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잡록 3 본조(本朝)
이맹균(李孟畇)
○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지밀직사(知密直事) 종덕(鍾德)의 아들이다. 고려의 신우(辛?) 때에 나이 15세로 등제하였으며 문명(文名)이 있었다. 특히 시를 잘하였다. 이조에 들어와 벼슬은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다가 죄에 연좌되어 유배되어 죽었다.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일찍이 〈송도(松都)〉라는 시를 지어 슬퍼하였는데 그 중 둘째 연에,
영웅은 이미 갔으나 산하는 남아 있으며 / 英雄已逝山河在
인물은 남천(南遷)하고 옛 도읍은 비었네 / 人物南遷市朝空
상원에 꾀꼬리와 꽃은 보슬비에 젖었는데 / 上苑鶯花微雨後
여러 능의 풀과 나무는 석양 속에 기울더라 / 諸陵草樹夕陽中
하였으니, 감회와 한이 많은 글이다. 《용재총화》
○ 아들이 없는 것을 한하여 시를 짓기를,
인도가 인에서 시작하고부터 / 自從人道起於寅
부자가 서로 전하여 이 몸에 이르렀네 / 夫子相傳到此身
나의 죄가 무엇이기에 하늘에게 버림받아 / 我罪伊何天不弔
남의 아비 되지 못하고 백발만 새롭다 / 未爲人父白髮新
하였다. 동상
○ 학문이 정심하고 필적도 뛰어나서 한산(韓山) 가목(稼牧 가정(稼亭) 이곡(李穀), 목은(牧隱) 이색(李穡) 부자(父子))의 풍이 있었다. 관직은 찬성(贊成)에 이르렀다. 만년에 죄 없이 불운하였고 또 후사가 없어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등백도(鄧伯道)가 자식이 없자 하늘도 무심하다 하더니, 문혜(文惠)도 역시 그러하구나.” 하였다. 《필원잡기》
출처 : ▒ 한 산 草 堂 ▒
글쓴이 : 천하한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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