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도)

[스크랩] [경북 성주]벽진이씨 시조 이총언(李悤言) 묘소

장안봉(微山) 2012. 12. 15. 16:11

벽진이씨(碧珍李氏)

 

벽진(碧珍)은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지역의 옛 행정구역이다. 가야연맹의 하나인 벽진가야국(碧珍伽倻國)을 신라가 멸망시키고 벽진군(碧珍郡) 또는 본피현(本彼縣)이라 하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하여 성산군(星山郡)에 속하게 하였고, 후에 벽진군으로 개칭하여 치소를 지금의 성주읍에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고령군 등을 속군으로 삼는 대읍이 되었다. 1295년(충렬왕 21)에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 1308년(충렬왕 34)에 성주목으로 승격했으며, 1310년(충선왕 2)에는 다시 경산부로 강등되었다. 1614년(광해군 6) 무렵 잠시 신안현으로 개칭, 강등되기도 했으나 1895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개편된 이후 성주군 벽진면이 되었다.

 

벽진이씨(碧珍李氏)의 시조 이총언(李悤言)은 신라 말에 벽진군(碧珍郡) 태수(太守)를 지낸 인물이다. 그의 나이 61세에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三重大匡) 개국원훈(開國元勳) 벽진장군(碧珍將軍)에 올랐고, 벽진백(碧珍伯)에 봉해졌다. 벽진장군 이총언의 아들 이영(李永)도 18세로 왕건을 도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웠으므로, 그 충절을 가상히 여긴 왕이 대광(大匡) 사도귀(思道貴)의 딸과 혼인하게 하고 식읍(食邑)을 하사하였다. 그 후 이영은 대제학(大提學)과 지경산부사(知京山府使)를 역임했고, 그의 아들 이방회(李芳淮)는 추밀원사(樞密院使)를 역임하여 가세를 일으켰다. 벽진(碧珍)은 성주(星州)의 옛 이름으로, 후손들은 이총언을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벽진으로 삼게 되었다. 벽진이씨는 6세손인 이실(李實) 대까지 대대로 관향인 벽진에 세거했는데 7세손 이방화(李芳華)가 유곡(酉谷:椧公)에 옮겨가 살았다.

 

금릉공파(金陵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사직공파(司直公派)·좌랑공파(佐郞公派)·첨지공파(僉知公派)·부사공파(府使公派)
문정공파(文靖公派)- 화수헌공파(花樹軒公派)·송암공파(松庵公派)·진조당공파(眞操堂公派)
산화공파(山花公派)- 정헌공파(正獻公派)·판서공파(判書公派)·감무공파(監務公派)·참판공파(參判公派)·여은공파(麗隱公派)·도정공파(都正公派)
지후대장군공파(祗侯大將軍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평정공파(平靖公派)·감정공파(監正公派)

 

 

재실 경수당(敬收堂)

시조 묘소 원경

 

 

묘후경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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