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 : 윤민헌선생묘 (尹民獻先生墓)
· 종목 : 향토유적 제 16호
· 소재지 :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山峴洞)
· 지정일 : 2002년 3월 15 일
윤민헌 선생 묘소 입구에 있는 신도비.
윤민헌(尹民獻, 1562∼1628)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익세(翼世), 호는 태비(苔扉)이다. 아버지는 호조좌랑 엄(儼)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주 김주(金澍)의 딸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인이다.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하여 선공감역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외교문서 담당 관청)에 들어갔다. 그 뒤 형조좌랑·전라도도사·형조정랑 등을 거쳤으며, 광해군때 붕당간의 대립으로 정국이 어지럽자 1618년 대동찰방을 마지막으로 안산(현재의 시흥)으로 물러나 살았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군자감정에 임명되고, 장령·내섬시정을 거쳐 평안도절도사로 나갔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주로 왕을 호종한 공으로 통정대부(정3품)에 오르고,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공조참의에 이르러 병으로 사직하였으며, 안산으로 돌아와 타계하였다. 1646년(인조 24)에 대제학,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그는 자성이 순정하고, 일을 당하여 스스로 지킬 줄 알았으며, 경사에 밝고 시문에 능하였다고 한다. 특히, 조맹부를 사숙하여 해서를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다.
묘갈은 숙종 35년(1709)에 세운 것으로, 형태는 당시 유행하던 방부개석의 양식인데, 기단석 위에 갈색의 대리석 비신(碑身 234cm×97cm×32cm)으로 다듬었다. 글씨는 선생의 손자인 평안도 관찰사 윤지인(1656~1718)이 썼고, 함흥부윤 윤덕준(1658~1717)이 전(篆)을 올려 비신의 앞면과 뒷면에 음각하였다. 이 묘갈은 시흥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가 좋고 양식이 독특하여 조선 중기의 묘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이용될 수 있다.
옛 붕당들처럼 정치판이 혼탁한 지금, '명리를 탐하지 말라'는 성혼의 가르침을 따라 살다간 윤민헌선생의 묘갈.
묘소는 1628년(인조 6)에 조성되었으며 부인 연안 김씨와의 합장묘이다.
묘소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복호혈(伏虎穴)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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