를 끝맺게 하여 주기를 청하다[請辭免本職終考禮經節次箋]
권근(權近)
예전에 신의 좌주(座主 선생과 같은 말임) 한산(韓山) 이색(李穡)이 일찍이 신더러 이르기를, “육경(六經)이 모두 진(秦)나라 세상에 불탔는데 그 중 예기(禮記)가 가장 많이 산일(散逸)되어, 한(漢)나라 선비들이 불에 타다 남은 조각을 주워 모아 책을 엮으면서 얻은 것의 선후에 따라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 글이 착란(錯亂)하여 차서가 없고, 정자(程子)ㆍ주자(朱子)는 「대학」한 편을 표해 내어 서차(序次)를 고정(考定)하였을 뿐이며, 그 나머지는 미처 손을 대지 못하였으므로 나는 부문(部門)을 나누어 종류대로 모아 따로 한 책을 만들려고 하나 아직 성취를 못하였으니, 너는 아무쪼록 힘써 하라.” 하셨습니다. 신은 그 지시를 받아 매양 절차를 편성하려 하였사오나 벼슬 직무에 매어 또한 능히 이루지 못하였사옵고, 전조 때에 죄를 얻어 귀양살이를 하다가 다행히 태상왕(太上王) 전하의 불쌍히 여기시는 인덕을 입사와 성명을 보존하여 향리에 편안히 있게 되오니, 신미년 봄으로부터 임신년 가을까지 수백 개월 사이에 비로소 이 경을 연구하게 되어, 편목에 따라 종류를 서열하여 원고를 작성하였사오나, 본경의 문자가 너무도 호번하여 다 기록하기에는 애로가 많으므로 오직 구절마다 머리와 끝의 두어 자를 들어서, “아무 구절로부터 아무 구절에 그친다. 아무 것은 아무 구절 아래 있었는데, 지금 마땅히 아무 데에 있어야 한다.” 하였고, 이따금 또 억견(臆見)의 설을 들어 그 아래에 부주(附注)하였을 따름입니다. 장차 본경의 정문(正文)을 다 쓰고 다음으로 진(陳)씨의 집설(輯設)을 쓴 연후에 억견의 설을 붙여 써서 한 책을 이루려고 하옵는데, 이 어찌 수 개월 동안에 한 사람의 힘으로 해낼 수 있겠사옵니까. 그러므로 당시에 탈고를 못하고 남은 세월을 기다려서 완성하기를 바랐던 것이 었습니다. 개국(開國) 초기에 불러 쓰심을 입었사옵고, 전하께오서 대통을 계승하시매 또 아무런 공이 없는 저 같은 것을 훈신(勳臣)의 반열에 참예하게 하시와, 지위가 재상에 이르고 두 번째 동맹(同盟)의 영광을 주시니, 감사함이 하늘까지 사무치며 몸이 분가루가 되어도 보답하기 어렵사옵니다. 오직 생각하옵건대, 신 근(近)은 체질이 본래 병이 많사와 왕왕이 발작하였는데, 지금은 그 징조가 더욱 심하와, 사지가 나른하고 머리와 눈이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하여 잘 잊어버리고 귀가 먹어 들리지 아니하여 직무를 받들기 어려우며, 술자(術者)가 또 말하기를, “을유년으로부터 정해, 무자 수년 간은 다 액운(厄運)이니 거의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 하옵니다. 그 말이 비록 족히 믿을 것은 못 되오나, 신의 병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보면 오래 살지 못할 것은 역시 짐작할 수 있는 일이옵니다.
신이 이 책을 비로소 편집함으로부터 지금 10년이 넘었사오나 아직 완성을 못하였으니, 신이 하루아침에 병이 더하여 서산에 지는 해와 같이 갑자기 성대(盛大)를 여의게 되오면, 신은 스승의 부탁을 지하에서 길이 저버리게 될 것이오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오리까. 더구나 신은 천박한 지식으로 오랫동안 조정에 있었으나 조금도 보익됨이 없었사오니 만약 신의 직(職)이 해임되고 아울러 세무(世務)가 제거되어 전심전력으로 이 책을 완성한다면, 비록 광망(狂妄)하고 참람(僭濫)한 죄는 벗어날 수 없사오나 후학에게는 반드시 보익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주상전하는 신의 쇠한 병을 가련히 여기시고 신의 지원(志願)을 양찰하시와 직무를 면하고, 한가한 곳에서 복약(服藥)하면서 틈틈이 다시 정력을 가하여 그 공을 마치게 하여 주시고, 특히 유사(攸司)에게 명하여 종이와 글씨 쓸 사람을 마련하여 전질(全帙)을 늑성(勒(成)하여 인쇄 발간하게 하여 주시오면 신의 저술은 비록 족히 보잘것 없사오나 후진의 선비가 반드시 이로 말미암아 흥기하여, 경적(經籍)을 정돈[發揮]하여서 성조(盛朝)의 문치(文治)를 숭상하는 정책을 빛내게 할 것이옵니다. 신은 구구(區區)의 뜻을 이기지 못하오며 황공히 머리를 조아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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