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향교,서원)

[스크랩] 부여 향교(扶餘 鄕校)

장안봉(微山) 2013. 4. 10. 23:22

 

 향교는 왜 골목 안 깊숙히 들어 앉아 있을까? 전주, 진천, 현풍, 청주 향교 등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부여 향교도 좁은 골목 안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향교 입구에 세워진 홍살문과 하마비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으로, 부여향교는 언제 세웠는지 잘 알 수 없으나 조선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원래 부여읍 구교리의 서쪽 기슭에 세웠던 것을 18세기 중엽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고,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도기념물 125호이다.

 부여 향교의 전체적인 건물 배치는 공부하는 공간인 명륜당이 앞쪽에 있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뒤쪽에 있어 전학후묘의 구조로 되어 있다. 명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마당에서 본 내삼문.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천장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성현들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외의 건물로 공부방인 수선재와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특이하게 대성전 앞에는 다른 내삼문과는 달리 세 곳으로 나누고 협문을 두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수선재.

 참의공 민치준 발굴비가 향교 앞에 초라하게 서 있다.

부여 향교는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많이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지금은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출처 : 바람 통신
글쓴이 : 문화 탐험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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