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사 박충좌(朴忠佐)ㆍ김영후(金永煦)와 참리(參理) 신예(辛裔)ㆍ지신사(知申事) 이공수(李公遂)를 제조관(提調官)으로 삼았다. 그때에 비록 뭇 소인배들을 북전(北殿))에서 쫓아내기는 하였으나, 신예ㆍ강윤충ㆍ전숙몽(田淑夢) 등이 서로 잇달아 정권을 휘두르매, 불과 몇 달 동안에 그들의 인척(姻戚)과 옛친구들이 경상(卿相)의 대열에 늘어서게 되었다. 대언(代...
출처 : ▒ 한 산 草 堂 ▒
글쓴이 : 천하한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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