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송 우천봉 상인 유방 서(送雨千峯上人遊方序)
우천봉(雨千峯)은 불가에서는 고제(高弟)였고, 유가에 노닐 적엔 상빈(上賓)이었다. 대개 환암(幻庵)과 귀곡(龜谷)은 조계(曹溪)의 사표요, 한산자(韓山子 이목은(李牧隱))는 우리들의 영수인데, 실로 모두 상인을 애중히 여겨 예우하였으니, 상인은 무엇을 공부해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사람됨이 나이는 젊은데 학식은 대단하고, 외형은 여위었는데 신색(神色)은 기름지며, 말기운은 씩씩하여 맑은 바람과 같으니, 나 역시 상종하기를 원하는 바이다. 서로 이별한 적이 오래였는데 이제 찾아와서 손을 마주잡고 차분히 환담을 나누고 말하기를, “내가 여러 곳을 두루 유람하려 하는데, 선생은 글 한 편을 지어주기 바란다.” 하였다.
나는 전날 사명을 받들고 중원에 간 적이 두 번이었다. 요습(遼?)을 지나고 내양(萊洋)을 횡단하고 제(齊)ㆍ노(盧)의 옛 터를 거치고 대하(大河)와 강회(江淮)의 내리 쏟는 물결을 건너, 곧장 천자의 도성으로 나아가서 궁궐과 성곽의 웅장하고 아름다움과 강산과 토지의 끝없이 이어짐과, 예악과 전장(典章)의 밝게 구비됨과, 진신(搢紳)과 공경(公卿)의 엄중함을 보고 마음과 눈이 활짝 열리어, 바다 모퉁이에서 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으니, 장유(壯遊)라 할 수 있었다. 물러나와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자 오히려 왕사(王事)가 한정이 있어, 더 많이 구경 못한 것을 한으로 여겼는데, 상인은 이미 부도(浮屠)가 되었으매 고운 야학(孤雲野鶴) 같은 뿐만이 아니니, 빨리 떠나도록 하라. 삼대(三代) 시대로부터 한(漢)ㆍ당(唐) 이후로도 천하가 통일된 때는 적으니, 진실로 통일이 아니면 땅덩어리가 중단되어 비록 스승을 찾고 도를 물을 뜻이 있더라도 어떻게 갈 수 있으랴. 그 때문에 종소문(宗小文 종각(宗慤))이 와유(臥遊)의 한탄을 하게 된 것이다. 요즈음 성명(聖明)이 즉위하여 해와 달이 비치고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은 모두 판도(版圖) 안에 들었으니 폭원(幅員)의 넓음이 고금을 통하여 짝이 없다. 빨리 떠나도록 하라. 비록 그러하나 눈을 감고 단정히 앉아 한 번 손으로 퉁기는 찰나에, 천지가 생기지 않은 처음으로부터 천만 세의 무궁에 이르기까지, 환하게 눈앞에 있을 것인데 하물며 장해(章亥) 의 지나간 곳과 주목왕(周穆王)의 수레바퀴가 미친 곳과, 추연(鄒衍)의 이른바 구주(九洲)ㆍ구영(九瀛)은 모두 형기(形氣)의 안에 있을 것이 아니냐. 상인의 이번 걸음에는 반드시 식견을 갖춘 자를 만날 것이니, 나를 위하여 물어 주기 바란다.
[주D-001]장해(章亥) : 옛날 걸음을 잘 걷는 자의 이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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