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세기 시리아에서 대롱불기 기법이 발명됨으로써 유리제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로마가 지중해 지역을 안정적으로 통치함에 따라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유리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다양한 지역에서 유리공방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기술들이 발전하게 되었다. 로마제국 이후에는 비잔틴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제국과 이란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유리제작 전통을 계승하여 다양한 유리공예품을 만들었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유리제작 기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 페르시아에서 만든 유리제품들은 실크로드를 비롯한 다양한 교역로를 통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 고분에서 당시 페르시아로부터 유입된 유리제품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이는 일본에서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동로마제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시리아와 이집트는 로마 유리 제작기술이 유지되고 있었으며,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사산조 페르시아 유리제작 전통이 이어지고 있었다. 7세기 이후 이 지역이 이슬람 세력권에 들어감에 따라 로마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유리제작 기술은 이슬람이 계승.발전시켰다. 이슬람에서는 유리 표면에 에나멜 채식과 고듬을 하는 기법을 발전시켰으며, 이슬람의 유리제작기술은 이후 베네치아를 통해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식 유리의 만개(The Flourish of Decorative Glass)
3세기부터 7세기에 걸쳐 현재의 이란 지역을 중심으로 로마제국과 패권을 다투었던 사산조 페르시아에서는 메소포타미아와 동부 지중해의 유리 제작 전통을 계승하여 새로운 수요에 부응하는 다양한 유리 제품이 제작되었다. 사산조의 장인들은 커트장식, 대롱불기 기법 등 당시에 적용할 수 있었던 기술을 완숙한 경지로 끌어올림으로써 이후 이슬람 유리 제작 전통의 기초를 형성했다. 7세기에 이슬람교가 성립된 후, 이슬람 제국의 유리산업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장식 유리와 함께 도시 생활에 필요한 생활용기를 공급하면서 더욱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들 유리 제품은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동아프리와 동남아시아, 동아시에 이르기까지 육로와 해상 교역을 통하여 폭넓게 유통되었다. 이슬람 세계의 유리 제작은 로마시대 후기의 전통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대롱불기기법을 비롯하여 커트나 덧붙임 장식 기법은 이슬람 시대에 한층 더 발전했다. 새로운 기술도 개발되어 12세기부터 14세기 사이에 유리에 에나멜과 금박을 입혀 깊은 광채를 내는 용기들이 등장했다. <출처:중앙박물관>
<황실 연회의 서> 중 '유리 제작공의 길드', 이스탄분, 1583년 경, 터키 톱카프박물관 소장
사산조의 커트 장식 유리 전통은 이슬람 시대로 이어졌다. 사산조 제품이 커트가 깊고 중후한 느낌을 갖는데 비해, 이 시기의 커트 장식 유리는 기벽이 얇고 무색에 가까운 투명도를 자랑했다. 대접 외에도 원통형 잔과 병을 비롯한 다양한 기형으로 제작되었고, 원형의 숫돌로 형태를 만들기 까다로운 사각형 커트장식도 시도되었다. 이 같은 접시는 형태와 문양에서 균일화가 이루어져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커트 장식 접시(이란, 5~7세기)
이란 지역의 유리 제작 장인들은 사산조의 쇠망 이후에도 커트 장식 전통을 계승, 발전시켰다. 이슬람 시기의 커트 장식 유리는 투명하고 색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망간을 첨가하여 유리의 고유한 녹색 기를 탈색시키는 기술이 발전한 덕이다. 대롱불기로 잔을 성형한 후 그라인더를 이용하여 몸체 표면에 동물 문양이 남도록 주변을 깎은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커트 장식 잔 (이란, 9~10세기)
몸체를 물방울 모양으로 부풀이고 물이 나오는 주둥이 부분을 오목하게 만들었다. 손잡이 윗부분에 달린 돌기는 금속제 물병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물을 따를 때 엄지손가락을 이곳에 대면 미끄러지지 않고 더 안정적으로 물병을 다룰 수 있었을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손잡이가 달린 물병(이란, 9~10세기)
에나멜 안료는 밝은 색 유리나 광물을 곱게 갈아 기름과 섞어 만든다. 이 혼합물을 완성된 유리에 칠하고, 이를 다시 가마에서 가열하면 색이 표면에 융합된다. 종종 금박을 함께 가한다. 종교 미술과 달리 상의 묘사에 제한을 덜 받았던 가정용 병, 잔, 대접에는 인물과 동물, 새의 모습을 넣어 장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출처:중앙박물관>
에나멜 장식 유리편(시리아, 13~14세기)
그물무늬를 미리 새겨둔 틀에 대고 불어 만든 것으로, 이는 이슬람 시기에 즐겨 사용된 유리 표면 장식 기법이다. 용량이 상당히 큰 용기와 잔잔한 무늬가 좋은 조화를 이룬다. 기벽이 두껍게 성형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그물무늬 병(이란, 10~11세기)
벌집을 닮은 문양을 깎아 둔 틀에 유리를 불어 기본적인 형태를 만든 다음, 틀에서 꺼내 다시 한 번 분 것이다. 어깨 윗부분에 비해 아랫부분의 문양이 크게 늘어난 듯 보이는 것은 이러한 제작 과정때문이다. 목 부분은 따로 만들어 붙이고 주둥이를 밖으로 접어 완성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벌집무늬 병 (이란, 12~13세기)
이슬람 유리의 전개(The Development of Islamic Glass)
시리아와 이집트에서는 화학적 성분이나 성형 기법면에서 로마 유리의 기술이 7~8세기까지 유지되었고, 이라크.이란 지역에서는 사산조 유리의 연장선상에서 커트 장식 유리가 생산되었다. 유리의 표면에 채색을 하는 장식 기법이 8세기 무렵 등장한 이래, 13세기경에는 에나멜 채색과 도금 기법을 혼합한 제품이 각광을 받았다. 특히 14세기 무렵에는 문자나 추상적인 문양으로 장식된 모스크 램프가 등장하여 일세를 풍미하였다. 호화로운 이슬람 장식 유리는 유럽과 중국에서도 크게 유행하였고, 특히 베네치아 유리 공예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슬람 시대에 발전한 장식 기술은 근대 유리 공예의 형성과 발전에 기초가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이슬람 문화권 내 물품과 사람들의 활발한 왕래로 유리 제작에서도 균일화가 진전되어 대량생산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점에서 이슬람 유리는 유리 공예사상 가장 화려한 발전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근현대 실용 유리의 기초를 구축한 시기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유리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유리 그릇은 점차 일상생활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그릇이 제작되었을 테지만, 파손되더라도 녹여서 재활용 할 수 있는 유리의 특성 때문에 모든 기형이 온전히 후세에 전하지는 않는다. 특히 원통형 대접처럼 평범한 형태의 그릇은 오히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예가 매우 드물다. <출처:중앙박물관>
세발달린 대접(이란, 12세기)
물결무늬 대접(이란, 10~11세기)
물결무늬 대접(이란, 10~11세기)
원통형 대접(이란 고르간, 12~13세기)
소형 잔(시리아, 9세기)
줄무늬 병(이란, 9~11세기), 물결무늬 단지(동지중해 연안, 10~12세기)
벌집무늬 손잡이 항아리(이란 고르간, 13~14세기), 꽃무늬 물병(이란, 10~11세기)
줄무늬 병(이란, 9~10세기)
줄무늬 병(이란, 9~10세기)
이중원 문양 병(이란, 11~12세기), 대리석 문양 병(시리아~레바논, 10세기), 목에 마디가 있는 병(이란, 15세기)
코어 성형 기법을 썼을 때 나오는 물결무늬를 모방하여 만든 단지이다. 그렇지만 단지의 형태는 대롱불기로 만들고, 식지 않은 상태일 때 표면에 다른 색 유리 끈을 감고 뾰족한 막대로 긁어내 유사한 장식 효과를 얻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물결무늬 단지(시리아~이집트, 6~8세기)
유리끈을 붙여 용기를 입체적으로 장식하는 로마제국 시기의 전통은 이후에도 수백년 동안 이어졌다. 로마시대의 덧붙임 장식이 용기의 외형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했다면, 이슬람 시기에는 용기의 기본 형태를 가릴 정도로 적극적인 끝 장식도 나타났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디자인이 자주 등장했고, 바탕 유리와 같은 색의 유리 끈을 쓸 때에는 촘촘하게 눌러주어 몸체의 표면과 구별되어 보이도록 했다. 도톰한 원반을 몸체에 붙여 사산조 시대의 돌출식 커트 장식 용기를 모방한 제품도 만들어졌다. <출처:중앙박물관>
붙임장식 병(시리아, 7~8세기),
붙임장식 병(종지중해 연안, 10~11세기)
붙임장식 굽다리 대접(이란, 8세기)
돌기를 붙인 병(시리아, 7~8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