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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記) 상주 풍영루 기(尙州風詠樓記) -권근-

장안봉(微山) 2013. 5. 28. 23:13

기(記) 
 
 
상주 풍영루 기(尙州風詠樓記)
 

상주(尙州)는 본래 사벌국(沙伐國)이었는데 신라(新羅)에 붙음으로부터 큰 부(府)가 되었다. 지금까지 천여 년 동안에 수려한 산천과 번성한 인물이 온 도(道) 여러 고을 중에 으뜸이다. 그러나 일찍이 누대(樓臺)와 정사(亭?)를 설치한 것이 없었으니, 그 민풍이 순박함을 상상할 수 있다.
홍무(洪武) 경술년에 목사(牧使) 김남득(金南得)공이 공해(公?)를 중건한 다음 그 동북쪽에 과원(菓園)를 설치하고 그 가운데에다가 비로소 정자를 지었는데, 나의 좌주였던 한산 목은 상국(韓山牧隱相國)이 정자 이름을 풍영(風詠)이라 하고 이어 기문을 지었으며, 해원(解元) 한 성산 도은(星山陶隱)은 시를 남겼는데 두 공은 모두 일세의 문장으로서 큰 솜씨였으니 이 주(州)의 성가(聲價)는 그 무게를 더하였다.
경신년에 왜구가 침범하여서, 관사(官舍)와 민가가 병화를 만났다. 다음해 신유년에 반자 전이군(田理君)이 비로소 주성(州城)을 쌓고 남은 백성을 불러 모으며 옛 터대로 별관(別?)을 창건하여서 사명(使命)을 접대하였다. 경오년에는 목사(牧使) 이복시(李復始)공이 또 해사(?舍)를 창건하였으나 정사(亭?)는 미처 지을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 목사 송공(宋公)이, 판관 한암(韓岩)공과 마음을 합쳐 다스리면서 민폐를 없애고 이로움을 행하니 풍교(風敎)가 발흥(勃興)하고 인민이 편하였다. 이에 정자를 옛터에 따라 더욱 넓히고 그 위에다가 누각(樓閣)을 일으켰고, 또 목은의 기문과 도은의 시를 써서 모두 예전 모습대로 회복하니 온 고을의 훌륭한 경치가 더욱 증가되었다.
고을 사람인 전 대호군(前大護軍) 김겸(金謙) 공이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우리 고을에 풍영정(風詠亭)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 두 대유(大儒)의 훌륭한 글을 얻어서 그 광성을 빛나게 하였던 것인데, 중간에 불에 타버렸으나 중건(重建)하지 못하여 오랫동안 고을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던 바였다. 지금 우리 목백(牧伯)은 정적(政績)이 탁월하여 여러 주에서 첫째가 되며, 이 누각을 건립하는 데에도 백성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며칠 안 되어 완성하였다. 사명이 왕래할 적에 등람(登覽)할 곳이 있어 고을 백성 노유(老幼)도 서로 더불어 즐거워 한다. 목은과 도은은 그대의 스승이요 벗인데 어찌 한 마디 아껴서 그 뒤를 계속하지 않으려는가.”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풍영이라는 뜻은 정자의 기문에 다 말하였으니, 내 어찌 군말을 하랴. 그 기문에 장절부부(仗節剖符)로서 이 고을 지나가는 자들의 봄옷이 이미 이루어진 때를 만나 화기(和氣)가 넘칠 것 같으면 상주의 백성이 그 얼마나 다행이겠나.”
하였으니, 이것은 이 고을 사람에게 기망(期望)한 것이 매우 큰 것이다. 내 감히 이 점에 대해서 거듭 말한다.
공자 문하 여러 제자가 각각 그 뜻을 말하는데, 모두 섬기고 다스리는 말단적인 일만을 살폈으나, 증점(曾點)만이 바람쐬고 시를 읊조리면서 돌아오겠다 하니, 부자께서 감탄하면서 증점을 허여하였고, 해설하는 자는 요ㆍ순의 기상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유연한 가슴속이 하늘과 더불어 같은 체(體)여서 물(物)을 따라 형상을 부여하여 각자 제자리를 얻으면, 그 정사를 시행하는 즈음에 반드시 젊은이는 품어주고 늙은이를 편하게 하며 오는 이를 편하게 하여 항상 조화로운 묘리(妙理)가 있게 되서 화기가 유행(流行)할 것이다. 백성은 밭갈고 우물 파는 것을 편하게 여겨서 호호(??)한 것이 봄바람 속에 있는 듯하여, 다스림의 효과는 바로 큰 조화(造化)와 함께 운전(運轉)할 것이니, 요순(堯舜)의 다스림도 이런 데에 불과할 것이다. 그 원유(源由)를 궁구하면 다만 가슴속에 한 점만큼이라도 사적인 얽매임이 없는 데에 말미암을 것이다.
만약 장절부부한 자가 등람(登覽)할 즈음에 세속의 번다함을 씻어내고 세상의 근심을 없앤다면 뜨거운 것을 잡은 자가 샘에 씻지 않아도 저절로 맑아지고, 번거로운 것을 다스리는 자가 들에 가서 의논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음이 있을 것이다. 부앙(俯仰)하며 수작(酬酌)하는 동안에 풍영의 즐거움을 잠자코 보고 마음에 얻는 것이 있어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이치를 넓히게 되면 그 치화(治化)의 효과는 어찌 크지 않으리.
그 누(樓)에 유람할 만한 훌륭한 경치는, 내 늙었으나 만약 한 번 가서 직접 보고 그 풍경에 임한다면, 마땅히 도은의 뒤를 이어서 읊으리라. 영락 6년 가을 7월 일.


[주D-001]좌주(座主) : 고려(高麗) 때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그 과거의 시관(詩官)을 부르던 말.
[주D-002]해원(解元) : 향시(鄕試)를 해시(解試)라고도 하는데, 해원은 해시에 장원한 사람.
[주D-003]반자(半刺) : 주(州)ㆍ군(郡)의 보좌관, 곧 차석 자사(刺使)란 뜻이다.
[주D-004]장절부부(仗節剖符) : 장절은 절월(節鉞)을 잡았다는 뜻으로, 곧 어사(御使)ㆍ체찰사(體察使)ㆍ안찰사(按察使) 등이고, 부부는 인부(印符)를 쪼갠다는 뜻인데, 수령 방백(守令方伯)이 부임하게 되면 나라에서 대나무에다가 표를 하고 쪼개서 한쪽은 나라에 두고 한쪽은 수령 방백에게 주어서 증거로 한 것인데, 수령 방백을 말한 것이다.
[주D-005]봄옷이 …… 때 :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기의 뜻을 말하면서, “늦은 봄에 봄옷이 완성되면 관자(冠者) 5ㆍ6명과 동자(童子) 6ㆍ7명과 함께 기수(沂水)에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쏘이다가 읊조리면서 돌아오겠다.” 하였다.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
[주D-006]호호(??) : “왕자(王者)의 백성은 호호한 듯하다.” 하였고, 주자 주(朱子註)에는 호호는 넓고 커서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는 모양이라 하였다. 《맹자 진심장(盡心章)》

출처 : ▒ 한 산 草 堂 ▒
글쓴이 : 천하한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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