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여강연집 시 서(驪江宴集詩序)
주상이 즉위한 지 3년 되는 신미년 겨울 11월에, 우리 좌주(座主) 한산(韓山) 목은 선생이 임금의 부르는 명령을 받고 서울로 오다가 여강의 별장에 들르니, 도관찰사(都觀察使) 안공(安公)이 술을 내서 위로하였다. 해가 지자 하늘이 맑고 달이 밝아서 배를 중류에 띄우고 흥껏 놀다 파하였는데, 그 이튿날 아침에 강에 얼음이 얼어 배가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하루를 지내고 도평의사(都評議使)가 첩지(牒紙)를 맡아 가지고 왔는데, 좌대언(左代言) 신(臣) 첨(詹)이 전지(傳旨)하기를, “한산군(韓山君) 색(穡)이 충주(忠州) 여주(驪州) 사이에 있으니, 도관찰사는 음식과 역마를 신칙하여 예절을 갖추어 조심성 있게 보내라.” 하였다. 안공이 공손히 명령을 받들고 또 가서 잔치를 차렸는데, 이날은 구름이 끼고 눈이 조금씩 오며 강에 얼음이 풀렸다. 선생이 안공과 같이 배를 타고 물을 따라 내려오는데, 그때에 자리에 모시고 있던 첨서(簽書) 종학(種學)은 선생의 아들이요, 여흥 군수(驪興郡守) 권총(權總)은 그 생질이요, 나와 도사(都事) 이우(李愚)는 문인이다. 술을 부어 올리며 흥이 한창 무르녹았는데 구름 속의 달은 은은하게 비치고 물빛은 하늘에 닿은 듯이 까마득하며, 고요한 물결은 바람 한 점 없고 눈송이는 드문드문 떨어지니, 이 또한 배 가운데 한 좋은 경치였다.
그 이튿날 도재(陶齋) 이 학사(李學士)가 수문관(修文館)의 명령을 받들고 역마를 달려 와서 또 어제와 같이 뱃놀이를 하였는데, 도재는 지금 문장으로 크게 이름이 있는데 신해년 과거에서 선생이 시관으로 있을 때 장원으로 뽑은 사람이요, 안공은 쌍청(雙淸) 상국(相國)의 맏아들인데, 쌍청은 곧 선생과 동방(同榜)급제였기로 세교(世交)가 아주 두터운 사이다. 안공은 일찍이 문장과 행동이 깨끗하고 근신하여 좋은 벼슬을 내리 지냈고, 지금은 또 중요한 임무를 띄고 한 지방을 맡아 다스려서 백성을 잘 살게 하며 임금의 덕화를 펴려고 애쓰는 중인데, 더군다나 선생이 임금의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어찌 성의껏 그 자리를 만들어서 성상이 우대하여 불러 오는 뜻에 맞도록 할 생각이 없겠는가. 이에 그 성심에 감격되어 얼음이 스스로 풀려서 오늘의 뱃놀이를 이루었으니, 아름답지 않은가.
여강 산수의 좋은 경치는 예전부터 칭송되던 곳이다. 사람의 일은 마음대로 되기 어렵고 좋은 친구는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들이 이리저리 헤어져 있다가 이런 회합이 있게 된 것은 참으로 얻기 어려운 기회요, 안공은 관찰사의 높은 자리에 앉아 온갖 사무에 분망한 이상 역시 이런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또 동짓달 얼음이 꽝꽝 얼어붙는 시절에 배를 띄우고 즐겁게 놀기를 오늘같이 한 것이 몇 번인지 알지 못하겠으며, 한자리에 모인 분들이 한산(韓山)처럼 덕망이 높고, 안공처럼 세력이 있고, 도재처럼 문장이 좋고, 현달하고 호걸스럽기가 제공(諸公) 같은 이가 서로 더불어 배를 탄 것이 또 몇 번인지 알지 못하는 데 있어서이겠는가. 이는 이 강이 생긴 뒤로부터 지금까지 정말 처음으로 한 번 있는 일이다. 내가 아무 재주도 없이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래서 이 일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장구(長句) 사운시(四韻詩) 한 편을 지어 도관찰사 깃대 아래 받들어 올리니, 매우 부끄러운 마음을 견딜 수 없다.
'여행이야기(가정 이곡.목은 이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서(序) 약재유고서(若齋遺藁序) -정도전- (0) | 2013.05.28 |
---|---|
[스크랩] 서(序) 도은 이선생 숭인 문집 서(陶隱李先生崇仁文集序) -권근- (0) | 2013.05.28 |
[스크랩] 서(序) 고려국사 서문[高麗國史序] -정총(鄭摠) - (0) | 2013.05.28 |
[스크랩] 서(序) 목은 선생 문집 서문[牧隱先生文集序] -이첨- (0) | 2013.05.28 |
[스크랩] 설(說) 한씨 사자 명자 설(韓氏四子名字說) -이규보- (0) | 2013.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