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왕능)

[스크랩] [3] 장수왕릉

장안봉(微山) 2012. 12. 27. 21:40

장수왕릉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광개토대왕릉에서 장수왕릉을 원경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만, 장수왕릉까지는 버스로 몇 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깝습니다.

장수왕릉 주차장에서 계단을 오르면 바로 장수왕릉이 보입니다. 몇 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장수왕릉 앞에 다다릅니다.

▲ 1938년에 촬영한 장수왕릉 전경

▲ 1992년에 촬영한 장수왕릉 전경

1938년에 촬영한 사진을 보니 무덤이라기 보다는 작은 동산 같아 보입니다. 1992년에 촬영한 사진은 지금의 모습과 같습니다만, 그 이후에 석실까지 올라가 볼 수 있도록 앞뒤 좌우로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만 다릅니다.

계단을 상단부까지 올라가서 정면의 중앙에 있는 장수왕릉의 석실 입구를 통해서 내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만, 중국 관리인 2명이 지키고 서서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합니다. 입구도 조차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합니다.

장수왕릉 석실 내부의 석곽은 우리로 사방을 둘러 놓아서 주변 사이 사이로 묘실 내부를 둘러 볼 수 있으나 벽화가 없어서 장수왕릉 묘실에 들어가 보았다는데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묘실 입구에서 밖을 내려다 보면 저 앞에 보이는 산이 북한 지역의 산입니다. 바로 아래 압록강이 흐르지만 여기서는 강물은 보이질 않습니다.

묘실을 나와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정면을 바라보면 작은 석실묘가 있는데, 딸린 무덤(배총)이라고 합니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위를 올려다 보면 맨 상단 석축에 동그란 구멍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뚫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서 구멍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장수왕릉 상단에 제단 건물을 만들지 않았었나 하고 추측이 됩니다.

 ▲ 상단의 기단부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  ▲ 장수왕릉 맨 윗 부분에 석판 보입니다.

뒷편은 상단부가 많이 내려 앉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장수왕릉 맨 위에는 큰 통돌 한 장을 얹어 놓았습니다. 몇 십톤은 될 만한 어마어마한 무게의 통돌을 거리가 먼 채석장에서 여기까지 옮겨 오고, 다시 맨 위에 얹었을텐데...

위 사진은 장수왕릉의 뒷편 모습니다. 뒷편 우측은 많이 기울어 지고 있습니다. 사방에 세워진 호석은 한 면에 세 개씩 받혀 있는데 뒷편에는 중앙에 있었던 호석이 없습니다.

위 좌측 사진이 중앙에 있던 호석이 깨져 있는 모습입니다. 윗편 우측 모서리 부분 한단 석축들이 일부 깨져 었어서 서서히 허물어지는 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단 기단들이 일부 깨지다(위 좌측 사진) 보니 위의 무게 때문에 아래 기단 부분은 밀려서 틈이 벌어지고,(위 중간 사진) 중간 부분의 석축들도 아래로 처지기 시작한 모습(위 우측 사진)을 사진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장수왕릉의 호석 중에서 정면의 중간에 있는 호석은 반들반들하게 깍고 다듬은 것 같은 돌이고, 다른 호석들은 거칠고 생긴대로 크기만 어마어마합니다.

각각의 석재들은 다듬고 깍아서 반듯반듯하며, 퇴물림 방식으로 중앙 쪽으로 조금씩 들어가면서 쌓았습니다. 가급적 인공을 가하지 않고 자연적인 상태로 돌을 짜맞추는 그랭이 공법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딸린 무덤(배총)은 주인을 매장한 무덤 옆에 만들어진 종자(從者)의 무덤으로 배장(陪葬) ·배분(陪墳)이라고도 한다. 딸린무덤이라는 말은 한 곳에 2기 이상의 무덤이 있고 그 중 하나의 무덤이 위치 ·규모가 뛰어나게 다른 경우, 나머지 무덤에 대해 붙인 용어이다.

 

그러나 실제 유적에서 그 무덤이 딸린 무덤인가 아닌가, 또 어느 무덤에 부속된 딸린 무덤인가 등을 구별하는 것이 곤란할 때가 많다. 따라서 대개는 개념적으로 대형 고분에 매우 근접하여 상대적으로 현저히 작은 동시대의 고분이 있는 경우, 그 작은[小]고분을 대(大)고분[主墳]의 딸린무덤으로 취급한다.

 

고구려에서는 장군총의 네 모서리에 오덕리형 고인돌 모양의 딸린무덤이 있는데, 이는 장군총의 사방을 호위하는 의미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 다음 백과사전 발췌 -

▲ 배총 석실 전경

장수왕릉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석릉(石陵)으로 3세기 초부터 427년까지 고구려가 도읍한 지안현 퉁거우평야[通溝平野]에는 광개토대왕비와 고구려 최대형 무덤인 태왕릉(太王陵)·사신총(四神塚) 등 석릉과 토분(土墳) 1만 기가 있으나 외형이 거의 완존한 석릉은 이것뿐이다.

화강암 표면을 정성들여 가공한 절석(
切石)을 7단의 스텝 피라미드형으로 쌓았는데, 기단의 한 변 길이 33m, 높이 약 13m 이다. 기단의 둘레에는 너비 4m로 돌을 깔았으며, 그 바깥 둘레에 너비 30m 의 역석(礫石)을 깔아 능역(陵域)을 표시하였다. 널방[墓室]은 화강암의 절석을 쌓아 지었는데, 천장석(天障石)이 있는 굴식[橫穴式]이며, 2개의 널받침[棺臺]이 있다. 1905년 일본인 학자 도리이[鳥居龍藏]가 처음으로 현지조사하고, 프랑스 학자 E.샤반과 일본인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등이 조사하여 《남만주조사보고(南滿洲調査報告)》 등에 발표한 뒤부터 학계에 알려졌다.

돌무지돌방무덤[
積石石室墓]은 대체로 3세기 말∼4세기 초로부터 5세기에 나타나며, 기와를 통해서는 4세기 중엽 이후 5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므로 이 장군총의 연대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무덤의 주인공으로는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의 것이라는 두 설이 있는데, 중국측에서는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으나 고분의 유품이 모두 도굴당하였기 때문에 추측에 의존하고 있다.                                                                                     - 다음 백과사전 발췌 -

중국 집안 장수왕릉 위치도

지도는 중국 집안 권역이며, 노란선은 압록강입니다. 집안의 고구려 유적지 위치를 구굴어스로 표시

출처 : 한국의 능원묘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