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자산(銀尺山)! 작은 언덕배기에 불과 하나 그 의미는 대단하다.
고려 때(1314년) 경주와 상주의 첫 글자를 따서 ‘경상도’라 이름한 것이 바로 은자산 때문이라는 얘기가 전해오는데요. 이 산(은척면 남곡리 산130-1)은 시도27호선으로 面 소재지인 봉중리에서 남곡리를 거쳐 황령리로 가는 길목으로 옛날 은자(銀尺)가 묻혀 있다는 나지막한 산(언덕)으로 소나무가 서 있어 제방 같아 보입니다 . 산줄기의 근원은 백두대간상 속리산 천왕봉에서 형제봉에 이르러 동으로 가지를 친 “갈령작약지맥”으로 청계산에서 배나무골 위를 돌아 남산을 일으키고, 동으로 상주의 자랑 성주봉을 짓는다. 한편 남산에서 황령재를 지나 칠봉산에 이르고 北의 작약산으로 이 지맥은 이어지는데, 칠봉산 정상에서 동으로 7봉...1봉으로 점차적으로 낮아져 명추대(鳴湫臺)를 이루고, 모산·미산마을 뒤를 감돌아 그 마지막이 은자산(약 120m정도)이지요.
상산지에는 “上州시대에 州治所”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이 지역은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경계지역으로 구전설화를 보면
「옛날 신라에는 금(金)으로 만든 금자와 은(銀)으로 만든 은자가 있었는데, 이들 자(尺)는 사람의 목숨을 연장시키는 것이기에 사람의 수만 계속 불어나 식량도 모자라고, 하늘의 기운에도 거스르게 되자 나라님도 걱정을 할 지경에 다다르자 이 두자를 영원히 감추기로 하였다. 그래서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믿음직한 곳을 찾아 금자는 경주의 금척(경주시 건천읍 금척리)에 묻고, 은자는 상주 은척(상주시 은척면 남곡리)의 산속에 활인척(活人尺, 銀尺)을 묻어 오늘의 은척면과 산 이름이 생겼다고」한다. 경주의 금척은 사적 제4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상주의 은척에도 안내 설명문이 서 있지요. 문헌설화로서 “금척원의 유래” 또는 “몽금척”으로도 불리고, 구전설화로는 “꿈 잘 꾸어 임금의 사위가 된 머슴”과 “양국 부마가 된 머슴” 그리고 “금대야 은대야” 등의 이름으로도 전하여 옵니다.
따라서 경주시의 건천읍과 상주시의 은척면이 “자매결연협약식(2015.6.24)”을 맺고 두 지역의 지명유래를 기반으로 스토리를 연계한 마을단위 문화교류를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상주의 은척면에서는 시 단위의 큰 행사에 은자에 대한 가장행렬로 은자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은자산 위 계곡에 명추(鳴湫)·용추(龍湫)·명연(鳴淵)의 3층 폭포가 있어 언제나 맑은 담(潭)을 이루고, 이곳은 절승(絶勝)이라 하늘이 갈무리 한 은척의 명구(名區)라 한다. 이곳 칠봉산 쪽의 언덕이 바로 명추대(鳴湫臺)이다. 여기에 순천인(順天人) 김석엽(金錫燁:1751~1817)이 사가정(四可亭)을 세웠으나 병화(兵火)를 겪고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쓰러질 지경에 이르자 1980년 자손들이 철거하였으나, 2001년 9월에 상주시에서 옛 그 자리에 중건(남곡리 584)하였다. 사가(四可)란, 소학(小學)의 감주(紺珠)에서 취한 말로 「可勉者行 可信者言 可委者命 可記者天. 힘쓸 것은 행실, 기억할 것은 말, 맡길 것은 운명, 미덥게 할 것은 하늘」이며 선생이 자연을 벗하여 수양하고 독서하며 후진을 양성하던 자리라고 하니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사가정에서 좀 더 오르면 왼쪽에 “성주봉자연휴양림”이 있어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으며, 그 반대인 칠봉산(七峰山: 597.9m)은 봉우리가 7봉(峰)이라 이름이 지어졌는데, 바위와 소나무가 적당히 어우러져 있으며, 사선암(四仙巖), 조자룡 굴 등 볼거리가 있고, 함창, 이안에서 바라보면 이 산은 마이산과 같아 보인다. 이어 더 올라 고개를 넘으면 호국의 도량 황령사(黃嶺寺:638년 창건)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앞에는 청정을 자랑하는 황령지(黃嶺池:1975년 축조)가 있지요. 은자산 아래로는 바로 이웃한 곳에 “상주동학교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경북도민속자료 제120호이다.(참고:상주문화재, 은척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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