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량문(上樑文) 택풍당(澤風堂)의 상량문은 택풍지(澤風志)에 보임
시내 서쪽에 새로 마련한 집의 상량문
사방을 둘러보아도 달려갈 곳도 없이, 그저 오래도록 떠돌이 생활에 지쳤는지라, 하나의 가지를 옮겨서 둥지를 틀 생각을 억지로 내어, 여기에다 터를 잡고 집을 짓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득이해서 나온 행동일 뿐이니, 어찌 편안하게 거처할 곳을 구하려 함이겠는가.
주인으로 말하면, 병이 많은 데다가 기력이 일찍 쇠했기 때문에, 평소부터 멀리 떠나가 살 생각을 지니고 있었는데, 비록 중년에 둔건(屯蹇)의 운세를 만나긴 하였지만, 택목(澤木)의 점사(占辭)를 얻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다가 만년에 이르러서는 또 세상이 급격히 바뀌면서 여러 차례나 풍파(風波)의 험난한 곤경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그저 민령(岷嶺)의 생각만 간절할 뿐, 망천(輞川)의 한가한 경지는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동안 양제(兩制)에서 조롱박만 흉내내어 그리느라 정력이 이미 고갈되었고, 세 곳 변방의 기밀(機密)에 관한 문자를 짓느라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그저 헛수고만 하였으니, 이렇게 본다면 조정에 들락날락한 14년 동안에 볼 만한 행장(行藏)이 백 가지 중에 한 가지도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불행히도 서쪽 변방에서 급보가 전해졌으므로 동문(東門)의 귀향을 청하는 일을 오래도록 지체할 수밖에 없었는데, 모친을 모시고 길을 떠나는 중거(仲車)의 수레 위로 저녁 해가 홀연히 서산으로 넘어가려 하는가 하면, 대궐에 아직도 미련을 두고 마음이 걸려 있는 자모(子牟)의 입장에서는 서울에서 멀리 떠나 있을 수도 없었으니 이 심정이 또한 어떠하였겠는가.
그러나 생각건대, 황려(黃驪 여주(驪州)의 옛 이름)의 물가로 말하면, 내가 어렸을 때부터 노닐었던 곳으로서, 동쪽으로는 지평(砥平)의 묘소를 바라볼 수 있으니 향화(香火)를 계속해서 올릴 수가 있고, 서쪽으로는 도성을 바라볼 수 있으니 조종(朝宗)의 소원을 이루는 데에 지장이 없으리라고 여겨졌다. 게다가 강산의 누관(樓觀)으로 말하면 시원스럽게 툭 터진 경치를 동한(東韓)에서 독점하고 있고, 인물의 풍류로 말하면 옛 기록에 단청(丹靑)처럼 빛나고 있으니, 도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터에, 내가 지금 이곳을 버리고 어디에다 집터를 구하겠는가.
그리하여 창려(昌黎)가 장안(長安)에다 집을 지어 놓고 아이에게 시를 지어 보여 주었던 것[示兒]과 같은 여유를 가질 사이도 없이, 낙수(洛水) 물가의 전원(田園)에다 집을 짓고 어버이를 모셨던 반령(潘令)의 고사를 본떠서 경영하기로 하였다. 하늘이 이처럼 나에게 시간을 주고 땅이 또 숨겨 두었던 곳을 나에게 열어서 보여 주었기에, 장난 삼아 상량문 한 편을 지어 집을 지어 주는 사람들의 노고에 애오라지 보답할까 한다.
들보 동쪽에다 떡을 던지세나 / 抛梁東
옛 사찰의 새벽 등불 저녁의 쇠북 소리로세 / 古寺晨燈暮鍾
선대 위의 한 조각 밝은 저 달을 보소 / 一片禪臺明月
천추토록 목로의 기이한 자취를 비춰 주네 / 千秋牧老奇?
들보 남쪽에다 떡을 던지세나 / 抛梁南
월악의 맥이 압잠까지 이어져 벋었다네 / 月岳連延鴨岑
멀고 가까운 옥잠과 소라 모양의 상투 보소 / 遠近玉簪螺?
조석으로 연보라색 산기운이 떠 있다오 / 朝?曖翠浮嵐
들보 서쪽에다 떡을 던지세나 / 抛梁西
물 건너 기이한 바위와 옛둑이 있지 않소 / 隔水奇巖古堤
원릉에는 만세토록 나무숲이 울창하고 / 萬歲園陵?鬱
역로(驛路)에는 천 겹이라 가로수가 무성하리 / 千重官樹?迷
들보 북쪽에다 떡을 던지세나 / 抛梁北
소나무 길에 단풍 숲 어쩌면 이토록 쓸쓸한지 / 松徑楓林寂歷
붉은 새는 어느 해나 여기에 날아와 앉을런고 / 丹鳥何年萃止
흰 구름은 지금까지 머물러 묵고 있건마는 / 白雲至今留宿
들보 위쪽에다 떡을 던지세나 / 抛梁上
산봉우리가 토해 내는 웅장한 저 기운이여 / 磅?岡巒氣壯
동방의 준걸들을 잉태(孕胎)하고 있으리니 / 孕出靑丘俊英
머지않아 밤하늘에 덕성의 출현을 보리로다 / 行看德星乾象
들보 아래쪽에 떡을 던지세나 / 抛梁下
허리띠 같은 긴 강물이 집을 휘감고 돌아가네 / 一帶長江?舍
이제는 백로와 갈매기도 사람과 함께 노니나니 / 已覺鷺鷗近人
초동(樵童) 목수(牧竪)와 어울려서 살아간들 어떠하리 / 何妨樵牧同社
삼가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뒤에는 임금의 은혜로 물러나는 것을 허락받음은 물론이요 세도(世道) 또한 태평해지는 가운데, 온갖 재난이 물러가 풍년을 구가(謳歌)하는 동시에 새와 쥐들도 멀리 떠나고 뱀들도 도망치게 되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달이 뜨는 가운데 모친께서 천 년 만 년 장수를 누리시고, 밤에 송독(誦讀)하고 아침에 읊조리는 가운데 뜻이 맞는 두세 사람과 즐겼으면 하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명(神明)에게 축원하는 뜻을 보인 것일 뿐, 감히 청복(淸福)을 내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주D-001]사방을 …… 없이 :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자신의 뜻을 펼 수가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절남산(節南山)에,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니, 네 마리 수말의 목이 굵도다. 내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움츠러들 뿐 달려갈 곳이 없도다.[駕彼四牡 四牡項領 我瞻四方 蹙蹙靡所騁]”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2]하나의 가지 : 자신의 간소한 거처를 뜻하는 겸사(謙辭)로,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산새가 깊은 숲 속에 둥지를 틀 때, 하나의 가지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巢于深林 不過一枝]”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3]둔건(屯蹇) : 《주역(周易)》 둔괘(屯卦)와 건괘(蹇卦)의 병칭으로서,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만나 곤고(困苦)한 처지에 놓인 것을 가리킨다.
[주D-004]택목(澤木)의 점사(占辭) : 《주역》 택풍 대과괘(澤風大過卦)의 상사(象辭)를 가리키는데, 그 내용을 보면, “연못 속에 나무가 잠기는 것이 대과이니, 군자는 이를 통하여 홀로 우뚝 서서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을 떠나 살면서도 미련을 두지 않는다.[澤滅木 大過 君子以獨立不懼 遯世無悶]”라고 하였다.
[주D-005]민령(岷嶺)의 …… 뿐 : 굶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말이다. 민령은 즉 민산(岷山)으로,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에, “민산의 아래는 대지가 비옥할 뿐만 아니라, 그 밑에 웅크려 앉은 올빼미 모양의 큰 우엉이 많이 있으므로, 죽을 때까지 굶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주D-006]망천(輞川) : 당(唐) 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화려한 별장 이름으로, 주위에 펼쳐진 20개의 승경(勝景)을 왕유 자신이 화폭에 담은 ‘망천도(輞川圖)’가 또 유명하다.
[주D-007]양제(兩制)에서 …… 그리느라 : 조정의 낮은 자리에 몸담고 그저 옛사람의 흉내만 내며 상투적인 글을 짓기만 했다는 뜻의 겸사(謙辭)이다. 양제는 내제(內制)와 외제(外制)의 합칭으로, 한림 학사(翰林學士)와 중서 사인(中書舍人)을 가리킨다. 송(宋) 나라 도곡(陶穀)이 재질을 자부하면서도 지위가 낮은 것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에, 태조(太祖)로부터, “옛날 사람들이 지어 놓은 글을 살짝 말만 바꿔서 내놓고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조롱박 모양만을 본떠서 그려 낸다는 것[依樣?葫蘆]이 아니겠는가.”라는 핀잔을 받자, 스스로 옥당(玉堂)의 벽에다 이 내용을 반추(反芻)하면서 원망하는 시를 지어 붙여 놓았는데, 태조가 이 시를 보고는 중용(重用)하지 않으려는 뜻을 더욱 굳혔다는 고사가 전한다. 《東軒筆錄 卷1》
[주D-008]동문(東門)의 귀향 : 벼슬을 그만두고 동대문을 통해 향리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한(漢) 나라 소광(疏廣)이 치사(致仕)를 허락받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공경 대부 등 수백 채의 수레가 도성 동문 밖에 나와 환송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71 疏廣傳》
[주D-009]모친을 …… 하면 : 늙은 모친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타까움만 더해질 뿐이었다는 말이다. 중거(仲車)는 송(宋) 나라의 효자인 효절처사(孝節處士) 서적(徐積)의 자(字)이다. 천거를 받고 고을 수령으로 부임할 때 모친을 수레에 함께 태워 모시고 갔으며, 모친이 죽은 뒤 여묘살이를 하며 눈 내린 밤에 엎드려 통곡하자, 그 정성에 감응하여 감로(甘露)가 내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宋元學案 卷1 安定學案》
[주D-010]대궐에 …… 없었으니 : 당장 벼슬을 그만둘 수도 없는 신하의 입장에서는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다 집터를 잡을 수도 없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양왕(讓王)에, “몸은 강과 바다 위에 있어도 마음은 항상 대궐 아래에 있다.[身在江海之上 心居乎魏闕之下]”고 말한 중산공자 모(中山公子牟)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주D-011]조종(朝宗) :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강한(江漢)이 바다에 조종(朝宗)을 한다.”는 유명한 말이 나오는데, 제후 혹은 백관이 제왕을 조회(朝會)하는 것을 말한다.
[주D-012]도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 :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도가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멀리에서 구하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주D-013]창려(昌黎)가 …… 것 : 《한창려집(韓昌黎集)》 7권의 ‘시아(示兒)’에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창려는 한유(韓愈)의 별호이다.
[주D-014]낙수(洛水) …… 고사 : 진(晉) 나라 반악(潘岳)이 50세 때 모친이 병들자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 읊었던 ‘한거부(閑居賦)’에, “이에 물러나와 낙수 물가에서 한가히 거하게 되었다.[於是退而閑居于洛之?]”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5]목로(牧老)의 기이한 자취 :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대장경(大藏經) 불사(佛事)를 발원한 부친 이곡(李穀)의 뜻을 계승하여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에다 대장각(大藏閣)을 건립하고 나옹(懶翁)의 제자들과 함께 대장경을 인출하여 봉안했던 일을 말한다.
[주D-016]옥잠(玉簪)과 소라 모양의 상투 : 산의 모양을 형용한 말이다.
[주D-017]조석으로 …… 있다오 : 송대(宋代)의 명시(名詩)로 회자되는 구양수(歐陽脩)의 ‘여산고(廬山高)’에, “떠다니는 산기운에 엷은 보라색의 갖가지 산 모양들을, 앉거나 눕거나 창문으로 항상 대하려 함이렷다.[欲令浮嵐曖翠千萬狀 坐臥常對乎軒窓]”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18]붉은 새는 …… 있건마는 : 누각의 스산한 정경을 표현한 말이다. 옛날 선인(仙人)인 자안(子安)이 황학(黃鶴)을 타고 내려온 곳에 황학루(黃鶴樓) 라는 누각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이를 소재로 읊은 당(唐) 나라 최호(崔灝)의 시 ‘황학루(黃鶴樓)’에, “황학은 한 번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흰구름만 천 년토록 부질없이 떠 있도다.[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라는 구절이 있다.
[주D-019]덕성(德星) : 나라를 평화롭게 할 현인이 출현할 때 보인다는 별 이름이다.
[주D-020]이제는 …… 노니나니 : 세속적인 이해타산을 떠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서 전원 생활을 즐긴다는 말이다. 바닷가의 어부가 매일 수백 마리의 갈매기와 친하게 벗하며 노닐었는데, 어느 날 자기 부친의 부탁을 받고 한 마리를 잡아가려고 마음먹자, 갈매기가 공중만 맴돌 뿐 옆에 내려와 앉지 않더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列子 黃帝》
[주D-021]새와 …… 떠나고 : 《시경(詩經)》 소아(小雅) 사간(斯干)은 새집을 지은 기쁨을 노래한 것인데, 그 가운데에, “풍우도 이제는 막게 되고, 새와 쥐들도 모두 떠나, 군자가 여기에 살게 됐네.[風雨攸除 鳥鼠攸去 君子攸芋]”라는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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