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증전교김부령시서(贈典校金副令詩序)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출처와 거취(去就)가 어찌 일정하랴. 마땅히 크게 쓰이게 되면 큰 대로 행하고 작게 쓰이게 되면 작은 대로 행하며, 쓰이지 못하게 되면 행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할 따름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기에게 소유하여 내외ㆍ경중의 구분을 정확히 아는 자가 아니면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친구 김의경(金義卿)군이 글을 읽어 선비가 되자 때를 기다려서 움직일 모양이었는데, 계사년을 당하여 문충공(文忠公) 이윤(伊尹) 이익재(李益齋)와 문정공(文正公) 홍양파(洪陽坡)가 노성한 덕과 중한 물망으로 종장(宗匠)의 자리를 전담하여 선비를 선택하는 권한을 잡으니, 기특한 꾀를 기르고 원대한 식견을 갖추어 깊이 파묻혀 나오지 않던 선비들이 모두 노래하며 힘껏 분발하여 말하기를, “이야말로 때가 왔다.” 라고 하며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을 맞대어 시험장에 나아가서 경중을 경쟁하게 되었다. 그래서 김의경은 한산(韓山) 목은(牧隱) 선생과 함께 담소하며 일어나서 기탄 없이 앞으로 나아가니, 동배(同輩)들이 팔짱을 끼고 물러서서 주시하면서 감히 당할 수 없다고 여겼다.
이에 여러 선비를 밀어내고 맨 앞 줄에 서서 높이 병과(丙科)에 발탁되었으니, 어쩌면 그렇게도 신기할까.
문학에 능하다는 명망으로 교서(校書)의 직에 들어가 교정하는 책임을 전담하였고, 얼마 후에는 충직하고 강경함으로써 알려져 좌정언 지제교(左正言知製敎)에 제수되어 정사의 잘잘못을 낱낱이 아뢰게 되었고, 사람을 등용하는 일에 있어서도 또한 합당하게 받아들이고 물리치니, 거의 크게 쓰이게 되었다고 보겠다. 그러나 김의경의 재주와 학문이 마땅히 이에 그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른바 그 큰 것에 있어서는 아직 시험조차 못했는데, 하루아침에 어버이가 늙음으로써 은퇴하고 남쪽으로 돌아가서 아침저녁으로 곁에서 모시며 떠나지 아니하니, 진실로 쓰이는 데도 뜻이 없고 행하는 데도 뜻이 없었다.
현 상국(相國) 하공(河公)이 전라절도사(全羅節度使)로 부임하여 말하기를, “한 지방을 맡은 책임이 중하고 군민(軍民)의 사무도 복잡하니, 다스리는 법과 정벌(征伐)의 꾀는 마땅히 어질고 식견이 있는 이에게 자문해서 행해야 하겠다.” 하고, 김의경을 청하여 유악(?幄)에 두고 상빈(上賓)으로 대접하니, 김의경은 국사(國士)의 지우(知遇)에 감동하여 아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없었고, 책략은 실수가 없어 삼군(三軍)의 호령이 분명하고, 한 지방의 부세와 송사가 공정하여, 군사는 승첩(勝捷)의 공이 있고, 백성은 편안한 살림을 하게 되었다. 김의경은 말하기를, “지금 이와 같은 성과가 있는 것은 주인이 어질기 때문이다.” 하니, 상국은 말하기를,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막빈(幕賓)이 도와서 된 것이다.” 하고, 이에 장계를 아뢰어 봉선대부 전교부령 보문각직제학(奉善大夫 典校副令 寶文閣直提學)을 제수하였는데, 그 공을 정표(旌表)한 것이다. 김의경은 조정에서 쓰던 것을 막부(幕府)에 써서 그 도가 시행되자, 그 주인은 과연 공을 이룩하게 되었으니, 어디고 맞지 않은 데가 없음이 이와 같다. 옛날 당(唐) 나라 사람 노매(盧邁), 정여경(鄭餘慶), 조종유(趙宗儒), 고소련(顧小連) 등은 모두 하남(河南)의 막빈(幕賓)으로 조정에 들어와 재상이 되니, 그 시대 사람들이 영광으로 여기어 지금까지 아름다운 명성이 자자하다. 내가 듣건대, “재상은 사람을 천거하는 것으로 임금을 섬긴다.” 하니, 훗날에 상국이 조정에 돌아와서 숨은 인재를 열거(列擧)하고 어질고 뛰어난 자를 추천하게 되면 김의경의 이름이 제일 앞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당나라 하남(河南)의 막빈으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게 하랴. 내가 비록 버려진 몸이나 다행히 아직 죽지 아니하였으니, 장차 김의경을 위하여 눈을 씻고서 그 크게 쓰이고 크게 행하는 것을 보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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