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권(金係權)
안동김씨는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군을 물리치고 태사가 된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받들며 관향 안동에서 일천여 년을 세거해 온 안동의 토성이다. 이들은 같은 본관의 김방경계(金方慶系)와 구분하여 후안동김씨(後安東金氏) 또는 신안동김씨(新安東金氏)로 불린다.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은 신라 말 고창군(古昌郡)의 성주로서 권행(權幸), 장길(張吉)과 함께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군을 격퇴한 공으로 고려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보(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에 봉해졌고 고창군은 안동부(安東府)로 승격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김선평을 시조로 하고 안동을 본관으로 하여 세거하였다.
김선평의 9세손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이 풍산 불정촌(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부근)에 살다가 소산리으로 옮겨 정착한 이래 크게 번성하였다. 김삼근은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맏아들 김계권(金係權)은 한성판관이고, 작은아들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1431~1521)은 대사간, 대사헌 등을 지냈다. 김계권은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맏아들은 세조의 국사를 지낸 명승 학조대사(學組大師)이고 둘째 김영전(金永詮, 1439~1523)은 사헌부감찰, 셋째 김영균(金永勻)은 진사, 넷째 김영추(金永錘)는 수원부사, 다섯째 김영수(金永銖, 1446~1502)는 사헌부장령을 역임했다.
장령 김영수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맏아들 삼당(三塘) 김영(金瑛, 1475~1528)은 1506년 문과에 올라 이조참의가 되었고, 둘째 김번(金璠, 1479~1544)도 1513년 문과에 급제하여 평양서윤이 되었다. 셋째 김순(金珣)은 진사시에 합격하여 형조좌랑을 지냈다. 김영의 손자 창균(蒼筠) 김기보(金箕報)는 현감을 지냈고, 현손 구재(九齋) 김계광(金啓光, 1621~1675)도 문과에 올라 풍기군수를 지냈다. 11세손 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은 문과를 거쳐 병조좌랑을 지냈고, 의열투쟁에 앞장섰던 독림운동가 학우(鶴右) 김시현(金始顯, 1883~1966)도 김영의 후손이다.
김영수의 둘째 아들 김번을 파조로 하는 장동파(壯洞派)는 인조 때의 명신인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 순조, 헌종, 철종 대에는 왕실의 외척으로 정권을 잡아 3명의 왕비와 15명의 정승, 6조판서와 대제학 등 많은 명신을 배출하며 조선 제일의 세도가가 되어 ‘장동김씨’ 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한편 김삼근의 작은아들 김계행은 무오사화 뒤 낙향하여 만년에 길안면 묵계리에 만휴정(晩休亭)을 지어 휴식처로 삼은 이래로 후손들이 묵계에 정착하였다. 김계행의 맏아들 김극인(金克仁)은 영릉참봉, 둘째 김극의(金克義), 셋째 김극례(金克禮)는 생원, 다섯째 김극신(金克信)은 무과에 급제하여 문천군수가 되었다. 셋째 아들 김극례는 봉화로 이거하였는데 그의 손자 정준(廷準)이 1540년 문과에 급제하여 학유가 되고, 현손 구전(苟全) 김중청(金中淸, 1567~1629)도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지냈으며 김중청의 아들 이면(易眠) 김주우(金柱宇)는 1624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지평이 되었다.
장령 김영수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맏아들 삼당(三塘) 김영(金瑛, 1475~1528)은 1506년 문과에 올라 이조참의가 되었고, 둘째 김번(金璠, 1479~1544)도 1513년 문과에 급제하여 평양서윤이 되었다. 셋째 김순(金珣)은 진사시에 합격하여 형조좌랑을 지냈다. 김영의 손자 창균(蒼筠) 김기보(金箕報)는 현감을 지냈고, 현손 구재(九齋) 김계광(金啓光, 1621~1675)도 문과에 올라 풍기군수를 지냈다. 11세손 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은 문과를 거쳐 병조좌랑을 지냈고, 의열투쟁에 앞장섰던 독림운동가 학우(鶴右) 김시현(金始顯, 1883~1966)도 김영의 후손이다.
김영수의 둘째 아들 김번을 파조로 하는 장동파(壯洞派)는 인조 때의 명신인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 순조, 헌종, 철종 대에는 왕실의 외척으로 정권을 잡아 3명의 왕비와 15명의 정승, 6조판서와 대제학 등 많은 명신을 배출하며 조선 제일의 세도가가 되어 ‘장동김씨’ 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한편 김삼근의 작은아들 김계행은 무오사화 뒤 낙향하여 만년에 길안면 묵계리에 만휴정(晩休亭)을 지어 휴식처로 삼은 이래로 후손들이 묵계에 정착하였다. 김계행의 맏아들 김극인(金克仁)은 영릉참봉, 둘째 김극의(金克義), 셋째 김극례(金克禮)는 생원, 다섯째 김극신(金克信)은 무과에 급제하여 문천군수가 되었다. 셋째 아들 김극례는 봉화로 이거하였는데 그의 손자 정준(廷準)이 1540년 문과에 급제하여 학유가 되고, 현손 구전(苟全) 김중청(金中淸, 1567~1629)도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지냈으며 김중청의 아들 이면(易眠) 김주우(金柱宇)는 1624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지평이 되었다.
배위 예천권씨묘(김계권 묘소 뒤에 위치한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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