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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 성호사설 제24권 > 경사문(經史門)
상림도우(桑林禱雨) 1]
위백양(魏伯陽)이 이르기를, “탕(湯)은 액운(厄運)을 만나 수재(水災)와 한재(旱災)가 겹쳤다.” 하였는데, 이는 하늘에 이런 액운이 있는데 탕이 마침 그 시기를 만난 것이지 그가 어떤 허물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이 액운이란 것은 마치 해에 겨울이 있고 날에 밤이 있는 것처럼 그 시기가 닥치면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마치 재앙을 나타내는 형혹성(熒惑星)1]이 두 해 만에 하늘을 두루 도는 것처럼 해마다 행해지는 도수에 따라 닿게 되는 곳이 있는데, 비록 경중은 다르다 할지라도 결국 재앙으로 됨은 마찬가지이다.
그는 상림(桑林)에서 비를 내리도록 기도할 때에 여섯 가지의 일[六事]2]이 잘못되었다는 것으로써 자신을 꾸짖었다. 이 꾸짖는 말이 끝나기 전에 큰비가 쏟아졌으니 이런 이치는 터득하기 어렵다.
그 중 다섯 가지의 일은 혹 있어도 알지 못할 수 있지만 궁실(宮室)을 너무 사치하게 짓는 데에 이르러서는 당초에 알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탕(湯)은 새로 천하를 안정시켰는데 어찌 궁실을 분수에 넘치도록 지을 리가 있었으랴? 심지어 여알(女謁)이니 포저(苞苴)니 참부(讒夫)니 하는 따위에 이르러서는 혹 이런 폐단이 있었다 할지라도 백성의 원망이 하늘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듯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자기의 죄로 받아들이고 꾸짖었다 하여 하늘이 문득 감동되었다니, 마치 이와 같은 과실이 있어 큰 가뭄이 있었던 것처럼 되었다.
이런 일을 가지고 이치를 궁구해 본다면 성왕(聖王)은 재앙을 두렵게 여기고 허물을 살폈다. 비록 자신에게 잘못이 없어도 있는 듯이 생각하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한 털끝만큼이라도 혹 신(神)에게 노여움을 받을까 두려워했다. 이러므로 반드시 정성껏 하고 반드시 재계했다.
한 이치가 밝게 이르면 천지의 신명이 자연 응하게 된다. 탕(湯)이 상림에 이르러 기도할 때도 이런 이치가 환히 응하게 된 때문에 큰비가 내리게 된 것이다. 비유해 말하면, 마치 무게가 1만 근이나 되는 활을 잡아 당기는데 1분(分)으로부터 차차 10분까지 가득 차게 하는 것과 같다.
탕의 입에서 여섯 가지 일로 자책한 말이 나온 것도 이 활을 잡아당기는 것같이 정신이 철저했던 때문이다. 그 형세가 마치 그림자가 따르고 소리가 마주 울리듯이 빠르게 되었으니, 허물이 있고 없는 것을 뭐 논할 필요가 있으랴? 허물을 돌려 상서로 만든 것은 이 탕의 덕이 밝고 향기로워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때 7년 동안 가뭄으로 애쓴 것은 은(殷) 나라 정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즉 이 액운이란 것은 하계(夏癸)에서 시작되어, 포악한 걸(桀)이 생겨나자 이미 천지의 비운(否運)이 보이게 된 것이다. 진실로 성탕(成湯) 같은 임금이 없었다면 백성은 거의 다 죽었을 것이다. 순환(循環)하는 한 이치는 돌아오지 않음이 없으므로 탕 같은 성인이 나게 되었으니, 여기에도 또한 천지의 어진 마음을 볼 수 있다.
이 상림(桑林)이란 것은 은 나라 시조의 사당인 듯하다. 《여람(呂覽)》3]에, “성탕의 자손을 송(宋) 나라에 세워서 상림을 받들도록 했다.” 하였으니 상고할 만하다.
[주C-001]상림도우(桑林禱雨) : 상림에서 비를 빌다.
《순자(荀子)》 대략(大畧)에, 탕(湯)이 가뭄을 만나 비를 빌면서 하는 말이
“정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지[政不節],
백성을 지나치게 부리는지[使民疾],
포저가 행해지는지[行苞苴],
참부가 일어나는지[讒夫昌] 왜 이토록 비가 내리지 않는가?”라고 보이고,
유향(劉向)의 《설원(說苑)》 군도(君道) 편에도, “포저(苞苴)가 행해지는지, 참부(讒夫)가 번성한지, 궁실을 너무 많이 짓는지[宮室營], 여알이 너무 성해지는지[女謁盛]…….”라고 보임.
[주D-001]형혹성(熒惑星) : 재앙을 보여 주는 별 이름.
[주D-002]여섯 가지의 일[六事] : 정불절(政不節)ㆍ사민질(使民疾)ㆍ궁실영(宮室營)ㆍ여알성(女謁盛)ㆍ행포저(行苞苴)ㆍ참부창(讒夫昌).
[주D-003]《여람(呂覽)》 : 춘추 시대 여불위(呂不韋)가 지은 《여씨춘추(呂氏春秋)》를 가리킴.
춘정집 > 춘정집 제11권 > 제문(祭文)
북교단(北郊壇)에서 여러 해신(海神)에게 고하는 기우제문
비로소 음양이 변했다 합하면서 / 肇陰陽之變合兮
물이 처음으로 생겨나게 되었나이다 / 水乃生乎天一
윤택하게 적시고 아래로 흘러서 모여 / 惟潤下之所鍾兮
땅의 사방 끝에 이르러 바다를 이루었나이다 / 海于坤之四極
참으로 사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이기에 / 諒爲物之㝡鉅兮
아득히 끝이 없어 측량하기 어렵나이다 / 浩無涯其叵測
구름과 비를 일으켜 뭇 생명 윤택하게 하니 / 興雲雨以潤羣生兮
참으로 만물의 법칙이라 하겠나이다 / 信有物之有則
그 신의 차례가 지극히 존귀하므로 / 厥神次爲至尊兮
높이 받드는 제사를 예로부터 행했나이다 / 曰崇祀其自昔
지금 이 한발의 재앙은 / 維玆旱之爲災兮
봄부터 여름까지 이르렀나이다 / 乃自春而徂夏
지금의 백성들 무슨 죄이던가 / 何辜今之人兮
내가 아침부터 밤까지 마음 아파하나이다 / 予軫心於夙夜
은 나라 탕왕의 자책을01] 사모하고 / 慕殷湯之自責兮
주 나라 선왕의 근신을02] 본받나이다 / 效周宣之側身
제사를 드려서 경건히 고하면서 / 修祀事以告虔兮
신명이 밝게 이르기를 바랐으나 / 庶昭格乎明神
일찍이 듣고서 나의 근심을 헤아리지 않아 / 曾莫聽而我虞兮
기근이 거듭 이르렀습니다 / 蓋饑饉之荐臻
감히 재삼 번거롭게 청하고자 / 敢伸再三之瀆兮
대신을 보내어 정성껏 제사 지내게 하나이다 / 遣大臣以克禋
아, 지성에는 감동하지 않음이 없고 / 嗚呼至誠未有不動兮
신과 인간 사이에는 이치가 어긋남이 없나이다 / 理無間於神人
더구나 만물을 윤택하게 하여 백성을 보우함은 / 矧澤物以佑民兮
실로 이는 신이 마땅히 할 일입니다 / 固惟神之當爲
또한 하늘이 내게 제사를 주관하길 명했으니 / 且天命予以主祀兮
역시 신이 나에게 의지할 바입니다 / 亦惟神之所依
어찌 나에게 한재의 고통을 앓게 함인지 / 胡寧瘨我以旱兮
백방으로 생각하나이다 / 百所思以念之
바라보니 산천에 물이 말라 가물었는지라 / 瞻山川其滌滌兮
살아남은 백성들 없을까 두렵나이다 / 恐黎民之靡遺
말이 여기에 이름에 두려움만 가득하여 / 興言及此而惕然兮
신명께서 여기에 가까이 임하기를 바라나이다 / 庶洋洋乎在玆
아, 일념이 상하에 통함이여 / 嗟一念之徹于上下兮
오직 신명이야말로 반드시 아시리이다 / 惟神明兮諒必知
[주D-001]은(殷) 나라 탕왕(湯王)의 자책 :
탕왕이 하(夏) 나라의 걸(桀)을 정벌한 후 7년 동안 가뭄이 들었는데, 태사(太史)가 점을 치고 하는 말이 “사람을 희생으로 하여 비를 빌어야 한다.”고 하자,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스스로 재계하여 모발과 손톱을 자르고 소거(素車) 백마(白馬)를 타고 상림(桑林)의 들에 기도하고 산천(山川)에 빌면서 자책의 말을 하니, 말이 끝나기 전에 큰 비가 내렸다. 《事文類聚 天道部 禱雨》
[주D-002]주(周) 나라 선왕(宣王)의 근신 :
선왕이 가뭄으로 기근이 드는 재앙을 만나 근신하고 행실을 닦아 이 재앙을 물리치고자 하늘에 빌었던 것을 말한다. 주 나라 대부인 잉숙(仍叔)이 이런 선왕을 찬미하여 운한(雲漢)이란 시를 지었다. 《詩經 大雅 雲漢》
춘정집 > 춘정집 제11권 > 제문(祭文)
박연(朴淵)의 화룡(畫龍)에게 고하는 기우제문
한재가 매우 극심함이 / 旱之太甚
오늘에까지 이르러 / 乃至于今
가곡이 장차 다하게 되니 / 嘉穀將盡
이 백성들이 가엾기만 한데 / 哀此蒼黔
죄를 얻은 이유 알지 못하여 / 未知獲戾
위태하고 두려운 심정 실로 깊습니다 / 危懼實深
바라건대 신령께서는 / 惟神之靈
고요히 못 속에 잠겨서 / 閟其在淵
능히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려서 / 能雲以雨
넓은 천하를 적셔 주소서 / 澤于普天
이에 거듭 신을 번거롭게 하오니 / 玆勤再瀆
제사를 드림이 더욱 경건하나이다 / 修祀益虔
산이 높은 곳과 / 于山之秀
물의 가장자리에 / 于水之漪
등급에 따라 제단을 쌓아 / 爲壇以級
공경히 받드오니 / 象而敬之
신명께서는 밝게 이르시어 / 庶神昭格
비를 성대하게 내려주소서 / 興雨祁祁
사람이 먹을 것이 있어야 / 惟人有食
신도 역시 의지함이 있으리이다 / 神亦有依
성호사설 > 성호사설 제24권 > 경사문(經史門)
복식(卜式) 01]
서경(西京)01] 시대에 정치의 요령을 안 자는 이 복식(卜式)뿐이었다.
식은 염소를 길러 부자가 되었는데, 장차 이 염소 다스리는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려고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백성을 다스리는 것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때로 보살피어 나쁜 놈은 물리쳐 버려서 여럿을 해치지 못하도록 한다.” 하였으니, 이것은 여럿을 해치는 자는 없애야 한다는 뜻이다.
백성을 해치는 자는 포학한 관리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백성을 해치는 자를 제거시키고 백성으로 하여금 제대로 삶을 도모하도록 한다면 어찌 이루어지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식은 선부(船賦)2]가 불편할 때에도 나라에 주달하였고, 평준(平準)3]이 불편할 때에도, “상홍양(桑弘羊)4]을 삶아 죽여야만 하늘이 비를 내릴 것이다.” 하였다.
이로 본다면 상홍양이란 자는 바로 백성을 극도로 해친 듯하다. 모리하는 무리를 없애야 백성이 편하다는 뜻이었다. 이때 홍양은 바로 나라에서 은총을 받고 있었는데, 실은 이보다 앞서 이미 천자(天子)의 노여움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또 바로 간하고 숨기지 않았으니, 이것이 어찌 재물을 팔아 영달을 구하려고 했던 뜻이겠는가?
백성이란 모두 죽음을 싫어하고 살려고 애쓰지 않는 이가 없다. 살리는 방법은 재정을 넉넉히 만드는 데에 벗어나지 않고, 재정을 넉넉히 함은 백성의 일할 시간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란 모두 저마다 지능이 있기 때문에 무릇 재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인도하고 권유하기 전에 재빨리 하지 않는 이가 없다. 여기에 어떤 이점이 있어서 두 사람이 다투게 되면 결국 힘있는 자가 이기게 될 것이니 힘은 나라보다 더 강한 것이 없는데, 백성들이 감히 더불어 다툴 수 있겠는가? 힘으로 빼앗는 것도 오히려 자취가 보이는데 하물며 그 간교한 꾀를 써서 빼앗음에 있어서랴?
이는 마치 쥐에게 살을 깎아 먹히고 점점 몸에 피가 줄어져도 그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격이다. 홍양의 무리가 백 가지로 하는 일은 위에만 보태는 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으니 밑에 있는 백성의 재정이 어찌 줄어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식 혼자만이 이런 폐단을 깨닫고 몹시 밉게 보아 심지어 그를 삶아 죽여서 하늘에 보답하려고까지 하였으니, 당시 공손홍(公孫弘)5] 이하는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진실로 무제(武帝)로 하여금 뉘우친 마음이 있은 후에 이 식 같은 사람 몇을 더 얻어 정사를 맡겨서 의심스럽게 여기지 않고 그의 염소 다스리던 방법으로 천하를 다스리도록 했다면 거의 잘 다스리게 되었을 것이다.
[주C-001]복식(卜式) : 한 무제(漢武帝)의 신하. 《한서(漢書)》 복식전(卜式傳)에 자세히 보임.
[주D-001]서경(西京) : 전한(前漢)의 도읍 장안(長安)을 일컬음.
[주D-002]선부(船賦) : 선박(船舶)에 관한 부세.
[주D-003]평준(平準) : 물가(物價)를 공평하게 조절한 방법. 《사기(史記)》에 평준서(平準書)가 있음.
[주D-004]상홍양(桑弘羊) : 한 무제(漢武帝) 때 온 천하의 염철(鹽鐵)을 주관하고 평준법(平準法)을 만들어 국고(國庫)를 풍부하게 하였음. 《史記 平準書》
[주D-005]공손홍(公孫弘) : 한 무제(漢武帝) 때 사람으로, 녹봉(祿俸)의 수입을 모두 빈객(賓客)에게 나누고 자신이 먹는 것은 탈속(脫粟)에 지나지 않아 청렴하기로 유명함.
춘정집 > 춘정집 제11권 > 제문(祭文)
천지단(天地壇)에 드리는 기우제문
아, 아름다운 상제시여 / 惟皇上帝
만물의 아버지로소이다 / 萬物之父
비와 볕을 때에 맞게 내리시어 / 雨暘以時兮
민물이 이에 넉넉하게 되나이다 / 民物得以殷阜
지금 큰 한재가 맹추까지 계속되어 / 玆大旱之迄于孟秋兮
참으로 결실을 거둘 가망 없나이다 / 信稼穡之不可救
아, 예를 드리지 않은 신이 없었으나 / 嗟靡神而不擧兮
듣고서 나의 근심을 헤아리지 않았나이다 / 曾莫聽而我虞
내가 아침부터 밤까지 스스로 책망하노니 / 予夙夜以自責兮
슬프도다, 만물이 무슨 죄입니까 / 哀萬物之何辜
이에 황천께 밝게 고하노니 / 是昭告于皇天兮
두렵고 근심스러워 위태한 마음이로소이다 / 心慄慄其憂危
아, 상제시여 / 嗚呼上帝
보우해 주시길 바라나이다 / 庶其佑之
지극하도다 후토신이여 / 至哉后土
만물의 어머니입니다 / 萬物之母
산택(山澤)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 / 山升雲澤上氣兮
이에 때에 맞게 비를 내리나이다 / 迺以時而致雨
그런데 지금 한발의 재앙이 / 今旱魃之爲災兮
어찌 이렇게 사십 일이나 되었습니까 / 胡玆至于四旬
살아남은 백성들 없을까 두려워서 / 恐黎民之靡遺兮
이미 여러 신에게 제사를 드렸나이다 / 已修祀於羣神
비를 내려야 하는데 도리어 볕이 나니 / 顧其雨而出日兮
참으로 기근이 거듭 이르게 되었나이다 / 諒饑饉之荐臻
이에 위태하고 두려운 심정으로 감히 고하노니 / 玆危懼而敢告兮
신명께서는 여기에 가까이 임하소서 / 惟洋洋乎在玆
아, 후토신이시여 / 嗚呼后土兮
성대하게 비를 내려주기 바라나이다 / 庶興雨其祁祁
서울 정도(定都) 500년 역사 속의 하늘, 땅, 사람
박성수 총장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1. 원구단에 천제를 지내자.
조선이 건국되어 서울을 수도로 정한지 어언 600년이 되었고 그동안 수많은 우여곡절 즉 起承轉結이 있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서울이 理想鄕이 되는 것이다.
서울에는 동쪽에 종묘가 있고 서쪽에 사직단이 있다. 그리고 한 복판 소공동에 원구단이 있었다. 이 셋이 갖추어져야 서울이 서울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지금 원구단이 없고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서울은 그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대궐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곳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원단이다. 원단은 일명 원구단, 환구단이라고도 했는데 서울의 소공동이다. 지금 삼성 롯데 등 대재벌이 소공동 땅을 사들여 나라를 지배하려 들고 있다. 나라의 중심은 당연히 나라가 소유하여야 한다.
원단에서 제천하는 행사는 조선왕조 건국 초부터 시작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원구圓丘는 천자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예절이니 이를 폐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 지방 주군州郡의 성황城隍은 이 나라 고유의 제소祭所이니 그 고을의 수령에게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도록 허가하소서. 조선의 단군은 동방에서 처음으로 천명을 받은 임금이고 기자는 처음으로 교화를 흥성하게 한 임금이니 평양부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태조 1 1.8.11 경신 예조전서 조복趙?의 상서) 이처럼 아무리 사대주의가 강한 나라가 조선왕조였다고 하더라도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단은 있어야 기우제를 지낼 수 있었다.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은 선도문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하늘에 제사지내는 원단이 국초에 서울의 한강변에 있었다. 원단이란 천단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천신제의 유습은 조선의 건국이후에도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 내력을 보면 다음과 같다. 태조 태종 조에 나라에서 하늘에 비를 빌고(禱雨) 또 풍년을 빌었으며 (祈穀) 세조는 친히 제사에 납시기까지 하였는데 뒤에 거행하지 않았다.
태종 9년 신묘에 남쪽 교외에 원단을 쌓았다가 이듬해 임진년에 혁파하였다. 태종 13년 을미에 다시 영상 유정현을 보내 원단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이는 천제를 폐지한 뒤 한발이 심했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이 제천으로 도우禱雨한 것은 분명하다. 이때 변계량이 상소하기를 “우리 동방에서는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왔으며 중국의 천자가 분봉하지 않았습니다. 또 명태조도 이 사실을 알고 조서를 내려 ‘의식은 우리나라 본래의 풍속을 따르고 법도 옛날부터 전해온 제도를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해외의 나라는 처음부터 하늘에서 명을 받았으니 그 하늘에 제사한 예가 매우 오래 되어 변할 수 없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러하오니 마땅히 남교에서 제천하는 것이 가하다고 생각합니다.” 고 하니 태종이 그대로 따랐다.
2. 역사란 우주라는 집이다.
1) 三才와 三神
역사란 우주에 대한 문답이다. 宇는 하늘과 땅이라는 집, 宙는 天?地?人 모두가 변하는 역사라는 집이다. 天?地?人을 세 가지 기본 즉 三才 라 한다. 하늘은 만물을 낳고 (창조) 땅은 만물을 길러내고(교육) 인간은 만물을 완성한다.(통치) 바로 환인 造, 환웅 敎 또는 茂, 단군 治의 三神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한인의 조화와 한웅의 교화 그리고 단군의 치화이다.
2) 天人之際 古今之變 一家之言
역사를 쓰는 데 좌사가 있고 우사가 있었다. 左史는 말을 기록하고 右史는 행동을 기록한다(左史記言 右史記動 -「漢書 藝文志」) 여기서 말이란 이상이며 행동은 현실이다. 언행은 다르다.
역사란 본시 지저분한 것이다. 인간들은 모두 예외 없이 자기가 있던 자리를 어질러 놓고 간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르기를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를 통달하고 일가의 말을 이룬다.
(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史記 太史公自序」)’고 하였다.
서울의 장래 또는 미래 서울을 세계의 도시 이상향으로 만들어야 한다. 콘크리트의 숲에서 대기오염의 땅에서 푸른 숲의 도시, 맑고 깨끗한 도시로 재창조하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녹화하는 것이다. 자전거만 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자동차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3) 천제와 修身理性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는 비단 고려시대의 유습일 뿐만 아니라 멀리 삼국 삼한 부여를 거쳐 단군조선으로까지 이어지는 우리 역사의 뿌리요 중심입니다. 뿌리 없이 번성하는 가지와 잎은 곧 시듭니다. 필자는 오늘의 서울이 그렇다고 봅니다. 잘 알다시피 제천의 문화는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먼저 발전시킨 문화입니다. 필자는 이 제천문화를 단군문화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육당 최남선은 단군이 곧 천군 이라 하였습니다.
부여의 迎鼓(10월) 고구려의 東盟(일명 東明 10월) 예의 舞天(10월) 삼한의 祈豊祭(5월) 모두가 풍년을 기원하거나 풍년에 감사하는 祭天행사였습니다. 이 때 반드시 음식하고 가무하였으니 음식가무는 인류문화의 시작입니다. 삼한의 기풍제를 일명 天祭舞(한밝춤)이라 해석한 이가 양주동 교수였습니다.
천제에는 반드시 춤을 추고 노래를 하여 사람들이 기쁨을 만끽하여 쌓이고 쌓인 긴장과 불만을 풀어야 하는데 이때 악기로는 우리 고유의 북(鼓)을 치고 거문고(玄琴)를 탔습니다. 북은 용기를 북돋아주었기 때문에 북이라 하였고 거문고는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고 진정시켜 주었으니 이를 修身하고 理性한다 하였습니다. 理性이란 인간의 인성 즉 天性을 길러 주고 마음속의 악을 물리쳐 善性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4) 한국사의 맥은 天君의 脈
우리 역사는 지금 삼국 고려 조선의 왕조교체를 단지 불교와 유교의 관점에서 해설하는데 그친다. 그래서는 우리 역사의 중심 이념 그리고 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신라-朴赫居世, 발해-大祚榮, 금-金幸, 고려-王建 그리고 조선-李成桂 등은 모두 단군의 후손이요, 그 정통을 이은 임금으로 자처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건국자는 정통성을 잃은 통치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는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아니 우리 고유의 하느님을 모셔왔습니다.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은 부처, 공자, 마호멧과 예수를 능가하는 천신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환인 환웅 단군의 하위에 있는 신들이었습니다.
공자보다 400년이나 앞선 기자가 단군을 흠모하여 한국에 귀순한 사실을 조선 유학자들은 강조하였습니다. 是日也放聲大哭으로 유명한 장지연이 조선유학사에서 기자를 조선인으로 보고 유교를 우리 학문으로 보았다.
천제의 전통은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으로 이어졌고 고려의 팔관회(고려사의 기사로 118회)와 연등회(110회) 그리고 天安節 천제석 天帝釋道場 등응로 이어졌고 금나라의 天淸節(金)로 계승되었다.
중국 북경의 天壇은 명이 세운 제천단이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후에 청이 세운 원구단이다.
/ 출처 : 국학원
고려사절요/권지사/문종인효대왕/임술 36년(1082)
壬戌三十六年(임술삼십륙년) : 임술 36년(1082)
宋元豐五年(송원풍오년) : 송 원풍 5년
遼大康八年(료대강팔년) : 요 태강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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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二月(춘이월) : 봄 2월에
東女眞(동녀진) : 동여진의
褭於古等(뇨어고등) : 뇨어고(褭於古) 등이
來朝(래조) : 내조하였다.
○
夏四月(하사월) : 여름 4월에
洪原縣民(홍원현민) : 홍원현(洪原縣) 백성이
掘地(굴지) : 땅을 파다가
得黃金一百兩(득황금일백량) : 황금 1백 냥과
白銀一百五十兩(백은일백오십량) : 백은 1백 50냥을
以獻(이헌) : 얻어서 바쳤다.
王曰(왕왈) : 왕이 이르기를,
天賜也(천사야) : “하늘이 내려주신 것이다." 하고,
遂還之(수환지) : 드디어 돌려주었다.
○
五月(오월) : 5월에
以旱(이한) : 가뭄이 들었으므로
禱雨(도우) : 비오기를 빌었는데,
丁未(정미) : 정미일에
大雨(대우) : 큰비가 왔다.
○
六月(유월) : 6월에
赦加兩京百官爵一級(사가량경백관작일급) : 사면령을 내리고, 양경 백관에게는 관작을 1급씩 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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