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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관전서 > 청장관전서 제27~29권 > 사소절 2(士小節二)
사소절 2(士小節二) - 사전 2
동지(動止)
근신(謹愼)
동지(動止)
군자는 행동거지에 있어서 온아(溫雅)하고 교결(皎潔)하며, 정민(精敏)하고 관박(寬博)해야 한다.
인(仁)이란 생생(生生)을 이르는 것이다. 군자가 인도(仁道)를 체득하면 어찌 일 각(刻)001]인들 생생이 없으리오? 말을 할 때 조리가 없으면 생생이 아니요, 관대(冠帶)를 정제하지 않으면 생생이 아니다.
출입할 때나 진퇴할 때나 행동을 침착하게 해야지, 소나기나 회오리 바람처럼 해서는 안 된다.
말할 때에는 몸을 흔들지도 말고 머리를 흔들지도 말고 손을 흔들지도 말고 무릎을 흔들지도 말고 발을 흔들지도 말며, 눈을 깜빡이거나 눈동자를 굴리지도 말고, 입술을 삐쭉거리거나 침을 흘리지도 말며, 턱을 받치지도 말고 수염을 쓰다듬지도 말고 혀를 내밀지도 말고 손바닥을 치지도 말고 손가락을 튀기지도 말고 팔뚝을 뽐내지도 말고 얼굴을 쳐들지도 말며, 자리를 긁지도 말고 옷을 끌어잡지도 말며, 부채 머리를 거꾸로 던지지도 말고 허리띠 끝을 돌리지도 말라.
부채를 휙휙 휘젓지 말고, 신발을 직직 끌지 말라.
좁은 옷, 뾰족한 버선, 은으로 장식한 칼집, 비단 바지에 구레나룻을 쓰다듬어서 잘 기르고, 눈썹을 족집게로 곱게 다듬고서 걸음을 걷고 언소(言笑)를 잘하며 약간의 재사(才思)를 갖고 선배들을 피하는 자는 바로 인요(人妖)인 것이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우리 집안 자제들이 이런 무리를 본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세수할 때에는 입과 코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하며, 또는 자리에 물을 흘리지도 말고, 벽에 물을 뿌리지 말고, 얼굴을 예쁘게 하기 위해 더디게 하지도 말라.
군자(君子)가 거울을 보고서 의관을 정제하고 위의를 가다듬는 것은 요염한 자태를 꾸미기 위한 일이 아니다. 혹 거울을 늘 손에 쥐고 눈썹과 수염을 매만지며 날마다 고운 자태를 일삼는 자가 있는데, 이런 짓은 부녀의 행동인 것이다.
옛날 어떤 천부(賤夫)가 거울을 보고서 찡그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등 온갖 모습을 짓다가 그 중에서 남의 이목을 기쁘게 할 수 있는 태도를 택해서 습관적으로 용모를 꾸미는 일이 있었는데 남들은 그를 사랑했지만, 그 같은 사람은 나를 구역질나게 만드는 존재다.
세속에서는 이마 털이 일찍 벗어지는 것을 출세하는 상으로 여기어 머리털이 빨리 벗어지지 않은 것을 딱하게 여겨서 상투를 틀고 망건을 맬 때 반드시 잔뜩 죄어매어 빨리 벗어지기를 희망하고, 심지어는 족집게로 머리털을 뽑기까지 하며, 또는 늘그막에 이마가 벗어져서 입자(笠子)를 쓰기가 곤란할 것을 미리 염려하여 반드시 정수리 머리털을 깎아서 늘그막에 사용할 것으로 대비하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 조급한 마음에서 하게 되는 일들인데, 도리어 부모가 남겨준 몸을 공경해야 할 줄을 모르는 처사인 것이다.
마음에 없는 웃음을 억지로 웃지 말고 까닭없이 격분하지 말며, 일에 앞서 의심내는 것을 막고 때가 지난 뒤에 한갓 후회할 것을 염려하라.
말하기 전에 웃거나 웃음 소리가 교묘한 것은 음란한 태도에 가깝다. 웃을 경우 배를 거머쥐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웃어서는 안 된다.
눈을 깜빡거리고 입술을 비쭉거리는 것이 비록 작은 일이기는 하나, 그것이 만일 뇌롱(牢籠)002]하고 격촉(激觸)하는 심사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큰 심병(心病)인 것이다.
무릇 활을 쏘려고 힘쓸 때에는 입을 꽉 다물거나 눈살을 찌푸리지 말고, 머리를 숙이거나 발로 땅을 구르지 말라.
대저 절할 때에는 무릎에서 똑딱 소리가 나게 해서는 안 된다.
꿇어앉을 때에는 손가락으로 몸을 버티지 말고, 발등을 겹치지도 말고 엉덩이를 땅에 떨어뜨리지도 말고, 발을 틀어 밖으로 향하지도 말라.
말을 탈 때에는 고삐를 단단히 붙잡고 어깨를 치켜들지 말고 등을 굽히지 말고 배를 내밀지도 말며, 발을 등자(鐙子)에 깊이 들여놓지 말라.
좋은 말을 타거나 새로운 옷을 입거든 이리저리 돌아다 보며 자랑하는 태도를 짓지 말라.
비록 노마(驢馬)가 있다 하더라도 이웃에 갈 때 타서는 안 된다.
도보로 큰 길을 갈 때에는 반드시 가장자리로 가라. 한가운데로 걷다가 거마(車馬)를 이리저리 피하지 말고, 빨리 걷지도 말고 너무 천천히 걷지도 말고 팔뚝을 흔들지도 말고, 소매를 드리우지도 말고, 등을 굽히지도 말고, 가슴을 툭 튀어 나오게도 말고,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무엇을 가리키지도 말고, 좌우로 흘끗흘끗 보지도 말고, 느리게 신을 끌어 뒤축을 흔들지도 말고, 발을 무질서하게 오르내리지 말고, 머리를 위아래로 까불지 말며, 해가 얼마나 남았는가를 보아서 걸음의 완급을 정하라.
종인(宗人) 복초(復初)003]는 다닐 적에 그림자를 밟지 않았다. 아침나절에는 길 왼쪽으로 다니고 저녁 나절에는 길 오른쪽으로 다녔다. 다닐 적에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등을 꼿꼿하게 폈다. 일찍이 그와 동행할 때 30, 40리를 가는 동안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조금도 변동이 없었다.
길 가다가 떨어진 불을 발견하거든 반드시 끄고, 엎어진 신짝[鞋]004]을 보거든 뒤집어 놓고, 떨어진 종이005]쪽을 보거든 반드시 줍고, 흘린 쌀을 보거든 반드시 쓸라.
입으로 방향을 가리키지 말고, 발로 물건을 옮기지 말라.
일 없을 때 줄곧 뜰을 방황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기도 하는 행동은 또한 마음에 줏대가 없는 병통이다.
편협한 사람은 돈 몇천 닢을 얻으면 반드시 사치하는 마음이 생기고, 선배에게 한 번 칭찬을 받으면 반드시 자부하고, 관학(館學)006] 월과(月課)007]의 초선(抄選)에 참여되면 갑자기 남에게 교만을 부린다. 이보다 더 큰 것을 얻으면 그런 행동이 더욱더 심하니 슬픈 일이다.
시위(試闈)008]에서 시권(試券)을 드릴 때 편안한 걸음으로 서서히 걷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부박한 사람은 탓할 것도 못 되거니와 평소에 근신하던 사람도 시위에 들어가면 미친 듯이 망동하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천하에서 가장 순결한 몸은 일생 동안 과장(科場)을 밟지 않은 사람이란 논의는 선비의 본분을 극단적으로 말한 것이다.
글을 읽다가 옛 사람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정의를 위해 강개한 나머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일이 적힌 대문을 만나면, 마땅히 비장강개한 마음으로 눈물까지 흘리면서 마치 자신이 직접 그 일을 당한 것처럼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설화로만 보지 말고 두고두고 생각하여 비록 나라에 몸은 바치지 않았을망정 나라에 만일 난리가 있거든 정의를 위해 절개를 지키고, 따라서 죽음으로써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을 것을 기약해야 한다.
정신이 손상되도록 글을 읽고, 기운이 소모되도록 말을 하는 자는 허랑한 사람이다. 하물며 성인의 글이 아니고 신빙성 없는 말임에랴?
아! 글 읽는 사람의 과실이 때로는 어리석은 사람보다 심함이 있으니, 그것은 위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物)이 상리(常理)에 어그러짐이 재이(災異)인 줄만 알고, 일이 이치에 어긋남이 재이인 줄은 알지 못한다. 큰 일은 고사하고라도 눈을 단정히 뜨지 않으면 눈의 재이요, 입을 함부로 놀리면 입의 재이니, 통틀어 말하면 한 몸의 재이인 것이다. 사람마다. 이치를 어기면 천하의 재이가 이보다 큰 것이 있겠는가?
처사(處士) 유형원(柳馨遠)009]은 이렇게 말했다.
“도(道)에 뜻을 두고도 제대로 잘 확립하지 못하는 것은 뜻이 기질로 해서 게으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는 일을 잘하지 못하고, 의관을 바르게 쓰고 태도를 의젓하게 하는 일을 잘하지 못하고, 어버이를 섬길 때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일을 잘하지 못하고, 집에 있을 때 공경스럽게 서로 대하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조남명(曺南冥)010]은 말하기를,
“정암(靜庵) 선생은 용모가 옥같이 아름다웠으므로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모하였다. 선생이 젊었을 때 어느 객사(客舍)에 들러 머리를 빗고 있었는데 때마침 어떤 젊은 여자가 서울에서 오다가 선생을 보고 점점 가까이하면서 가지 않았다. 선생은 행여 그녀가 잠자리에 침입할까 염려하여 갑자기 그곳을 떠나 다른 집으로 옮겼다.”
하고, 서양 사람 방적아(龐迪峨)는 말하기를,
“옛날 어떤 소년이 여색에 음탕하다가 뒤에 뉘우치고 여자 관계를 끊으려 깊숙이 들어앉아 학문을 닦았다. 몇 년 만에 돌아오는데, 길에서 전에 알던 여자를 만났다. 그녀가 괴이하게 여기면서 ‘나는 옛날 아무인데 돌아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고 물었으나 ‘나는 옛날의 아무개가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하였다. 이상 두 가지 일은 엄정하므로 본받을 만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여색을 제어하기 매우 어렵다.
어떤 사람은 길에서 고운 옷 입은 부인을 만나면 반드시 머리를 돌리어 주시하고, 심지어는 궁인(宮人)의 유모(帷帽)011] 드리운 것이나 여염집 여인의 규의(袿衣)012] 걸친 것도 반드시 곁눈질하니 그것은 누추한 버릇이다. 마땅히 멀리 피하고 절대로 곁눈질하지 말아서 나의 몸을 삼가 가져야 한다.
길에서 벼슬아치의 갈도(喝道)013] 소리를 듣거든 문무관(文武官)을 막론하고 빨리 말에서 내리고, 도보로 갈 경우에도 역시 으슥한 곳에 몸을 숨겨 갈도를 피하라. 부인(婦人)의 교자(轎子)를 만나거든 쳐다보지 말고 피해 가라.
장가든 새 신랑에게 좋지 않은 풍속에 따라 다리를 매달고 함부로 때리고 무례한 말을 마구 하며 주식(酒食)을 토식하는 것014]을 훌륭한 일로 여기지 말라.
손님이 혹시 거북스러운 음담패설을 잘하는데, 자제가 같은 자리에 있거든, 일부러 일을 시켜 밖에 내보내 듣지 못하게 하라.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남과 더불어 귀에 대고 소근거리는 말을 하지 말라.
남의 집에 오래 앉았다가 밥이 나오면 주인이 아직 숟가락을 들기 전에 사양하고 물러나오라.
존장(尊丈)이 밥상을 대하고 있거든 갑자기 절하지 말라.015]
밥상을 받았을 때나 손님을 대했을 때는 눈꼽을 뜯지 말고, 콧물을 닦지 말라.
몸에 종기가 있을 경우 남이 보는 앞에서 문질러서는 안 되고, 발이 부르텄거나 혹은 티눈이 박혔을 경우도 남이 보는 앞에서 침으로 타서는 안 된다. 그 더러움을 보이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종기를 앓거든 아무리 과일이나 고기라 할지라도 직접 손으로 가져다 남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비록 묵은 병을 앓고 있더라도 항시 깨끗이 청소하여 더러운 기운이 나지 않게 하라.
남의 누추한 방에 들어갔을 때 아무리 앉기가 거북스럽더라도 코를 가리거나 눈살을 찌푸리거나 금방 나와 버리거나 하지 말라. 이런 정도를 견디지 못하면 이보다 큰 것에는 어떻게 하겠는가?
남이 보는 앞에서는 가려운 데를 긁지도 말고, 이를 쑤시지도 말고, 귀를 후비지도 말고, 손톱을 깎지도 말고, 때를 밀지도 말고, 땀을 뿌리지도 말고, 상투를 드러내지도 말고, 버선을 벗지도 말며, 또는 벌거벗고 이[蝨]를 잡지 말고, 혹은 잡은 이를 화로에 던져서 더러운 연기가 나지 않게 하며, 혹은 손톱에 묻은 이 죽인 피를 씻지 않아 남이 추하게 여기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 너무 조잡하다고 말라. 대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비에 옷이 젖었거든 갑자기 남의 방에 들어가지 말고, 옷이나 입자(笠子)에 덮인 눈을 정결한 곳에 털지 말라.
남의 집에 갔을 때나 자기 집에 있어 다른 손님과 같이 있을 때 심한 병이 있거나 극히 늙지 않았으면 요강에 오줌을 누지 말고,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반드시 밖에 나가 으슥한 곳을 향해 누라. 원현천(元玄川)016] 일찍이 나의 집에 왔을 때 요강에 오줌을 누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추잡한 일인 듯하다.”
하였다.
대저 남의 집에 갔을 때 또 어떤 사람이 와서 나의 등 뒤에 앉거든 안면이 있든 없든간에 몸을 돌려 앉아 보기 편하게 하라. 그 사람이 혹시 나를 등지고 앉거든 나도 또한 몸을 일으켜 고쳐 앉을 것이다.
남의 집에 갔을 때 어떤 손님이 앞서 편한 자리에 앉아 있다가 먼저 일어나 가거든 냉큼 그 자리에 앉지 말라. 그런 행동은 그 자리를 뺏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좁은 방일 경우에는 예외다.
대저 남의 집에 가거든 소장된 문자(文字)나 기물(器物)을 보자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만일 남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주인만이 황송하고 부끄러워할 뿐 아니라, 나의 마음이 불안함도 또한 어떠하겠는가? 경계하고 경계하라.
남의 집에 갔을 때에는 머리를 돌리고 눈알을 굴리며 사방 벽을 바삐 보거나 책을 마구 빼보고 기물을 함부로 건드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주인이 굳이 말리는데도 오히려 여전히 하는 것은 결코 씩씩한 선비가 아니다.
대저 남의 집에서 잘 때는 반드시 주인 뒤에 눕고 주인 먼저 일어나며, 일어나거든 반드시 이불을 개어 예전 자리에 두고 나서 웃옷을 입고 단정히 앉아야 한다. 주인이 세수하기를 권하거든 곧 일어나 나가고 지체하지 말라. 주인이 종이 없어 물을 가져 오지 않거든 그냥 망건(網巾)017]을 쓰라.
남의 집에서 잘 때에는 편리함을 구하지 말고 오직 주인의 뜻만을 따를 것이며, 반드시 적삼과 바지를 벗을 것은 아니다. 아침에 세수하고는 주인의 수건에 씻지 말라. 수건을 더렵혀서가 아니라, 사람마다 각기 성질이 다르니, 혹 주인이 깔끔한 성격이어서 남의 때를 싫어할까 싶어서이다. 주인이 만일 씻기를 권할 경우에는 약간 수건 끝으로 씻고 콧물이나 침을 묻히지 말라. 손님이 만일 내집에 와서 자게 되거든 잠자리를 손수 정해주고 옷을 벗고 눕기를 권하며 세수하거든 반드시 수건을 주되, 수건이 만일 더럽거든 ‘수건이 더럽소이다.’라고 미리 말한다.
무릇 잠잘 때에는 이불을 걷어젖히지 말고, 얼굴을 이리저리 뒤치지도 말며, 목을 구부리지도 말고, 손과 발을 마구 뻗지도 말며, 잠꼬대를 하지도 말고, 코를 골지도 말며, 벼룩이나 이를 함께 자는 사람에게 쫓지도 말라.
무릇 빈우(賓友)ㆍ족친(族親)을 볼 때는 절하고 읍(揖)하는 예절을 조금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사람은 이런 예절을 익히지 않아, 읍할 경우에는 손을 가슴에 댔다가 이내 떼어버리고 혹은 손을 마주 합해서 비스듬하게 들기도 하며, 절할 경우에는 몸을 급히 땅에 던져 등을 기울이고 엉덩이를 삐딱하게 하며, 혹은 절을 너무 더디게 하여 나는 아직 구부리고 있는데 상대방은 벌써 일어나 서게 되니, 모두 예의를 잃은 것이다. 손님이 와서 앉을 자리가 없는데도 주인 혼자만이 오똑하게 자리에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무릇 높은 손님을 배웅할 경우에는 마루 밑까지 따라 내려 가서 배웅하고 동배(同輩)를 전송할 경우에는 공수(拱手)하고 일어서 있다가 그가 뜰에 내려간 뒤에 앉으라. 손님이 겨우 몸을 돌려 아직 문밖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그가 보지 않는다 해서 바로 앉는다면 그것은 거만한 행동이다. 남을 대했을 때 다리를 뻗고 앉거나[箕踞]018] 벌떡 눕거나 잡담을 어지럽게 하거나 하는 행동은 금수(禽獸)와 다를 것이 없다.
존귀한 사람이나 생소한 손님을 볼 때 머리를 숙이고 얼굴을 붉히고 몸을 흔들고 손을 놀리는[手多容]019]자는 중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덕을 쌓고 위의(威儀) 닦기를 힘쓴다.
남자가 오래 내실에 처하고 규방(閨房)020]에 자주 들어가면 위엄이 손상되고 영이 행해지지 않는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밥상도 채 물리기 전에 일어서는 것은 점잖은 행동이 아니다.
선비는 안정한 것을 귀중히 여긴다. 만일 집에 편안히 있지 못하고 분분하게 밖에 나가는 것은 그 마음이 방종해진 지 이미 오래다.021]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은 상장(喪葬)에 관계된 일이 아니면 문 밖에 나가서는 안 된다. 혹시 집이 가난하여 의약(醫藥)ㆍ칭대(稱貸)의 일을 대신해 줄 만한 자질과 노복이 없는 사람이면 부득이 문 밖에 나갈 것이나, 만일 무료해서 대화를 하기 위해 출입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문을 마주 대하고 있는 이웃이라 하더라도, 최복(衰服)을 걸치고 다른 집에 가서는 안 된다.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이르기를,
“재최상(齊衰喪)을 당한 사람은 장사를 지내고 나서 남이 보기를 청하면 만나보지만 자청하지는 않는다.”
하였다. 변생 관해(卞生觀海)022]는 의원인데, 어머니 상중에 있을 때 중병이 아니라면 질대(絰帶)를 벗지 않고 함부로 언소(言笑)도 하지 않았으며, 부귀한 집에서 초청해도 3년 동안은 문 밖에 나가지 않았으니, 나는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가난해도 부자에게 동정을 구하는 태도를 지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즉시 도와주지 않을 뿐아니라, 또한 싫어하고 업신여긴다. 설사 도와준다 해도 인색한 마음에서 행해진 것이니, 호축(呼蹴)023]과 다를 것이 없다. 그것으로 배를 채운다면 굶어죽은 것만 못하다. 대차(貸借)하는 것은 비록 나쁜 일이 아니나, 부자로서 교만하고 인색한 자에게 자주 대차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피곤해도 문턱은 베지 말라. 발이 밟고 다닌 곳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덥더라도 심히 피곤하지 않으면 누워서는 안 된다. 누우면 자연 졸음이 오고 졸면 기운이 혼탁하다. 그렇게 되면 사지가 흐트러질 뿐아니라 병을 초래하게 된다. 정신이 노곤하면 더욱 더 등을 꼿꼿이하고 어깨를 반듯이 하여 단정히 앉으라. 잠시만 지나면 정신이 곧 맑아지고 더운 기운도 침노하지 않을 것이다. 《예기》 표기(表記)에 이르기를,
“씩씩하고 삼가면 날로 강해지고, 안일하고 방심하면 날로 게을러진다.”
하였다.
병도 없고 근심도 없을 때 신음하거나 얼굴을 찡그려서는 안 되고, 조그마한 병과 작은 근심이 있을 때 크게 신음하고 크게 얼굴을 찡그려서는 안 된다.
근심이란 흔히 여의치 않는 데서 생겨나 반드시 노기(怒氣)와 함께 발로 하는 것이다. 사람의 심정이 이따금 이러하니, 억눌러서 격발하지 않게 해야 한다.
비록 시름과 분노가 있더라도, 조급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호소하듯 나무라듯 혼자서 중얼거려서는 안 된다.
소소한 근심으로 얼굴을 찡그려 우는 형상을 해서는 안 되고, 약간 성낼일에 고함질러 꾸짖는 얼굴을 해서도 안 된다.
병중(病中)에는 간호인이 자기 뜻처럼 간호해 주지 않는다고 화내지도 말고, 함부로 찬 바람을 쐬거나 찬 음식을 먹지도 말며, 병세가 아무리 위독해도 처량한 말을 하거나 죽으리라는 공포심을 갖지 말고, 또한 곧 죽어가는 형상을 하고서 의약과 음식을 물리침으로써 남을 두렵게 해서도 안 된다.
앓던 병이 조금 낳았거든 정신을 차려야 하고 오래 누워서 나태한 습성을 길러서는 안 된다. 조금 아픈 병에는 시끄럽게 엄살부리지 말라. 남에게 문병할 때에는 더욱 정성을 써야 하고, 집에 약이나 치료에 보탬이 될 만한 재료가 있거든 반드시 보내 주어야 한다.
애기 울음소리, 개가 짖는 소리, 까마귀 우는 소리, 말[馬]의 느림, 종의 미련 등은 모두 짜증 날 일이다. 그러나 성내거나 꾸짖어서 나의 성기(聲氣)를 허비하고 나의 심성(心性)을 소요케 해서는 안 된다.
말[馬]이 지쳐서 걸음이 느리다 해 분노하여 큰 소리로 종을 시켜서 후려치게 하지 말라.
파리가 빨고 이가 물더라도 화내거나 나무라지 말고, 갓끈이 끊어지고 옷이 찢어지더라도 한탄하거나 애석해 하지 말라.
[주D-001]각(刻) : 《운회(韻會)》에 “각(刻)은 누(漏)이니, 누전(漏箭)으로 일구(日晷)를 살피는 것이 각이다.” 하였다.[두주]
[주D-002]뇌롱(牢籠) : 고뢰(皐牢)와 같으니, 포라(包羅)의 뜻이다.[두주]
[주D-003]복초(復初) : 이름은 광석(光錫), 호는 심계(心溪)다.[두주]
[주D-004]신짝[鞋] : 가죽신이다.[두주]
[주D-005]종이 : 동한(東漢) 화제(和帝) 때 중상시(中常侍) 채윤(蔡倫)이 처음 나무 껍질로 종이를 만들었다. 채윤의 뒤에는 좌자읍(左子邑 : 후한(後漢) 좌백(左伯))이 종이를 잘 만들었다. 소이간(蘇易簡)의《지보(紙譜)》에 “촉(蜀) 땅 사람은 삼[麻]으로, 민(閩) 땅 사람은 연한 대[嫩竹]로, 북쪽 사람은 뽕나무 껍질로, 섬계(剡溪) 사람은 등(虅) 나무로, 바닷가 사람은 이끼[苔]로, 절(浙) 땅 사람은 보리ㆍ밀ㆍ벼 등으로, 오(吳) 땅 사람은 누에고치로, 초(楚) 땅 사람은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었다.” 하였다.[두주]
[주D-006]관학(館學) : 관(館)은 성균관(成均館)이니, 태조 정축년에 창건되었고, 학(學)은 사학(四學)이니, 태종 신묘년에 중(中)ㆍ동(東)ㆍ남(南)ㆍ서(西)의 사학이 처음 설립되었다.[두주]
[주D-007]월과(月課) : 승보시(陞補試)와 학제시(學製試)를 말한다.[두주]
[주D-008]시위(試闈) : 선비를 시험 보이는 곳이다. 동남쪽은 문(門)이라 칭하고 서쪽은 위(闈)라 칭한다.《주관(周官)》에 문위(門闈)의 학이 있다.[두주]
[주D-009]유형원(柳馨遠) :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효종 갑오년에 진사가 되었고, 뒤에 좨주(祭酒)에 추증되었다. 서원이 있고 저서에《반계수록(磻溪隨錄)》이 있다.[두주]
[주D-010]조남명(曺南冥) : 이름은 식(植), 자는 건중(楗仲)인데, 명종 때 사람이다. 유일(遺逸)로 나라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뒤에 두류산(頭流山)에 들어가 일생을 마쳤다. 서원과 문집이 있다. 명종 때 편전(便殿)에 입대(入對)하여 정치하는 방법과 학문하는 방법을 극력 진언하였다.
[주D-011]유모(帷帽) : 장막 따위인데, 일명 면유(面帷)로 우리 나라 방언으로는 나올(羅兀)이라 한다.[두주]
[주D-012]규의(袿衣) : 긴 저고리인데, 속명(俗名) 장의(長衣)이다. 여항(閭巷) 여자의 웃옷을 말한다.[두주]
[주D-013]갈도(喝道) : 벼슬아치의 하례(下隸)들이 벽제(辟除)하는 소리다.[두주]
[주D-014]다리를 …… 것 : 속칭 동상례(東床禮)라는 것인데, 동상이란 명칭은 진(晉) 나라 왕희지(王羲之)가 동쪽 평상에서 배를 내놓고 누워 있었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두주] 《진서(晉書)》왕희지전(王羲之傳)에 의하면, 괵감(郄鑒)이 사위감을 고를 때 여러 소년들은 제각기 잘 보이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하였으나 왕희지만은 동족 평상에서 배를 내놓고 누워 있으면서 못들은 체하였는데, 결국은 그가 괵감의 사위가 되었다 한다.[역주] 다리를 매다는 장난은 곧 고려 말기에 있었던 남침(覽寢)의 유속(遺俗)인 것이다.[두주] 혼례 치른 다음날 신랑의 친지들이 신부의 집을 찾아가면, 그 집에서는 으레 잔치를 베풀게 되었으니, 그것을 남침이라 한다.[역주] 지금 풍속에서는 신랑을 만나면 다리를 매달아 놓고 때리고 무례한 말을 하면서 주식(酒食)을 요구한다. 진(晉) 나라 때에 희부법(戱婦法)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뭇 남자들이 신부를 희롱하며 신을 벗기고 발을 문지르는 일이었으니 참으로 폐속이었다. 그 풍속은 진ㆍ송(晉宋) 때에 시작되었다 하는데,《단연록(丹鉛錄)》에 자세히 보인다.[두주]
[주D-015]존장(尊丈)이 …… 말라 : 주인으로 하여금 막 밥먹다가 번거롭게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두주]
[주D-016]원현천(元玄川) : 이름은 중거(重擧), 자는 자재(子才), 본관은 원주(原州)다. 벼슬은 현감(縣監)이었고, 일찍이 일본을 유람하여《화국지(和國志)》를 지었다.[두주]
[주D-017]망건(網巾) : 말총으로 망(網)을 만들어 머리털을 싸매는 것이다. 명 태조(明太祖)가 아직 등극하기 전에 신락관(神樂觀)에 가서 도사(道士)가 실로 망을 얽어 머리털을 싸맨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더니, 그 뒤에 명하여 천하에 그것을 행하도록 하였다. 만력(萬曆) 연간에 이르러 비로소 빠진 말총으로 실을 대신하였다.[두주]
[주D-018]다리를 뻗고 앉거나[箕踞] : 두 다리를 뻗은 모양이 키[箕]와 같은 것이다.[두주]
[주D-019]손을 놀리는[手多容] : 손으로 자리를 긁고 땅을 긋는 따위다.[두주]
[주D-020]규방(閨房) : 규(閨) 자는 규(圭) 자와 통하니, 작은 문이 마치 규(圭 : 홀(笏))와 같으므로 여자가 거처하는 곳을 규(閨)라 한다.[두주]
[주D-021]선비는 …… 오래다 : 청장관본에는 “常戒子弟奴婢 若有客室必卽通焉 不可謾之曰 主人不在家 若不能安於家 紛紛出門 其心放已久”라고 되어 있는 것을 최성환이 ‘若不能’ 앞에 ‘士貴恬靜’ 네 자를 넣어 두 항목으로 나누었다.
[주D-022]변생 관해(卞生觀海) : 영종(英宗) 때의 의원이다.[두주]
[주D-023]호축(嘑蹴) : 여기서는 호통치며 주고, 발로 차서 주는 것을 말한다.
《맹자》고자 상(告子上)에 “호통치면서 주면 길가는 사람도 받지 않고, 발로 차서 주면 걸인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嘑爾而與之 行道之人弗受 蹴爾而與之 乞人不屑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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