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1] 광개토대왕릉

장안봉(微山) 2012. 12. 27. 21:41

광개토대왕릉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그 동안 국내에 있는 조선 왕릉, 고려 왕릉, 백제 고분, 신라 왕릉에 더불어서 이제는 고구려 왕릉을 직접 보고, 묘실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자못 흥분까지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더 갔었습니다만, 국내에 있는 왕릉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대단한 왕릉이란 생각이 듭니다.

1500년이 넘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고구려 왕릉이 아직도 건재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거대한 왕릉을 통해서 당시 우리 선조들의 기상과 광활한 대륙을 호령하던 그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광개토대왕릉은 많이 허물어지고 훼손되었지만 당시에는 어마어마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광개토대왕비에서 오솔길을 따라서 몇 분만 걸어가면 전방에 광개토대왕릉이 보입니다. 능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전시실이 세워져 있는데, 우선은 이 곳에 전시된 비와 능의 예전 사진들을 보고 나서 계단을 통해서 광개토대왕릉으로 오르면 됩니다.

계단을 다 오르면 바로 능상 맨 위에 묘실 입구로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에는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 중국 관리인이 항상 지키고 서 있습니다. 묘실 입구는 유리로 막혀 있으며, 유리 안을 들여다 보면 시신을 모셨던 석판 2개만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보입니다.

다른 고구려 고분과는 다르게 광개토대왕릉과 장수왕릉은 묘실이 높은 능상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내부는 별로 넓지도 않고 벽화 같은 것도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묘실이 능상 꼭대기에 있어서 이미 예전에 도굴을 당한 것은 자명한 일이고, 그 만큼 훼손이 많이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인 것 같습니다.

광개토대왕를 입구에서 좌측을 보면 압록강 물은 보이질 않습니다만, 저 멀리도 아닙니다.바로 앞에 보이는 산이 북한의 산(위 좌측 사진)입니다. 북한 지역이 너무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또한 뒷편을 바라보면 장수왕릉이 산 자락 밑에 있는 것이 보입니다.(위 우측 사진)

광개토대왕릉의 능상 우측과 뒤편은 도굴을 당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큰 자잘들로 막아 놓아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능의 석축 맨 밑 부분에 기대어 세웠던 호석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을 위 우측 사진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다시 계단으로 내려와서 광개토대왕릉을 멀리서 한 바퀴 돌면서 조망을 하시면 됩니다. 위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미 허물어졌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하단의 일부 석축들도 거의 허물어 지고 있는 모습을 하단 사진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능 하단 사방 면을 버티고 서 있는 크기가 어마어마한 호석들을 보노라면 그 옛날 웅장했을 왕릉의 위용을 상상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장수왕릉을 동양의 피라밋이라고 할 정도였으면 광개토대왕릉이 온전했다면 이집트의 피라밋과도 견줄 만했을 겁니다. 광개토대왕릉은 장수왕릉의 2배는 족히 되는 왕릉입니다.

광개토대왕릉이 제대로 보존이 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다음에 소개할 장수왕릉이 형태를 제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습니다.

중국 지린 성[吉林省] 지안 현[輯安縣] 여산(如山) 남쪽 기슭에 있는 고구려의 기단식(基壇式) 돌무지무덤[積石塚]으로 현재는 분구의 대부분이 무너져내린 기단부와 그 위층의 방단부(方壇部) 일부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1990년 이래 중국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어 복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 결과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무덤 기단의 한 변은 약 63m이며, 너비 약 1.75m, 높이 6m가량의 대형 석재 5개가 받치고 있다.

기단 위의 각 방단 내부는 막돌과 장돌로 채워졌다. 분구 정상부 가까이에 설치된 매장부(埋藏部)는 굴식 돌방[石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돌방의 방향은 서향이며 널길[羨道]은 널방[玄室] 서벽 한가운데에서 시작된다. 널방의 천장부는 3단의 평행굄으로 짜여졌으며, 천장은 지름 4.55m, 두께 0.8m의 대형 화강암 판석으로 덮여 있다. 널방의 동서길이는 2.82m, 남북너비는 3.16m이며 지면에서 분구 정상부까지의 높이는 16m 정도이다. 분구 정상부에서 명문전(銘文塼)과 와당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원래의 분구 위에 작은 사당이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명문전 중에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이라는 돋을새김된 문장이 있어 '태왕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무덤 주위에는 자갈이 깔리고 그 바깥으로는 무덤구역을 알리는 흙담이 둘러져 있다. 무덤의 남방 180m 지점에서 기와·전돌과 함께 건물의 초석이 발견되어 무덤의 피장자를 위해 제사지내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의 동북 500m 거리에는 유명한 광개토왕릉비가 있다. 명문전의 내용, 무덤의 규모, 근처의 건물터, 광개토왕릉비 등을 근거로 광개토왕의 능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다음 백과사전 발췌 -

중국 집안 광개토대왕릉 위치도

지도는 중국 집안 권역이며, 노란선은 압록강입니다. 집안의 고구려 유적지 위치를 구굴어스로 표시

출처 : 한국의 능원묘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