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곡동효열비각(蓬谷洞孝烈碑閣)
봉곡동 효열비각에는 효자 박진환(朴震煥, 1605~1650), 열녀 양주조씨(楊洲趙氏, 1696~1724), 열녀 함종어씨(咸從魚氏, 1778~1811)의 행적을 기리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과 편액을 보관하고 있다.
봉곡동 효열비각은 낮은 기단 위에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로 건립되었는데,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전면에는 홍살을 세웠으며 측면과 배면은 심벽으로 막았다. 기둥은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고, 익공 장식을 하였다. 효자 박진환의 구비(舊碑)는 6·25전쟁 때 파괴되어 파묻혔던 것을 다시 찾아내 상부 절반을 비각에 세워두었으며, 두 열녀의 적색 편액은 아직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2013년 현재 새로 조성된 밀양박씨 경주부윤공파 재실인 봉곡재에 있다.
밀양박씨경주부윤공파재실 봉곡재(蓬谷齋)-효열비각은 입구 좌측에 있다
봉곡재(蓬谷齋)
효열비각
빅진환정려비(朴震煥 旌閭碑)
박진환(1605~1650)의 자는 양백(楊伯)이며, 호는 남강(南岡)이고, 관직은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부친 경주부윤(慶州府尹) 박수홍(朴守弘)의 급서(急逝)로 3년 동안 시묘 후 몸이 극히 쇠약하여 46세를 일기로 운명하여 1681년(숙종 7)에 조정으로부터 정려가 내려졌다.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박성유(朴成裕)의 조부로 1757년(영조 33) 통정대부이조참의로 증직되었다.
사후 31년 만인 1681년(숙종 7)에 조정으로부터 정려가 내려져 비와 비각을 건립하였고, 1757년(영조 33)에 중수하였다.
비신(碑身), 비수(碑首) 일체형 비갈로 비신 높이 75㎝, 폭 42㎝, 두께 23㎝, 비수 높이 43㎝, 폭 58㎝, 두께 28㎝이다. 비 하부의 일부는 지면 아래에 묻혀 있다.
비의 앞면에는 ‘효자밀양박진환지려(孝子密陽朴震煥之閭)’라 각자되어 있으며, 오른쪽 면에 건비 연도인 ‘숭정신유(崇禎辛酉)’가 각자되어 있다. 서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봉곡동 효열각 내에 보존되어 있으며, 박진환 정려비는 파손으로 양분된 것을 접합하여 복원하여 놓았다. 2006년 중수 후 새로운 비를 조성하여 세웠다. 2013년 새로 조성된 밀양박씨 경주부윤공파 재실인 봉곡재 안으로 옮겼다
정려구비
정려신비
효자증통정대부이조참의밀양박진환지려
열녀학생박항령처유인양주조씨지려
열녀 양주조씨는 효자 박진환의 3대손 박항령(朴恒齡)의 아내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조태방이다. 병고에 시달리던 남편을 극진한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34세에 죽자 이튿날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다. 1729년(영조 5)에 정려를 내렸다.
열녀학생박래은처유인함종어씨정려
열녀 함종어씨는 효자 박진환의 8대손 박래은(朴來殷)의 아내이다. 남편이 1811년(순조 11) 갑자기 죽자 남편을 따라 죽었다. 이듬해인 1812년에 정려가 내렸다.
박래은(朴來殷)과 배위 열녀함종어씨 설단-경주부윤박수홍 신도비 측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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