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효령대군 이보 묘역

장안봉(微山) 2012. 12. 27. 21:53

효령대군 이보 묘역(서울시 유형문화재 12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청권사에는 효령대군의 사당과 묘소가 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갔더니 청권사 입구에 토요일 개방 시간이 12시까지로 적혀 있어서 발길을 돌렸다가 한 달쯤 뒤에 다시 갔습니다. 그 날은 토요일 11시 30분경에 청권사 입구에 도착하였으나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니 사람은 간간히 지나 다니길래 문을 두드리고 불러 보았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청권사가 사단법인으로 되어 있어서 114를 통하여 알아낸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였으나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계속 전화를 걸면서 문을 두드리고 부르니 드디어 30 여분 만에 문이 열렸습니다. 개방시간 이내에 왔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청권사 내부를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 청권사 입구

▲ 청권사 내부 전경

▲ 사단법인 청권사 건물

청권사 입구를 들어서면 앞에는 작은 연못이, 정면에는 재실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사단법인 청권사의 3층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을 지나면 청권사가 보입니다. 청권사의 외삼문은 닫혀 있어서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었으며, 담장 너머로만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청권사 왼쪽에는 신도비가 서 있으며, 뒤로는 효령대군의 묘소가 보이고 사초지의 높이가 왠만한 왕릉의 강(岡) 처럼 넓고 높습니다. 신도비 옆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넓은 공간이 나오고 정면에는 비각이 있습니다. 비각 안에는 효령대군의 묘비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 청권사(사당) 외삼문

▲ 신도비

▲ 비각

비각 옆의 안내 표석에는 이 곳 비각에 세워진 묘표는 효령대군 내외분의 묘소에 세웠던 원래의 묘표석으로 오백년 긴 세월 풍마우세로 마모균탁하여 1997년 형상 보존을 위하여 비각을 세워 옮겼으며, 1999년에는 묘소 중앙에 상석이 없어서 묘제때 마다 목상을 이용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상석을 새로이 만들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비각 오른쪽에는 묘소로 올라가는 상당히 높고 긴 계단이 있습니다. 이 계단을 오르면 효령대군의 묘소가 있습니다. 묘소 좌우에는 문인석 1쌍씩, 정면에는 장명등이 서 있으며, 상석과 묘비는 안내판 내용대로 새로 만들어서 세워져 있었습니다.

▲ 효령대군 묘소

▲ 묘소 뒤에서 바라 본 전경

효령대군 묘소 좌측 아랫 부분에는 7대 후손과 8대 후손의 묘도 함께 있으며, 묘역은 깔끔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습니다. 묘소에서 내려와 청권사 3층 건물 뒷편으로 내려 오면 오른쪽에는 재실(모련재)이 있으며, 재실 왼쪽에는 후문이 있습니다. 처음에 들어 올 때 문을 열어주신 분께서 묘소 참배 후에는 후문을 잘 닫고 나가라고 하시더군요. 정문이 닫힌 경우에는 후문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청권사를 찾아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으로 생각되며, 그래서 정문은 열어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 곳에 가시는 분이 있다면, 정문이 닫혀 있을 경우에는 청권사 왼편에 있는 후문의 쪽문 옆에 인터폰이 있으니 인터폰을 누르고 방문 목적을 이야기하면 문을 열어 줄 것입니다.

 

※ 청권사 개방 시간 : 평일(10시~17시), 토요일(10시~12시)

▲ 효령대군 후손 묘

▲ 모련재(재실)

▲ 청권사 후문

청권사 부 묘소(淸權祠 附 墓所)에는 조선 제3대 태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1486)의 사당과 묘소가 있다. 효령대군의 이름은 보(補), 자는 선숙(善叔), 시호는 정효(靖孝)로 세종대왕의 형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읽기와 활쏘기를 좋아하였다.

 

또한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태종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불교에도 독실하여 승도(僧徒)를 모아 불경을 강론하는가 하면 세조 10년(1464) 원각사 창건 때에는 조성도감제조(造成都監提調)가 되어 역사(役事)를 감독하였다. 효령대군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은 정면 3칸의 우진각지붕으로 된 건물로 영조 정조 연간에 중건 보수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제3대 태종대왕(太宗大王) [1367 ~ 1422] 가계도

 

정비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1365 ~ 1420]

적1남 아들 [생몰년 미상]
적2남 아들 [생몰년 미상]
적3남 아들 [생몰년 미상]
적4남 왕세자(王世子) [1394 ~ 1462] (後 양녕대군)
적5남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 ~ 1486]
적6남 충녕대군(忠寧大君) [1397 ~ 1450] (後 왕세자) :
제4대 세종대왕
적7남 성녕대군(誠寧大君) [1405 ~ 1418]
적1녀 정순공주(貞順公主) [1385 ~ 1460]
적2녀 경정공주(慶貞公主) [미상 ~ 1455]
적3녀 경안공주(慶安公主) [1393 ~ 1415]
적4녀 정선공주(貞善公主) [1404  ~ 1424]

 

서1남 경녕군(敬寧君) [1395 ~ 1458] (효빈 김씨)
서2남 함녕군(諴寧君) [1402 ~ 1467] (신빈 신씨)
서3남 온녕군(溫寧君) [1407 ~ 1453] (신빈 신씨)
서4남 근녕군(謹寧君) [1411 ~ 1461] (신빈 신씨)
서5남 혜령군(惠寧君) [미상 ~ 1440] (고씨)
서6남 희령군(熙寧君) [미상 ~ 1465] (숙의 최씨)
서7남 후령군(厚寧君) [1419 ~ 1455] (덕숙옹주 이씨)
서8남 익녕군(益寧君) [1422 ~ 1464] (선빈 안씨)
서1녀 정혜옹주(貞惠翁主) [생몰년 미상] (의빈 권씨)
서2녀 정신옹주(貞信翁主) [미상 ~ 1507] (신빈 신씨) 
서3녀 정정옹주(貞靜翁主) [미상 ~ 1455] (신빈 신씨)
서4녀 숙정옹주(淑貞翁主) [미상 ~ 1456] (신빈 신씨)
서5녀 소선옹주(昭善翁主) [생몰년 미상] (신빈 신씨)
서6녀 숙혜옹주(淑惠翁主) [미상 ~ 1464] (소빈 노씨)
서7녀 숙녕옹주(淑寧翁主) [생몰년 미상] (신빈 신씨)
서8녀 소숙옹주(昭淑翁主) [미상 ~ 1456] (선빈 안씨)
서9녀 숙경옹주(淑慶翁主) [생몰년 미상] (신빈 신씨)
서10녀 경신옹주(敬愼翁主) [생몰년 미상] (선빈 안씨)
서11녀 숙안옹주(淑安翁主) [미상 ~ 1464] (명빈 김씨)
서12녀 숙근옹주(淑謹翁主) [생몰년 미상] (신빈 신씨)
서13녀 숙순옹주(淑順翁主) [생몰년 미상] (덕숙옹주 이씨) 

옹주(翁主) [1400 ~ 1402] (숙의 최씨 소생)
옹주(翁主) [1412 ~ 1414] (선빈 안씨 소생)

청권사 위치도

소재지 : 서울 서초구 방배동 191

 

왼쪽의 빨간 깃발이 후문이고 화살표 있는 곳의 빨간 깃발이 있는 곳이 청권사 정문입니다.

 

지하철 2호선 방배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100여 미터 전방 왼쪽에 청권사가 있습니다.

출처 : 한국의 능원묘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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