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스크랩] 주자의 『대학』 ?矩之道論

장안봉(微山) 2016. 6. 4.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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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의 『대학』 絜矩之道論


이상돈


<차 례>

1. 서론
2. 혈구지도의 의미와 근거
3. 혈구지도의 이유와 조건
4. 혈구지도의 특성
5. 혈구지도의 실상
6. 결론


국문초록


『대학』의 絜矩之道는 자로 재서 方正하게 하다라는 의미이다. 혈구지도가 恕의 의미와 상통하는 것으로서 혈구지도와 서는 단지 도덕적 품성에서 나오는 정신적 공감과 배려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 정치적 맥락에서 실질적 조치를 하는 것이다. 주자는『대학』의 혈구지도란 도덕적 감화에 기반한 구체적인 정치적 조치로서 이해한다. 그것은 존재 각각의 합당한 몫을 침해하지 않고 보장하여 각각의 존재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방정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혈구지도론의 중심에 義利之辨이 자리잡고 있으며 여기서 유가의 정치론과 정의론이 도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제어] 주자, 대학, 絜矩之道, 恕, 義와 利, 정치, 정의

**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



1. 서론


주자는『예기』의 한 편으로 있던 「중용」과 「대학」을 독립적 텍스트로 전환시켜『논어』『맹자』와 함께 이른바 사서체제를 만들었다. 주자학은 사서를 육경보다 더 우선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주자 경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사서의 탄생과 함께『대학』과 『중용』의 의미가 철학적인 중요성을 얻게 되었다. 주자는『대학』을 帝王之學으로 규정하고 유가의 전체적인 사유 구도가 잘 나타난 책으로 보았다. 『대학』에는 주자학의 중요한 철학적 개념들인 명덕과 격물치지, 성의와 정심 등이 자리잡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絜矩之道의 의미를 중심으로『대학』의 治人과 外王의 문제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기존의 연구에서 혈구지도는 대개 恕와 함께 논의되는 경우가 많았다.1) 반면 혈구지도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많지 않다. 먼저 김철운은 혈구지도를 공생 공존의 정치이념으로 규정하여2) 혈구지도가 단순한 배려의 마음이라는 이해를 벗어나 정치적 맥락에서 활용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이익과 정의의 관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손성하는 혈구지도를 소통이성의 교류원칙으로 보고 있으며,3) 이상호는 자기 이익 추구에 기반한 혈구지도와 순수한 본마음에 기반한 혈구지도를 대비하여 제시하고 있다.4)

이러한 관점들은 대체로타자에 대한 도덕적 마음가짐으로 혈구지도를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희정은 혈구지도 해석에서 자로 재는 것과 재서 방정해진다는 견해를 대비시키고 있다.5) 이는 조선후기 성리학적 사유와 실학적 사유의 대비라는 관점에 입각해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각도보다는 주자의 혈구지도 이해에 담긴 정치적 맥락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혈구지도가 단지 도덕적 인격 차원에 맥락으로 한정되지 않고 사회 정치적 맥락에서 이익과 정의의 논의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밝혀보고자 한다.저 絜矩之道의 해석에 있어서 자로 잰다는 의미와 함께 자로 재서 方正하게 하다라는 의미가 겸비되는 것이 주자의 해석의 초점임을 밝혀보고자 한다.

여기서 絜矩之道가 恕의 의미와 상통하는 것으로서 絜矩와 恕는 단지 도덕적 품성에서 나오는 정신적 공감과 배려만이 아니라 존재 각각의 합당한 몫을 침해하지 않고 보장하는 의미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혈구지도론의 중심에 義利之辨이 자리잡고 있으며 여기서 유가의 정치론과 正義論이 도출되고 있음을 고찰하는 의미가 있다.


1) 恕 또는 忠恕는 유학에서 매우 큰 주제이므로 별도의 전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본 논문에서는 혈구지도와 연관하여 간략하게 언급할 것이다.
2) 김철운, 『유가가 보는 평천하의 세계』(철학과 현실사, 2001).
3) 손성하, 「혈구지도: 문화자각에서 문명대화까지」(『사회사상과 문화』, 2005).
4) 이상호, 「대학의 혈구지도에 관한 연구」(『동양철학연구』, 2013).
5) 조희정, 「대학 혈구지도의 해석 문제」(안동대학교 석사논문, 2014).



2. 혈구지도의 의미와 근거


1) 혈구의 의미


혈구지도는 혈구의 도이다. 이는『대학』에서 두 번 언급되는데 모두 평천하장에서 나타난다.6) 주자는『대학장구』의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혈은 헤아림이다. 구는 네모를 만드는 것이다.”7)


혈은 헤아리거나 재는 의미이고, 矩는 네모를 만드는 자인 曲尺 즉 곱자이다.
이는 矩가 측정의 도구로서 하나의 尺度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혈구는 곱자로 재거나 헤아린다는 의미가 된다.8) 그 곱자는 무엇인가? 곧 우리의 마음이며 마음의 욕구이다.


6) 『대학』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7) 『대학』 10-01, 주자 주석: “絜, 度也. 矩, 所以爲方也.”
8) 이는 마음을 저울의 이미지로 비유한 것이다. 유학 내부에서 마음을 거울과 저울의 이미지로 비유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정원재, 「유학에서 보는 마음」(『마음과 철학』 서문, 2013).



“이른바 혈구에서 矩는 心이다. 우리 마음이 욕구하는 것이 곧 타인이 욕구하는 것이다.

내가 孝弟慈하고 싶으면 반드시 타인도 모두 나의 孝弟慈와 같게 하려고 한다.”9)

9)『어류』 16:215, “所謂絜矩者, 矩者, 心也, 我心之所欲, 卽他人之所欲也.

我欲孝弟而慈, 必欲他人皆如我之孝弟而慈.” 人傑(51이후).


곱자로 잰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내 마음으로 헤아린다는 뜻이다. 이는 내 마음이 하나의 척도가 되어 사물을 측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인심과 도심의 구분이 있듯이 그 자체로 객관적인 척도가 될 수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현실적인 주관성의 장애가 제거된 순수한 상태로 한정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헤아림의 대상은 곧 남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혈구란 나의 마음이라는 자로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런데 주자는 단지 이렇게만 해석하지 않고 있다.


"앞 편지의 혈구의 설은 대체로 맞습니다. 두 글자의 글 뜻은 대개 곱자로 재서 그 방정함을 취한다는 것입니다."10)

10)『주희집』 50-57(2466쪽)(68세) 答周舜弼 10,

“前書絜矩之說大槪得之. 二字文義, 蓋謂度之以矩而取其方耳.”


혈구에서 방정함을 취한다라고 해석한 것은 矩의 의미가 단지 곱자라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곱자를 가지고 만드는 네모 즉 방정함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측정의 도구로는 마음에 대한 비유에서 자주 쓰이는 저울[稱, 權]이나 자[尺]가 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矩가 네모 반듯한 사각형을 만드는 것이 주는 이미지를 산출해 내지는 못한다. 주자가 矩를 자로 보면서 방정함의 의미를 부여하는 데는 이러한 점도 작용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絜矩는 사물을 헤아려 그 방정함을 얻는 것이다. 그 아래 글로 구해보면 알 수 있다.
지금 자로 사물을 헤아린다고 하면 마땅히 矩絜이 되어야 그 뜻이 된다.”11)


11)『주희집』 44-49(2113쪽)(50세이전: 전목) 答江德功 2,

“絜矩者度物而得其方也. 以下文求之可見. 今曰度物以矩, 則當爲矩絜乃得其義矣.”

조선 후기에 혈구지도를 이해하는 데 이 편지를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성호 이익과 그의 제자인 정산 이병휴는 이 편지에 기반하여 혈구를 재서 방정하게 하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남당 한원진은 자로 잰다는 의미가 주자의 뜻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관련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 최석기, 「남당 한원진의 대학해석의 요지와 그 의미」(『남명학연구』제21집, 2006). 이러한 관점 차이를 주자학적 사유와 실학적 사유의 대비로 보는 해석은 다음을 참조. 조희정, 「대학 혈구지도의 해석 문제」(안동대학교 석사논문, 2014).
참고적으로 살펴보면 농암 김창협은 이 편지보다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에 혈구의 뜻이 명백히 설명되었다며 자로 잰다는 의미를 택하였다. 『農巖別集』 卷之三 附錄二 語錄 魚有鳳錄 참조.
한편 대산 이상정 또한 강덕공에 답한 이 편지만으로 혈구의 뜻을 단정하지 말라는 견해를 밝혔다. 『大山先生文集』 卷之四十 雜著 中庸大學疑義辨 참조.



주자는 絜矩를 단지 곱자로 헤아린다는 의미로 보지 않는다. 만약 그러한 뜻이라면 矩絜이 되어야 맞는다는 주장이다. 즉 주자에게 혈구는 기본적으로 자로 재는 것인데 矩字는 단지 자라는 의미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矩는 재서 방정해진다는 의미도 나타내는 것으로 주자는 보고 있다. 『대학』 원문의 주자 주석에는 이
점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개 혈은 재다이며 구는 네모를 만드는 도구이다. 자기의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려 남이 싫어하는 바가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알면 감히 자신이 싫어하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

만약 나의 몸이 한결같이 여기에 처한다면 상하사방에서 남과 나의 사이에 각각 그 몫을 얻고 서로 침범하여 넘어서지 않아서 각각 그 가운데에 나아가 점유한 바의 자리를 견주어보면 그 넓고 좁음과 길고 짧음에

또 모두 고르게 한결같아 자른 듯이 방정하여 남거나 부족한 곳이 없게 된다. 이것이 곧 이른바 혈구이다.”12)

12)『대학』 10-01, 주자주석:

“蓋絜, 度也. 矩, 所以爲方也. 以己之心度人之心, 知人之所惡者不異乎己,則不敢以己之所惡者施之於人.

使吾之身一處乎此, 則上下四方, 物我之際, 各得其分, 不相侵越, 而各就其中, 挍其所占之地, 則其廣狹長短,

又皆平均如一, 截然方正, 而無有餘不足之處, 是則所謂絜矩者也.”


이 인용문에서 ‘만약 나의 몸이’ 앞에서는 혈구를 곱자로 재다 즉 나의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리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혈구의 결과로서 물아의 구분이 없이 각각 자기 자리를 얻는 균평 방정한 상태를 혈구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혈구가 내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림이라고 하였으므로, 주자의 뜻에
따라 재구성한다면 혈구는 자로 재서 방정하게 하다 또는 내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려 방정하게 하다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혈구에서 矩는 곱자 즉 인간의 마음이지만, 곱자로 재서 방정하게 된 상태까지를 아울러 의미한다. 주자는 다른 곳에서는 직접적으로 혈구란 사방이 균평해지는 도리13)라고 한다.

혈구가 비록 자로 재다라는 의미가 본질적 뜻이라 하더라도 균형, 공평, 방정의 뜻이 내재된 것으로 주자는 보고 있다. 여기에는 구의 의미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즉 구는 곱자이며 方 즉 네모를 만드는 도구이다. 방은 네모이면서 또한 방정함의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자로 재서 얻은 네모가 방정하다는 점에서 혈구를 자로 재서 방정하게 하다라고 주자는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혈구를 단지 자로 재다가 아니라 재서 방정하게 하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어떤 의의가 있는가?

그것은 평천하장의 혈구지도 구절 뒤의 내용이 무엇인지보면 알 수 있다.

미리 언급하자면 그것은『대학』이 “不以利爲利, 以義爲利”로 끝나는 것처럼 혈구지도가 결국 義 즉 이익의 공정한 배분의 맥락에서 제기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즉 사물 각각에게 합당한 몫을 주는 것이 바로 균형있고 공평하며 방정한 상태인 것이다.14)


13)『어류』 16:217, “問: “‘上老老而民興孝’, 下面接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似不相續, 如何?”

曰: “這箇便是相續. 絜矩是四面均平底道理, 敎他各得老其老, 各得長其長, 各得幼其幼.” 㝢(61이후).
14) 주자는 혈구지도는 평천하의 방법으로 치국의 방법과는 다르다고 본다. 이 점도 혈구지도를 자로 재서 방정하게 하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적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2) 혈구지도의 근거


기본적으로 혈구가 자로 잰다 즉 나의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라고 할 때 문제는 나의 마음과 남의 마음의 同異여부이다. 만약 나의 마음이 남의 마음과 다르다면 그 헤아림이 합당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자가 구를 마음으로 본 것은 자가 사물을 측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이 마음이 사물과의 관계에서 그 관계맺음의 합당함을 재는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이다. 이는 혈구지도에는 인간 마음의 동일성이 전제되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平天下가 治國에 있다는 장을 물었다.

“이 세 구절은 위에서 행하면 아래서 본받음이 리의 필연임을 보여주며 또 인심이 같은 바임을 보여준다.”

…… 또 말하였다.

“무엇으로 인하여 그렇게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가. 대개 사람의 마음이 같게 그러한 것이 있다.”15)"


인간의 마음은 동일성이 있기 때문에 혈구의 도가 있게 되며 또한 동일한 마음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기준으로 남에게 대처하는 것이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무엇을 잰다고 할 때 재는 도구는 재는 대상에 따라 영향받지 않고 항상 일정 불변해야 한다. 주자가 矩를 心으로 보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하나의 척도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심 자체를 동일한 척도로 볼 수는 없지만 리가 심에 구비된 점에서 심의 동일성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16)


15)『어류』16:212, “問 “平天下在治其國” 章. 曰:

此三句見上行下效, 理之必然, 又以見人心之所同. ‘是以君子有絜矩之道’, 所以以己之心度人之心, 使皆得以自盡其興起之善心. 若不絜矩, 則雖躬行於上, 使彼有是興起之善心, 而不可得遂, 亦徒然也.”

又曰: “因何恁地上行下效? 蓋人心之同然. 所以絜矩之道: 我要恁地, 也使彼有是心者亦得恁地. 全章大意, 只反覆說絜矩.” 賀孫(62이후).
16) 본 논문의 심사에서 義가 마음의 본질로서 혈구를 가능하게 하는 내적 근거가 된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고견이 있었다. 즉 심에 내재한 본성인 義가 실질적으로 마음의 동일성의 의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음의 동일성은 자칫 심에 보편성을 부여한 양명학적 논리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혈구지도의 이유와 조건


혈구지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혈구지도는『대학』의 平天下장에 나오는 말이다. 이것이 평천하와 관계된다는 점에서 治國의 논리와 변별되는 의미가 있다. 주자는 치국과 평천하를 同道異術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즉 道[원리, 원칙]가 다른 것은 아니지만 術[기술, 방법]의 차원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즉 孝弟慈 이외의 어떤 다른 도가 있어서 그것이 평천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여기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자.


1) 혈구지도의 이유


“윗 장에서 齊家治國의 도를 논하여 이미 孝弟慈로 말을 하였다. 여기서 治國平天下의 도를 논하는데 다시 이것으로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세 가지는 人道의 큰 단서로 보통 사람의 마음이 함께 얻은 것이다. 家로부터 國에 미치고 國으로부터 天下에

미치는데 비록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그 도는 불과 이와 같을 뿐이다.

그러나 앞장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미루어 남이 감화되는 것으로 말하였는데, 이 장에서는 또 거듭 말하여 사람의 마음이 같은 것으로 비로소 그만 둘 수 없는 것이 이와 같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군주는 단지 감화시킴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조처함이 있는 것이다.”17)

17) 『대학혹문』 10-1,

“或問: “上章論齊家治國之道, 旣以孝弟慈爲言矣. 此論治國平天下之道, 而復以是爲言, 何也?”

曰: “三者, 人道之大端, 衆心之所同得者也. 自家以及國, 自國以及天下, 雖有大小之殊,

然其道不過如此而已. 但前章專以己推而人化爲言, 此章又申言之, 以見人心之所同而不能已者如此,

是以君子不唯有以化之, 而又有以處之也.”


家․國․天下 모두가 孝弟慈의 원리로 운영된다. 이것이 同道이다. 즉 孝弟慈는 인심의 동일성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덕목이다. 가장 큰 전제는 인심의 동일성이다. 그것에 따라 9장의 治國에서 효제자의 실천이 국가에 가르침이 됨을 말한다.
주자는 군자가 창도하여 선한 단서를 흥기시킨 것 즉 감화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上行下效 즉 위에서 도덕을 실천하면 아래에서 본받는다라는 것이다. 초점은 다음에 있다.

즉 家와 國에서는 감화[化]를 말하지만 천하에서는 감화만이 아니라 조처[處]함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異術이다. 이는 무슨 의미인가?


"대개 인간에게 心이 되는 까닭은 비록 같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貴賤의 형세가 다르고 賢愚의 기품이 달라서 위에 있는 군자가 참되게 알고 실제로 실천하여 창도함이 있지 않으면 아래에서 이 마음이 있는 자가 또한 감동하여 흥기하는 바가 없게 된다.

다행이 창도하여 흥기함이 있는데 윗사람이 곧 혹 저 사람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여 그것에 조처하는 바의 도를 잃는다면 저 사람이 흥기한 바가 혹 완수되지 못하고 도리어 고르지 못하게 되는 안타까움이 있게 된다.

그래서 군자는 마음의 같음을 살피고 혈구의 도를 획득한 연후에 이에 조처하여 흥기한 선한 단서를 완수할 수 있다.”18)"

18)『대학혹문』 10-1,

 “蓋人之所以爲心者, 雖曰未嘗不同.

然貴賤殊勢, 賢愚異稟, 苟非在上之君子, 眞知實蹈, 有以倡之, 則下之有是心者, 亦無所感而興起矣.

幸其有以倡焉而興起矣, 然上之人乃或不能察彼之心, 而失其所以處之之道, 則彼其所興起者, 或不得遂而反有不均之歎.

是以君子察其心之所同, 而得夫絜矩之道, 然後有以處此, 而遂其興起之善端也.”


제 9장의 제가 치국에서 이미 감화를 말하였고 평천하장은 다만 조치의 리를 말하였다.19)

19)『어류』 16:249, “第九章十章齊家․治國, 旣已言化, 平天下只言措置之理.” 泳(66세).


"老老하면 孝에 흥기하고 長長하면 弟에 흥기하여 고아를 긍휼히 여기면 배반하지 않는다는 이 세 구절은 위에서 행하면 아래서 본받는다는 도리를 설명한 것이다.

 ‘그래서 군자는 혈구의 도가 있다’는 이것은 도리어 政事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두 글자는 윗 글을 맺었으니 군자는 이러한 이유로 혈구의 도가 있다는 말과 같다.

이미 이러하므로 모름지기 도리어 그에게 자리를 얻도록 처치해서 그로 하여금 각각 흥기한 마음을 완수하게 해야 된다.20)"

20)『어류』 16:214,

“老老興孝, 長長興弟, 恤孤不倍, 這三句是說上行下效底道理. “

"是以君子有絜矩之道”, 這卻是說到政事上.

 “是以”二字, 是結上文, 猶言君子爲是之故, 所以有絜矩之道.

旣恁地了, 卻須處置敎他得所, 使之各有以遂其興起之心始得.”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중요한 차이는 10장인 평천하장은 處, 措置, 處置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9장의 化와 대비되는 맥락에서 쓰이고 있다. 處는 對處와 處理, 措處 등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모두 어떤 사태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의미이다.

인용문의 措置는 기본적으로 사태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거나 그러한 대책을 의미한다. 處置 또한 일을 감당하여 치러 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평천하장의 혈구는 모두 단지 도덕적 감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더 나아가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어떠한 정치적 조치와 대책을 세운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사태에 대한 대책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도덕을 통해 흥기시킨 선한 마음을 완수하는 것이다. 여기서 도덕의 감화가 선한 마음의 흥기로 본다면 혈구는 흥기한 마음을 정치적 대책을 통해 완수하게 하는 것이다. 그 조치는 존재에게 그의 자리를 얻게 하는 것[득소]이다. 이는 각득기소의 의미로 각각의 존재가 각각 자기 몫을 얻음을 의미한다. 즉 존재가 제자리를 찾을 때 흥기한 마음이 완수되는 것이다.21)

 즉 治國의 9장, 平天下의 10장 모두 孝弟慈가 핵심인데 9장은 上行下效의 善端 興起한 感化를 말하고 있고 10장은 감화를 기반으로 하는 혈구로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조처 즉 정치적 행정적 대책과 조치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혈구는 단지 심리상의 어떤 공감적 태도만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위로 도출된 조치이고 대책인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유가가 보는 정치의 중요한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즉 기본적으로 유가의 정치는 德治이지만 단지 도덕적 감화의 차원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학』의 9장과 10장의 구분에서 나타나는 정치의 의미는 도덕적 감화를 완수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의 수립과 시행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1)『어류』 16:221,

“問絜矩之道. 曰: “能使人興起者, 聖人之心也; 能遂其人之興起者, 聖人之政事也.””廣(65이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주자는 ‘위에서 노인을 노인으로 대하면 백성은 효에 흥기한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혈구의 이해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즉 上老老에서 그 ‘노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재경이 물었다. 上老老而民興孝는 아마 곧 저 보통 사람의 노인을 노인으로 대한다고 말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다. 이 老老 長長 恤孤는 자신의 몸에서 절실하고 가까운 곳에 나아가 말한 것이니 이른바 家齊이다. 民興孝 興弟 不背하게 되어야 백성의 감동하여 흥기한 곳에 나아가 治國과 國治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上行下效하여 그림자와 메아리보다 빠르기 때문에 인심이 같은 바가 이와 같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군자는 반드시 혈구의 도가 있다’ 이 한 구절에서야 혈구의 일을 이끌었고 이 아래에서야 혈구를 해설하여 결론지어 말하기를 ‘이것을 혈구의 도라 한다’라고 하였다. 대개 인심의 감동의 같음이 이와 같다.

그래서 군자는 모름지기 혈구의 마음을 미루어 써서 천하를 고르게 한다. 이 얼마나 분명한가!

재경의 설 같은 경우는 그것이 곧 혈구이니 아래에 다시 허다하게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재경은 老老 長長을 혈구라고 오해한 것이다.

이른바 문왕의 백성은 춥고 굶주린 노인이 없었다라는 것은 모두 혈구를 한 뒤의 일이니, 어떻게 老老라고 말하겠는가?”22)"

22)『어류』 16:213,

“才卿問: “‘上老老而民興孝’, 恐便是連那老衆人之老說?”

曰: “不然. 此老老․長長․恤孤方是就自家身上切近處說, 所謂家齊也.

民興孝․興弟․不倍此方是就民之感發興起處, 說治國而國治之事也.

緣爲上行下效, 捷於影響, 可以見人心之所同者如此. ‘是以君子必有絜矩之道也’, 此一句方是引起絜矩事. 下面方解說絜矩, 而結之云: ‘此之謂絜矩之道.’ 蓋人心感發之同如此,

所以君子須用推絜矩之心以平天下, 此幾多分曉!

若如才卿說, 則此便是絜矩, 何用下面更絮說許多.
才卿不合誤曉老老․長長爲絜矩, 所以差也.

所謂 ‘文王之民無凍餒之老者’, 此皆是絜矩已後事, 如何將做老老說得!”” 僩(69이후).


제자의 질문은 상로로에서 그 노인을 자기 집안의 노인이 아닌 일반적으로 연로한 사람으로서의 노인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주자는 여기의 노인은 자기 집안의 노인으로 본다. 주자는 이 차이를 중시한다.

 왜냐하면 대학 9장과 10장에서 老老는 한 집안에서 하는 행위이고 그것에 따라 국가의 백성이 孝에 흥기하는 感化의 차원이다. 그런데 혈구는 이러한 감화의 백성들이 그 마음을 완수할 수 있도록 그에 부합하는 정치적 행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上老老而民興孝는 감화의 지점이고 혈구는 조처하여 일을 하는 곳이다.23) 그러므로 주자는 얼고 굶주린 노인이 없다는 것은 혈구한 이후의 일이라고 설명한다. 주자는 이것이 비록 치국과 평천하의 異道는 아니지만 시행의 차원에서 異術이 없을 수 없다24)는 점으로 설명한다.

요컨대 老老長長恤孤는 家齊이며 여기서 백성이 감동하여 흥기하는 것이 國治이고, 여기에서 나아가 혈구로 平天下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가의 이상적인 정치론은 단지 도덕적 감화만이 아니고 실질적인 정치적 대책의 시행이 겸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감화만으로 그칠 수도 없는 것이며 도덕적 감화없이 정치적인 대책의 시행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23)『어류』 16:220, ““上老老而民興孝”, 是化; 絜矩處, 是處置功用處.” 振(미상).
24)『주희집』49-16(2374쪽)(60세) 答王子合 16, “興孝興弟不倍上行下效之意, 上章已言之矣. 此章再擧之者, 乃欲引起下文, 君子必須絜矩然後可以平天下之意. 不然則雖民化其上以興於善, 而天下終不免於不平也. 故此一章首尾皆以治國平天下絜矩之意推之, 而未嘗復言躬行化下之說. 然則治國平天下雖無二道, 然其設施之際, 不可謂無異術也.”



2) 혈구지도의 조건


혈구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재는 마음이 빠질 수 있는 주관성의 함정이다.
마음인 구가 과연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곱자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주자는 마음인 곱자가 곱자로서 적절하게 기능하기 위해 격물치지와 성의정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주자는 혈구가 항상 格物의 뒤에 있음을 중시한다.


"그러나 대학의 혈구는 항상 격물의 뒤에 있다.

대개 모름지기 리가 밝고 마음이 바르면 내가 욕구하는 것과 욕구하지 않는 것이 모두 바름을 얻지 않음이 없다. 그러한 뒤에 미루어 사물에 미치면 사물에 대처함에 또한 모두 그 바름을 얻지 않음이 없어 사물과 나의 간극이 없어진다.25)

25)『주희집』 46-15(2216쪽)(60세) 答黃商伯<灝>1,

“但大學絜矩常在格物之後.

蓋須理明心正, 則吾之所欲所不欲 ,莫不皆得其正. 然後推以及物, 則其處物亦莫不皆得其正, 而無物我之間.”


혈구는 리가 밝고 심이 바른 상태이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사물과 나의 간극이 없어진다. 이는 주관성과 편향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러나 반드시 窮理와 正心으로부터 미루어야 나의 愛惡와 取捨가 모두 바름을 얻고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이 또한 바름을 얻지 않음이 없다.

그래서 상하사방이 이것으로 헤아리면 자른 듯이 각각 그 몫을 얻지 않음이 없다.

만약 리에 밝지 않음이 있고 마음에 바르지 않음이 있으면 내가 욕구하는 바가 반드시 마땅히 욕구할 바는 아니며 내가 싫어하는 바가 반드시 마땅히 싫어할 바는 아니다.26)"

26)『대학혹문』 10-1,

“然必自其窮理正心者而推之, 則吾之愛惡取舍, 皆得其正, 而其所推以及人者, 亦無不得其正,

是以上下四方以此度之, 而莫不截然各得其分.

若於理有未明, 而心有未正, 則吾之所欲者, 未必其所當欲, 吾之所惡者, 未必其所當惡.”


혈구를 위해 마음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곧 앎의 지극함과 사의의 제거라는 조건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혈구를 할 수 있다. 그것은 상하 사방이 각각 몫[分]을 얻게 하는 것이다. 즉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로 재서 사물 각각이 모두 자기 자리[所]를 얻게 하여야 한다. 그것이 자로 재서 방정해진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4. 혈구지도의 특성


혈구지도는 기본적으로 동일성을 기반으로 밖으로 미루어가는 것이다. 즉 나의 마음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서 남의 마음을 헤아려 조처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나의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인데 여기서 혈구지도는 그 특성상 推己及人 즉 恕와 만나게 된다.


1) 恕


혈구지도는 결국 사물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행위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恕의 의미와 상통한다. 그래서 주자는 바로 서와 혈구를 연관시킨다. 즉 서는 혈구이고27) 혈구는 서이다.28) 이러한 점에서 서는 헤아려 감이라 볼수 있을 것이다.


27)『어류』 16:230, “恕, 亦是絜矩之意.” 振(미상).
28)『어류』 45:53, “絜矩正是恕.” 浩(57세).


혈구가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이 보편적 동일성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혈구에는 궁리와 정심이라는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다. 서와 혈구가 같은 의미라고 본다면 서에서도 마음의 동질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자신에 가진 바를 서하지 못한다는 곳에서 恕字는 오히려 다만 사물과 접하는 곳에 서 말하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는 사물과 접하는 것에 나아가 본 것이다. 忠은 다만 실심이니 곧 진실하여 허위가 없다.

사물에 응접함에 또한 다만 이 마음을 미루어 가는 것이다. 충이어야만 서할 수 있다.

만약 충하지 못하면 곧 본령이 없어지니 다시 무엇을 가지고 사물에 미치겠는가!”29)

29)『어류』 16:205,

“問: “‘所藏乎身不恕’ 處, ‘恕’字還只就接物上說, 如何?”

曰: “是就接物上見得. 忠,只是實心, 直是眞實不僞.

到應接事物, 也只是推這箇心去. 直是忠, 方能恕.

若不忠, 便無本領了,更把甚麽去及物!” 賀孫(62이후).


그래서 성현이 恕를 말하는 모든 것은 또한 반드시 忠을 근본으로 한다.

정자 또한 忠恕 두 말은 마치 형체와 그림자 같아 그 하나를 제거하려해도 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대개 오직 忠인 후에 같게 하는 마음이 비로소 바름을 얻는다.30)

30)『대학혹문』 10-1,

“是以聖賢凡言恕者, 又必以忠爲本,

而程子亦言忠恕兩言, 如形與影, 欲去其一而不可得. 蓋惟忠, 而後所如之心始得其正.”


혈구지도에서 마음의 동질성의 확보가 전제되어야 실제 자로 재는 것이 객관적일 수 있고 사물의 방정함을 획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恕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忠이 전제되어야 한다.

충은 하나의 본령이고 그것을 미루어 가는 것이 서라고 주자는 설명한다. 그러므로 충과 서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충이라는 근본과 그것을 미루어 적용하는 서라는 것이 충서관계인 것이다. 즉 이러한 점에서 서는 단지 개인의 도덕 차원의 인격적 품성의 문제에서 나타나는 정신적 공감이나 배려라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사회 경제적 차원의 정치적 조치로서 물질적 배분의 문제까지도 포괄하는 것이다.

이는 꼭 통치자나 지배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 개인의 경우도 포괄적으로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것은 좀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규정한다면 남이 가지고 있는 정당한 몫을 침해하거나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것이 혈구와 서를 같은 의미로 보고 있는 주자의 이해에 보다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내면에 있는 것을 외부로 미루어 나가는 것을 기본적으로 주자는 推의 의미로 이해한다. 이는 혈구의 중요한 특성으로 나타난다.



2) 推


주자는 혈구를 推의 맥락으로 본다. 이 推는 盡己와 推己로 忠恕를 이해하는 정자의 관점이나 盡己와 推己及人으로 忠恕를 보는 주자의 관점에 보듯이 恕의 핵심적 의미이다.31)

그렇다면 推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推는 아직 사물과 자아 사이의 간극이나 장애를 이겨내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을 제거하고 이겨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함을 함축한다. 내면의 사적 의향으로 발생한 물아간의 마찰감이나 거리감을 극복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점이 바로 서가 충과 달리 성인이 아닌 학자의 덕목으로 분류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점에서 추는 미루어 감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이 推는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확대 적용해가는 것이며 이는 의지적 노력과 실천이 필수적이다.32) 이것이 혈구지도를 推로 보는 중요한 이유이다.


31) 推와 恕의 유사성 및 『맹자』에서의 擴充과의 연관성은 다음을 참조. 문석윤, 「맹자의 성, 심, 성인의 도덕론」(2010), 119~122쪽.

推와 『대학』의 格物致知와의 연관성은 다음을 참조. 이상돈, 『주자의 수양론』(2013), 263~266쪽.

32) 推를 감정적 확장, 논리적 확장 등으로 이해하는 논쟁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김명석, An Inquiry into the Development of the Ethical Theory of Emotions In the Analects and the Mencius, 2008. 292~312쪽.



“혈구 조목은 상하사방을 헤아려서 백성의 호오를 아는 것입니까?”

“아는 것은 앞에 있고 이곳은 미루는 것이다. 老老하면 백성이 孝에 흥기하고 長長이면 백성이 弟에 흥기하고 고아를 긍휼하면 백성이 배반하지 않는다.

이곳은 곧 이미 백성의 호오가 자신의 호오와 같음을 안 것이다.

‘그래서 군자는 혈구의 도가 있다’는 곧 미루어 가는 것이니 요체는 ‘하지 말라’라는 글자에 있다.33)

33)『어류』 16:219,

“問: “絜矩一條, 此是上下四方度量, 而知民之好惡否?”

曰: “知在前面, 這處是推. ‘老老而民興孝, 長長而民興弟, 恤孤而民不倍’,

這處便已知民之好惡與己之好惡相似.

‘是以君子有絜矩之道’, 便推將去, 緊要在 ‘毋以’字上.”” 賀孫(62이후).


주자는 10장은 완전히 推라고 한다.34) 그것은 도덕적 감화만으로는 천하를 통치할 수 없고 구체적인 정치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다. 즉 推는 化에 기반하여 감흥한 선심을 완수시키는 적극적인 조치를 하는 것이다. 요컨대 化가 감화된 대상의 자발적 반응이라면 推는 행위 주체의 의지적이고 실천적인 노력
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여기서 유가 정치론이 단순한 도덕감화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즉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의 입론은 바로 이러한 혈구의 논리에서부터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혈구지도는 평천하장의 핵심 내용이다. 혈구가 사실 서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고 할 때 수신 제가와 치국에서 혈구가 제시되지 않을 이유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주자는 혈구가 평천하장에 있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감화를 넘는 추의 맥락에서 구체적 조치로서의 혈구로 이해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주석에서 원문에 보이지 않는 균평 방정의 의미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즉 9장은 선심의 흥기이며 化이고 도덕적 마음의 맥락이라면 10장은 선심의 완수이고 推이며 정치적 조치의 맥락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가의 정치는 도덕으로 흥기시킨 선한 마음을 이익의 공정한 분배로 완수시키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35)


34)『어류』16:198, “問: “治國在齊其家”. 曰: “且只說動化爲功, 未說到推上. 後章方全是說推.”” 㝢(61이후).

35)『어류』16:221, “問絜矩之道. 曰: “能使人興起者, 聖人之心也; 能遂其人之興起者, 聖人之政事也.”” 廣(65이후).



5. 혈구지도의 실상


1) 義와 利


혈구는 도덕적 감화의 위에서 시행되는 실질적 조치이다.『대학』의 원문에는 好惡와 財用과 用人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호오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보다 재용과 용인의 문제와 연관되며 이는 결국 義와 利 즉 옳음과 이익의 문제로 귀결된다.


"혈구는 好惡, 財用, 媢嫉, 彦聖으로 말했는데 왜 그렇습니까?

상홍양이 많은 재물을 모아 무제가 좋아하는 데에 바쳤다. 이와 같이 혈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허다한 재물을 생각하여 반드시 백성의 것을 침범하며 나의 선호를 채우면 백성이 반드시 싫어한다.
재용을 말하는 것은 대개 자신이 한 고을에 있는데 도리어 그 이익을 독점하면 곧 그의 것을 침범하는 것이니 곧 혈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질과 언성을 말한 것은 대개 선인이 있으면 마땅히 천거하여 그로 하여금 각각 자기 자리를 얻게 해야 한다. 지금 그를 천거하지 못하여 그 자리를 잃게 하니 이는 선인의 몫을 침범한 것으로 곧 혈구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는 다만 호오 재용의 부류를 말하여 마땅히 혈구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일마다 또한 마땅히 혈구해야 한다.36)"

36)『어류』 16:250,

“問: “絜矩以好惡․財用․媢疾彦聖爲言, 何也?”

曰: “如桑弘羊聚許多財, 以奉武帝之好. 若是絜矩底人, 必思許多財物, 必是侵過著民底, 滿著我好, 民必惡.

言財用者, 蓋如自家在一鄕之間, 卻專其利, 便是侵過著他底, 便是不絜矩.

言媢疾彦聖者, 蓋有善人, 則合當擧之, 使之各得其所.

今則不擧他, 便失其所, 是侵善人之分, 便是不絜矩.

此特言其好惡․財用之類, 當絜矩. 事事亦當絜矩.””節(64이후).


자신의 호오가 남의 이익을 침범해서 안 된다. 나의 호오가 있으면 남도 호오가 있는 것이다. 나의 호오로 남의 호오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이는 바로 호오가 이익과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재용에 있어서는 더 간명하다. 이익의 독점은 곧 타자의 이익을 침탈한 것이다.


또한 직접 재물과 관계되지 않아 보이는 인재의 등용도 같은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인재의 등용인 用人은 다름 아니라 하나의 개체가 가지는 그 능력과 인격등에 부합하는 몫을 그에게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인간이 가지는 총체적 능력에 부합하는 몫을 그에게 부여하여야 한다. 능력이 부족한 자에게 큰 지위를 주거나 능력이 뛰어난 자에게 지위를 주지 않는 것은 바로 혈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듯이 인용문의 專其利, 得其所, 失其所, 侵善人之分 등에서 利와 所, 分은 모두 각각의 존재의 몫 즉 합당하게 분배된 이익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자는 개인의 감정의 표출과 특정한 능력과 지위 나아가 재물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존재는 모두가 고유한 자기 자리와 그에 합당한 몫이 있으며 그것을 침해하지 않고 보장하는 것이 바로 혈구의 핵심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이는 혈구지도가 義利之辨과 직결됨을 의미한다.


"利는 반드시 오로지 財利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래서 맹자는 처음에서 절단하여 다만 인의를 말했다.

仁하고서 어버이를 버리는 경우가 없으며 의롭고서 임금을 내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利는 그 안에 있다. 그래서 義의 편안한 바가 곧 利의 소재라고 한다.

대개 오직 義로 편안하면 저절로 이롭지 않음이 없다.37)"

37)『어류』 16:247,

““國不以利爲利”. 如秦發閭左之戍, 也是利; 墮名城, 殺豪傑, 銷鋒鏑, 北築長城, 皆是自要他利.

利不必專指財利. 所以孟子從頭截斷, 只說仁義.

說到 “未有仁而遺其親, 未有義而後其君”, 這裏利卻在裏面. 所以說義之所安, 卽利之所在.

蓋惟義之安, 則自無不利矣.” 泳(66세).


이익은 단지 재리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즉 利가 단지 어떤 경제적 차원에서 재물의 다소나 다과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마지막 인용문은 다소 설명이 필요하다.
이는『주역』의 논의에서 보다 분명하게 설명된다.


"利는 義의 조화이다. 義는 경계짓고 재단하는 것으로 不和인가 의심된다.

그러나 사물이 각각 그 몫을 얻게 하여 서로 침범하고 넘어서지 않으면 곧 조화가 되는 근거이다.38)"

38)『어류』68:108,

““利者義之和.” 義是箇有界分斷制底物事, 疑於不和.

然使物各得其分, 不相侵越, 乃所以爲和也.” 僩(69이후).


의는 기본적으로 합당한 몫이며 또한 각각 합당한 몫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각각의 존재가 각각의 합당한 몫을 얻은 상태가 의의 조화이며 그것이 바로 각각의 존재의 이익이다.39)

만약 각각이 자기 몫을 얻지 못한다면 이는 어떤 존재가 그 존재의 몫을 침탈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떤 존재가 그렇게 얻은 이익은 진정한 이익이 아니다. 즉 각자가 각자의 몫을 얻게 된 것이 진정한 이익이다. 의의 편안함이 이익이라는 말과 이익이란 의의 조화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뜻이다.


39) 바로 이 지점에서 유가가 강조하는 正名과 禮의 논의와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2) 政治와 正義


기본적으로 혈구지도는 이렇게 각자에게 각자의 몫이 돌아가게 하는 방법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혈구에 의한 균평과 방정은 모든 존재와 계층의 균일화 또는 획일적 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40) 오히려 각각의 존재는 그 자리마다 그 몫이 다르게 주어진다. 여기에는 계층과 능력 등등의 차등이 전제된다.


40)『어류』 16:228,

“問: “論上下四旁, 長短廣狹, 彼此如一, 而無不方. 在矩, 則可以如此. 在人則有天子諸侯大夫士庶人之分, 何以使之均平?”

曰: “非是言上下之分欲使之均平. 蓋事親事長, 當使之均平, 上下皆得行. 上之人得事其親, 下之人也得以事其親; 上之人得長其長, 下之人也得以事其長.”” 節(64이후).



"맹헌자가 말했다. “馬乘을 기르는 집은 鷄豚을 살피지 않고 얼음을 캐는 집은 牛羊을 기르지 않으며 百乘의 집은 세금을 착취하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다.

세금 착취하는 신하를 두느니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둘 것이다.”

이것이 나라는 이익을 이익으로 여기지 않고 의를 이익으로 여긴다는 뜻이다.41)"

41)『대학장구』10-22,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鷄豚, 伐氷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

此謂國不以利爲利, 以義爲利也.”


"또한 예컨대 녹을 먹는 집안에서 또 鷄豚과 牛羊을 기르면 도리어 백성과 더불어 이익을 다투는 것으로 혈구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義를 이익으로 여긴다는 것은 의로서 밖을 방정하게 한다는 뜻이다.42)"

42)『어류』16:249,

“且如食祿之家, 又畜雞豚牛羊, 卻是與民爭利, 便是不絜矩. 所以道 “以義爲利”者, “義以方外” 也.” 泳(66세).



모든 존재는 각각의 이익의 한계선이 있는 것이다. 즉 우양을 기르는 집과 마승을 기르는 집과 벌빙지가와 백승의 집은 다 자기의 몫을 가지고 있다. 이는 분명한 한도와 경계로 구분된다.

이 정해진 한도를 넘어서고 그어진 경계를 무너뜨리고 이익의 한계를 넘어서 자기의 욕망을 팽창시키지 않는 것은 곧 자기의 자리와 몫에 충실한 것이다. 그것은 자기의 몫 이상을 가지려하지 않는 것이다. 즉 자기의 경계
와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익의 무한 추구와 독점은 결코 인정될 수 없다.


혈구지도는 바로 이렇게 백성은 백성대로 士는 사대로 大夫는 대부대로 각각의 한도가 분명하게 정해진 것이다. 이렇게 한도가 정해짐으로써 한정된 경계 즉 한계가 나온다. 이러한 한계는 자기 이익의 무한한 추구 즉 자기 몫 이상에 대한 욕구를 제어하는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타자에 의해 침탈되지 않는 자기 이익의 경계
선과 방어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각에게 각자의 몫을 고르게 지니도록 한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존재가 자기 이익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면 그것은 수치상의 이익이고 일시적 이익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손해로 귀결된다.



"위에서 인을 좋아하는데 아래에서 의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아래에서 의를 좋아하고 그 일이 마무리되지 않는 경우가 없으며 창고의 재물이 그 재물이 아닌 경우가 없다.
주자주석: 위에서 인을 좋아하여 아래를 사랑하면 아래는 의를 좋아하여 위에 충성한다. 그래서 일은 반드시 마무리되고 창고의 재물은 어긋나게 나가는 근심이 없다.43)"

43)『대학장구』  10-21, “未有上好仁, 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 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 非其財者也.

주자주석: 上好仁以愛其下, 則下好義以忠其上. 所以事必有終, 而府庫之財, 無悖出之患也.”


창고에 있는 것이 자기 이익의 한계를 벗어나서 획득된 것이라면 일시적 장부상의 이익일지 몰라도 그것은 결코 그의 진정한 이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정당한 몫을 넘어선 것이고 이는 곧 남의 몫을 침해했음을 의미한다. 자기 몫 이상의 이익은 결국 다시 소멸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이익은 의의 조화로 나타난다. 각자가 각자의 몫을 가졌을 때의 그 몫이 자기의 이익인 것이다.


"누가 혈구를 물었다.

“비유해보자. 예컨대 좌변에서 한 사람이 나의 경계를 침범하면 그는 옳지 못하다.

내가 또 그를 배워서 우측 사람의 경계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 앞 사람이 가서 나를 막아버리면 나는 갈 수 없다.

나는 또한 그가 뒷사람을 막은 것을 배워서는 안 된다. 뒷사람이 나를 좇아오지 못하면 또 그가 앞 사람을 따라 간 것을 배워서는 안 된다.

상하 또한 그렇다.”

춘이 말했다. “이 한 사람은 도리어 중간에 선 것입니다.” “그렇다.”44)"

44)『어류』16:226, “或問絜矩.

曰: “譬之, 如左邊有一人侵我地界, 是他不是了;

我又不可去學他, 侵了右邊人底界. 前人行擁住我, 我行不得;

我又不可學他擁了後人; 後人趕逐我不了, 又不可學他去趕前人.

上下亦然.”

椿云: “此一人卻是中立也.” 曰: “是.”” 椿(59세).


"아부가 말했다. “상하와 사방이 한결같이 가지런하고 방정해서 타인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도록 힘씁니다.” “그렇다.”45)'"

45)『어류』 16:225, “亞夫云: “務使上下四方一齊方, 不侵過他人地步.” 曰: “然.”” 節(64이후).



자기 영역을 고수하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균평한 것이다. 그러므로 상하로 보거나 좌우로 보거나 전후로 보아도 어느 한 쪽의 경계를 넘거나 침탈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모든 존재들 사이에 중립하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보인다. 이것은 이익의 한계를 마치 네모난 사각형의 이미지로 그려낸 것이다.

즉 이익의 하한선과 상한선을 정하여 마치 사각형의 격자처럼 그려내어 상하사방이 방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의 개체는 하나의 사각형을 갖는다.

사각형의 크기는 각기 다르다. 백성과 사와 대부의 사각형의 크기는 다 다르다. 그것은 이익의 총합이 다르
다는 것으로 곧 각각의 존재가 가지는 정당한 배분의 몫이 다름을 의미한다.


초점은 자기 사각형의 총합을 초과한다는 것은 반드시 타자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의미이다. 이 이익의 한계선을 넘어서는 것은 반드시 타자의 몫을 침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가 깨지게 된다. 그래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되고 숫자상의 이익이었지만 결국은 자기 몫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진정한 이익은 의를 통해 이루어진 조화이다. 즉 혈구지도란 크기가 다른 사각형이 정돈된 배열이 되어 각각의 이익의 적절하게 배분된 상태를 말한다.


주자가 이렇게 혈구지도를 자로 재서 방정하게 하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각각의 존재에게 각자의 몫을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는 유가의 正義觀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즉 정의가 기본적으로 분배의 정의라 할 때 혈구지도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각각의 존재에 적절한 몫을 공정하게 배분하고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혈구는 각각 존재가 적절한 몫을 갖도록 하는 정치적조치인 것이라 할 수 있다.46)


46) 혈구지도를 유가의 계약론적인 합의론적 정의관으로 보는 관점은 다음을 참조.

이승환, 『유가사상의 사회철학적 재조명』(1998), 48~68쪽. 유가의 정의관을 보다 더 깊이 탐색하고 서양의 정의관과 비교하는 등의 연구는 앞으로 더 진행되어야 하는 과제로 남긴다.



6. 결론


혈구지도는 대학의 제왕지학에서 평천하의 방법으로 제시하는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絜矩之道의 이해에서 관건은 絜矩의 해석이다. 주자는 자로 재서 방정하게 하다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絜矩之道가 恕의 의미와 상통하는 것으로서 絜矩와 恕는 단지 도덕적 품성에서 나오는 정신적 공감과 배려만이 아니라 존재 각각의 합당한 몫을 침해하지 않고 보장하는 의미로 이해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혈구지도란 도덕적 감화에 기반하여 구체적인 정치적 조치로서 제시되고 있음을 주자가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혈구지도의 핵심적 내용은 존재 각각의 합당한 몫을 침해하지 않고 보장하여 각각의 존재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방정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그것이 바로 혈구의 공효즉 천하평의 의미로 연결된다.

이렇게 본다면 혈구지도는 결국 이익의 공정한 분배이고 의의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혈구지도론의 중심에 義利之辨이 자리잡고 있으며 여기서 유가의 政治論과 正義論이 도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논문제출 : 2014년 11월 10일

∥심사마감 : 2014년 12월 16일

∥게재결정 : 2014년 12월 16일



▌참고문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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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uzi’s Xiejuzhidao


Lee, Sangdon


The Xiejuzhidao of Daxue is to measure with a ruler and hold the scale even. Xiejuzhidao has something in common with reciprocity. It is not restricted to the empathy and consideration which is come from moral personality, furthermore it takes a practical measures in social-political context. Zhuzi regards the Xiejuzhidao of Daxue as a concrete political action based on moral influence. It means that the Xiejuzhidao does not infringe upon a person’s appropriate portion, and reaches a state of equilibrium in which each entity keeps a balance and harmony. Discriminating between righteousness and profit holds a very important position in the argument of Xiejuzhidao. From this point, we can come up with a theory of confucian politics and justice.



Key Words : Zhuzi, Daxue, Xiejuzhidao, Reciprocity, Righteousness and Profit, Politics, Justice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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