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단군 성전(檀君 聖殿)

장안봉(微山) 2013. 4. 11. 00:09

 

 단군성전은 단군전, 단군 사묘, 단군 사우 등으로 불리며, 한국의 국조(國祖)인 단군의 영정이나 위패 등을 두고 봉향하는 사당을 지칭한다.  1973년 5월 서울특별시에서 인정받아 사직 공원 경내 서북쪽에 마련되어 있다. 단군에 대한 봉향은 역사적으로 왕조 국가 및 민간에 의해 동시에 이루어졌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여러 곳에 단군 성전이 설립되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단군 성전에서 단군은 민족의 상징이 되고 있으며, 성전마다 매년 단군이 승하해서 산신이 되었다는 어천절[3월 15일]과 개천절[10월 3일] 행사가 개최되기도 한다. 단군은 종교적 차원의 신앙 대상, 국조 등 여러 형태로 인식된다.

 주 출입문.

 여초 김응현의 글씨.

 단군전.

 

 단군 표준상.

 표준 영정.

 

白岳殿(백악전) - 檀君聖殿(단군성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1-28번지 사직공원 뒤쪽에 있는 사우, 일명 백악전은 우리 겨례의 시조되시는 단군 할아버지를 모시는 성역으로, 성전 안에는 홍석창(洪石蒼)선생이 그린 정부표준 단군영정과 신상균(申尙均)선생이 조각한 국민경모 단군상을 봉안하여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기리고 있다.

성전 경내외에서는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 숙여 옷깃을 여미고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는 국조숭모의 참뜻을 되새겨야 한다.

  단군성전 건립배경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을 말살하기위한 정책으로 인해

역대왕조에서 지내오던 나라제사가 끊어지자 천안시 북면 오곡리 봉황산에서 이 한철(李 漢哲)옹의 지도로 이 숙봉(李 淑峰)여사를 주축으로 민간이모여 숨어서 제사를 지내다가 광복을 맞아 일제에 의해 훼손된 남산에 단군제단을 설치했으나,한국전쟁으로 사정이 여의치 못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사직공원 한편에 있던 무허가 일본암자 및 건물 두채를 이숙봉여사가 사들여 단군.사직이 배달민족의 것인 이상 민간에게만 머무르기 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것이 되길 희망한 나머지 훼손된 우리전통문화 및 역사 바로찾기를 통해 침체된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보전하기위하여 이 숙봉여사를 주축으로 이 정봉(李 貞峰). 이 희수(李 喜秀) 삼자매가 성전 건립역사 9여년만에 담장만 8차례 헐리고 성전도 일곱차례 만에, 단군성상도 3차례 조성하는 등  인.허가로 인한 관청과의 갈등과  단군성전 건립 반대세력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공공건물(서울특별시 소유)로써 1968년 단군성전 및 사직기념관을 건립하고 현정회를 설립하여 이관한후 서울시에 기부체납하였다. 그 후 지금까지 관과 민의 대표가 함께 개천절 및 어천절에 국조단군. 사직. 역대 창업주 등께 춘.추 대제를 올리고 있다.

  단기 4306년(서기1973년) 5월 서울특별시로부터 보호문화재로 인정받은 단군성전은 서기 1989년에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의 희사에 힘입어 사단법인

현정회에서 개축하였으며, 사직기념관은 아직 개축하지 못하고 있다.

전체 대지면적 241,99평(800,7m )에 성전이 16평(52,92m ),정문인 내외삼문이 5,63평(18,64m ),관리실이 32,56평(107,64m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전편액인 단군성전은 김 응현(金 應顯), 사단법인현정회.백악전.단군성전.사직기념회관의 간판은 이 현종(李 賢鍾), 홍익인간의 글씨는 원 중식(元 仲植)

그리고 이화세계는 손 경식(孫 敬植)이 각각 쓴 것이다.

출처 : 바람 통신
글쓴이 : 문화 탐험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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