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洪自誠의 菜根譚(萬曆本) -
<後集 (001~134) 完譯>
譯者; 李鎭夏(lee19858@hanmail.net)
001. 談山林之樂者,未必眞得山林之趣。
담산림지락자, 미필진득산림지취.
厭名利之談者,未必盡忘名利之情。
염명리지담자, 미필진망명리지정.
산림의 즐거움을 말하는 사람은 아직 진정한 산림의 맛을 터득하지 못해서이고,
명리를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명리에 대한 마음을 다 잊지 못해서이니라.
002. 釣水,逸事也。尙持生殺之柄。
조수, 일사야. 상지생살지병.
奕棊,淸戱也。且動戰爭之心。
혁기, 청허야. 차동전쟁지심.
可見喜事不如省事之爲適, 多能不若無能之全眞。
가견희사불여성사지위적, 다능불약무능지전진.
낙서는 즐거운 일이지만 오히려 생살의 권세를 쥐고 있고, 바둑과 장기는 맑은 놀이지만
또한 전쟁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 이로써 살펴보면, 일을 즐거워하는 것은 일을 덜어
자적함만 같지 못하고, 재능이 많은 것은 재주가 없어 진심을 보전함만 같지 못함을
알 수 있도다.
003. 鶯花茂而山濃谷艶,總是乾坤之幻境。
앵화무이산농곡염, 총시건곤지환경.
水木落而石瘦崖枯,纔見天地之眞吾。
수목낙이석수애고, 재견천지지진오.
꾀꼬리 노래하고 꽃은 만발해 산이 무르녹고 계곡이 아름다워도 이 모두 천지의
거짓된 모습일 뿐이다. 물이 마르고 잎이 떨어져 바위가 앙상하고 언덕이 메말라야
비로소 천지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느니라.
004. 歲月本長,而忙者自促。
세월본장, 이망자자촉.
天地本寬,而鄙者自隘。
천지목관, 이비자자애.
風花雪月本閒,而勞攘者自冗。
풍화설월본한, 이로양자자용.
세월은 본래 길건만 바쁜 자가 스스로 짧다 하고, 천지는 본래 넓건만 천박한 자가
스스로 좁다 하며, 바람과 꽃 눈과 달은 본래 한가롭건만 악착스런자가
스스로 번잡하다 하는도다.
005. 得趣不在多。盆池拳石間,烟霞具足。
득취부재다, 분지권석간, 연하구족.
會景不在遠。蓬窓竹屋下,風月自賖。
회경부재원. 봉창죽옥하, 풍월자사.
사=아득할 사, 한가할 사
정취를 얻음은 많은 것에 있지 않으니, 동이만한 연못이나 주먹만한 돌 사이라도
안개와 노을은 깃들인다. 좋은 풍경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니 쑥대로 얽은 창문과
대나무로 엮은 집 아래에도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스스로 한가롭다.
006. 聽靜夜之鐘聲,喚醒夢中之夢。
청정야지종성, 환성몽중지몽.
觀澄潭之月影,窺見身外之身。
관징담지월영, 규견신외지신.
고요한 밤의 종소리를 들으매 꿈속의 꿈을 불러 일깨우고,
맑은 연못의 달 그림자를 살피매 몸밖의 몸을 엿보노라.
007. 鳥語蟲聲,總是全心之訣。花英草色,無非見道之文。
조어충성, 총시전심지결. 화영초색, 무비현도지문.
學者要天機淸澈̖胸次玲瓏,觸物皆有會心處。
학자요천기청철, 흉차영롱, 촉물개유회심처.
새의 지저귐과 벌레 소리는 이 모두 마음을 전하는 비결이요,
꽃봉오리와 풀빛 또한 진리를 표현하는 명문 아님이 없도다.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마음의 작용을 맑고 투철하게 하고 가슴속을 영롱하게 하여
사물을 대함에 모두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하리라.
008. 人解讀有字書,不解讀無字書。
인해독유우서, 불해독무자서.
知彈有絃琴,不知彈無絃琴。
지탄유현금, 부지탄무현금.
以跡用,不以神用,何以得琴書之趣?
이적용, 불이신용, 하이득금서지취?
사람들은 글자 있는 책은 읽을 줄 알지만 글자 없는 책은 읽을 줄 모르며,
줄이 있는 거문고는 탈 줄 알지만 줄이 없는 거문고는 탈 줄 모르니,
형체만 사용하고 그 정신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어찌 금서의 참 맛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009. 心無物欲,卽是秋空霽海。
심무물욕, 즉시추공제해.
坐有琴書,便成石室丹丘。
좌유금서, 변성석실단구.
마음에 물욕이 없으면 이는 곧 가을 하늘이나 개인 바다요,
자리에 거문고와 책이 있으면 이는 곧 신선이 사는 곳이로다.
010. 賓朋雲集,劇飮淋漓樂矣,
빈붕운집, 극음림리락의.
俄而漏盡燭殘,香銷茗冷,
아이루진촉잔, 향소명랭.
不覺反成嘔咽,令人索然無味。
불각반성구열, 영인삭연무미.
天下事率類此,人奈何不早回頭也?
천하사솔류차, 인나하불조회두야?
손님과 벗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마음껏 술 마시고 흐드러지게 노는 일은 즐거우나,
이윽고 시간이 다해 촛불이 가물거리고 향불도 꺼지고 차도 식고 나면,
저도 모르게 도리어 흐느낌을 자아내어 사람을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세상 모든 일이 이와 같은데 사람들은 어찌하여 일찍 머리를 돌리려 하지 않는가.
011. 會得個中趣,五湖之烟月,盡入寸裡。
회득개중취, 오조지연월, 진입촌리.
破得眼前機,千古之英雄,盡歸掌握。
파득안전기, 천고영지웅, 진귀장악.
하나의 사물 가운데 들어 있는 참 맛을 깨달을 수 있다면 오호의 풍경도 모두
한 치 마음 속에 들어오고, 눈앞의 천기를 간파할 수 있다면 천고의 영웅도
다 손아귀에 들어올 것이니라.
012. 山河大地,已屬微塵,而況塵中之塵?
산하대지, 이속미진, 이황진중지진
血肉身軀,且歸泡影,而況影外之影?
혈육신구, 차귀포영, 이황영외지영
非上上智,無了了心。
비상상지, 무료료심.
산하와 대지도 이미 작은 티끌에 속하는데 하물며 티끌 속의 티끌임에라!
피와 살과 몸뚱이도 또한 물거품과 그림자로 돌아가는데 하물며
그림자 밖의 그림자임에랴! 그러나 최고의 지혜가 아니면 밝게 깨닫는 마음도 없으리라.
013. 石火光中,爭長競短,幾何光陰?
석화광중, 쟁장경단, 기하광음
蝸牛角上,較雌論雄,許大世界?
와우각상, 교자론웅, 허대세계
석화의 빛 속에서 길고 짧음을 다투어 본들 그 세월이 얼마나 되며,
달팽이의 뿔 위에서 자웅을 겨루어 본들 그 세계가 얼마나 크겠는가!
014. 寒燈無焰,敝裘無溫,總是播弄光景。
한등 무염, 폐구무온, 총시파롱광경.
身如槁木,心似死灰,不免墮在頑空。
신여고목, 심사사회, 불면타재완공.
가물거리는 등잔에 불꽃이 없고 해어진 갖옷에 따스함이 없으니 이 모두 삭막한 풍경이요,
몸은 마른 나무와 같고 마음은 싸늘해 식은 재와 같으니 완고한 공의식(空意識)에 떨어짐을
면하지 못하리라.
015. 人肯當下休,便當下了。
인긍당하휴, 변당하료.
若要尋個歇處,
약요심개혈처.
則婚嫁雖完,事亦不少。僧道雖好,心亦不了。
즉혼가수완, 사역불소. 승도수호, 심역불료.
前人云,如今休去,便休去,若覓了時,無了時,
전인운, ‘여금휴거, 변휴거, 약멱료시, 무료시
見之卓矣。
견지탁의.
사람이 애써 당장에 쉬면 곧 그 당장에 쉴 수 있으되, 만약 쉴 곳을 찾는다면
아들딸을 결혼시킨 후에도 일은 많으리라. 중과 도사가 비록 좋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으로는 역시 깨닫지 못할지니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만약 당장에 그만두면
곧 그만 둘 수 있지만 그만둘 때를 찾는다면 그만둘 때가 없으리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탁견이로다.
016. 從冷視熱,然後知熱處之奔走無益。
조랭시열, 연후지열처지분주무익
從冗入閑,然後覺閑中之滋味最長。
종용입한, 연후각한중지자미최장.
냉정한 마음으로 열광했던 때를 바라본 다음에야 그 열광의 분주함이 무익한 것임을
알게 되고, 번거로움에서 한가함으로 들어가 본 후에야 한가한 재미가 가장 유장한
것임을 깨닫게 되느니라.
017. 有浮雲富貴之風,而不必嚴棲穴處。
유부운부기지풍, 이불필암서혈처.
無膏肓泉石之癖,而常自醉酒耽詩。
무고황천석지벽, 이상자취주탐시.
부귀를 뜬구름처럼 보는 기풍이 있다 해서 반드시 바위굴에서 살 필요는 없고,
자연을 사랑하는 버릇이 고질(痼疾)됨은 없다해도 언제나 스스로 술에 취하고 시에
탐닉해야 하리라.
018. 競逐,聽人而不嫌盡醉。恬淡,適己而不誇獨醒。
경축, 청인이불렴진취, 염담, 적기이불과독성.
此釋氏所謂不爲法纏,不爲空纏,身心兩自在者。
차석씨소위, ‘불위법전, 불위공전, 신심양자재’ 자.
명리를 다툼은 남들에게 맡기되 모두가 취하여도 미워하지 말고, 고요하고 담박함은
내가 즐기되 홀로 깨어 있음을 자랑하지 말라. 이것은 부처의 이른바 ‘법에도 얽매이지 않고
공에도 얽매이지 않음’이니, 몸과 마음이 모두 자유로울지니라.
019. 延促由於一念,寬窄係之寸心。
연촉유어일념, 관착계지촌심.
故機閑者,一日遙於千古,意廣者,斗室寬若兩間。
고기한자, 일일요어천고, 의광자, 두실관약량간.
길고 짧은 것은 한 생각에 말미암고, 넓고 좁음은 한 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한가로운 사람은 하루가 천 년 보다 길고, 뜻이 넓은 사람은 넓은 사람은
좁은 방이 천지간보다 넓으니라.
020. 損之又損,栽花種竹,儘交還烏有先生。
손지우손, 재화종죽, 진교환오유선생.
忘無可忘,焚香煮茗,總不問白衣童子。
망무가망, 분향자명, 총불문백의동자.
물욕을 덜고 또 덜어서 꽃을 가꾸고 대나무를 심으니 그야말로 오유선생(烏有先生)이
되어 가고, 세사를 잊고 또 잊어 향을 피우고 차를 달이니 도대체 백의동자를 물을 것이 없어라.
021. 都來眼前事,知足者仙境,不知足者凡境。
도래안전사, 지족자선경, 부지족자범경.
總出世上因,善用者生機,不善用者殺機。
총출세상인, 선용자생기, 불선용자살기.
눈앞에 다가오는 모든 일은 만족할 줄 알면 신선의 경지로되 만족할 줄 모르면
범속의 경지이고, 세상에 나타나는 인연은 잘 쓰면 살리는 작용을 하지만 잘못 쓰면
죽이는 작용을 하느니라.
022. 趨炎附勢之禍,甚慘亦甚速。
추염부세지화, 심참역심속.
樓恬守逸之味,最淡亦最長。
서념수일지미, 최담역최장.
권력을 따라가고 세력에 붙는 재앙은 매우 참혹하고도 몹시 빠르되,
고요함에 살고 편안함을 지키는 맛은 지극히 밝고도 또한 가장 오래 가느니라.
023. 松澗邊,携杖獨行,立處,雲生破衲。
송간변, 휴장독행, 입처, 운생파납.
竹窓下,枕書高臥,覺時,月侵寒氈。
죽창하, 침서고와, 각시, 월침한전.
소나무 우거진 시냇가를 지팡이 짚고 외로이 가노라면 서는 곳마다 구름이 해어진
누더기에서 일어나고, 대나무 창 아래에 책을 베개삼아 높이 누웠다 깨어 보면
달빛은 낡은 담요에 와 스며드네.
024. 色慾火熾,而一念及病時,便興似寒灰。
색욕화치, 이일념급병시, 변흥사한회.
名利飴甘,而一想到死地,便味如嚼蠟。
명리이감, 이일상도사지, 변미여작랍.
故人常憂死慮病,亦可消幻業而長道心。
고인상우사려병, 역가소환업이장도심.
색욕이 불길처럼 타오르다가도 일단 생각이 병든 때에 미치면 문득 흥취가 싸늘한 재
같아지고, 명리가 옛 처럼 달콤하다가도 일단 생각이 죽는 곳에 이르면 문득 밀랍 같아지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언제나 죽음을 근심하고 범을 염려하면, 가히 헛된 일을 없애고
도심(도심)을 기를 수 있느니라.
025. 爭先的徑路窄,退後一步,自寬平一步。
쟁선적경로착, 퇴후일보, 자관평일보.
濃艶的滋味短,淸淡一分,自悠長一分。
농염적자미단, 청담일분, 자유장일분.
앞을 다투는 길은 좁으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 저절로 한 걸음 넉넉해지고,
무르녹고 아름다운 재미는 짧으니 일 분만 맑고 엷게 하면 저절로 일분이 유장해지리라.
026. 忙處不亂性,須閑處心神養得淸。
망처불란성, 수한처심신양득청
死時不動心,須生時事物看得破。
사시부동심, 수생시사물간득파.
바쁠 때에 본성을 어지럽히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한가할 때에 마음을 맑게 길러야 하고,
죽을 때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살아 있을 때에 사물의 도리를
간파해야 하느니라.
027. 隱逸林中,無榮辱。
은일림중, 무영욕.
道義路上,無炎凉。
도의로상, 무염량.
은일 한 숲 속에는 영화로움과 욕됨이 없고 도의의 길에는 더위와 추위가 없느니라.
028. 熱不必除,而除此熱惱,身常在淸凉臺上。
열불필제, 이제차열뇌, 신상재청량대상.
窮不可遣,而遣此窮愁,心常居安樂窩中。
궁불가견, 이견차궁수, 심상거안락와중.
더위를 없앨 수는 없으되 더위를 괴로워하는 이 마음을 없앤다면 몸은 언제나 서늘한
누대 위에 있게 되고, 가난을 쫓아 버릴 수는 없으되 가난함을 걱정하는 이 마음을 쫓아 버리면
마음은 언제나 안락한 집 가운데에 있게 되리라.
029. 進步處,便思退步,庶免觸藩之禍。
진보처, 변사퇴보, 서면촉번지화.
著手時,先圖放手,纔脫騎虎之危。
착수시, 선도방수, 재탈기호지위.
나아가는 곳에서 문득 물러날 것을 생각한다면 거의 울타리에 걸리는 재앙을 면할 수 있고,
손을 댈 때에 먼저 손을 놓을 것을 도모하면 곧 호랑이를 타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030. 貪得者分金,恨不得玉。封公,怨不受侯,權豪自甘乞丐。
탐득자분금, 한부득옥. 봉금, 원불수후, 권호자감걸개.
知足者黎羹,旨於膏粱。布袍,煖於狐狢,編民不讓王公。
지족자여갱, 지어고량, 포포, 난어고학, 편빈불양왕공.
얻기를 탐내는 사람은 금을 나누어주어도 옥을 얻지 못함을 한하고 공작을 봉해 주어도
제후가 되지 못함을 원망하니, 부귀하면서도 스스로 거지 노릇을 달게 여기는 것이로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명아주국을 진미보다 더 맛있게 여기고 베도포를 갖옷보다
더 따뜻하게 여기니, 일반 백성이면서도 왕공을 부러워하지 아니하느니라.
031. 矜名,不若逃名趣。
긍명, 불약도명취.
練事,何如省事閒。
연사, 하여성사한.
이름을 자랑하는 것이 어찌 이름을 피하는 기취(氣趣)를 가짐만 하겠으며,
일에 익숙한 것이 어찌 일을 줄여서 한가함만 하겠는가.
032. 嗜寂者,觀白雲幽石而通玄。
기적자, 관백운유석이통현.
趨榮者,見淸歌妙舞而忘倦。
추영자, 견청가묘무이망권.
唯自得之士,無喧寂,無榮枯,無往非自適之天。
유자득지사, 무훤적, 무영고, 무왕비자적지천.
고요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흰 구름이나 그윽한 바위를 보고도 현묘한 진리를 깨닫고,
영화를 좇는 사람은 맑은 노래와 아름다운 춤을 보며 싫증을 모른다.
오직 스스로 깨달은 선비만이 시끄러움도 고요함도 없고 영화로움도 없으니,
가는 곳마다 자기 마음에 맞는 즐거운 세상 아닌 곳이 없으리라.
033. 孤雲出岫,去留一無所係。
고운출수, 거류일무소계.
郞鏡懸空,靜躁兩不相干。
낭경현공, 정조량불상간.
외로운 구름이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게 가고 머무름에 조금도 매임이 없고,
밝은 달이 하늘에 걸리매 고요하고 시끄러움을 모두 상관하지 않네.
034. 悠長之趣,不得於醲釅,而得於啜菽飮水。
유장지취, 부득어농엄, 이득어철숙음수.
惆悵之懷,不生於枯寂,而生於品竹調絲。
추창지회, 불생어고적, 이생어품죽조사.
固知濃處味常短, 淡中趣獨眞也。
고지농처미상단, 담중취독진야.
유장한 맛은 진하고 맛있는 술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콩을 씹고 물을 마시는 데서
얻어지며, 그리워하는 마음은 메마르고 적막한 곳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피리 불고
거문고 타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짙은맛은 언제나 짧으며
담백한 취미만이 홀로 진실함을 알겠도다.
035. 禪宗曰,饑來喫飯, 倦來眠,
선종왈, 기래끽반, 권래면,
詩旨曰,眼前景致口頭語。
시지왈, 안전경치구두어,
蓋極高寓於極平,至難出於至易,
개극고우어극평, 지난출어지이,
有意者反遠,無心者自近也。
유의자반원, 무심자자근야.
선종에서는 말하기를 ‘배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잔다’고 하고,
시지에서는 말하기를 ‘눈앞의 경치를 보통의 말로 표현한다’고 한다.
대개 지극히 높은 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에 있고, 지극히 어려운 것은 지극히 쉬운 데서
나오는 것이니, 뜻이 있으면 도리어 멀어지고, 마음이 없으면 저절로 가까와지느니라.
036. 水流而境無聲,得處喧見寂之趣。
수류이경무성, 득처훤견적지취.
山高而雲不碍,悟出有入無之機。
산고이운부애, 오출유입무지기.
물은 홀로 그 언저리에는 소리가 없으니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한 멋을 얻을 것이며,
산은 높아도 구름이 걸리지 않으니 유에서 나와 무로 들어가는 기미를 깨닫게 되리라.
037. 山林是勝地。一營戀,便成市朝。
산림시승지. 일영련, 변성시조.
書畵是雅事。一貪痴,便成商賈。
서화시아사, 일탐치, 변성상고.
蓋心無染著,欲界是仙都。心有係戀,樂境成苦海矣。
개심무염착, 욕계시선도, 심유계련, 낙경성고해의.
산림은 아름다운 곳이나 한 번 집착하면 곧 시장판이 되고 서화는 우아한 일이나
한 번 탐내면 문득 장사꾼이 되고 만다. 대개 마음에 물들거나 집착이 없으면 속세도
신선 세계요, 마음에 매임이나 집착이 있으면 극락도 고해가 되리라.
038. 時當喧雜,則平日所記憶者皆漫然忘去。
시당원잡, 즉평일소기억자개만연망거.
境在淸寧,則夙昔所遺忘者又恍爾現前。
경재청녕, 즉숙석소유망자우황이현전.
可見靜躁稍分, 昏明頓異也。
가견정조초분, 혼명돈이야.
시끄럽고 번잡한 때를 당하면 곧 평소에 기억하던 것도 모두 멍하니 잊어버리고,
맑고 편안한 경지에 있으면 지난날에 잊어버렸던 것도 또한 뚜렷이 앞에 나타난다.
가히 조용함과 시끄러움이 조금만 엇갈려도 마음의 어둡고 밝음이 뚜렷이 달라짐을
알 수 있으리라.
039. 蘆花被下,臥雪眠雲,保全得一窩夜氣。
노화피하, 와설면운, 보전득일와야기.
竹葉杯中,吟風弄月,躱離了萬丈紅塵。
죽엽배중, 음풍농월, 신잡료만장홍진.
찔레꽃 이불 덮고 눈밭에 누워 구름 속에 잠들면 한 방 가득한 밤기운!
댓잎 술잔 속에 바람을 읊조리고 달을 희롱하노라면 속세의 만장 붉은 티끌 다 떨쳐지리라.
040. 袞冕行中,著一藜杖的山人,便增一段高風。
곤면행중, 착일여방적산인, 변증일단고풍.
漁樵路上,著一袞衣的朝士,轉添許多俗氣。
어초로상, 착일곤의적조사, 전첨허다속기.
固知濃不勝淡, 俗不如雅也。
고지농불승담, 속불여아야.
높은 벼슬아치들의 행렬 가운데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산인 한 사람 섞여 있으면
문득 한결 높은 풍도가 더해진다. 허나 고기잡이와 나무꾼이 다니는 길 위에 관복 입은
벼슬아치가 한 사람 섞여 있으면 도리어 수많은 속된 기운을 더할 뿐이다.
이에 진실로 짙은 것은 옅은 것만 못하고 속된 것은 우아한 것만 못함을 알겠구나.
041. 出世之道,卽在涉世中。不必絶人以逃世。
출세지도, 즉재섭재중. 불필절인이도세.
了心之功,卽在盡心內。不必絶欲以灰心。
요심지공, 즉재진심내, 불필절욕이회심.
속세를 벗어나는 길은 곧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있으니 반드시 사람과 절교하는 세상을
도피해야 할 필요는 없고, 마음을 깨닫는 공부는 곧 마음을 다하는 속에 있으니 반드시 물욕을
끊어서 마음을 싸늘한 재처럼 할 필요는 없느니라.
042. 此身常放在閒處,榮辱得失,誰能羞遣我?
차신상방재한처, 영욕득실, 수능수견아.
此心常安在靜中,是非利害,誰能瞞眛我?
차심상안재정중, 시지이해, 수능만매아.
이 몸을 언제나 한가한 곳에 놓아둔다면 영욕과 득실, 그 어느 것이 나를 그릇되게 할 것이랴.
이 마음을 언제나 조용한 가운데 안정시킨다면 시비와 이해, 그 어느 것이 능히 나를 속일 수
있으라?
.
043. 竹籬下,忽聞犬吠鷄鳴,恍似雲中世界。
죽리하, 홀문견폐계명, 황사운중세계.
芸窓中,雅聽蟬吟鴉噪,方知靜裡乾坤。
운칭중, 아청선음아조, 방지정리건곤.
대나무 울타리 아래에 홀연히 개 짖고 닭 우는 소리 들리니, 황홀하기 마치 구름 속 세계와
같고, 서재 안에 운치 있는 매미 소리와 까마귀 우짖는 소리 들리니, 바야흐로 고요한 속의
천지를 알겠구나.
044. 我不希榮,何憂乎利祿之香餌。
아불희영, 하우호리록지향이.
我不競進,何畏乎仕官之危機。
아불경진, 하외호사관지위기.
내가 영화를 바라지 않으니 어찌 이록(利祿)의 향기로운 미끼를 근심하며,
내가 승진을 다투지 않으니 어찌 벼슬살이의 위험을 두려워하겠는가.
045. 徜徉於山林泉石之間,而塵心漸息。
상양어산림천석지간, 이진심점식.
夷猶於詩書圖畵之內,而俗氣潛消。
이유어시서도화지내, 이속기점소.
故君子雖不玩物喪志,亦常借境調心。
고군자수불완물상지, 역상차경조심.
산림과 천석(泉石) 사이를 이리저리 거니노라면 세속의 먼지는 어느덧 사라지고,
시서와 그림 속에 한가히 노니노라면 속된 기운은 슬며시 없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도락(道樂)에 빠져 뜻을 잃지 않을뿐더러
또한 항상 우아한 경지를 빌어 마음을 고르느니라.
046. 春日氣象繁華,令人心神駘蕩,
춘일기상번화, 영인심신태탕.
不若秋日雲白風淸, 蘭芳桂馥, 水天一色, 上下空明,
불약추일운백풍청, 난방계복, 수천일색, 상하공명.
使人神骨俱淸也。
사인신골구청야.
봄날의 기상은 번화하여 사람의 심신을 화창하게 한다. 하지만 가을날,
구름 희고 바람 맑으며, 난초는 꽃답고 계수나무 향기로우며,
물과 하늘이 한빛으로 푸르고 천지에 달이 환히 밝아서
사람의 심신을 함께 맑게 해주는 것만 하랴!
047. 一字不識,而有詩意者,得詩家眞趣。
일자불식, 이유시의자, 득시가진취.
一偈不參,而有禪味者,悟禪敎玄機。
일게불참, 이유선미자, 오선교현기.
글자 하나 모를지라도 시적 정서를 지닌 사람은 시인의 참된 멋을 터득하고,
게송(偈頌) 한 구절 외우지 못하더라도 선의 묘미를 지닌 사람은 선교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는다.
048. 機動的, 弓影疑爲蛇蝎,寢石視爲伏虎,此中渾是殺氣。
기동적, 궁영의위사갈, 침석시위복호, 차중혼시살기.
念息的,石虎可作海鷗,蛙聲可當鼓吹,觸處俱見眞機。
염식적, 석호가작해구, 와성가당고취, 촉처구견진기.
마음이 흔들리면 활 그림자도 뱀으로 보이고 쓰러진 돌도 엎드린 호랑이로 보이니,
이 속에는 모두 살기뿐이다. 생각이 가라앉으면 석호도 바다갈매기처럼 되고 개구리 소리도
음악으로 들리니, 가는 곳마다 모두 참된 작용을 보게 되리라.
049. 身如不繫之舟,一任流行坎止。
신여불계지주, 일임류행감지.
心似旣灰之木,何妨刀割香塗。
심사기회지목, 하방도할향도.
몸은 매어 두지 않은 배와 같으니 흘러가든 멈추든 완전히 내맡길 일이요,
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와 같으니 칼로 자르든 향을 칠하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050. 人情,聽鶯啼則喜,聞蛙鳴則厭,
인정, 청앵제즉희, 문와명즉염.
見花則思培之,遇草則欲去之。但是以形氣用事。
견화즉사배지, 우초즉욕거지, 단시이형기용사.
若以性天視之,何者非自鳴其天機, 非自暢其生意也?
약이성천시지, 하자비자명기천기, 비자창기생의야
사람의 정이란 꾀꼬리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울음을 들으면 싫어하며,
꽃을 보면 이를 가꾸려 생각하고 잡초를 만나면 이를 제거하고자 하니,
이것은 다만 형체와 기질로써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만약 천성의 본바탕으로 이를 본다면
그 무엇이 스스로 천기를 울림이 아니며, 스스로 자라나는 뜻을 펴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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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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