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스크랩] 도덕경 71

장안봉(微山) 2013. 5. 19. 20:22

本文 七十一章  .


知, 不知, 上, 不知, 知, 病, 夫唯病病, 是以不病,
지, 부지, 상, 부지, 지, 병, 부유병병, 시이불병,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성인불병, 이기병병, 시이불병.

 

지혜롭지 못한 것에 대하여선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을 上(상)으로 친다면  지혜로와야 할 것에 지혜롭게 못 대처한 것을 갖다가선 병됨 이라 여길 것이다  대저 오직 병탈 됨을 병탈됨으로 여기는 것이라면  이 병들지 않았다 할 것이니  聖人(성인)은 不治病(불치병)을 앓지 않는다  그 병탈 됨을 병탈 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래서 不治病(불치병)을 앓치 않으 시 나니라 

지혜롭지 못한 것의 일인데도 지혜로움을 발휘하여선 지혜롭게  所以(소이) 슬기롭게 대처하였다면 그거야 말로 대단한 수완 솜씨를 발휘한 것이라 할 것이다  이 반면 지혜로와야 할 것에 대하여선 트릿하게 어리벙벙하게 대처 하였다면   所以(소이) 단단하게 하여야 할 것에 대강 마무리를 짓는 둥 마는 둥 하였다면 언제 그 일이 事端(사단)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이리라  所以(소이) 病(병) 됨을 만들어 논 것이나 진배없을 것이라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러한 병 됨을 알아서 그것에 대하여선 그렇게 대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잘 수습을 하였다면 이것이야말로 병 됨을 병 됨으로 알아서 잘 대처한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 병들지 않은 상황을 그리게 되었다는 것이리라  성인은 이처럼 적극적으로 잘 대처하여선 병드는 법이 없다는 것이라 


所以(소이) 병 됨을 병 됨으로 여기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 것이라  그래서 역시 병들지 않으시다는 것이다   老聃(노담)이 聖人(성인)의 입장에 서서  그 道(도)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聖人(성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인지라 病(병)들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章(장)에서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한데 역시 聖人(성인) 빙자 하여선 自己(자기) 論理(논리) 자랑하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소이 제자랑 하는 모습이다
 

 

무슨 일이 앞에 닥친 것이 그 수습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한 상황을 갖다가선 머리 궁리를 짜내어야 할 것인데  그 머리 회전 두뇌회전을 할 수 없을 만큼의 難關(난관)에 逢着(봉착)한 상황을 갖다가선 슬기로와 질 수가 없는 상태라 할 것이다 이런 것을 迂餘曲折(우여곡절) 傍系(방계)曲徑(곡경)으로 實力(실력)을 발휘 갖은 妙策(묘책)을 다 짜내어선 잘 收拾(수습)을 하게되었다면 그것이야말로 上策(상책)중에 상책이요 妙策(묘책)중에 묘책이라서 그 아주 윗 된 자 어른으로 칠만한 것이라 할 것이라는 것이리라  

 


이 반면 그  잘 대처 하기만 하면 손쉬운 것인데도 그 제대로 대처하질 못하고선 그냥 방치하듯 노아 두었다면 그 세가 점점 불어나든가  그 일이 손가락을 막아도 충분할 것을 가래로 막게될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면 그야말로 후회 막급하게 이를 것이라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러한 병적인 것을 알아선 그러기 전 未然(미연)에 防止(방지) 그 것을 잘 막아 돌렸다면 그 病(병)을 治癒(치유)한 상태가 될 것인지라 이래서 불치병 痼疾(고질)病(병)을 앓치 않게 되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리라    聖人(성인)은 이처럼 諸般(제반) 事案(사안)에 대하여선 잘 대처하는 능력을 具備(구비)하고 계시는지라  불치병을 앓을 일도 없는데 그는 곧 병탈 될 것을 알아선  미리 적극적으로 잘 수습할 능력을 갖으셨기 때문이라고 재벌 강조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선 역시 병드는 법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소이 성인의 가르침을 쫓는다면 역시 그 종사 순종하는 자도 병들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夫唯病病(부유병병)이라 하는 것은  病(병)들은 것을 病(병)들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所以(소이) 藥(약)으로 治癒(치유)하듯 治癒(치유)해야한다는 것이다 病(병)이 病(병)들었다면 그 治癒(치유)한 것이 될 것이 아닌가 이 말이다  이래서 不病(불병) 병들지 않은 상태가 되어지게 되는 것이다   聖人(성인)이 病(병)들지 않는 것은 곧 治癒(치유)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 하고  이래서 병들지 않는다 所以(소이) 쾌차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病(병)을 잘 낫게 하는 醫師(의사)를 성스러운 손길에 譬喩(비유)하여선 聖手(성수)라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所以(소이) 남의 痛症(통증)을 덜어준다는 것은 그 聖人(성인)반열에 설수가 있다는  그런 말씀이리라 所以(소이) 仁術(인술)을 펼치는 것을 높이 사는 말이리라

 


일체 병들지 않는 자 思想(사상) 論爭(논쟁) 하여선 降魔(항마)調伏(조복) 승리 한 자는 그 이래 병들지 않은 자에 해당한다 할 것인데 그런 자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생명을 갖고 이 세상에 있는 이상 결국은 衰病(쇠병)하여선  죽게 마련인데 흥망성쇠가 있다면 그것은 한결같은 道(도)가 아니고 道(도)가 아니라면 일찍이 고만두어야 할 것이라고 老聃(노담)이 말하였는데  自然(자연)에 循環(순환)의 法則(법칙)이 生老病死(생노병사)를 벗어날 순 없는 것인데  그것이 道(도)가 아니라 하고 버리려든다면 道(도)라 하는 것이 또한 무엇인가하고선 되묻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렇게 한결같은 것을 바란다는 것은 理想(이상)世界(세계)를 말하는 것이지  그 역시 염증 권태로움을 안 일으키겠느냐 이다  무엇인가 단조롭다면 그 자연 권태를 가져온다  그래선 사람들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하여선 변화를 모색하게되는 것이다  所以(소이) 方法論(방법론)에 있는 것이지 그 무슨 내거는 主題(주제)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리라

所以(소이) 그 방법론이 生老病死(생노병사)요 興亡盛衰(흥망성쇠) 각종 多樣(다양)한 樣相(양상)이 되는 것인지라 그래서 宇宙(우주)는 森羅萬象(삼라만상)이 벌어져 있게되는 것인지라 그것이고 곧 道(도)이지 다른 무엇이 道(도)이 겠느냐 이다   이런 論據(논거)가 될 것인지라  이런 삼라만상의 지어지고 되어 돌아가는 상황을 잘 觀照(관조)하여선 좋은 방향으로 삶을 誘導(유도)해 나간다면 그것이 곧 道(도)가 되지 다른 그 무엇이 道(도) 이겠느냐 이 다다

 

夫唯病病(부유병병)에 해석은 그분분할 수가 있는데  이를테면 병이라  는 것은 남이 먹고 사는 것이 그 我軍(아군) 이쪽에 害惡(해악)이 될 적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것을 병들게 해야만 한다면  所以(소이) 그 打倒(타도)對相(대상) 먹고 살지 못하게끔 해야 한다는 그런 논리도 정립된다 할 것이라 내가 살기 위해선 남이 죽어줘야 한다는 利己的(이기적)인 發想(발상)이 나온다할 것이다   아 病(병)과 竝存(병존) 常存(상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런 견해이다  그렇다면 남의 먹고사는 것을 해악질을 퍼부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래야만 제게 잇속이 돌아온다는 것인데 聖人(성인)이라 하는 用語(용어)를 거들먹 거리면서 남에게 해악 질 퍼붓겠다는 것 역시 바르게 비춰 보일리 없다는 것이리라

 

또는 불손한 태도 무례한 행동을 보이는 것일 수도 그것을 예의로 대하는 상태일수도 있고 여러 가지 번잡한 양상을 그리게 된다 할 것이다
 

 

無禮(무례)하다는 것은 그 價値(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所以(소이) 疏忽(소홀)하게 왜 나를 取扱(취급)하느냐 그렇다면 어디 네 넘이 내 맛좀 봐라 하고선 그 病(병)이 본때를 보여줌 위세를 떨친다는 것인지라  그래선 그렇게 되지 않게끔 예의로 대접 공손한 태도로 賀禮(하례)를 한다 손을 내젓듯 사양하고 물러나는 전법  정성을 다한 공경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 快差(쾌차) 하여지는 모습  所以(소이) 병이 사라지는 상황으로 그려지게 된다는 것이리라  所以(소이) 病(병)님을 그 무례하게 대접 할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잘 알아선 모시라는 것이리라  잘 알아 모시는 방법이 곧 藥(약)으로 대접을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자신을 알아 준다하여선 역시 답례하고선 물러나는 모습을 잘 그려줄 것이라는 그런 견해이다

 


 또는 남이 먹고사는 것을 병됨으로 여기는 것인데 그것을 그래 못먹고 살게끔 방훼 하겠다는 것인데  그 무슨 예의가 있겠느냐 이런 의미도 있음인지라 무례하게 대접하기란 역시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 무슨 天神(천신)이고 보살부처라고 양쪽에 다 비위를 맞출려 들려 하겠느냐 이 다다   所以(소이) 늑대에게는 강아지 새끼가 먹인데 그 잡아 먹는 것이 애처롭다하여선 제  넓적다리 살점을 베어주고  강아지 새끼는 살려 놓겠다는 것은 자연 질서 방훼  주제 넘은 짓이라는 것이리라
저 마다 들 활동의 한계 짓거리가 있는데 성인의 가르침이라 하여선 자기 본위로 생각하여선 자기 의도대로 모든 것을 끌어다 맞출 려 한다면야 그것이 될법한 일인가 이다    그렇게 어리석게 대처하는 것이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지 전체를 자기 의향대로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리라

 


聖人(성인)의 가르침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인다면 그 聖人(성인)이 하신 말의 융통 없는 走狗(주구)가 될 것인지라   어리석은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지 진정한 깨달음에는 달하지 못했다 할 것이고   類似(유사) 似而非(사이비) 聖人(성인)은 또한 그 가르침이 라는 것을 통해선 이렇게 주술적 碎腦(쇄뇌) 반응을 일으키게 하여선 자신의 의도대로 지배하겠다는 통제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일 수도 있음인지라  所以(소이) 바보 되는 주사를 한 대씩 노아 주는 것이 그 甘言利說(감언이설)의 가르침이라 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므로 그런 邪惡(사악)한 意圖(의도)에는  순종할 이유 건덕지가 없는 것인지라 불복종해야만 한다할 것이고 통제 하려는 데서 벗어나야만 한다 할 것인지라  所以(소이) 叛骨(반골)정신을 가져셔 야만이 成長(성장) 커진다는 것이고,

 


알지 못해 어둠의 바퀴 옥죄는 桎梏(질곡)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오직 진정한 깨우침 그 應用(응용) 融通(융통) 摸索(모색)에 있는 것이지 그  한 말을 고대로 흉내내는데는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서로의 활동에 대하여선 진정한 가치를 認定(인정)하여 줄 때만이 그 살아있는 가르침 그 옥죄는 굴레를 벗어 던지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인지라  適者生存(적자생존) 弱肉强食(약육강식)의 原理(원리)를 바로 깨달으라는 것이리라 서로가 으르렁 거려선 弱(약)한 것이 잡혀먹는 것이 자연계의 秩序(질서)인 것이다 이렇게 먹혀드는 쪽이 있음으로 인해서 우주는 점점 활동을 왕성하게 하여 나가면서 팽창하게 되어 있는 것인지라 그래선 그만큼 記述(기술)할 것도 늘어나게 된다 할 것이다  

 

 

 慈悲(자비)고 仁義(인의)고 無爲自然(무위자연) 道(도)라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죽어질 때 바로 죽어지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고 그 잡아먹어도 마음에 꺼림의 존재가 일어나지 않게 변명 빙자를 잘 하여주는 것[합리화를 잘하여 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이 바로 感知(감지) 할 수 있는 능력을 붙쳐 준 것인데 바로 五感(오감)이라 하는 것이고 그 五感(오감)에 능력에 의하여선 歡喜(환희)를 맛보게 하 는 것이라 할 것이다 
五感(오감)의 歡喜(환희)가 그 합리화를 잘 대변하여주고 있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느껴지게끔 하는 것이 곧 道(도)고 그 杞憂(기우)를 덜어주는 것이 그 道(도)인 것이다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富貴(부귀)하려고 활동하려 들겠냐 이 다다    그러므로 그 成長發展(성장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선 그 실상 당연하고 정당한 것이 없더라도 그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 있어선 그것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리라

 

* 本文 第 七十一章 = 모를걸 아는게 위가되고 알걸 모르는게 병된다 (*알아도 모르는듯함이위가되고  모르는걸 아는체 함이 병된다)  함에
무릇 대답컨대   병될 걸 병으로 여긴다
이래서 병되지 않음을 쓴다    성인은 병탈이 없다   그병됨을 병으로 여긴다  이래서 병 되지 아니하다


* 알걸 모르는 체하는 것이 위가 된다  모를걸 알게되는 것이 병탈이 된다
필부는  오직 병탈 될 것을 병탈로 여긴다 이래서 병탈 되지 않는다
[ 子路(자로) 처럼 알면 행하여야 할 근심을 갖게될 것이므로 그 아는걸 병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래서 도리혀 그 군자가 실행해야할 바를 아는 지라 그 병탈 되지 않는다는 것이리라 소인배는 忌憚(기탄)이 없는지라 또한 그런 것을 근심하지 않고 성인에 말이 무슨 잔소리인가 할 것이라 상관이 없다  할 것이니 실상 소인배가 漢良(한량)으로서 그 규제 제도 옭아 메는 가르침에서 벗어난 도통군자 길을 가는 자일수도 있다할 것이다,  하지만 이상의 것들이 무위자연에는 위배되는 가르침인가 한다 = 儒家(유가)는 스승의 교육을 매우 중시하는 현실참여 실생활에 바로 적용되는 가르침이다, 도가의 학설과는 거리가 좀있다 할 것인데 유가의 학설을 인용하는 것은 무위자연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한다는 그런 말씀이다  ]
* 성인은 병탈 아니 될걸 그 병탈 삼아 병으로 여긴다 [ 윗 논거를 따른다면 모를걸 알게 하는 것이 성인의 주목적인데 그것을  필부들은 병으로 여기는데, 병 아닌 것으로 성인은 여기는지라 ] 그 병탈이 병탈 될가 한다는 것이라 이래서 성인은 병을 병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
* 알걸 모르는 체[알아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이 上(상)이라 하는 것은 그 미덕을 말하는 것으로서 굳이 밝히길 꺼리는 것[생색 내려들지 않는다]을 억지로 알려 들 필요 없고 그 아는 체 할 필요도 없다는 그런 의미일 것이고 소위 눈감아 준다는 것이고,
또는 면식범 같은 것으로서 묻어두는 것이 덕이 되는 수가 허다하다 할 것이다
소위 알아봤자 손해이요 몰라서 덕이 된다는 것이라, 易(역)의 艮爲山卦(간위산괘)와 같은 것이라  그 뜰에 행하여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한다 하니 등뒤에 사람은 앞의 사람 행위를 안다하나 서로가 모르는 체함으로서 서로가 덕을 주고받는 그런 일은 얼마 던지 있다 할 것이다

蘇註
소주

道非思慮之所及 故不可知 然方其未知則非知無以入也 及其旣知而存知
도비사려지소급 고불가지 연방기미지즉비지무이입야 급기기지이존지
則病矣 故知而不知者上 不知而知者病 旣不可不知 又不可知 唯知知爲病
즉병의 고지이불지자상 불지이지자병 기불가불지 우불가지 유지지위병
者 久而病自去矣.
자 구이병자거의.


* 소씨 주석하대,
길이란 생각으로 미칠 바가 아니다   그래서 알 수가 없는 것이나  그러나 바야흐로 아직 그 알지 못한다면  알려고 들어감을 쓸려함이 없지 아니하리라 그 이미 앎에 미치어서 앎이 존재하게되면 곧 병 됨으로 여기게됨이리라   그러므로 알아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이 위가 되고   몰라서 알려는 게 (*되려)병이 된다  
벌써 바르게 모르지 않고  또 바르게 아는 체 않을려 함은  결론컨대 아는 게 병되는 걸 아는 것이라 오래 지나면 병이 저절로 버리어지게 되리라   [* 이것이 오래 된다면야  자아를 버리어선 병이 된다는 말일수도 있을 것이다]


呂註
여주

道之爲體 不知而能知者也 知其不知 而以不知知之 知之至者也 故曰知不
도지위체 불지이능지자야 지기불지 이이불지지지 지지지자야 고왈지불
知上 雖知其不知 而以知知之 則其心庸 而寧乎 故曰不知知病 夫唯知知
지상 수지기불지 이이지지지 즉기심용거이영호 고왈불지지병 부유지지
之爲病而病之則反乎無知 而知不足以病之矣 故曰夫唯病病 是以不病 聖
지위병이병지즉반호무지 이지부족이병지의 고왈부유병병 시이불병 성
人不病 以此而已 故曰以其病病 是以不病 南伯子 曰 我悲人之自喪者
인불병 이차이이 고왈이기병병 시이불병 남백자기왈 아비인지자상자
吾又悲夫悲人者 吾又悲夫悲人之悲者 其後而日遠矣 若子 者 可謂病病
오우비부비인자 오우비부비인지비자 기후이일원의 약자기자 가위병병
者乎.
자호

* 여씨 주석하대,
길의 몸 됨이 몰라 여도 잘 아는 것이라 그 모르는 걸 알면서도  앎을 모르는 듯 함인지라 (* 또는 그 모름을 알아야 서도  앎을 모르게 하는 지라)
앎의 극진한 자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건대  모르는 걸  아는 게 위가 되고  비록 그 모르는 걸 알아서 앎을 앎으로 여겨 가면  곧 그 마음이  차라리 용렬타 아니 할 것인가?  (*설령 그 모르는 걸 앎을 앎으로 쓰면 그 마음은 써 알지 못할 걸 하는 게 정녕코 아니하리요 == 마음속에서 그 알게된걸  半 후회 스럽게 생각하는 갈등이 인다는 표현을 이렇게 말씀한 것 같다)     그러므로 말하건대 모르는 걸 앎이 병됨다 함인 것이니  (*모르거나 알거나가 모두 병됨으로 여기게됨이니)  무릇 결론컨대 앎을  병삼을 줄 알아서 병으로 여겨 가면 곧 앎이 없음에 돌아와서 부족한 게 병되는 걸 알게 되리라    그러므로 말하건대 무릇  병을 병으로 대답하게된다   이래서 병 아니 됨을 쓴다  南伯子 (남백자기) 가 말하길  내 남의 저절로 를[自我(자아)를] 잃어버리는 걸 슬퍼하는 자이라
내= 또 무릇  슬프게된 사람도 슬퍼하는 자요   내 또  무릇 사람들의 슬퍼하는 것을 슬퍼함을 슬퍼하는 것이라   (*내 또한 슬픔은 남의 슬픔을 슬퍼하는 것이라)  그 후에 하여서 날이 멀어지리라  이렇듯  子 (자기)란자 바르게 병 됨을 병으로 여기는 자라 할 것이다  

 

朴註
박주

知而似不知者爲上 不知而以爲知者爲病 能病其爲病 而於其所知常 若不
지이사불지자위상 불지이이위지자위병 능병기위병 이어기소지상 약불
知則可以不病 聖人之所以不病者以此故也 故知者不言 言者不知
지즉가이불병 성인지소이불병자이차고야 고지자불언 언자불지


* 박씨 주석하대,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 같이 하는 것이  위가 되고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체하는 것이 병 된다  잘 병을 그 병 됨으로 여겨  그 아는바에 늘 상 알지 못하는 것 같이 한다면   병 아니 씀이 바르어 진다   성인은 그 병 아니 쓰는 바는  바로 이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는 자는 말씀함이 없고   말을 하는 자는 앎이 없다  (*대개들보면  말많은 수다스럼이 앎이 궁핍해서 그런 것이요  앎이 있는 분들은  과묵해서 쓰잘데 없이 입을 함부로 놀리려 들지 않는다)


 

출처 : 역학살롱(實戰命理의 場)
글쓴이 : 삼베 중우 적삼 도롱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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