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문법

[스크랩] 懸吐

장안봉(微山) 2014. 2. 20. 03:05

1. 散文의 懸吐

토란 결국 한문에 붙는 우리말이므로 한문의 이해와 함께 국어의 문법도 알아야 한다. 다음에서 한문 산문과 시의 토를 국어문법의 조사와 어미 접속사에 관련지어 살펴보기로 한다.

1) 助詞形의 吐

가) 主語 밑에 다는 吐 ― 이, 가

주격조사는 주어와 서술어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고어에서는 '이, ㅣ'가 있었고, 현대에는 '이, 가'가 있다.

예1) 子ㅣ 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라고 하셨다.)≪論語·學而≫

㉠ 자 + ㅣ + 왈 = 재왈

㉡ 자 + ㅣ + 왈 = 자왈('ㅣ'는 발음하지 않음)

예2) 林放이 問禮之本한대 子ㅣ曰 大哉라 問이여 禮ㅣ 與其奢론 寧儉이요 喪이 與其易也론 寧戚이니라(임방이 예의 근본을 물으니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구나, 질문이여! 예는 그 사치함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상은 형식에 익숙하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고 하셨다.)

≪論語·八佾≫

예1)의 경우 옛날에는 ㉠·㉡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으로 읽어야 하느냐에 대해 학파간에 주장이 달랐다. 艮齋 田愚(1841-1922)선생을 중심으로 한 기호지방에서는 '재'를 속음으로 보아 주로 ㉡으로 읽었고, 영남지방과 그 외의 지방에서는 ㉠으로 읽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은 '재왈', '자왈', '자가 왈', '자께서 왈' 중에서 어느 것으로 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한 주체가 '공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종결사 '―也ㅣ니라' 도 '야이니라', '얘니라' 중에서 어느 것으로 읽느냐는 논란이 많았는데 이것도 위의 주격조사와 같은 견해에서다.

이와 같이 주격 '토'는 두 가지가 사용되었다. 古語로 올라갈수록 주어와 서술어와의 관계만 나타내었을 뿐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나타내는 보조사는 발달하지 못했다. 이것은 현재 手話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고어에서 주격토는 '이', 혹은 '이'의 변이형인 'ㅣ'만 쓰였으나, 현재에는 '가'도 함께 쓰이고 있다. 고어의 경우, 앞 글자에 받침이 있으면 '이'를 붙이고, 받침이 없으면 'ㅣ'로 붙였으나, 현대어로 보면 받침이 없을 때에는 '가'로 하는 것이 옳다.

나) 主題를 나타내는 吐 ― 은, 는

'이·가·은·는'이 모두 주격조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서 ㉠·㉡은 주격 조사이고, ㉢·㉣은 보조사인데, 보조사 중에서도 ㉢은 주제, ㉣은 대조의 뜻을 나타낸다.

예1) 君子는 務本이니 本立而道生하나니 孝弟也者는 其爲仁之本與인져(군자는 근본에 힘쓰는 것이니 근본이 서야 道가 생겨나니, 孝와 弟란 그 仁을 행하는 근본인 것이다.) ≪論語·學而≫

예2) 如其禮樂엔 以俟君子하리이다(그 예악에 대해서는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 ≪論語·先進≫

한문을 번역하는 데는 격조사와 보조사를 구분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예2)처럼 복합토(에+는)가 많다는 것에도 유의해야 한다.

다) 冠形語 밑에 다는 吐 ― 의

한문에 다는 관형격 토는 많지 않다. 명사와 명사 사이에 '之'가 들어가 '兄弟之間'처럼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1) 馬援의 兄子嚴敦이 竝喜譏議而通輕俠客하더니(마원의 형의 아들인 엄과 돈이 모두 비판하고 논평하기를 좋아하고 경박하고 호협한 사람들과 교제하더니…) ≪小學·嘉言≫

예2) 虞는 舜의 氏니 因以爲有天下之號也라(우는 순의 씨니 인하여 천하를 소유한 칭호로 삼았다.) ≪書經·虞書註≫

이런 경우 토를 달지 않으면 문장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관형격의 토를 달았다. 엄격히 토를 달면 '兄의 子인 嚴과 敦이'라 해야 옳지만 문장의 리듬을 고려하여 이렇게 하지 않았다. 오늘날은 문법적 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런 토를 달아도 무방하다

라) 目的語 밑에 다는 吐 ―을, 를

국어에서와 마찬가지로 목적어 다음에는 '을, 를'이 온다. 그런데 '서술어+목적어·보어'의 순서로 되었을 때는 우리말 어순에 맞지 않기 때문에 목적어나 보어 다음에 토를 달지 않고, 다만 '목적어·보어+서술어'로 도치되었을 때에만 토를 단다.

예) 今其全書를 雖不可見이나 而雜出於傳記者ㅣ 亦多언마는(지금 그 완전한 책을 비록 볼 수는 없으나 傳記에 섞여 나오는 것이 역시 많건마는…) ≪小學·書題≫

이와 같이 목적어가 먼저 오고 서술어가 연결되면 '을, 를' 토를 붙였다. 이와 달리 '今雖不可見其全書' 라고 할 때에는 목적격 토가 들어갈 수 없다. 한편 '―을(를)如'로 많이 쓰인다. 예를 들면 "學之不已를如鳥數飛也(공부하는 것을 그치지 않기를 새가 자주 나는 것과 같다)"가 그것이다.

마) 기구·자격을 나타내는 吐 ― (으)로써, (으)로

예) 晉國에 有難이어든 而無以尹鐸으로 爲少하고 無以晉陽으로 爲遠하고 必以爲歸라하더니(진나라에 재난이 있거든 너는 윤탁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진양을 멀게 여기지 말고 반드시 그 곳으로 가야 한다고 하더니…)

≪通鑑節要≫1

前置介詞 '以' 아래에는 '―(으)로' 토를 많이 단다.

바) 부르는 말 밑에 다는 吐 ― 아, 야, 어, 여

국어에서는 呼格助詞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예들이 있다.

예1) 點아 爾는 何如오(점아 너는 어떻게 하겠는가?) ≪論語·先進≫

예2) 帝曰 契아 百姓이 不親하며 五品이 不遜일새 汝作司徒ㅣ니 敬敷五敎호대 在寬하라(皇帝 舜이 말하기를 "설아 백성이 친목하지 않고 오품〔오륜〕이 순행하지 않으므로 너를 사도로 삼았으니 공경히 오륜을 펴되 너그러움에 있게 하라고 하셨다.)

≪書經·舜傳≫

예1)은 공자가 제자인 曾點을 불러서 그의 태도를 물은 것이고, 예2) 역시 舜임금이 신하 契을 불러 이야기한 것이다.

사) 補語 밑에 다는 吐 ― 에

보어 밑에 모두 토를 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에'토만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예1) 子ㅣ 曰 回也는 非助我者也로다 於吾言에 無所不說이온여(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안회는 나를 돕는 자가 아니로구나! 나의 말에 대해 기뻐하지 않은 바가 없구려"라고 하셨다.) ≪論語·先進≫

예2) 孟子ㅣ 對曰 於傳에 有之하니이다(孟子께서 대답하기를 "전에 있습니다"라고 하셨다.) ≪孟子·梁惠王 下≫

예3) 今不取면 後世에 必爲子孫憂하리이다(지금 취하지 않으면 후세에 반드시 자손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論語·季氏≫

예4) 五畝之宅에 樹之以桑이면 五十者ㅣ 可以衣錦矣며(5묘의 집 가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세 된 자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孟子·梁惠王 上≫

보격 토는 보어 밑에 붙이는 것이다. 보어의 개념이 한문과 국어가 다르다. 다만 보어 밑에 많이 쓰이는 '에'는 시간·장소·사물·사람·사건 등에 두루 사용된다. '於'자는 우리말 '에'에 해당한다. 목적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어가 먼저 나오고 서술어가 뒤에 나올 때만 '에'토를 단다. 예를 들어 '無所不說於吾言'이라 하면 토를 붙일 곳이 없다. 한편 '於'자를 때로는 '을, 를' 이란 뜻으로도 읽었기 때문에 옛날 서당에서는 이 자를 '를(늘) 어(於)' 라고 읽었다. 즉 "三年을 無改於父之道라야 可謂孝矣니라(3년 동안 아버지께서 행하던 道를 고치지 말아야 효라 할 수 있다.)" ≪論語·學而≫라는 글에서 '於'는 본래 아버지께서 행하던 道에 대해서라는 뜻이지만 "아버지께서 행하던 道를" 이라고 번역한다. 이와 같은 글에는 吐를 붙일 수가 없다.

국어에서는 '에'를 그 의미적 차이에 따라 처소격, 향진격, 여격 등으로 나누지만 한문에서는 모두 보어 밑에 쓰이는 토이고, 국어에서는 '이, 가'를 쓰임에 따라 변성격조사로 보기도 하지만 한문에서는 변성격도 설정할 필요가 없다. 국어의 비교격조사도 介詞(於, 于)와 연계동사(如, 若, 猶)를 사용하기 때문에 토가 붙지 않는다.

아) 共同과 接續을 나타내는 吐 ― 과, 와, (으)로

예1) 蘇子與客으로 泛舟遊於赤壁之下할새 淸風은 徐來하고 水波는 不興이라(소자가 손님과 더불어 배를 띄워 적벽강 아래 노는데 맑은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고 물결도 잔잔하였다.) <赤壁賦>

이처럼 前置介詞 '與' 아래에는 '―(으)로' 토를 많이 단다.

예2) 周有八士하니 伯達과 伯适과 仲突과 仲忽과 叔夜와 叔夏와 叔隨와 季 니라(주나라에 여덟 선비가 있으니 백달과 백괄과 중돌과 중홀과 숙야와 숙하와 숙수와 계와니라.) ≪論語·微子≫

예3) 逸民은 伯夷와 叔齊와 虞仲과 夷逸과 朱張과 柳下惠와 少連이니라(일민은 백이와 숙제와 우중과 이일과 주장과 유하혜와 소련이니라.) ≪論語·微子≫

예4) 修身也와 尊賢也와 親親也와… 懷諸侯也니라(몸을 닦음과 어진 이를 높임과 친족을 친히 함과…제후를 은혜롭게 함이니라.)

≪中庸≫20장

이와 같이 연속적으로 나열된 체언을 끊어주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말 토를 넣어 우리말 식으로 이어줌으로써 문맥을 분명하게 해준다. 이 토는 예4)처럼 명사형 밑에 붙일 수도 있다.

자) 疑問·反語 밑에 다는 吐 ― 가(아), 고(오)

의문대명사(誰, 孰,  ), 의문부사(何, 惡, 安, 豈, 幾, 胡, 奚, 曷, 庸, 那,  , 如何, 奈何, 若何, 何若), 의문종결사(乎, 哉, 耶, 歟, 諸) 등의 밑에 붙이는 토이다. 국어의 경우 의문사가 있을 때는 '-고(오)'로 쓰고, 의문사가 없을 때는 '-가(아)'형을 구분 선택하지만 한문 토에서는 이런 법칙보다 다만 문맥의 흐름과 어감에 따라 이들 토를 달았다.

예1) 汝爲周南召南矣乎아(네가 주남과 소남을 배웠느냐?)

≪論語·陽貨≫

예2) 男兒二十에 未平國이면 後世誰稱大丈夫리오(남아가 20세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고 일컫겠는가?)

南怡 <北征>

예1)은 의문문이고, 예2)는 반어문이다. 이 의문문과 반어문의 차이는 국어문법에서도 설명하기가 어렵고 다만 내용상으로 판별해야 한다. 국어의 문법체계대로 엄격히 말하면 이는 모두 조사형의 토가 아니라 의문형 어미의 토다. 한문의 토에서 조사와 어미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항에서 함께 다루었다.

차) 感歎語 밑에 다는 吐 ― 아, 여, 뎌,  녀, 라

감탄문은 感歎詞(於, 嗚呼, 嗟乎, 噫,  , 於戱,  歟)와 終結詞(乎, 歟, 夫, 哉, 矣, 也)로 된 경우가 많다.

예1) 王曰 惡라 是何言也오(왕이 말했다. 아, 이 웬 말인가!)

≪孟子·公孫丑 上≫

예2) 善哉라 問이여(훌륭하구나! 물음이여.) ≪論語·顔淵≫

여기서 전자는 '감탄사 + 이다 → 이라, 구나, 도다'로 변한 것이므로 엄격히 말하면 조사형의 토라기보다 어미형의 토이다. 하지만 고립어인 감탄사에 첨가어인 토를 단 특수성 때문에 이 항에서 설명했다. 후자는 감탄형에 우리말 어미의 토가 들어간 경우이다. 감탄을 나타내는 토는 거의 감탄형 어미이다. 하지만 한문에서는 조사형 토냐 어미형 토냐를 따질 것 없이 감탄을 나타내는 토란 것만 알면 된다.

카) 윗말을 補助하는 데 다는 吐 ― 도

국어에서는 보조사가 10여 종이나 되지만, 한문의 토로 사용하는 것은 많지 않다.

예1) 孟子ㅣ曰 魚도 我所欲也며 熊掌도 亦我所欲也언마는 二者를 不可得兼인댄 舍魚而取熊掌者也로리라(맹자가 말씀하시기를 "고기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웅장도 역시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가질 수 없을 것 같으면 魚物을 버리고 熊掌을 취하겠다"고 하였다.) ≪孟子·告子 上≫

국어에서는 '도'라는 조사도 '동일', '역동'으로 구분하지만 모두 역시 동일하다는 뜻이다. 한문 토에서는 이렇게 세분할 필요가 없다.

보조사 중에 '시작'과 '到及'은 다음과 같다.

예2) 自王公以下로 至於庶人之子弟히 皆入小學이라(왕공 이하로부터 서인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교에 들어갔다.)≪大學·序≫

前置介詞 '自' 아래에는 '―(으)로' 토를 많이 단다. '히'라는 토는 현대어의 '까지'에 해당한다.

보조사 중에 강세토는 다음과 같다.

예3) 稽于衆하여 舍己從人하며 不虐無告하며 不廢困窮은 惟帝사 時克이러시니라(여러 사람들에게 상고하여 자기의 단점을 버리고 남의 장점을 따르며 하소연할 곳 없는 자들을 학대하지 않으며 곤궁한 자들을 폐하지 않는 것은 다만 帝堯만이 이에 능하셨다.)

≪書經·大禹謨≫

帝曰 毋하라 惟汝사 諧니라(帝舜이 말씀하시기를 "그러지 말아라 오직 너만이 이에 합당하다"고 하셨다.) ≪書經·大禹謨≫

'사'는 현대어로 '아'로 바뀌었다. 경상도방언에 지금도 '내사 모르겠다'는 古語形의 흔적이 남아 있다.

2) 語尾形의 吐

가) 終結語尾의 吐

(1) 서술형 어미의 吐 ― 다, 라

현대 국어의 서술형 어미만 붙이면 된다. 한문도 국어처럼 명사, 동사, 형용사의 서술어가 있다.

예) 子曰 惟仁者아 能好人하며 能惡人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어진 자만이 남을 사랑하며 남을 미워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셨다.) ≪論語·里仁≫

와 같이 끝나는 문장에 붙이는 토이다.

(2) 감탄형어미의 吐 ― 도다

예) 悠哉悠哉라 輾轉反側하소라(그리움이 끝이 없어 이리저리 뒤척이네.) ≪詩經·關雎≫

여기서 '하소라'는 '하노라'라는 감탄형어미의 토이다.

(3) 의문형어미의 吐 ― 아

이는 위의 의문·반어 토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예) 子見夫子乎아(노인장께서는 우리 선생님을 보셨습니까?)

≪論語·微子≫

와 같이 '아'는 의문을 나타내는 토이다.

(4) 명령·청유형어미의 吐 ― 하라

'―하지 말라', 또는 '―하라'는 명령문의 토를 말한다. '無·不·莫·勿', 또는 '請' 등의 끝에 쓰인다.

예1) 無道人之短하라(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라.)

예2) 帝아 念哉하소서(임금이시여 생각하소서.) ≪書經·大禹謨≫

예3) 故로 曰 仁者無敵이라하니 王請勿疑하소서(그러므로 어진 자는 대적할 사람이 없다고 한 것이니 왕께서는 의심하지 마소서.)

≪孟子·梁惠王 上≫

예1)은 낮은 사람에게 말할 때 쓰는 토이고, 예2)는 높은 사람에게 말할 때 쓰는 토이다. 한문에서는 청유형의 토는 따로 발달되지 못하고 예3)처럼 명령형으로 함께 썼다.

나) 轉成語尾의 吐

전성어미란 동사가 부사형, 관형사형, 명사형어미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예1) 惟朕小子ㅣ 其新(親)逆호미 我國家禮에 亦宜之라하시고(나 소자가 친히 公을 맞이함이 우리 국가의 예에 또한 마땅하다 하시고…) ≪書經·金 ≫

예2) 越在外服한 侯甸男衛邦伯과 越在內服한 百僚庶尹과(외복에 있는 후·전·남·위의 제후와 방백 및 내복에 있는 백료와 서윤과…) ≪書經·酒誥≫

예3) 其所厚者에 薄이오 所薄者에 厚하리 未之有也니라(그 후하게 할 것에 박하게 하고 그 박하게 할 것에 후하게 하는 자는 있지 아니하니라.) ≪大學·經一章≫

예1)에서 '맞이함'이라는 명사형으로 전성하여 여기에 주격을 나타내는 '이' 토를 붙였고, 예2)는 관형사형으로 전성한 토를 붙였으며, 예3) 역시 관형사형으로 전성하여 '할+이(人)+이(토 생략)'로 된 것이다.

다) 連結語尾의 吐

국어는 연결형어미가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한문은 주부와 술부만 찾아내면 해독이 가능한데 주어는 생략되어도 서술어의 생략은 거의 없다. 이에 따라 연결형어미에 해당하는 토가 많다. 이를 국어와 관련지어 살펴보기로 한다.

(1) 拘束形語尾의 吐

구속형이란 동사가 앞 문장의 서술어로 끝나지 않고 뒤에 오는 문장을 이으면서 그 내용(사건)을 제약하는 어미이다.

① 假定을 나타내는 吐 ― 면

'若, 如, 苟' 밑에 쓰나, 문맥상으로 이런 글자가 없더라도 가정형의 문장에 쓰인다.

예1) 苟非吾之所有면 雖一毫라도 莫取어늘(만약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라도 취할 수 없거늘…)〈赤壁賦〉

예2) 若要久   須是恭敬이니 君臣朋友ㅣ 皆當以敬爲主也ㅣ니라(만약 오래 가기를 바란다면 모름지기 공경해야 하니 군신간과 붕우간에는 모두 마땅히 공경을 주장으로 삼아야 한다.) ≪小學·嘉言≫

예3) 人一能之어든 己百之하며 人十能之어든 己千之니라(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해야 한다.) ≪中庸≫20章

예1)의 '―면'은 조건이고, 예2)의 '―인댄'은 '―일 것 같으면'의 뜻이며, 예3)의 '―어든'은 선택적인 뜻이다. '―댄'은 다음과 같이 쓰이기도 한다.

㉠ 若……인댄須是

㉡ ………인댄須先

㉢ 譬……컨댄猶

㉣ ………댄不如

'―댄'은 "…할 것 같으면, 마땅히 …해야 한다" 라는 뜻이므로 이와 같이 호응관계를 갖는다.

② 事由를 나타내는 吐 ― ㄹ새, 니, 거늘

예1) 與中國으로 不相流通일새(중국과 통하지 아니 하므로…)

≪訓民正音·序≫

예2) 有所不行하니 知和而和요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也니라(행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화를 알아서 화만 하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으면 이 또한 행할 수 없다) ≪論語·學而≫

예3) 父作之어늘 子述之하시니라(아버지께서 시작하셨거늘 아들이 계술하였다.) ≪中庸≫18章

위의 예문에서 '―하니'와 '―어늘'은 과거에 '主·客토'라고 했다. '―하니'는 "누구가 …하니, 어떤 결과가 나왔다"는 뜻이고, '―어늘'은 "누가 어떻게 하거늘 내가 어떻게 했다."는 뜻으로 객체와 주체가 분명히 다른 문장 사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니 盖'로 호응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했으니, 아마 이런 것이다'는 뜻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것은 구분해서 토를 달아야 한다.

㉠ ……이니 ……

……이러니 ……

……이나 ……

……이라야

㉡ ……하니 ……

……하더니(터니) ……

……하나 ……

……하여야 ……

㉠은 윗 말의 명사와 연결될 때 쓰이고, ㉡은 윗 말의 동사와 연결하여 '하다류의 동사'가 될 때 쓰인다.

그리고 때로는 '―이라'도 종결 어미가 아니라, 구속형 어미로 쓰일 때가 많다. "겨울이 온지라, 날이 춥다"고 할 때 '온지라'는 '왔기 때문에'란 뜻이다. 한문에 이런 토를 많이 사용했다.

예) 上焉者는 雖善이나 無徵이니 無徵이라 不信이요 不信이라 民弗從이니라(상고시대의 것은 비록 좋으나 증거할 만한 것이 없으니 증거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믿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 ≪中庸≫29章

한문을 번역할 때에 이런 토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③ 必要를 나타내는 吐- 아야(어야)

예1) 臣克艱厥臣이라사 政乃乂하여 黎民이 敏德하리이다(신하가 신하됨을 어렵게 여겨야 정사가 비로소 다스려져서 서민들이 덕에 속히 교화될 것입니다.) ≪書經·大禹謨≫

예2) 官占先蔽志오사 昆命于元龜하나니(관점은 먼저 자기의 뜻을 결정하고 나서 큰 거북에게 명한다.) ≪書經·大禹謨≫

惟精惟一하여사 允執厥中하리라(오직 정하게 하고 전일하여야 진실로 중도를 잡을 것이다.) ≪書經·大禹謨≫

이 '사'가 붙는 경우는 "須當 …라사, 惟(唯, 維) …사(아)/라야 …乃" 로 호응된다. 이는 "…해야만 …그제야" 라는 뜻이다.

(2) 放任形語尾의 吐 ― 나(사실), 언정(양보), 건마는(사실), 거니와(사실), (오)도

방임형이란 동사가 앞 문장의 서술어로 끝나지 않고 위에 오는 문장을 이으면서 그 내용(사건)의 제약을 풀어 놓는 어미이다.

예1) 寧飮建業水언정 不食武昌魚라(차라리 건업의 물을 마실지언정 무창의 물고기는 먹지 않겠다.) ≪三國志·晋紀≫무제 태시 2년

寧爲鷄口언정 無爲牛後라(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궁둥이는 되지 말아야 한다.) ≪通鑑節要≫1

예2) 或이 疑如此오도 亦有不得祿者어니와(혹자는, 이와 같이 하고서도 녹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는 것을 의심했지만…)

≪論語·爲政 註≫

이 '도' 토의 쓰임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 雖(以)……라도亦

㉡ ……………도亦

㉢ 雖…………도……

㉣ ……………도苟

㉤ ……………라도若

㉥ ……………라도猶

㉦ ……………라도尙

㉧ 至於……‥하여도

와 같이 호응해서 많이 쓰인다.

(3) 羅列形語尾의 吐 ― 고, 며

'―하고', '―하며'는 국어 문법에서도 명확한 구분이 없다. 하지만 '―하고'는 공간적이면서 대립성이 강하고, '―하며'는 시간적이면서 연속적인 동작에 쓰인다. 또, 같은 문장에서는 동일한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 한 번 '―하고' 하면, 다음은 '―하며' 라고 한다.

예1) 寬則得衆하고 信則民任焉하고 敏則有功하고 公則說이니라(너그러우면 대중의 마음을 얻고 신의가 있으면 백성들이 신임하고 민첩하면 공적이 있고 공정하면 백성들이 기뻐한다.) ≪論語·堯曰≫

예2) 謹權量하며 審法度하며 修廢官하신대 四方之政이 行焉하니라(저울과 헤아림을 삼가며 법도를 살피며 폐지된 관직을 다시 설치하니 사방의 정치가 행해졌다.) ≪論語·堯曰≫

다음의 토는 구분해서 써야 한다.

㉠ ……이요 ……이며

㉡ ……하고 ……하며

에서 ㉠은 윗말의 명사와 연결될 때 쓰인다. 예를 들면 "이것은 책이요, 이것은 칼이요, 이것은 붓이요…"와 같은 예이다. ㉡은 윗말의 동사와 합하여 '하다류의 동사'가 될 때 쓰인다. 하지만 혼용되는 경우도 있다.

예) 質勝文則野ㅣ오 文勝質則史ㅣ니 文質이 彬彬然後에 君子ㅣ니라(바탕이 꾸밈보다 더하면 野하게 되고 꾸밈이 바탕보다 더하면 화사하게 되는 것이니 꾸밈과 바탕이 잘 조화한 연후에 군자이다.)

≪論語·雍也≫

여기서 '野하고', '史하니'로 하지 않고, '野요', '史니'로 읽은 것은 이를 名詞句처럼 인식한 것이다. 한편 '이요'는 '―이요, 非―'로 쓰는 경우가 많다. '…가 아니요 …이다' 라는 뜻이다.

(4) 說明形語尾의 吐 ― 더니(러니)

"과거에 …하더니, 지금은 어떻게 한다"는 말에 쓰인다.

예) 曾子養曾晳하되 必有酒肉하더니 將徹할새 必請所與하시며 問有餘어든 必曰有라하더시다(증자가 증석을 봉양할 적에 반드시 밥상에 주육이 있었는데, 장차 밥상을 치울 적에 증자는 반드시 "누구에게 주시겠습니까?" 하고 청했으며, 증석이 "남은 것이 있느냐?" 하고 물으면 반드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孟子·離婁 上≫

㉠ ……하더니今……

㉡ ……하더니將……

㉢ ……하더니及……

등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5) 比較形語尾의 吐 ― 곤, 온

예) 禮與其奢也론 寧儉이요(예는 사치함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論語·八佾≫

비교형어미의 토는 與, 況,  과 호응하여 쓰이는데, 與가 '보다는 여'이므로 대개 다음과 같은 예가 많다.

① 與其……온寧

② 與其……온孰與(……온孰若, ……온豈若)

③ 與其……온無寧……乎

이 '온'은 현대어로 '-보다는'의 뜻이다.

(6) 選擇形語尾의 吐 ― 나, 든지

예) 凡語中所載如此類者는 不知何謂라 或古有之어나 或夫子嘗言之어나를 不可考也라(무릇 ≪논어≫중에 기재된 내용으로 이와 같은 유들은 무엇을 말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혹은 옛적에 있었거나 혹은 공자께서 일찍이 말씀하셨거나 한 것을 상고할 수 없다.)

≪論語·季氏註≫

위의 '-어나'의 토 대신 '-인지'의 토를 붙일 수도 있다.

(7) 然後形語尾의 吐 ― 에(에야)

예) 子ㅣ曰 歲寒然後에 知松柏之後彫也니라(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에 시듦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論語·子罕≫

(8) 中斷形語尾의 吐 ― 다가

예) 其母曰 他日笞에 子未嘗泣이라가 今泣은 何也오(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다른 날에 매를 칠 때에는 네가 일찍이 울지 않다가 이제 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小學·稽古≫

所謂大臣者는 以道事君하다가 不可則止하나니(이른바 대신이란 도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불가하면 그만두는 것이니…)

≪論語·先進≫

㉠ ……라가後……

㉡ ……(이라)가今……

㉢ ……(이라)가及至……

와 같이 호응관계를 이룬다. '전에 …하다가, 지금은 …한다' 는데 쓰이기 때문이다.

(9) 到及形語尾의 吐 ― 도록

예) 項羽使人有功當封에 刻印이  도록 忍不能予라가 卒以取敗하니 亦其驗也라(항우가 사람에게 일을 시켜 공로가 있어 봉작하게 됨에 새긴 인장이 망가지도록 차마 주지 않다가 끝내는 패망을 자초하였으니 이것 역시 그 증험이다.) ≪論語·堯曰 註≫

지금까지 吐의 개념과 기능, 또는 현토의 방법을 우리 국어문법과 관련지어 살펴 보았다.

3) 接續詞形의 吐

위에서 조사형 토와 어미형 토를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句, 또는 문장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접속사와 호응해서 쓰이던 대표적인 토를 보기로 한다. 국어문법에서 접속사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가 없기 때문에 이를 국어문법에 의거하여 서술하지 못하고 대표적인 몇 글자만 예를 든다.

가) 순접

(1) 則

㉠ 若……면……

㉡ 苟……면……

㉢ ……면則……

위의 '若, 苟'는 "만약…한다면"으로 호응관계를 갖기 때문에 토가 '…면'이 된다. '則'자는 "… 만일 …한다면 곧"이란 뜻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기호지방에서는 '則'자 자체를 중시하여 "人不忠信이면則事皆無實(사람이 충신하지 못하면 일마다 모두 실상이 없다.)" ≪論語·學而 注≫과 같이 토를 달아 읽는다. 그러나 영남지방을 위시하여 다른 지방에서는 '則'자 자체에 '…면'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아 '人不忠信則事皆無實'이라는 식으로 읽기도 한다. 여기서 '―면 則'이라고 하면 접속사형의 토가 되고, '―면'의 뜻으로만 읽으면 가정을 나타내는 구속형 어미의 토가 된다. 그만큼 토의 유무에 관계없이 한문을 국어처럼 쉽게 이해했던 것이다. 결국 가정의 뜻이 강하면 '―면' 토를 달고, 語氣的일 때는 토를 달지 않았다. 옛날에는 낭송을 하는 성조와 관계가 깊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난다.

(2) 以

예) 天必命之하사 以爲億兆之君師하여 使之治而敎하여 以復其性케하시니(하늘이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억조창생의 군주와 스승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려 가르쳐서 그 본성을 회복하게 하시니) ≪大學·序≫

'以'가 순차적으로 접속의 의미를 가질 때 그 앞에 '―하여' 라는 토를 단다. 하지만 문장이 간단할 때는 '以' 자체에 '…하여'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토를 달지 않는다. 그리고 기호지방에서는 한문의 원형을 중시하여 '以' 위에 토를 달지 않았으나 영남이나 다른 지방에서는 더 국어화하여 토를 많이 다는 것이 특징이다.

나) 역접

◎ 然

예) 或微妙而難見耳라 然이나 人莫不有是形이라(혹은 미묘하여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사람이면 이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다.) ≪中庸·序≫

이와 같이 '―라然이나' 로 달지만, 성조에 따라 '―이나然이나' 로 달기도 한다. 한편 '―나' 토는 "雖愚나 必明하며(비록 어리석으나 반드시 밝아지며) ≪中庸≫20장"과 같이 '雖―나' 로 호응하여 쓰이는 일이 많다. 이 외에도 '―나' 토는 다음과 같이 호응 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 ……나 然이나

㉡ ……나(而)

㉢ ……나 但

'―이다. 그러나' 로 읽으면 접속사형의 토가 되고, '―하(이)나' 로 읽으면 방임형어미의 토가 된다.

다) 순접·역접

◎ 而

예1) 本立而道生하나니(근본이 서야 도가 생겨나는 것이니…)

≪論語·學而≫

子ㅣ曰 善人을 吾不得而見之矣어든 得見有恒者면 斯可矣니라(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나 볼 수 없으면 恒心이 있는 자만이라도 만나보면 된다"라고 하셨다.) ≪論語·述而≫

예2) 爲人謀而不忠乎아(남을 위해 일을 꾀함에 충실하지 않았는가?) ≪論語·學而≫

與朋友交호대 言而有信이면(친구와 사귀되 말할 때에 신의가 있으면…) ≪論語·學而≫

三十而立하고(서른 살 때에 자립하였고…) ≪論語·爲政≫

예3)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라고 하셨다.) ≪論語·學而≫

敬事而信하며 節用而愛人하며(일에 공경하고 신의가 있으며 쓰기 를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論語·學而≫

謹而信하며(삼가고 신실하며…) ≪論語·學而≫

예4) 人不知而不 이면 不亦君子乎아(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화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論語·學而≫

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면 何如니잇고(가난하나 아첨함이 없고 부 자가 되어도 교만함이 없으면 어떻겠습니까?) ≪論語·學而≫

예5) 溺於貧富之中하여 而不知所以自守라(빈부 가운데 빠져 스스로 지킬 줄을 몰랐다.) ≪論語·學而 注≫

예6) 其爲人也孝弟요 而好犯上者鮮矣니(그 사람됨이 효하고 공경스러우면서 윗사람에게 거역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적으니…)

≪論語·學而≫

예7) 夫子斥其非하시고 而特惡其 也시니라(공자께서 그 그름을 배척하시고 그 말재주를 미워하신 것이다.) ≪論語·先進 注≫

위의 글에서 예1)과 예2)의 예는 '而'자가 어미처럼 쓰였기 때문에 토가 들어갈 수 없다. 예3)과 예4)는 접속의 기능이 있어 전자는 순접이고 후자는 역접이다. 그러나 그 기능이 약하여 성조기능, 즉 語氣詞와 같은 역할 밖에 하지 못하므로 토는 달지 않는다. 특히 한문은 낭독과 낭송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때로는 토가 꼭 들어가야 할 자리에까지 그것을 생략하는 '默吐' 현상도 있다. 예5)와 예6)은 접속사로서의 기능이 강하기 때문에 그 앞에 토를 붙인다. 다만 예5)는 시간적 순차적이기 때문에 '―하여' 토를 붙이고, 예6)은 명사 아래 붙었기 때문에 '―요'를 붙였으며, 예7)은 대등 독립적이면서 동사 斥과 연결하여 '하다류의 동사'가 되기 때문에 '―하고'라는 토를 달았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 '夫子斥其非而特惡 也'라는 식으로 읽어 토를 달지 않을 수도 있다.

라) 이유

◎ 故

예1) 武王도 亦然이라 故로 未盡善이라(무왕 역시 그러했다. 그러므로 지극히 좋지는 못하다.)

예2) 武王도 亦然故로 未盡善이라(무왕 역시 그러했으므로 지극히 좋지는 못하다.) ≪論語·八佾 注≫

이와 같이 두 가지 토가 가능하다. 지방에서는 후자로 읽는 경우가 많지만 중국에서는 '故' 앞에 표점을 찍고 기호지방에서는 '―이라故로' 라고 많이 읽는다. 이것 역시 기호지방에서는 한문 자체를 중요시하고 지방에서는 국어 쪽으로 접근시킨 것이다.

㉠ ……이라故로

㉡ ……이라是故로

㉢ ……이라是以로

㉣ ……ㄹ새故로

㉤ ……ㄹ새是以로

이와 같이 연결된다. 그런데 잘못된 교과서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松江關東別曲前後思美人歌는 乃我東之離騷이나 而以其不可以文字寫之하니 故로 惟樂人輩가 口相授受하고" (H社, 高下, 1992)

이것을 풀이하면 "송강의 <관동별곡>, <전·후미인가>는 곧 우리 나라 <이소경>이나 그것은 문자로써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다만 樂人들만이 서로 입으로 전하고…" 라는 뜻이다. 문형은 "以…故" 형식이다. 그러므로 "以文字寫之라故로" 라고 하든지, "以文字寫之故로" 라고 토를 달아야 한다. 여기서 '―이라 故로' 라고 하면 접속사형의 토가 되고 '―므로' 라고만 해석하면 사유를 나타내는 구속형어미의 토가 된다.

마) 조건

◎ 但

예) 子夏之言이 迫狹하니 子張이 譏之是也로되 但其言이 亦有過高之弊라(자하의 말이 너무 박절하고 좁으니 자장의 비난이 옳지만 다만 자장의 말 역시 지나치게 높은 폐단이 있다.) ≪論語·子張 註≫

와 같이 '但' 앞에는 '―로되', '―나' 등의 토를 많이 단다. 그러나 기호지방에서는 '-라, 但'으로 읽는 경우가 많고 영남지방에서는 '-로되, 但'으로 읽는 경우가 많다. 영남지방에서는 한문이 더 국어화 또는 토속화된 것이다. '―라, 但'으로 읽으면 접속사형의 토가 되고, '―로되, 但'으로 읽으면 방임형어미의 토가 된다.

(其他) 使役助動詞(使, 令,  ) 아래에는 '-(으)로' 토를 많이 단다.

예1) 趙簡子使尹鐸으로 爲晉陽한대(조간자가 윤탁으로 하여금 진양을 다스리게 했는데…) ≪通鑑節要≫1

예2) 遂令天下父母心으로 不重生男重生女라(마침내 온 세상 부모의 마음으로 생남하기를 중히 여기지 않고 딸 낳기를 중히 여기게 했네.) 白樂天 <長恨歌>

예3)  爲師者로 知所以敎하며(스승된 자로 하여금 가르칠 바를 알게 하며…) ≪小學·立敎≫

위에서 살펴본 조사형의 토, 어미형의 토, 접속사형의 토 이외에는 그 예가 많지 않은 관계로 사역조동사 밑에 다는 토는 항을 따로 설정하지 않고 여기에서 붙여 설명했다.

지금까지 한문의 토에 대해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문의 토는 바로 우리말 체언의 조사와 어간의 어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토 다르고 해석이 달라서는 안된다. 한 교과서의 예를 들면, "善與人交하되 久而敬之니라(P社, 中3, 1992)" 라는 글은 ≪論語·公冶長≫의 "子曰 晏平仲은 善與人交로다 久而敬之온여(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안평중은 남과 잘 사귀는구나! 오래도록 서로 공경하니.)"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글은 감탄문인데 위의 교과서처럼 토를 달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럴 바에는 아예 토를 달지 말아야 한다.

이상에서 산문의 토를 우리 국어와 관련지어 살펴보았다. 다음에 한시의 토를 살펴보기로 한다.

 

출처 : 瑞亭漢文
글쓴이 : 나루터 최계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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