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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陽觀의 歷史와 原理
이 은 봉
*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목 차
Ⅰ. 聖俗과 음양사상
Ⅱ. 음양사상의 기원에 대한 종교인류학적인 연구
Ⅲ. 중국 음양사상의 다양한 측면
Ⅳ. 결론
Ⅰ. 聖俗과 음양사상
음양사상이 어떤 기원을 가진 것이냐 하는 것을 중국에 국한하지 않고 좀 더 보편적인 데 까지 확대하려고 하면 각 원시인들의 신화나 사회 구성의 분석을 통해서 많은 암시를 받을 수 있다. 인류의 초기 원시인들도 聖과 俗의 구분, 높은 곳과 낮은 곳의 구분, 오른쪽의 우수성과 왼쪽의 열등성 등 시간적 및 공간적으로 모든 것이 동질적이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우선 공간적으로 동질적이지 않고 더욱 성스러운 공간이 있는가 하면 속적인 공간이 있고, 시간적으로 신성한 시간과 질적으로 강화된 시간이 있는가 하면 속적이고 무가치한 시간이 있음을 알았고, 나아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세계는 전체적으로 완전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성과 속을 합친 좀 더 넓은 세계가 완전과 완성에 가깝다는 생각을 어렴풋하지만 모두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음양사상은 현상세계가 어떤 대립이나 待對․分極性 혹은 상보적 관계로 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가 전체성(wholeness)이 아니며, 따라서 완전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다. 이러한 관념의 원시적 표현은 이미 성과 속의 대립 혹은 대대의 관계에서 표현되고 있다.
聖은 영속적 혹은 일시적 특성으로서 어떤 사물․인간․공간․시간 등에 두루 퍼져 있다.
어떤 신비적인 사건에 의해 성으로 되면, 그 순간부터 하나의 변질을 겪고 두려움과 숭배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성을 접촉하는 것은 위험시되기도 한다. 또한 그 성은 외부로 넓혀져 마치 액체와 같이 번지고 전기와 같이 방출되는 성격을 지닌다. 그에 비해 俗은 부정적 성격으로 확인되는데, 빈약한 생명력이나 허무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원시종교에서도 성과 속을 구분하고, 속의 허무를 극복하고 성으로 되돌아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성이 영원히 성이 아니고 속이 영원히 속이 아니어서 어떤 계기에 서로 상호적인 교환이 가능하다.
성과 속이 원시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있었던 종교현상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원시인들도 현상세계를 지배하는 어떤 법칙이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의 감각을 넘어서는 배후에 있다는 것, 그 성스러운 법이 불쑥 이 현상세계에 모습을 나타내면 이 俗的인 세계와 질적으로 구분된다는 것, 그리고 그 성이 나타나는 계기는 아주 다양하여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일단 성이 계시되면 그것은 보다 완전하고 전체성을 띤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속적인 것과 대비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렇게 나타난 성과 속이 경직된 二元論으로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음양사상처럼 聖俗의 交互性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음양이 현상세계를 지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칙이로되 음과 양 그 어느 것도 한쪽의 측면으로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 그 음양을 넘어서는 太極에서야말로 전체성 그 자체가 된다는 것과 상통된다고 할 수 있다.
Ⅱ. 음양사상의 기원에 대한 종교인류학적인 연구
성과 속의 종교 현상을 모두 음양사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원시인들도 이 현상세계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 대대나 대립으로 되어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종교인류학적으로 음양사상의 기원을 설명하는 4가지의 중요한 흐름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음양사상의 사회적 기원설, 둘째 음양사상의 역사적 기원설, 셋째 음양사상의 구조주의적 해석, 넷째로 엘리아데의 해석학적 연구 방법이 그것이다.
첫째, 이 문제를 최초로 다룬 사람은 뒤르껭과 모쓰(Mauss)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
이들은 사회와 자연의 二分法 분할을 하는 흥미있는 관습에 주목하였다. 즉 어떤 사회의 세계관에서 天과 地, 高와 低, 右와 左, 四隅 등의 복합적인 구역으로 나누는 풍습에서 살펴보면, 그것은 실제의 사회적․역사적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천보다는 지가 열등하고, 고보다는 저가 열등하며, 우보다는 좌가 열등한 것으로 표상 되는데, 그것은 실제의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지배적인 관계에 있을 때 우세한 집단과 열등한 집단이 생겨지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뒤르껭과 모쓰의 영향을 받은 로버트 헤르츠(Robert Hertz)는 원시인이 가지고 있는 오른손의 우수성에 대해서 연구하고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헤르츠에 따르면, 오른손에 부여된 특권은 聖(天․男․오른손)과 俗(大地․女․왼쪽)으로 나누어지는데 사회적 지배관계로 설명된다는 것이다.2)
둘째, 이와같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뒤르껭의 후계자들이 원시사회의 이분법 조직을 논하고 있을 즈음에 영국에서도 리버스(Rivers)를 중심으로 비슷한 연구를 하였다. 리버스는 멜라네시아 사회를 사례로 사회적 이분법조직이 존재하는 경우, 즉 다른 두 개의 다른 부족이 있을 경우 그 중 하나는 승리를 거둔 침략자요, 또 하나는 原住部族의 패배자로써 구성되었을 때 침략자는 神聖族이 되고 패배자는 속된 부족이 된다는 것이다.3)
이상은 이분법 조직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즉 어떤 형태의 二元性에 봉착하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두 개의 상이한 집단이 만난 결과로 설명하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기원론이나 역사적 기원론을 넘어서려는 시도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레비스트로스를 중심으로 하는 구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구조주의에서는 여러가지 형태의 체계를 엄밀하고 완전하게 분절된 체계(이 체계는 무의식의 레벨에서 작동하지만)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그는 언어학의 모델을 신화의 구조 분석에 이용하면서, “신화의 목적은 어떤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다. ···신화적 사고는 어떤 諸矛盾의 의식화(prisede conscience)로부터 생겨 나와 그들의 점진적인 매개를 하는 쪽으로 다다른다”고4) 하여 이원조직이나 분극성이 무의식적인 면과 관계함을 밝히고 있다.
구조주의자들에게는 분극성이나 음양의 대립은 사회적 기원을 가진 것도 아니고, 역사적 사건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정신의 무의식적 활동을 알려주고 있는 완전히 일관된 체계의 표현일 따름이다.
요컨대 生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을 다시 일별하면 많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①음양의 이분법조직이 설사 사회적으로 뚜렷이 보인다 하더라도 이분법의 계기는 수없이 많은데, 그것을 일일이 사회적 기원에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②역사적 기원설이 설사 특정한 부족에서 그러한 흔적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기원설과 마찬가지로 모든 이분법 조직을 이렇게 설명하여 실증하는 것이 쉽지가 않고, 더욱이 역사적 기원설은 전파주의
(diffusionism)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화 전파의 기원(특히 이 경우 이집트)을 상정하고 있는 전파주의가 많은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것이므로 역사적 기원설이 전면적으로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③구조주의적 설명의 약점은 다양한 이분법 조직의 계기를 단순한 하나의 계기나 동기로 설명하는 환원론에 귀착할 가능성이 있다.
넷째, 이런 면에서 엘리아데의 해석학적 설명 방법은 단일한 원인에 귀착시키지 않고, 현상으로 나타난, 있는 사실을 그대로 존중한다는 면에서 가장 바람직한 설명의 틀을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엘리아데는 신화 연구를 통해서 이분법 조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두고 그 상징적 의미를 파악하려고 하고 있다. 어떤 단일한 원리를 설정하여 전체적으로 묶어 보고자 하는 과학적․실증적 태도는 현상의 다양성을 설명해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화 현상 속에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고 형해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몇 개의 유형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M. Eliade, "The Quest" : History and Meaning in Relig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127.
2) M. Eliade, op. cit., P.128.
3) W. H. R. Rivers, 1914, "The History of Melanesian Society", (Cambridge).
4) Claude Lévi-Strauss, "Anthropologie structurale", (Paris, 1958), P.254. 이은봉, 1985, <음양사상의 해석학적 설명>,《한국종교의 이해》, 집문당, 引用.
1. 공간 구조의 분극성에 대해서이다.
‘좌-우’나 ‘고-저’와 같은 공간 구조의 분극성이 신화 가운데 보편적으로 보인다는 것에 주목하여 그것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오른손의 특권과 왼손의 천시는 원시인들이 공간구조를 모두 等價的으로 보지 않았다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엘리아데는 시에라네바다의 코기(kogi) 인디언의 공간 구조를 분석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위로부터의 사람들’(people from above)과 ‘아래로부터의 사람들’(people from below)로 분할되어 있고, 마을도 양분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시에라네바다는 4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4사람의 신화적 거인에 의하여 세계가 떠받들어지고 있다는 세계관에서 그들의 마을도 4부분으로 나뉘
어지고 그 주위에는 씨족의 중요한 성원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도 다시 이분법이 작용하여 赤을 표상 하는 우측은 ‘보다 적게 아는 자’가 앉고 靑을 표상 하는 좌측은 ‘보다 많이 아는 자’가 않는다. ‘보다 많이 아는 자’를 좌측에 앉히는 이유는 세계의 부정적인 힘과 보다 많이 대립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5)
더욱이 흥미 있는 것은 이 四分構造는 다시 7개의 지표, 즉 동서남북․天頂地底․중심을 가진 삼분구조로 전개되어 天頂․地底․중심의 3가지는 한 개의 알〔卵〕과 같은 입체를 구성한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宇宙軸이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주는 하나의 알과 같은 것으로 宇宙母로서 상징되고, 인간은 그 가운데서 탄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6) 宇宙卵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공간의 이분분할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대립을 넘어서려는 宇宙卵으로까지 확대되어 그 내적인 균형, 즉 중심점에서 분극성의 모든 체계가 융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분구조는 그 자체가 불완전한 구조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터득한 예가 될 것이다. 음과 양의 대립은 그 자체가 불완전한 것으로 음양의 대립을 넘어서는 그 ‘조화’에서 최고의 생명력을 낳게 된다는 관념이 공간 구조 가운데서 나타난 좋은 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5) M. Eliade, op. cit., P.139. 조선시대의 좌의정과 우의정이 직책상 동급이라고 하더라도 좌의정이 더 우선시 되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6) 道를 공간적으로 설명하면 우리 인간도 도라는 어머니의 胎안에 있는 아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와 나는 二身一體로써 어머니로부터 온갖 좋은 영양분이나 내적인 사랑, 교훈을 받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의식할 수 없다. 나는 그 母胎가 우주 전체이지만 그것을 모른다. 현명한 사람은 道라는 모태로부터 들려 오는 멜로디 같은 내적인 소리를 듣는다.
2. 시간 구조의 분극성에 대해서이다.
낮-밤이나 계절과 같은 시간 구조를 살펴보면, 원시인들에게도 모든 시간이 모두 균질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부족이든지 吉日과 凶日, 같은 길일 가운데도 최적의 때, ‘凝縮한 시간’, ‘稀薄한 시간’, ‘강한’ 때와 ‘약한’ 때 등의 경험이 있다. 시간이 不均質하다는 것, 시간이 성과 속으로 이분되어 있다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엘리아데에 의하면, 모든 속적 시간은 어떤 의례나 의미 있는 행위(수렵, 고기잡이 등)에 의해 원칙적으로 신화적 시간, 성스러운 시간으로 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성→속이나 속→성의 교환이 가능한 교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음→양, 양→음의 교호성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시간의 본능은 모든 면에 걸쳐 속적 시간을 폐하고 성스러운 시간에 살고 싶다는 동일한 욕망을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밤과 낮, 속적 시간과 성스러운 시간의 대립은 영원의 순간으로 변하게 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3. 우주의 발생에 대해서이다.
생과 사의 결투, 창조적인 힘과 파괴적인 힘의 대립으로 묘사되는 신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결국 창조적인 힘의 승리로 우주는 창조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베다 신화에 나오는 인드라와 용(龍)브리트라의 투쟁을 들 수 있을 것이다.7) 브리트라는 물을 지배하는 파괴적인 힘의 대표자인데, 브리트라가 심술궂게 물을 산 속에 가두어 두는 고로 인드라는 용감하게 투쟁하여 물을 해방하고 생명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신화의 다른 異傳에는 인드라가 브리트라를 斬首하고 五體를 단절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브리트라는 顯現되지 않은 것, 즉 음을 상징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신화는 우주 발생의 신화이면서 동시에 新年祭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화이기도 하였다. 매년 새로운 해를 갱신할 필요가 있는 때에 이 신화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음양오행사상에서도 신년이 되기 전의 그믐 무렵은 음의 극치를 이루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방위로 말하면 북방, 오행으로는 水로 표현되는 곳이다. 음의 극치에서 양이 탄생되는 최초의 날을 정월 초하루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테마들이 인도의 베다 신화에서는 죽음을 이기고 삶을 획득하는 인드라의 승리로 표현되고 있다. 우주는 음양의 대립적 경쟁을 극복함으로써 탄생되었다는 테마가 담겨 있는 말이라고 할 것이다.
7) M. Eliade, 1955, "The Myth of the Eternal Return", (New York), P.19.
4. 兩性具有化의 신화에 대해서이다.
이 세상에 있는 남녀의 분극성이 그 자체로 불완전하여 양성을 합친 양성구유화로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인도의 Deva와 Asura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남녀 두 신의 대립을 읊은 신화들이 많지만 결국 그들의 역설적인 同體性(paradoxical consubstantiality)에 의해 종합이 이루어진다.8)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세계에서는 비록 남녀 양성으로 분화되어 있으나 그 자체로는 불완전한 것이므로 남녀의 결합, 천지의 결합이 완전성을 구현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여기에는 종교적 이분법뿐만 아니라 윤리적 이분법도 근본적으로는 전체성에 통합되어야만 완전해진다는 것을 말해 준다.
8) 이 두 신의 결합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하여 엘리아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베다의 敎義는 二重의 관점을 확립하려고 하는 인상을 준다. 直接的 實在, 우리의 眼前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서 보면 Deva와 Asura는 서로 용납되지 않는, 본성상 다른 것이며, 때의 始初에 서로 交戰을 하도록 저주된 것이긴 하지만, 반대로 창조 이전, 혹은 세계가 현재의 형태를 취하기 이전에는 그들은 同體였던 것이다.”
여기서 엘리아데가 말하고 있는 것은 神의 兩面價値性에 대해서이지만 실상 음양이 남녀 兩性으로 표현되었을 때에는 그 兩性을 함께 지니는 신의 모습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M.Eliade, 1965, “Mephistopheles and the Androgyne”, (New York), P.89.)
5. 쌍둥이에 대한 종교적 의미에 대해서이다.
특히 쌍둥이 신은 실상 한 어머니의 배에서 나온 신들로서 全體性에서 분화한 어느 한 면(빛)에 대한 補完인 다른 한 면(어둠)을 가리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테마를 다룬 신화들은 동서고금에 비교적 풍부하게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북부 해안 카리브족의 신화가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물의 여신 아마나(Amana)는 배꼽이 없는 처녀로서 쌍둥이를 낳았는데, 타무시(Tamusi)와 요로칸타물루(Yolokantamulu)가 그들이다. 배꼽이 없는 처녀인 아마나는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태어난 존재가 아님은 천지의 결합, 완전한 신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타무시는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달의 빛나는 부분에 살고 있으며, 낙원의 主이기도 하나 눈빛을 휘황하게 하는 빛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누구도 직접 볼 수 없다. 타무시는 세계를 파괴하려고 하는 敵意로 가득 찬 힘에 대항하여 싸우는 세계를 창조하는 자이다. 한편 요로칸타물루는 낙원의 정반대 지역, 아침이 없는 토지에 살며 인류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악의 창조자이다. 이 두 쌍둥이신은 표면상으로 보면 정반대의 속성을 지닌 자로서 서로 융화하기 어려운 신들이지만 요로칸타물루는 세계의 빛의 相을 의인화한 타무시의 필연적인 補完者로서 서로 반드시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9)
9) M. Eliade, Op cit, P.136.
<종교인류학적 견해의 소결론>
이상의 여러 사례에서 알 수 있었던 바와 같이 음양의 사상은 여러 신화에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하게 전개되었다고 할지라도 서로 반대되는 것들 사이의 대립 관계는 최후까지 분석해 보면, 대립하는 양자의 결합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열등한 것’과 ‘우수한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나타난 것’과 ‘나타나지 않은 것’ 등의 대립 관계는 ‘반대의 일치’에서 해소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종류의 二組一對(dyads)와 분극성이 어떤 무의식의 논리 활동을 반영하는 오직 하나의 기본형으로 환원하려는 유혹을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레비스트로스의 입장보다 엘리아데의 입장이 보다 온건하고 타당하게 보인다. 엘리아데의 생각처럼 이분법은 다양한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며, 위에서 보인 이분법의 형태는 편의상 그 수를 제한한 것에 불과하고, 실제로 그들의 수는 더욱 많고 보다 더 열려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불완전한 분류만 가지고도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종류의 분극성이 ‘서로가 서로를 내포하고 있다(imply each other mutually)’는 사실이다.
Ⅲ. 중국 음양사상의 다양한 측면
중국의 음양사상은 이조일대 혹은 분극성의 사상에서 가장 전문적으로 전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음양의 기능을 일일이 나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만큼 다양하다.
1. 음양의 기원
음양에 관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인《詩經》에는 陰字가 8번 나오고 있는데 그중 雨자와 관련되어 나오는 경우가 4개 있다. 기후와 바람, 陰暗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10) 또 陽은 18곳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11곳이 산과 물의 방위를 뜻하고 있다. 그 밖에 햇빛, 기후의 온난, 화창한 날씨 등을 나타내는 말로 되었다. 시경에서는 아직 음양의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춘추시대에 들어와서 음양 개념이 형성되고 있다. 음양 개념의 최대의 발전은 음양을 天에서 발생한 六氣 가운데의 二氣로 파악한 것이다. 즉 춘추시대 이전의 기록에 보이는 음양 개념은 日光의 유무에 따라 형성된 현상을 의미할 뿐 그 자체로 독립적인 의미는 갖지 못하였다.11)
이는 천체에 대한 장시간에 걸친 관찰에서 발생한 개념이며, 여기의 음양이란 寒暖의 감각을 가리던 것으로 추정된다. 만물을 형성하는 원소라는 의미는 그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12)
10)《詩經》<邶風>에서는 기후와 관련된 것, 秦風(小戎)과 豳風(七月) 등에서는 陰暗의 뜻으로, 大雅(桑柔)의 경우는 覆陰의 뜻으로 쓰여지고 있다.
11)《춘추좌씨전》<昭公 元年>에 ‘天에는 육기가 있는데, 이것이 내려와 五味를 낳고 五色이 되고 五聲으로 표현되며 …육기란 陰陽風雨晦明이다.(晉侯使求醫于秦,秦伯使醫和視之,曰,疾不可爲也… 天有六氣,降生五味,發爲五色,徵爲五聲,淫生六疾,六氣,曰,陰,陽,風,雨,晦,明也) 이것이 나뉘어 四時가 되고…’와 25年條에 ‘그 六氣를 낳는다’라는 기사뿐만 아니라《國語》<周語 下>의 註, 장자(逍遙遊) 등의 기록에 六氣라는 개념이 등장하며 음과 양은 각각 육기 속의 하나의 氣로 취급되고 있다.
12)《春秋左傳》<소공25년>에 ‘백성에게는 好惡喜怒哀樂 등의 감정이 있는데, 이는 모두 六氣에서 발생한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음양을 포함한 육기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으로 음양 개념의 보다 진보된 형태로 파악된다. 또 같은 책 昭公 21년과 24년 조에 梓愼이 일식 현상을 ‘陽不克’(양이 이기지 못함)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가 해[日]를 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우주의 기원과 음양
음양의 기원이 기후적인 데서 왔느냐 물질의 기본단위에서 왔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국의 음양사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압권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우주의 기원을 음양사상으로 설명하는 매우 정교한 논리를 발전시키고 그와 더불어 인륜의 도리와 인격완성․사회질서․정치의 강상․인체의 신비 등 모든 부면에 적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을 여기서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 본다.
가. 모든 운동은 음양에서 일어난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운동하지 않는 것이 없다.(《周易》에서는 그것을 生生이라 함) 공간적으로는 무한히 뻗어 나가는 擴大運動을 행하고 시간적으로는 무한히 이어나가는 繼承運動을 한다.13)
13)《周易》에서의 우주는 上下四方․古往今來라는 말로 표현하고, 천지라는 말은 태양을 중심한 태양계의 우주를 말하며, 만물의 조직․운행․생성․변화 등 온갖 상태를 음양이라 하고 있다.
나. 음양은 서로 互根하고 있다.
만물은 자체가 생생하기 위하여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지 조직체를 가지고 그 조직체에는 반드시 운동력이 있어 그 조직체를 계속하는 것으로 본다. 천지간의 만물은 모두 地의 형질에 뿌리를 두고 있고 地의 형질은 天의 引力에 근거하고 있다. 天의 인력은 氣의 유행하는 것을 말하고 地의 형질은 精의 凝做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천지간에 생생하고 있는 만물은 모두 天의 氣와 地의 精을 聚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周易》<繫辭>에 ‘精과 氣가 物이 된다’함은 이를 말한 것이다. 精이라 함은 만물의 형체를 조직하는 본질로서 곧 水火의 精을 말하고, 氣라 함은 만물의 운행하는 힘으로서 곧 電氣의 氣를 말한다. 精은 承受․包含․收藏․
凝聚 등의 陰性作用을 행하고 氣는 發施․流行․出顯․鼓動 등 陽性作用을 행하므로 만물을 조직한 精氣의 두 작용은 곧 음양의 待對라고 말하기도 한다. 만물은 精의 조직체만 있고 氣의 운행이 없으면 생생작용을 행하지 못하고 또 조직체가 없이는 氣의 운행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만물은 생생하기 위하여 반드시 조직체가 있고 그 조직체는 스스로 운동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음양의 互根이라 한다.14)
14) 互根이라 함은 陽이 陰에 의탁하여 능동 작용을 행하고 음은 양의 鼓動을 承受하여 受動作用을 행하여 相雜하지도 않고 相合하지도 않는, 二하면서 一하고 一하면서 二함이다. 互根하고 있는 兩物은 하나는 動하려 하고 하나는 靜하려 하며 하나는 出顯하려 하고 하나는 收斂하려 한다. 그러므로 太極과 陰陽은 物의 조직체가 作用과 反作用의 두 작용을 生한 연후에 운동이 일어난다고 하는 一體兩用의 理이다. 이와같은이치에 의하여 음양의 互根뿐만 아니라 互先互後․互易․互大互小한다.
다. 음양의 작용하는 힘이 생명이다.
천지는 태극의 운동체로서 그 속에 음양의 兩作用이 있어 一體兩用의 象이 되고 음양은 互根互易 互先互後 互大互小의 여러가지 작용으로써 부단히 운동을 일으켜서 만물을 생생한다고 본다. 그러니 음양의 서로 작용하는 힘이 곧 생명이고, 음양은 生命元이 되어 음양운동이 행하는 곳에 반드시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곳에는 운동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오, 생명 자체가 생생하기 위하여 스스로 운동을 일으키는 때에 음양의 두 작용을 생한다고 본다.
태극이라 함은 천지를 통일한 하나의 생명체이므로 태극의 운동에서 음양 작용이 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양 운동과 생명은 어느 것이 先하고 어느 것이 後한다는 선후의 구별이 없다.
그러나 우주의 조직으로써 보면 음양 조직이 있는 까닭에 생명이 유행하는 것이므로 음양이 선하고 생명이 후한다고 할 수 있고, 우주의 운행으로써 보면 생명이 있는 까닭에 음양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생명이 선하고 음양이 후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역경은 선천 운행의 理를 말한 까닭에 태극이 음양 양의를 生한다 하여 태극이 음양보다 선한다고 말할 뿐이다.
라. 생명의 形化作用에 대해서
物이 생생하는 것은 무형에서 유형한 형질이 生하여 공간적으로는 무한히 확대하고 시간적으로는 무궁히 계승하는 것인데 陰陽生命元에는 形이 없으니 形이 없으면 또한 생생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원은 자체가 생생하기 위하여 스스로 무형으로부터 유형으로 화하는 운동을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형으로부터 유형으로 화함에는 반드시 生命→氣→精→形의 순서를 밟는다.15)
또 천지간의 만물은 무형과 유형으로 대별되어 있고 유형은 모두 무형에서 생한 것이므로 이 유형한 물은 다시 무형으로 돌아가는 理가 있다. 그러므로 만물에는 生하고 滅하고 하는 현상이 있어 무형에서 生한 有形物은 반드시 生滅이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형이 생하지 아니한 자는 형이 멸할 것도 없는 까닭에 무형한 생명원은 생멸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생명체는 항구 계승하는 生命元을 內包하여 根本을 삼고 생멸하는 유형한 바탕을 얻어서 형질을 삼고 있으므로 만물에는 세세로 계승하여 항구하는 작용과 생하고 자라고 여무는 등 이 천지간에는 만물의 생생이 그치지 아니하는 것이다.16)
15) 이것을 사람의 생식 작용으로써 비유해 보면, 남체와 여체는 生命元의 象이오 처음에 兩體의 氣가 相感하여 愛感의 마음이 動하는 것은 氣化의 象이라 할 수 있고, 다음에 양체의 水火作用이 行하여 陰精과 陽精이 相合하는 것은 精化의 象이라 할 수 있고, 그 다음에 胎兒의 形이 成하는 것은 形化의 象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생식 작용은 무형으로부터 유형으로 화하는 운동이므로 또한 生命→氣→精→形의 순서를 밟는 것이다. 이것이 만물의 형화 작용의 원리와 상합하는 것이다.(韓長庚,《易學原理總論》, 프린트版, 38쪽.)
16) 易學의 乾․坤․雷․風․水․火․山․澤의 팔괘상의 순서도 따지고 보면 여기서 유래한다. 陰陽生命元이 무형에서 유형으로 化하는 순서를 보면, 음양생명원은 무형한 것이오 만물의 생생하는 운동은 모두 무형에서 유형을 생하기 위한 것이므로 음양 생명원은 자체가 생생하기 위하여 유형 운동을 일으키는 때에 雷風의 氣가 生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생명원은 陽元과 陰元으로 되는데 陽元에는 奮動하는 작용이 있고 陰元에는 牽入하는 작용이 있으므로 陽元과 陰元이 形化運動을 행할 때에는 奮動作用을 행하는 氣와 牽入作用을 행하는 氣가 생한다.
또 분동 작용을 행하는 자는 電氣이오 견입작용을 행하는 자는 磁氣이므로 生命元의 形化運動은 전기와 자기를 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電氣와 磁氣는 처음으로 氣化하고 아직 形化되지 아니한 것이므로 생명도 아니오 물질도 아닌, 생명과 물질의 중간성을 띠고 있는 氣이다. 전기와 자기는 생명원에서 제일 먼저 출생하여 음양대대관계를 가지는 것이므로 양원과 음원의 두 성을 具有하여 전기에는 양전음전이 있고 자기에는 양극음극이 있는 것이며 電氣와 磁氣는 천지간에 가득 차서 만물의 운행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으므로 電氣의 動하는 때에 雷의 鼓動作用이 생하고 자기의 행하는 때에 風의 시행 작용이 생하는 것이니 이가 생명원이 뇌풍의 기로 더불어 일체가 되어 천지간을 유행하고 있는 기화생명체의 생긴 시초이다.
그 다음에는 雷風의 氣가 또한 자체가 생생하기 위하여 유형 운동을 일으키는 때에 氣와 形의 중간성을 띤 精이 生하니 精이라 함은 聚하면 有形이 되고 散하면 無形이 되는 것을 말한다. 宇宙間에서 유형도 되고 무형도 되면서 그의 취산 작용에 의하여 만물을 생생하는 精은 水火이니, 그러므로 雷風의 形化運動에 의하여 먼저 생한 것은 水火의 精이다. 그 다음에는 水火의 精이 또한 자체가 생생하기 위하여 유형 운동을 일으키는 때에 精이 응고하여 비로소 형질이 되는데, 精의 응고한 형은 山澤이다. 그 이유는, 水는 流下하는 것이오 火는 炎上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水火에는 취산 작용만 있는 것이 아니오 또한 상하로 오르내리는 升降作用도 있는 것이다. 水는 流下하는 것이로되 水가 流下하지 아니하고 蓄貯하여 위로 升하여 넘쳐흐르면 水의 형체가 成하여 澤이 되는 것이다. 火는 炎上하는 것이로되 火가 炎上하지 아니하고 수렴하여 아래로 降하여 地中에 갈무리되면 火가 土로 더불어 형체를 成하여 山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원의 형화 하는 순서를 易學의 乾․坤․雷․風․
水․火․山․澤의 팔괘상의 순서로 삼은 것이다.(韓長庚, 同書, 14~15쪽.)
3. 인간의 천성에 대한 음양설적 해석
음양사상은 우주와 생명의 원천을 설명하는 논리로써만이 아니라 인간의 性命을 결정하는 논리로 설명되기도 한다. 즉, 타고난 생명과 천성을 설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논리적 수단이 되고 있다.
《周易》<繫辭>에 ‘한번 陰하고 한 번 陽함을 道라 이르고 繼하는 자가 善이오 成하는 자가 性이다’라는17) 말이 있다. 이는 乾坤生命元이 한 번 陰하고 한 번 陽하는 道에서 善이 繼生하고 善의 여문 것이 곧 性이므로 천성은 건곤에 본원하여 선의 여문 것이라 말한다. 또 乾卦에는 元을 仁이라 하고 仁에서 발하는 작용을 善이라 하는데, 만물의 씨는 元의 상이 되고 씨의 알맹이는 仁이 되며, 씨에서 발생하는 새싹은 善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생명의 元과 윤리적인 善을 동일한 근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17)《周易》<繫辭傳>, “一陰一陽之謂道,繼之者善也,成之者性也”.
4. 기타 다양한 설명의 틀
음양사상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중심이 되는 논리라 할 수 있지만 그밖에 여러가지 다양한 사실의 해명에 있어서 거의 전부라 해도 좋을 만큼 중요한 논리적인 틀을 포함하고 있다.
①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음과 양은 그 자체가 완전한 것은 아니고 太極體의 운동으로 생기는 법칙이므로 상대적인 것이다. 종교인류학적인 사례에서 보여진 바와 같이 음과 양은 一體兩用의 현상이다. 道의 운동을 표현하는 법칙으로 설명해도 같은 말이 된다. 도는 결코 음양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18)
18) 朱熹,《語類》卷七五, “夫太極之所以爲太極,却不離乎兩儀四象八卦,如一陰一陽之謂道,指一陰一陽爲道則
不可,而道則不離乎陰陽也”.
② 성리학적인 성인의 관념, 특히 그 성인의 인류에 미치는 영향을 음양으로 표현하고 있다.《중용》에서 천도는 아무런 의지적 노력 없이도 誠을 잘 드러내는데, 인간은 誠해지려는 끝없는 노력을 통해서만 겨우 誠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易經》에서는 한 번 陰하고 한 번 陽하는(一陰一陽) 것을 일러 道의 운동이라는 차원을 가지고 음양의 작용이 誠의 발현 아님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19)
19) 周敦頤,《通書》<誠上>, “誠者,聖人之本,大哉乾元,萬物資始,誠之源也,乾道變化,各正性命,誠斯立焉,純粹
至善者也,故曰,一陰一陽之謂道,繼之者善也,成之者性也,元,亨,誠之通,利,貞,誠之復,大哉易也,性命之源乎!”
③ 인간사회의 여러 怪疾이나 民亂, 地震과 같은 天災地變 등이 음양의 不調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특히 음기가 성하고 양기가 그 조절 능력을 잃을 때 생기는 것으로 본다.20)
만물의 근원이 작용하는 음양이 조화를 이룰 때에만 천지가 바로 서고 인간의 윤리적 질서가 바로 서는 것을 알 수 있다.21)
20)《國語》<周語>, “幽王二年,西周三川皆震,伯陽父曰,周將亡矣!夫天地之氣,不失其序,若過其序,民亂之也,陽
伏而不能出,陰迫而不能烝,於是有地震,今三川實震,是陽失其所而鎭陰也,陽失而在陰,川源必塞,源塞國必亡”
21)《莊子》<田子方篇>, “至陰肅肅,至陽赫赫,肅肅出乎天,赫赫發乎地,兩者交通成和”.
⑤ 陰陽說은 후에 五行說과 결합하여 더욱 복잡하게 여러가지 부면에 관련되는 설명의 틀이 되었다. 그것을 몇 가지 들어보면,
첫째 오행과 음양을 결합시켜 星相․方術 등의 각종 占卜에 응용되었다.23)
둘째, 漢代에 이르면 음양오행설은 하나의 보편적 학설이 되어 종교, 정치,학술 등 모든 분야에서 이 도식이 사용되었다. 童仲舒(深察名號)는 仁義禮智信의 五常을 五行에 결부시켜 설명하였고, 周敦頤는 음양오행을 태극과 결부시켜 설명하였다.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라고 설명하여 음양 속에 태극이, 오행 속에 태극과 음양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셋째, 음양 오행설은 고대의 천문학, 의학, 화학의 발전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음양오행의 상호작용을 이용하여 물질 현상들 사이의 상호 관련을 설명하고자 한 사람도 있고, 인체의 내부와 자연계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은 사람도 있다. 즉 인체의 조직은 자연계의 음양오행에 적용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음양오행의 도식이 생리학의 도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래서 사계절의 변화가 인간의 생리적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거나 인체 내부의 오장은 상호 영향을 끼친다고하는 이론을 제시하여 물질적 형상 속에서 질병이나 건강의 근거를 발견하려고 하였다. 병의 근원을 신의 징벌이나 귀신의 작용으로 설명하려는 종교적 태도에서 비교적 자유스러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견강부회가 많아 모든 현상을 도식적으로, 혹은 관념적․신비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도 나타났다.
넷째, 五行相生說과 五行相剋說과 같은 것을 통해 동양의 역사철학을 발전시켰다. 물질의 순환을 통해 세계와 인간사회의 운동 변화를 설명하려고 한 것이 오행상생설과 오행상극설이다.
《漢書》<郊祀志贊>에서 오행상생설을 역사적 인물과 결부시켜 순환론적 사관을 전개시켰다. 木의 성격을 가진 왕조는 水의 성격을 가진 왕조로 이어진다는 것을 음양상생의 원칙에 맞는다고 하여 역사의 순리로 해석하였다. 즉 이러한 역사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漢나라는 火德을 받아 天統을 이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음양오행설을 신비적으로 해석함으로써 漢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고자 한 것이다. 한편《史記》<封禪書>에서는 오행상극설을 역대의 왕조와 결부시켜 왕조 교체의 필연성을 설명하는 근거로 삼기도 하였다.
22) 童仲舒對策一, “天道之大者在陰陽,陽爲德,陰爲刑,刑主殺而德主生,是故陽常居大夏而以生育養長爲事,陰常
居大冬而積於空虛不用之處,以此見天之任德不任刑也”.
23)《史記》<孟子荀卿列傳>에 의하면, 鄒衍은 오행과 음양을 결합시켰는데, 道家 등 각 학파에도 영향을 미친, 이른바 五德終始說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음을 보게 된다.
《呂氏春秋》應同에서도 황제는 土德에 의해 왕이 되었기 때문에 황색을 숭상하였으며, 제도에 있어서도 土를 숭상하였는데, 그 후 土德이 쇠하자 禹가 木德에 의해 왕이 되었으며 겨울에도 나뭇잎이 시들지 않는 祥瑞가 보였다고 한다.
또 탕왕은 金德에 의해 文王은 火德에 의해 각각 왕이 되었으며 이들 각각의 왕조에는 그 덕을 나타내는 符應, 制度 및 服色이 있다는 것이다.
Ⅳ. 결론
음양사상은 동양 논리 체계의 바탕을 거의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동양 사람들은, 음과 양으로 갈라진 두 개의 대립은 불완전하게 여기고 그것을 넘어서는 전체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음양은 언제나 ‘전체’와 ‘완전성’에 대한 열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음양사상은 대립의 사상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와 완전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는 사상 체계이다.
즉 현상세계가 어쩔 수 없이 음양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고 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언제나 그 현상세계를 넘어서는 전체와 완전성이 암암리에 더 크게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음양사상은 음과 양의 대립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와 완전성이 음과 양을 통해서 나타나는 현상 세계의 신비를 설명하려는 욕구가 더욱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중국 고대의 신화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우주의 생성에 관한 신화에서 우주는 태초에 알〔卵〕속과 같은 混沌(‘완전성’을 상징)이었는데, 그 안에서 하나의 기운이 생겨나고, 그 기운 가운데 가벼운 것은 위로 올라가려는 경향이 있고, 무거운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려는 경향이 있어 음과 양이 갈리고 하늘과 땅이 갈라지게 되었다고 한다.《淮南子》에 보이는 이와같은 신화는 음과 양의 생성에 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원래 완전성이었던 하나의 혼돈이 운동함으로 인하여 음양이 생성되었다고 하여 완전성의 운동에 더욱 역점이 주어지고 있다.
太極이 動하여 음양이 생겼다고 말하는 周敦頤의《太極圖說》의 사상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동양적 사상은 분극성이나 양성구유, 쌍둥이의 신화에서 표현되는 것과 같이 분열된 이 세상으로부터 전체와 완전성으로 상징되는 저 세상으로 가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져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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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논문
한국인의 음양관
○ 陰陽觀의 歷史와 原理
○ 풍수의 음양관
○ 전통문양과 색깔에 나타난 음양관
○ 민속문학에 나타난 음양관
○ 韓國 傳統住居에 나타난 陰陽觀
○ 민속신앙의례와 속신의 음양관
○ 韓醫學에 나타난 陰陽觀
민속학 연구 4호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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