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사문 인의예지)
도성의 4문(四門)은, 인(仁)·의(義)·예(禮)·지(智)로 이름을 붙였다.
- 주역의 팔괘: 4대문·4소문 -
도읍지 한양 건설 계획의 최우선 순위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정궁인 경복궁과 종묘 그리고 사직단이었습니다. 도읍지 건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건물이 완공되자, 태조는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해 본격적으로 도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안으로는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고 밖으로는 외적(外敵)의 침략을 막는 막중한 기능을 지니고 있는 만큼, 도성 축조는 한시도 미루어서는 안 되는 공사였습니다. 정궁과 좌묘우사(左廟右社)와 마찬가지로 도성 축조 역시 철저하게 유학의 방위(方位)와 질서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도성 축조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도성 안팎을 통하는 4대문(四大門)과 4소문(四小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대문은 숭례문(崇禮門)·흥인지문(興仁之門)·돈의문(敦義門)·숙정문(肅靖門)이고, 4소문은 혜화문(惠化門)·소덕문(昭德門)·광희문(光熙門)·창의문(彰義門)입니다. 그런데 4대문과 4소문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를 보면, 이들이 철저하게 『주역(周易)』의 팔괘(八卦)인 '건곤간손 감리진태(乾坤艮巽 坎離震兌)'의 방위와 질서의 원리에 따라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역』은 유학의 경전 중 가장 왜곡되어 알려지고 있는 책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역』을 인간의 미래와 세상사를 예언하는 점술 책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천문(天文)·지리(地理)·인사(人事), 즉 인간 세계를 둘러싼 만물을 근본적으로 탐구하고 해석하는 철학서입니다. 또한 『주역』은 하늘과 대지 그리고 인간 사이의 관계와 질서를 밝혀놓은 책이었습니다. 따라서 유학자들은 인간을 둘러싸고, 인간과 관계하는 모든 사물을 『주역』의 질서와 논리에 따라 배치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임금은 항상 '북배남면(北背南面)' 곧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앉아야 합니다. 또한 신하들 중 문반(文班)은 임금의 왼쪽(동쪽)에, 무반(武班)은 임금의 오른쪽(서쪽)에 위치해야 합니다.
4대문의 경우 정남쪽에는 도성의 정문(正門)이라고 할 수 있는 숭례문을 세웠습니다. 『주역』의 팔괘 중 정남(正南)쪽은 리(離) 괘에 해당합니다. 그 반대편인 정북(正北)쪽에는 숙정문을 세웠습니다. 정북쪽은 감(坎) 괘에 해당합니다. 리(離)는 불을 나타내고 감(坎)은 물을 나타내므로 상극 관계인 둘은 정반대편인 정남쪽과 정북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도성의 정동(正東)쪽에는 흥인지문을 세웠는데, 진(震) 괘가 정동쪽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정반대편인 정서(正西)쪽에 세워진 돈의문은, 정서쪽을 상징하는 태(兌) 괘에 해당합니다. 진(震)은 나무(木)를 나타내고 태(兌)는 쇠(金)를 상징하므로 상극관계인 둘은 정동쪽과 정서쪽에 자리하게 된 것입니다.
4대문의 중간 중간에 세워진 4소문 또한 이와 같은 『주역』 팔괘의 질서와 원리에 따라 세워졌습니다. 먼저 동북(東北)쪽의 혜화문(惠化門 : 동소문)은 간(艮)괘에 해당하고, 그 반대편인 서남(西南)쪽에는 곤(坤)괘에 해당하는 소덕문(昭德門 : 서소문)이 있습니다. 또 동(東南)쪽에 있는 광희문(光熙門 : 수구문)은 손(巽)괘에 해당하고, 그 반대편인 서북(西北)쪽의 창의문(彰義門 : 자하문)은 건(乾)괘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4대문의 감리진태(坎離震兌)와 4소문의 건곤간손(乾坤艮巽)의 정중앙에는 토(土)를 상징하는 보신각(普信閣)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정도전을 비롯해 도성 건설에 나선 유학자들은 우주 만물의 원리와 질서를 담아 조선의 새로운 도읍지인 한양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 유가의 오상론: 4대문·보신각 -
4대문과 4소문은 『주역』 팔괘의 원리와 질서만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인간에 대한 유학의 철학적 입장이 담겨져 있습니다. 유학에서는 흔히 다섯 가지 변하지 않는 인간의 성품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바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입니다. 간단하게 인(仁)은 사랑(어짐), 의(義)는 올바름, 예(禮)는 도리, 지(智)는 지혜, 신(信)은 믿음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유학에서는 오상(五常)을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하나의 경계로 삼습니다. 곧 인간이라면 마땅히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갖추어야 하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외양만 인간일 뿐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유학의 오상(五常)은 4대문과 4소문의 명칭 곳곳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禮)를 높인다'는 뜻을 담고 있는 숭례문(崇禮門)에는 인간의 도리(禮)가, '인(仁)을 일으킨다'는 뜻을 담고 있는 흥인지문(興仁之門)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어짐)이, '의(義)를 두텁게 한다'는 뜻을 간직한 돈의문(敦義門)과 '의(義)를 드러낸다'는 뜻을 담고 있는 창의문(彰義門)에는 인간의 올바름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신(信)을 널리 퍼뜨린다'는 의미를 간직한 보신각(普信閣)에는 인간의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 눈치 빠른 독자들은 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 '지(智)'자가 빠졌는지 의아해 하실 것입니다. 동·서·남쪽의 대문(大門)과 보신각에는 '오상(五常)'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는데, 북대문(北大門)인 숙정문(肅靖門에)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관련한 한자(漢字)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도전이 '오상(五常)'에 의거해 구상한 북대문(北大門)의 이름은 원래 '널리 지혜롭게 한다'는 뜻의 '홍지문(弘智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지혜로워져 옳고 그른 것을 잘 판단하는 것을 두려워한 위정자(爲政者)들이 정도전의 구상에 반대하면서, '개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숙정문(肅靖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 세력은 도성의 위치와 명칭에서조차 한 치의 양보 없이 유교적 목표와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원문: 다음카페의 부평로타리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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