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鄭賜)
1445년(세종 27) 의정부의 사인(舍人)으로 있으면서 대궐 가까이에서 이조와 예조의 정랑·좌랑들과 연회를 베풀었다가 벌을 받았다. 1446년 집의에 제수되고, 1448년 예문관직제학으로 경상도에 가서 일본인들이 가져온 물품의 등수를 매기고 돌아왔다. 이후 진주목사를 지내며 치적을 쌓아 용궁(龍宮:경상북도 예천군)의 완담향사(浣潭鄕祠)에 위패가 봉안되었다. 찬성에 추증되었다.
정기선(鄭基善)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자는 원백(元伯)이다. 서울에서 태어났다. 1809년(순조 9) 사마시에서 생원 3등으로 합격하였고, 1812년 정시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1815년 다시 한림소시(翰林召試)에 뽑혀 함경도암행어사로 나가 백성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수령들을 벌주었고, 지방 행정의 폐단을 척결하였다. 1818년 교리를 거쳐 규장각직각에 제수되고, 1820년 수해가 난 개천군(价川郡)에 위유어사(慰諭御史)로 파견되어 피해상황을 살피고 돌아와 구호방책을 보고하였다.
1823년 성균관대사성을 거쳐 보덕을 지내고, 1826년 이조참의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홍문관부제학을 지낸 것을 비롯하여 경상도관찰사·이조참판·사헌부대사헌·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1833년(순조 33년) 예조판서에 올랐다.
헌종 때 한성부판윤을 거쳐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출처] 정기선 [鄭基善 ] | 네이버 백과사전
정기선 철비(鄭基善 鐵碑)와 정인량(鄭寅亮) 불망비
석문 정영방 [石門 鄭榮邦, 1577~1650]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경보(慶輔), 호는 석문(石門)이다. 조부는 진사(進士) 원충(元忠)이며, 생부는 식(湜), 양부는 조(澡)이다.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가 고향 예천에서 후진들을 가르칠 때 그의 문하에서 성리학(性理學)을 공부하였으며 1605년(선조 38년) 을사(乙巳) 증광시(增廣試)에서 진사(進士) 3등(三等) 64위로 급제하였다.
경학과 당시(唐詩)에 조예가 깊었다. 스승이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관직에 나갈 것을 여러 번 권하였으나 당시의 혼란한 정치를 싫어해 벼슬하지 않고 진보(眞寶)에 내려와 학문 연구에 전념했다.
1609년(광해군 1년)에 그가 건축한 경북 예천군 지보면에 있는 석문종택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92호로 지정되었으며, 병자호란 이후 영양군 입압면 연당리로 이주하여 축조한 영양서석지(英陽瑞石池)가 중요민속자료 제108호로 지정되어 전한다. 편서(編書)로 《석문집(石門集)》이 남아있다.
석문 정영방 선생 유허비와 종택(뒷편의 종택은 보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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