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193호 동구릉은 구리 인창동 산2-1에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왕릉군.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능인 건원릉을 위시하여 9개의 왕릉이 서울의 동쪽에 모여 있어 ‘동구릉’이라 한다. 총 9명의 왕 혹은 왕비 및 세자의 능과 17개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동구릉은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조성되었는데, 철종 6년(1855)에 추존된 왕 익종의 능인 수릉(綏陵)이 마지막으로 이곳에 옮겨와 동구릉이 되었다.
9개의 릉은 건원릉(태조), 현릉(5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목릉(14대 선조와 정비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 휘릉(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 숭릉(18대 현종과 정비 명성왕후 김씨), 혜릉(20대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 원릉(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 경릉(24대 헌종과 정비 효현왕후 김씨, 계비 효정왕후 홍씨), 수릉(23대 순조의 세자 익종과 비 신정익황후 조씨)이다. 이 자리는 태종이 명당을 찾아 다니던 중 김인귀가 추천하고 하륜이 결정한 것이다. 동구릉은 조성기간이 조선 전 시기에 걸친 것이어서 조선시대 왕릉의 변화과정을 잘 보여준다.
동구릉 입구에 세워져 있는 태조 이성계의 시비.
이황실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망주석의 세호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 차량 차단석.
동구릉과 조선왕실의 능원조성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문화관.
건원릉은 다른 능과 달리 무덤 위에 잔디가 아닌 억새풀이 무성하다. 얼핏 보면 아무도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둔 것처럼 보인다. 이는 태조의 유언 때문이다. <인조실록>에 보면 태조의 능에 억새가 무성하니 이를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는 다른 잔디로 메우는 것이 어떠냐는 상소가 들어오자 인조는 건원릉에 사초(무덤에 잔디를 입히는 것)를 억새풀로 쓴 것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 손대지 말라고 답을 내린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한 후 자신의 아들들 간의 피비린내 나는 왕위쟁탈전으로 크게 마음을 상하였다. 임종 직전 태조는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 땅의 흙과 억새를 사초로 쓸 것을 유언하였다.
태조의 무덤인 건원릉은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을 기본으로 삼아서 만들었으며, 조선왕조 최초의 왕릉으로서 이후 왕릉의 본보기가 되었다.
홍살문 - 이곳이 신성한 곳임을 알려준다. 동구릉이란 도성의 동쪽에 있는 9개의 무덤이란 의미로, 무덤이 생길 때마다 동오릉·동칠릉이라 불렀는데 철종 6년(1855)에 수릉이 옮겨진 이후 동구릉으로 굳어졌다. 태조가 죽은 뒤 태종은 서울 가까운 곳에 후손들이 묻힐 좋은 땅을 찾다가 하륜(河崙)에 의해 이곳을 무덤지역로 정하였다고 한다. 400여 년에 걸쳐 왕릉이 자리잡았음은 동구릉의 지세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명당 임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재실 - 무덤을 만들 때 각 무덤에 따른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재실을 지었다고 하나 현재 각 무덤에 재실은 없고, 9개 무덤을 하나의 경계지역으로 하여 구릉 남쪽에 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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