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도)

[스크랩] [경남 울산]온양방씨 시조 방지(方智) 묘소

장안봉(微山) 2012. 12. 15. 16:10

온양방씨(溫陽方氏)

 

온양(溫陽)은 충청남도 아산시(牙山市)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탕정군(湯井郡)이었다. 671년(신라 문무왕 11)에 탕정주(湯井州)로 승격되어 총관(摠管)이 파견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탕정군으로 강등되었으나 음봉현(陰峰縣)·기량현(祈梁縣)·평택현(平澤縣)을 영현으로 관장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온수군(溫水郡)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에 천안부(天安府)에 속하게 하였다. 1172년(명종 2) 현으로 강등되었다. 1414년(태종 14)에 신창(新昌)과 병합하여, 온창현(溫昌縣)이라 이름을 바꾸었다가 1416년에 다시 온수현을 분리하였다. 1441년(세종 23)에 왕이 온천에 행차한 후 병에 차도가 있어 온양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이후에도 역대 왕들은 이곳 온천에 자주 행차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 온양군이 되었고, 1896년에 충청남도 온양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온양군은 아산군·신창군과 함께 아산군으로 통합함으로써 폐지되었다. 1941년 관할 군내면·서면·읍내면을 합해 만든 온양면이 온양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인근지역을 편입해 면적을 확장하던 온양읍이 1986년에 시로 승격, 아산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온양시와 아산군을 통합하여 아산시가 되었다.

 

온양방씨(溫陽方氏) 시조 방지(方智)는 당(唐)의 한림학사(翰林學士)로서 서기 669년(신라 문무왕 9)에 나당동맹(羅唐同盟)의 문화사절로 신라에 와서 설총(薛聰)과 함께 구경(九經)의 회통(會統)을 국역하였고, 장씨(張氏)와 혼인하여 가유현(嘉猷縣: 상주의 옛 이름)에 정착하였다. 그의 후손으로 전해지는 방운(方雲)은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를 정벌하는 데 무공을 떨쳤고 고려 창업에서부터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60여년 간 6대에 걸쳐 무공을 쌓아 중무장군(中武將軍)과 대장군(大將軍)을 거쳐 좌승지(左承旨), 지성사(知省事) 등을 역임한 후 좌복야(左僕射)에 이르렀다. 993년(성종 12) 거란(契丹)이 침입했을 때 방운은 공훈을 세워 온수군(溫水君: 온수는 온양의 옛 명칭)에 봉해지고 온양(溫陽), 신창(新昌), 아산(牙山)의 3읍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았다. 후손들은 방지를 시조로 하고 방운을 1세조로 하고 온양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계승하였다.

 

방운의 12세손 방우선(方于宣), 방우번(方于蕃), 방득세(方得世)의 아들 대에서, 방서(方曙)를 파조(派祖)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 방현(方玄)을 파조로 하는 간의공파(諫議公派), 방훤(方暄)을 파조로 하는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방적(方迪)을 파조로 하는 태상경공파(太常卿公派), 방가달(方可達)을 파조로 하는 대장군공파(大將軍公派), 방신우(方臣佑)를 파조로 하는 상락부원군파(上洛府院君派), 방신제(方臣悌)를 파조로 하는 광록대부공파(光祿大夫公派)로 분파되었으나, 안렴사공파와 상락부원군파는 절손되었고 현재는 다섯 파만 이어진다.
방씨의 본관은 온양을 비롯하여 상주(尙州), 군위(軍威), 신창(新昌), 개성(開城), 강화(江華) 등 26본이 문헌에 전해지나 모두가 한 뿌리이며 근래에는 온양으로 단일화되고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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