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을 안다는 것은 한문 문장을 해석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많은 한자도 알고 한문 문법도 상당히 알아도 한문 해석이 그냥 쉽게 되지만은 않는다. 문장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들에 대하여 알아보자.
뜻이 많은 다의자(多義字) 해석하기
뜻이 많은 한자를 다의자(多義字)라고 한다. 아마 한문을 풀이함에 다의자를 제대로 해석하기가 가장 어려운 듯싶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틀리고 아는 사람은 알아서 틀리는 것이 다의자이다. 모르는 사람은 해석할 때 주로 그 한자의 ‘주된 의미’만을 대입하여 해석하기 때문에 그 한자가 ‘생소한 의미’로 쓰이면 틀리게 된다. 반면, 한문을 제법 아는 사람은 그 한자의 ‘생소한 의미’를 대입해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어, 그 한자가 ‘주된 의미’로 쓰일 때에 틀리는 경우가 생긴다.
1) 孟子去齊而之趙矣.(맹자가 제를 떠나서 조로 갔다.)
全國時代去今二千餘年.(전국 시대는 지금과 사이가 뜸이 2천여 년이다.)
不如去禍根.(화근은 제거함이 낫다)
2) 孟子過門而入室.(맹자가 문을 지나방에 들어갔다)
好視人之過, 不視己之過.(남의 허물은 잘 봐도 자기의 허물은 살피지 못한다)
聖人過凡人, 猶鳳凰出衆鳥.(성인이 범인보다 뛰어난것은 봉황이 뭇 새보다 뛰어남과 같다)
3)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로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제때에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위 예문 1에서 去자가 각각 ‘떠나다’, ‘사이가 뜨다(때가 벌어지다. =距)’, ‘없애다(=除)’로 다른 의미로 쓰였다. 예 2도 過자가 각기 다른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이런 뜻이 많은 한자(다의자)에 그리 겁먹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아무리 뜻이 많은 한자라도 대개 서내 개 이내의 의미가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의자의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어도, 주된 의미로 쓰이는 것은 잘 알도록 해야 한다. 예문 3에서 時자는 ‘때로’로 해석해도, ‘제때에’로 해석해도 둘 다 말이 된다. 이처럼 한 한자가 각각 다른 의미로 해석해도 다 그 문장의 의미가 통하는 경우가, 다의자를 해석하기가 아주 애매해진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런 상황은 별로 생기지는 않는다. 이렇게 주된 의미가 두세 개 이상 되고 빈도가 높은 한자는 可, 去, 擧, 見, 經, 故, 寧, 道, 果, 過, 幾, 當, 得, 令, 無, 反, 方, 便, 使, 傷, 說, 相, 上, 所, 勝, 是, 惡, 焉, 若, 如, 與, 易, 爲, 猶, 以, 已, 子, 者̌, 將, 適, 足, 縱, 之, 至, 何, 乎 등이다.
1) 崔氏有子, 曰永植也.(최씨에게 아들이 있는데, 영식이라고 한다)
無男女老少, 人皆好財.(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은 모두 재물을 좋아한다)
2) 乘船則不可泳, 而可絶海.(배를 타면 수영을 하지 못해도, 바다를 건널 수 있다)
童聞惡臭, 掩鼻.(아이가 악취를 맡고 코를 가렸다)
예문 1에서 曰자가 ‘라고 하다’는 의미로, 無자는 ‘할 것 없이’라는 의미로 쓰였는데, 이것들의 기본적인 의미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고, 의미가 약간 다르게 변형됐다. 이렇게 문맥에 따라 의미가 약간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예문 2에서 絶자가 ‘건너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絶자의 기본적인 의미인 ‘끊다’에서 ‘건너다’를 유추하기는 쉽지 않지만, 앞뒤 문맥을 잘 살핀다면, 어학적인 센스가 있다면 굳이 옥편을 안 보고도 絶자가 ‘건너다’는 의미도 있음을 알아낼 수도 있다.
1) 我聞雨聲而閉窓門.(나는 빗소리를 듣고창문을 닫았다)
1-a) 諜者審敵陣, 以具聞將也.(첩자가 적진을 살피고는, (그것을) 장군에게 자세히 들려줬다.)
위 예문 1에서 聞자가 ‘듣다’의 의미로도 쓰였지만, 한편으론 1-a에서는 聞자가 ‘들려주다(말해주다)’는 의미로도 쓰여, 聞자가 서로 상반되는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서로 반대, 대비되는 의미를 갖는 한자는 聞(듣다. 들려주다), 反(돌아가다(따르다). 거꾸로 하다(반대하다)), 等(동등. 차등) 등이다.
끝으로 다의자는 따로 떼어 그 많은 의미를 다 암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보다는 문장을 많이 접하여, 다의자의 여러 의미를 자연스레 터득하되, 주된 의미 위주로 학습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결론적으로 다의자의 정복도 많은 문장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품사가 다양하게 해석되는 경우
많은 한자가 두 가지 이상의 품사로 해석되는데, 우리는 대개 이런 한자의 의미를 한 가지 품사로만 해석하다 보니, 해석에 곤란을 겪게 된다. 이런 경우도 다의자의 범주에 속하기도 하나, 여기에서 따로 다룬다. 앞의 과 ‘단어상의 특징’도 이것과 관련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1) 立則欲坐, 坐則欲臥.(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1-a) 無立錐之地也.(송곳을 세울땅도 없다)
2) 好酒者飮酒若飮水.(술을 좋아하는 자는 물 마시 듯 술을 마신다.)
2-a) 惡人飮牛水而賣之也.(악덕한 사람은 소에게 물을 먹여 팔다)
예문 1에서 立은 ‘서다’는 의미로 목적어를 취하지 않는 자동사로 풀이가 되는데, 1-a에선 ‘세우다’로 목적어를 취하는 타동사로 해석이 되었다. 이렇게 알고 보면 아무 것 아닌 것 같지만, 立자를 ‘서다’라는 의미에만 구애되어 이것을 자동사로만 해석하려 하고, ‘세우다’는 타동사로 해석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이런 한자에는 立(서다. 세우다), 來(오다. 오게 하다(부르다), 入(들다. 들이다) 등이다. 예문 2에서 食자가 ‘먹다’라는 일반 동사로 쓰였지만, 2-a는 ‘먹이다’는 상대에게 강제로 시키는 사역의 의미를 갖는 동사로 쓰였다. 이렇게 쓰이는 한자는 食, 飮 등이 있다.
1) 春猶山頂有雪.(봄엔 아직 산 정상에는 눈이 있다.)
大事始於小事.(큰 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1-a) 金氏遂雪其辱.(김씨는 드디어 그 치욕을 씻었다.)
忠臣不事二君.(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예문 1에서 명사로 쓰이던 단어가 1-a에서는 동사로 해석이 되었다. 이렇게 명사로만 쓰이는 듯하나 동사로도 해석이 되는 주요 한자는 事(일. 섬기다), 法(법. 본받다), 質(바탕. 묻다), 言(말. 말하다), 王(왕. 왕 노릇하다), 道(길(도). 말하다), 賞(상. 상주다), 雪(눈. 씻다) 등이다.
1) 石重於木.(돌은 나무보다 무겁다)
1-a) 君子重義, 小人重利.(군자는 의를 중하게 여기고, 소인은 이익을 중하게 여긴다.)
重자가 본래 형용사 같은데, 위 1-a에서는 ‘중하게 여기다(중시하다)’로 동사로 풀이가 된다. 이렇게 기본적으론 형용사 같은데, 이것에서 파생된 의미를 갖는 동사로도 해석이 된다. 이런 한자는 輕, 惡, 善, 好, 近 등이다.
1) 日就月將.(날로 나아지고 달로 발전한다.)
1-a) 日就月將.(날이 나아지고 달이 발전한다.)
2) 東行.(동쪽으로 가다)
3) 七顚八起.(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째 만에 일어나다)
위 예문 1처럼 시간과 관계되는 의미를 갖는 한자 ‘日’, ‘月’이 부사어로 자주 해석이 된다. 이것을 1-a처럼 명사적으로 풀이하여 어색한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예문 2처럼 장소와 관련된 의미를 갖는 한자도 문맥에 따라 부사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문 3처럼 수를 나타내는 한자도 문맥에 따라 명사로가 아니라 부사로 해석해야 하는 때가 생긴다.
시제 구별하기
한문에는 국어의 어미처럼 시제를 명확하게 나타내 주는 것이 거의 없어, 시제를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특히 ‘-했다’인지, ‘막 -하려 한다’인지, ‘-하려고 하다’인지, ‘-할 것이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럴 경우엔 전후 문맥을 잘 따져, 시제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한문에도 우리말처럼 간접적으로 부사적으로 쓰이어 시제를 알게 해 주는 將, 嘗 같은 한자가 쓰인다. 과거를 나타내는 한자는 嘗(일찌기), 曾 등이다. 미래를 암시하는 한자는 將(장차), 欲 등이다.
내용이 어려울 때
보통 사람에겐 주역 같은 책은 한문 원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말 해석을 봐도 도통 무슨 말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이렇게 내용 자체가 전문적이거나 난해한 것은 단순히 한문 해석 실력 가지고는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주역처럼 그 책의 내용 전부나 상당 부분이 난해한 경우도 있고, 독해하기 쉬운 책이라고 해도 일부 구절이나 단어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 방면에 관한 지식까지 갖추어야 그것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으니, 고달픈 일이다.
문장 형태(구조)가 모호한 경우
한문은 용언이 활용하지 않는 점, 한 단어가 여러 품사로 쓰이는 등의 자체의 특성으로 인하여, 문장 구조가 모호함을 유발하는 경우가 다른 언어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범위, 끊어 읽기
한문을 읽다보면 아래 言자처럼 길게 구문을 취하는 한자는 어디까지 구문을 취하는지 문제가 생긴다. 문장이 복잡하게 꼬인다.
a) 言孝者不行焉.(효를 말하는 자 효를 행하지 않는다)
b) 靑出於藍, 言弟過於師.(청출어람은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말한다)
위 a 문장에서 言은 뒤의 孝까지만 짧게 걸리는데, b는 구절 ‘弟過於師’가 길게 걸친다. 言자처럼 뒤에 걸치는 범위가 애매할 수 있는 한자는 曰, 見, 聞, 爲, 計 등이다. 한문에서 주로 非, 不 같은 부정어가 어느 단어, 구절에까지 걸리는지, 즉 부정어의 범위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밑줄 친 것은 부정어의 범위이다.
1) 誰不學而知之乎. (누가 배우지 않고 않겠는가.)
1-a) 非鈍才, 誰不學而知之乎. (둔재가 아니라면, 누가 배우고 알지 못하겠는가.)
1-b) 非鈍才, 誰學而不知之乎. ( = )
2) 非孝不知而不行之, 不欲行而不行之也.(효는 몰라서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행하고 싶지 않으니까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2-a) 親所欲於子非孝也.(어버이가 자식에게 원하는 것은 효가 아니다.)
위의 1, 1-a 문장에서 보듯이 ‘不學而知’가 부정어인 不자가 어디까지 걸치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1-b 문장은 ‘둔재가 아니라면 누가 배우지 않고 알겠는가.’로도 잘못 해석할 여지가 있는데, 정확한 의미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문법보다는 문맥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생략
한문에서 주어, 목적어 등의 주요한 한자(단어)가 생략되는 일이 흔하다. 또 어조사 같은 보조적인 단어가 생략됐다고 볼 수도 있는 경우도 흔하다. 여기서 한문 문장 안에서 어떤 단어가 생략이 됐다고 볼 수 있는 경우나 단어를 보충하면 그 문장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경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1) 生卽死, 死卽生.(살려하면 죽을 것이고, ~ )
視黃金若石.(황금 보기를 돌처럼 하라)
2) 甲問於乙曰, 汝何歲. 乙對曰, 不知. 曰, 何謂名乎. 曰不亦知.(갑이 을에게 ‘그대는 몇 살인가’라고 물었다. 을이 ‘모르네’라고 대답했다. (갑이) ‘이름이 무엇인고’라고 물으니, (을이) ‘또한 모르네’라고 했다.
위 예문 1처럼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문장에서 ‘우리, 사람’ 등이 주어가 될 수 있는 경우나 마땅히 주어가 있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 주어가 대개 생략된다. 대화문이나 전후 문맥으로 주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경우에도 한문에서는 주어가 생략되는 일이 많다. 우리말도 이와 흡사하게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주어나 목적어 같은 주요 단어도 자주 생략된다. 예문 2처럼 대화문의 경우엔 처음에 한번 언급되면, 그 뒤 대화문부터는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럴 때는 잘 주어가 무엇인지 가려내야 한다.
1)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1-a) 人不知我而我不慍, 不亦君子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이에 성내지 않으니, ~.)
위의 예문 1문장은 처음 봐서는 ‘남이 알지 못하는 것’(人不知)이 나인지 무엇인지 알기 쉽지 않고, ‘성내지 않은 것’(不慍)의 주체가 나인가 남인가도 구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a-1처럼 표현되었다면 상당히 a문장보다는 쉽게 의미를 알 수 있다.
a. 一石二鳥.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다.
a-1. 以一石得二鳥 ( = )
위 a 문장만을 처음 보고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다.’라는 의미임을 알기에는 다소 힘들다. 읽는 이가 이해하기 쉽게 하려면 a-1 문장처럼 표현해야 할 것이다. a 문장처럼 이른바 한자 성어에는 의미를 함축하고 자수를 맞추다 보니, 상당히 생략이 많아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a-1 예문처럼 생략이 됐다고 볼 수 있거나 보충이 가능한 단어에는 밑줄을 쳤다. 아래로도 마찬가지이다.
a. 孔子自衛反魯. -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갔다.
a-1. 孔子自衛反於魯. ( = )
a 문장은 자칫하면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를 뒤집었다.’고 오역할 가능성이 있는데, a-1처럼 어조사 於자가 있으면, 훨씬 쉽게 문장 의미를 알아낼 수 있다.
품사나 구조가 바뀌어 해석이 되는 경우
우리는 품사나 문장 구조에 얽매이어 그것을 그대로 쫓아 해석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한문의 품사나 구조 그대로 해석해도 해석은 되나, 품사나 구조를 바꾸어 해석해도 되거나 더 나을 때가 있다. 이것도 일종의 의역(意譯)이라고 할 수 있겠다.
1) 父以寶劍授子也.(아버지가 보검으로써아들에게 주었다.)
=> 父以寶劍授子也.(아버지가 보검을아들에게 주었다)
男兒以義爲重.(남아는 의로써 중한 것을 삼는다)
=> 男兒以義爲重.(남자는 의를 중한 것으로 삼는다)
王妃薄於福, 厚於德.(왕비는 복에는박하나 덕에는후하였다.)
=> 王妃薄於福, 厚於德.(왕비는 복은박하나, 덕은후하였다)
2) 我欲見汝久矣.(내가 너를 보고 싶은 지가 오래이다.)
=> 我欲見汝久矣.(나는 오랫동안 너를 보고 싶었다.)
王寵奸臣極甚.(왕이 간신을 총애함이 극심했다)
=> 王寵奸臣極甚.(왕이 간신을 극심하게 총애했다)
위 예문 1에서 보듯이 以자가 개사(어조사)인 것에만 구애되어 ‘-로써’로만 풀이하는 것보다, ‘-을’로 해석하면 문장 의미가 더 매끄러워진다. 아래 於자도 마찬가지이다. 예문 2에서는 명사절로 쓰였던 ‘我欲見汝’를 주술절로 바꾸어 해석했는데, 이렇게 구조를 바꾸어 해석해도 되고, 오히려 더 문장의 의미가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고유명사인가. 아닌가.
인명(人名)이나 지명(地名) 같은 고유명사인지 아닌지가 구분하기 곤란할 때가 더러 있다. 요(堯)나 순(舜)은 성군을 상징하고, 걸(桀)이나 주(紂)가 폭군을 상징하는데, 이렇게 고유명사 중에는 어떤 부분에 거의 대명사가 되어 상징적으로 쓰이는 것도 있다. 이렇게 대명사나 상징이 되다 싶은 단어는 泰山(높은 산), 西施(미녀), 李白(명시인), 孫子(병법가), 羿(명궁수) 등이다.
역접(逆接)
구절이나 문장 사이가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 되게 접속되는 것을 역접이라고 한다. 명료하게 역접을 나타내는 한자가 없을 때엔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1) 泰山雖高, 無不可登也.(태산이 아무리 높아도, 오르지 못할 것이 없다.)
2) 樹欲靜而風不止.(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欲視而不見, 欲聽而不聞.(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는다)
王終日飮酒不醉也.(왕이 종일 술을 마셨으나, 취하지 않았다)
예시 1은 雖 자 같은 역접을 명료하게 하는 표현이 있어, 그 문장이 역접의 의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예2는 별다르게 역접임을 명시하는 표현이 없어, 이 때는 문맥에 의존하여 구문 사이가 역접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게 되어, 해석하기가 까다롭다.
간접적인(구체적인) 표현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더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데, 한문에 이런 것이 자주 쓰인다.
少年見蛇, 一色不主.(소년이 뱀을 보고는, 한 가지 색이 주된 것이 없었다. => 소년이 뱀을 보고 놀라, 안색이 한 가지로 일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 색으로 울긋불긋함을 나타낸다)
連日降雨, 及牛肩也.(연일 비가 오더니, 소 어깨에 이르렀다. => 비가 소의 어깨 높이에 이를 정도로 많이 옴을 의미한다.)
揮劍於敵軍, 手足異處.
木直中繩.
상투적으로 쓰이는 이런 류의 표현에는 不可勝~, ~中尺, ~有餘 등이 있다.
한문다운 표현
단어를 받는 대사(대명사)
단어나 구절을 대신하여 받는 역할을 하는 之, 是 같은 단어를 대사(代詞)라고 한다. 대사가 대신하여 받은 단어나 구절을 선행사라고 한다.
1) 氷水爲之, 而寒於水.(얼음은 물이 그것(얼음)이 됐으나, 물보다 차갑다)
牛不亦好鷄, 鷄不亦好之.(소도 닭을 좋아하지 않고, 닭도 그것(소)을 좋아하지 않는다)
1-a) 冬往則春來, 莫能止之也.(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을 아무도 그것(冬往則春來)을 막을 수 없다)
子路問於孔子曰, 舜之父欲殺舜,有之乎.()
2) 欲富嫌貧, 是人之常情也.(부를 원하고 가난을 싫어함은 이(欲富嫌貧)는 인지상정이다.)
女壽乎男, 此何也.(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데, 이(女壽乎男)는 어째서인가.)
예문 1에서 之자가 앞에 나온 단어를 대신하여 쓰였다. 之자는 대개 주어 자리에 쓰이는 일은 별로 없고, 목적어나 개사의 뒤에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단일 단어를 주어 자리에서 받아 쓰이는 대사가 잘 쓰이지 않는 것은 한문의 특징인데, 우리말도 이와 비슷하다. 예시 1-a에서처럼 之가 간혹 구절을 받기도 한다. 之와 비슷한 기능으로 쓰이는 것은 諸, 焉 등이다. 그런데 예문 2에서 보듯이 대사가 앞의 구절을 받아 주어 자리에 쓰이기도 한다. 대사로 쓰이는 한자에는 之, 焉, 其, 此, 諸, 然 등이다.
가차나 오자
가차(假借)는 어떤 한자가 다른 한자와 뜻은 다르나, 음(音)이 같은 경우에, 다른 한자의 뜻을 빌려 쓰는 것을 말한다.
대구문
한문처럼 대구(對句)가 자주 쓰이는 언어가 또 있을까. 왜 이렇게 한문에선 대구가 흔할까. 한문은 확실히 다른 언어에 비해 문법적인 요소가 빈약한 언어이다. 이러다 보니까,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문맥을 쉽게 파악하게 하기 위한 특징을 갖게 된 듯하다. 이런 한문의 문맥 지향적인 성향은 주로 대구나 자수 맞추기, 짧은 문장 등을 통해 나타나는 듯하다.
1) 聞僧去寺, 不聞寺去僧也.(중이 절을 떠난다고 들었어도, 절이 중을 떠난다고 듣지 않았다.)
女弱, 母强.(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2) 井蛙不知江河, 夏蟲不知冬節.(우물 안 개구리는 강을 알지 못하고, 여름 벌레는 겨울을 모른다)
위 예문 1들은 앞뒤 두 구절이 서로 대조, 반대되는 양상이다. 예시 2는 두 구절이 비슷한 내용이 대를 이루는 구조이다.
男好美女, 女善富男.(남자는 미녀를 좋아하고 여자는 부유한 남자를 좋아한다)
積德者必興, 爲惡者定亡.(덕을 쌓는 자는 반드시 흥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위 예문은 대구를 이루니, 앞 구절 好자에 대를 이루는 善이 ‘좋아한다’로, 定이 必에 힌트를 얻어 ‘반드시’란 의미로 쓰임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이처럼 대구(對句)는 잘 모르는 단어를 대구가 되는 쉬운 단어를 참고하여,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묘미가 있다.
연쇄문
문장이나 구절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연쇄문(連鎖文)이라고 한다. 한문에 연쇄문이 잘 쓰이는 편이다.
1) 鼠恐猫, 猫恐犬, 犬恐虎, 虎恐人, 人恐鼠.(쥐는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고양이는 개를 무서워하고, 개는 호랑이를 무서워하고, 호랑이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람은 쥐를 무서워한다.)
2)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몸이 닦인 후에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이 가지런해진 후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후에 천하가 다스려진다.)
예문 1은 단순 연쇄문이다. 그래서 쥐는 고양이하고만 무서워하는 관계가 성립하고, 고양이가 무서워하는 개하고는 어떤 관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문 2 같은 경우는 맨 처음 언급된 것이 자연스레 마지막 언급된 것까지 관련을 갖게 된다.
표현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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