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기도)

[스크랩] 원균장군 묘(元均將軍 墓)

장안봉(微山) 2013. 4. 11. 00:29

 

  경기 평택 도일동 일대는 원주 원씨들의 집단 거주지이다. 원균의 출생지도 도일동으로 평택시와 송탄의 경계 부근이다.

도일동은 크게 하리, 내리, 상리로 나뉘는데 원균의 가문인 원주(原州) 원(元)씨가 동족 마을을 이루고 사는 곳은 하리(下里)마을이다. 도일동의 원주 원씨 가문은 대대로 무인(武人)집안으로 이름이 났는데 입향조(入鄕祖)였던 원임(元任)(또는 원몽이라고도 함)도 세종 때 무과에 급제했던 무인출신이며, 원준량도 홍문관 교리와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던 무인이었다.

 이 곳 도일동 산 82번지에 원주 원씨 선산이 있을 뿐 아니라 원균의 묘도 있다. 원균의 본관은 원주(原州)이고, 현재 장군의 사당과 묘소가 있는 평택시 도일동에서 출생하였다.

 원균의 묘 전경.

원균(1540~1597)장군의 자는 평중으로 조선 선조 때의 무신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을 거쳐 조산만호 부령부사를 지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서 처음 옥포해전에서 이순신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왜선 30여척을 무찔렀다. 그 후 합포해전, 적진포해전 등 여러 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선조 30년(1597) 칠천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선조 37년(1604)에 권율, 이순신과 함께 선무1등공신에 추록되었다.

 선조가 지은 제문.

 묘비 내용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간신(?) 원균의 행적과는 다를 뿐 아니라, 원균의 묘치고는 너무 크다는 데 놀랐다.

1981년 후손들이 새로 만든 묘석이지만 의외로 큰 규모에 놀랐다.

 

 후손들이 새로 만든 신도비 - 원균은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군(水軍)을 통솔하는 절도사로서 옥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적을 물리쳤다. 그 후 합포해전, 적진포해전 등 여러 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선조30년(1597)에 칠천량해전에서 전사하였으며, 선조 36년(1604)에 권율, 이순신과 함께 선무 1등 공신으로 벼슬이 높여졌다. 그러나, 당파의 소용돌이속에서 한 시대의 두 장수, (이순신, 원균) 는 비슷한시기에 출생과  전사를 함께하며, 공과사를 떠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시대를 보낸 장수이다.

역사는 승자원칙에 의한 기록을 박 정희 대통령 서거후 이곳 출생지이며, 원주 원씨 집성촌에 모셔진 후   묘역이 재 정비 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이순신 장군의 묘역은 오랜 시간 한 집권자의 보호와 추대 속에 잘 정비 되어있다.

묘역 안에는 신도비 1개, 문인석 2기, 무인석 2개, 돌로 만든 석등이 1기, 묘비 2기가 서있고, 애마총이 묘 아래쪽에 있다. 또한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망주석(望柱石)이 배치되어 있다. 국한문 혼용체로 쓴 비문에는 왕이 내린 교서와 장군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원균 장군이 사망하자 그의 말은 장군의 신발을 물고 이 곳까지 단숨에 달려와서 죽음을 알리고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군 묘 앞에 애마총이 있다.

 원균장군 사당.

 

 

 

 

 도일동 일대에는 원주 원씨 집단 묘가 많다.

 원균(元均)은 원준량의 아들로 원균에게는 여러 형제들이 있었는데, 이들도 뛰어난 무인(武人)들이다. 차남이었던 원연(1543-1597)은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향리에 은거하다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던 인물이며, 정유재란 때에는 적성현감을 제수받아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또 셋째 원전은 무과에 급제 한 후 임진왜란 당시 고성현감으로 있다가 원균 부대의 종사관으로 참여하였다가 전사하였다. 또 원연의 아들이었던 원사립(1569-1610)도 무과에 급제한 뒤 진주목사, 김해부사 등을 지내며, 여진족과 왜군의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원균의 아들 원사웅도 부친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다가 칠전량에서 전사하였다.

 모선재 - 원주 원씨 사당.

 내리저수지 - 멀리 보이는 묘역이 원균장군의 묘이다.

 양세충효정문.

 

 

  원사립은 원균의 부친인 원준량의 차남 원연의 아들인데, 넷째아들인 원전의 양자로 입적했다.

 

세세대대 대를 이어 나라에 충성한 원주 원씨들의 행적이 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출처 : 바람 통신
글쓴이 : 문화 탐험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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