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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설(說) 자인설(子因說) -이규보-

장안봉(微山) 2013. 5. 28. 23:10

설(說) 
 
자인설(子因說)
 

동래(東萊) 정자인(鄭子因)이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선생이 한산(韓山)에 있을 때에 일찍 문하에 나아가서 《논어》와 《맹자》를 배우고 자(字)에 대한 설(說)을 청하였더니, 선생이 말하기를, ‘자네의 이름을 가종(可宗)이라고 지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은 친근히 해야 할 사람을 잃지 않는 것뿐이다.’ 하고, 곧 자(字)를 가인(可因)이라고 지어주셨는데 이제 26년이 되었습니다. 그 뜻을 받들어 지내오면서 감히 어긋나지 않게 하였으나 그 의의에 대해서는 당시에 청하지 못하여서 지금까지 유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선생은 그 해설을 완전히 들려 주십시요.”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지금일이라도 늦지 않다. 억(抑)이라는 시에서 경계한 말이 이미 매우 분명하지 아니한가. 하물며 자인(子因)은 나이가 아직 50이 못되었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그치지 않으니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러나 내가 늙었으니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늘과 땅은 넓으며 큰데도 오히려 서로 의지하며 붙어있는데, 더구나 인간 윤리의 아름다움은 기강과 풍화가 관계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임금과 신하는 서로 보좌하며 친구끼리는 서로 충고함을 인하여 유지되는 것이니, 임금이 훌륭한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도 서로 인연이 없으면 그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요(堯)ㆍ순(舜)이 마음이 서로 맞은 것과 후대의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만난 것에서 모두 그 사실을 볼 수 있다. 다만 그 서로 의사가 맞지 않을 경우에는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다가 그만두고 가기도하며 담을 넘어서 피하여 가기도 한다. 그가 이렇게 피하여 도망하는 것은 반드시 그의 마음속에 확고히 변하지 않는 의지가 있는 것이며, 반드시 그 정세가 붙어있어서는 안될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 슬프다. 성인이 일어나서 만물이 모두 그를 쳐다보며 구름이 용(龍)을 따르듯 바람이 범을 따르듯이 되어 기운과 기회가 서로 합하는 것이 아교(阿膠)와 윷이 서로 배합되는 것 같아서 어그러짐이 없어, 말하면 듣고 계획을 세우면 그대로 들어주어서 공적을 이루며 정치가 잘 되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되면 서로 인연을 맺은 효과가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자인(子因)은 어려서 글을 읽고 과거를 통하여 벼슬길에 들어서서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그가 인연 맺은 사람이 없다 할 수 없다. 그러나 농촌에 은퇴하여 은사(隱士)처럼 있으니, 그가 인연을 맺은 사람이 있다고도 할 수 없다. 이제라도 벼슬자리를 주어 불러들이면 곧 가고 교체되면 곧 그만두니, 유연(悠然)히 그런데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 같아, 자인(子因)의 학문은 지키는 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옛날에 출처(出處)의 구분을 능히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 잘할 수 없다. 자인(子因)은 앞으로 그 태도를 변하지 말지어다.” 하였다. 이에 자인설(子因說)을 지어 그를 권면한다.


[주D-001]가인(可因) : 이것은 《논어》 학이편(學而篇)에, “인연을 맺는데 있어서 그 친근히 해야 할 사람을 잃지 않으면 또한 높일 만하다〔因不失 其親 亦可宗也〕.” 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주D-002]억(抑) : 춘추 시대에 위무공(衛武公)이 59세에 자기를 반성하며 왕(王)에게 간하는 뜻을 나타내어 지은 시(詩). 곧 나이가 많아도 학문에 대한 마음을 더욱 굳게 가지는 예로 인용한 것.

출처 : ▒ 한 산 草 堂 ▒
글쓴이 : 천하한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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