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67) 상주 「고녕가야국 태조 고로왕」대제

장안봉(微山) 2019. 7. 25. 17:59
(67) 상주 「고녕가야국 태조 고로왕」대제
번호70작성일2016.04.09조회수541
작성자김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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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녕기원(古寧紀元) 1975년!
    상주 함창 「고녕가야국 태조 고로왕」대제

    오늘 상주 함창에서 고녕가야국 태조(太祖) 고로왕(古露王)의 1975주년 대제가 고녕가야왕릉 옆에 있는 숭녕전(崇寧殿)에서 11시에 수백 명의 후손들이 운집한 가운데 개최되었습니다.

    상주는 경상도의 웅도(雄都)로서 광활한 경지면적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역사와 전통의 고장이지요.
    경주(慶州)는 수기의 왕릉이 소재하고 있고 그 전통의 맥이 명확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옛 삼국시대를 논 할 때에 역사적인 면에서는 언제나 대표적인 고도(古都) 이다.

    우리 상주에도 일찍이 왕릉으로 칭하는 두 곳에 큰 덤이 있으니 하나는 백두대간 밤원숭덕지맥의 끝자락인 사벌면의 둔진산 자락에 「전 사벌왕릉傳 沙伐王陵」이요, 또 하나는 백두대간 갈령작약지맥의 끝자락인 함창의 「전 고녕가야왕릉傳 古寧伽倻王陵」으로 지방문화재기념물 제26호이다.

    고녕가야가 가야제국중의 하나로 상주함창을 무대로 존재하였다고 전하는데, 이는『삼국사기 권34 지리지, 고려사 권57, 지리지 상주목 함창군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함창현읍지』등에서 적고 있으나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문헌이나 유적이 확실치 않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함창의 능(陵)은
    까마득히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서기 42년 낙동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6가야 중 함창, 문경, 가은 지방을 영역으로 하여 나라를 세운 고령가야 태조의 능이라 전하여 오기에 그 연륜 만은 대단하다 할 것이다. 조선 순조 대에 만들어진 「함창현읍지」 능묘 조에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陵墓伽倻王墓 在縣南二里左右麓有二墓世傳爲王陵本邑胥吏多咸寧之金稱爲後裔改封築竪碑歲祀之』
    (능묘 가야왕묘 현의 남쪽2리 좌우 산록에 두 묘가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왕릉이라 한다. 본 읍의 서리 중에 함녕 김씨가 많아 후예로 칭하여 봉분을 쌓고 비를 세우고 해마다 제사하였다고 기록 하고 있다)

    조선조 선조25년(1592년)에 경상도 관찰사 김수와 함창현감 이국필 등이 무덤 앞에 묻혀있던 묘비를 발견하여 가야왕릉임을 확인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숙종38년(1712년) 왕명으로 묘비와 석양 등의 석물을 마련하고 후손들에 의하여 여러 차례 묘역이 정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태조왕의 왕릉은 서릉(西陵), 왕비릉을 동릉(東陵)이라 부르는데 왕릉은 삼국시대의 일반적인 원형 토분으로 약간 구릉 지대의 넓은 공간 중심부에 자리하고 약 200m 정도로 서로가 떨어져 있다. 이 능의 규모는 왕릉의 경우 봉토의 직경이 동~서 14m, 남~북이 13m 정도이고, 능의 주변은 토석담장에 기와를 얹었고 비명(碑銘)은 「古寧伽倻國太祖王陵」이고 문인석, 석양(石羊), 장명등이 서 있지요.
    왕비릉의 비명(碑銘)은 「古寧伽倻國太祖王妃陵」이고, 형태는 원형에 가까우며 동~서 11m, 남~북 12m 정도로, 왕릉(증촌리 7번지)과 왕비릉(증촌리 20번지)은 증촌리에 소재하나 왕비릉의 접근은 오사리가 용이하다.

    왕릉 앞에
    만세각(萬歲閣: 1930년대 건립)은 함창김씨 재사(齋舍)로 정면5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있으며, 三門은 맞배지붕으로 현판에 승무문(承武門)이라 적혀있고 숭녕전, 홍살문, 사적비등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傳 왕릉이 한기의 큰 덤으로 전해 오는 게 다수이지만 함창의 왕릉은 왕릉과 왕비릉이 뚜렷하게 구분하여 전해지는바 상주와 함창의 후예로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가슴 아픈 일이나 앞으로 많은 연구와 학술적인 고증을 거쳐 언젠가는 “傳”자를 사용하지 않는 가야왕릉임이 밟혀질 날을 기대해본다.

    소유는 咸昌金氏 門中으로 함창김씨의 연원은 「시조 고녕가야왕은 김해부 구지봉에서 김수로왕과 함께 금함에서 태어났다 하여 김씨가 되었으며, 고녕가야국은 지금의 함창이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시조의 발상지라 하여 본관을 함창으로 하였다. 그 후 세계(世系)를 상고할 수 없어 종제(宗悌)를 중시조로 하고 있다」라고 한다.
    매년 음력 3월 3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는 우리상주지역에 감히 「王 」을 거론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참고: 함창읍지, 한국성씨총람, 고녕가야제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