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포커스] 사주명리학 연구가 조용헌
교수
[한국일보 2003-05-27
16:59:26]
신년이면 토정비결을 본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점장이한테 묻는다. 사주니 팔자니 궁합이니 하는 말은 일상용어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운세
사이트는 포르노와 함께 가장 번성하는 분야이다. 그런데도 점은 공적인 영역에서는 잘 거론되지 않는다. 특히 학자라는 사람이 내놓고 사주나 팔자를
믿는다고 하면 어리석은 사람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조용헌(42ㆍ원광대 불교대학원 교수)씨는 매우 특이하다. 그는 학자로서
사주를 믿고 있을 뿐 아니라 “사주 명리학의 부흥에 21세기한국의 문화콘텐츠 사업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운명 예언…현상존재하면 연구해야 사주명리학은 다양한 가치체계 존중"
_사주를 믿는가.
“믿는다. 내 사주에 학당(學堂)이 두 개인데, 이건 문필가나 학자로 대성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학자가 되었고 책을 내서 제법 알려졌다.”
_그건 자기 암시 아닌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사주가 정해주는 경향성은 대체로 맞다. 학자가 될 사람이나 서비스 업종에 종사할 사람은 타고 난다.”
_인간에게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골격은 정해져 있다.”
_운명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걸 과연 인간이 알 수 있는가.
“운명을 아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한 것이 사주명리학이다. A급 대가들은, 요즘 많이 죽었지만 80%까지도 맞춘다.”
_최대치가 80%라면 그건 과학은 아니다.
“물론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실험을 해서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과학과는 다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이론은 없다. 과학조차도 오류가 미처 드러나지 않은 가설이다. 그런 점에서 사주나 역학을 체계있게 연구하면 맞출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설령 사주가 맞지 않는다고 치더라도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믿어온 현상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현상이 존재한다면 연구하는 것이 학문이다.
한의학도 한때는 황당한 학문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우수한학생들이 몰려들어 연구하고 있다. 풍수도 긴가민가 했으나 서울대 교수인최창조씨가 설파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뢰를 하게 됐다. 사주 풍수 한의학을 강호 동양학 3대과목이라고 나는 부르는데 이 중 한의학이 학계에서시민권을 얻었다면 풍수는 영주권을 얻은 정도이다. 사주명리학도 영주권, 시민권을 가질 수 있도록 우수한 사람들이 연구에 나서주었으면 한다.”
"정신세계를 미신치부땐 상상력 말살 영화·소설로 되살려야 세계시장 승부"
_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판ㆍ검사, 의사가 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일렬로만 줄을 선다. 사람마다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사주 명리학은 다양한 가치체계를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운명이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염세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도 30대까지는 되는대로 열심히 사는 것을 권장하고 마흔부터는 사주를 알고 운명이무엇인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유한다. 자신의 경향과 맞는 일을만나면 깊은 충만감을 느낀다. 이것은 출세나 부귀보다 중요한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부른 것은 바로 자기 정체성을찾지 못한 데 따른 불안감이다.”
_운명이 정해져있다면 성실이나 노력 선의 같은 인간사회를 지탱해온가치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첫째 계율을 지켜야 한다. 여기서 계율이란 종교가 규정한 어떤 규칙이 아니라 나쁜 습관을 바꾸려는 자기만의 계율을말한다. 나쁜 습관은 바로 자신의 경향성에서 찾을 수 있다. 또 좋은 스승을 만나서 지도 받으면 바꿀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죽었다 살아나는 법이있는데, 그런 점에서 기독교에서 부활을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깊은 상징이다.”
_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전제왕조가 신민들을 길들이기 위해 만든, 지배자의 논리 아닌가.
“그렇지 않다. 중국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풍수나 사주 명리학은 오히려 혁명을 위해 더 많이 활용됐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종놈도 군왕지지(君王之 地)에 묘를 쓰면 왕이 될 수 있고 노비도 왕이 될 사주를 타고나면 왕이 될 수 있다는 혁명의 논리였다.
‘정감록’은 요새 말로 치면 조선시대 운동권의 필독서였다. 지배체제를뒤엎을 수 있다는 사고를 하도록 만든 것이 사주명리학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차별받던 서북인들이 조선 후기 들어와 사주와 풍수, 한의학을 많이 연구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피난 나온 서북사람들이 영도다리 밑에서 먹고 살기 위해 점을 봐주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사주 명리학 상업화의효시이다. 요즘은 너무 돈벌이가 되다보니 사주 명리학이 진창에 빠졌다.”
_당신도 책에서 복채가 두둑해야 바른 점괘가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농담으로 쓴 것이다. 원래 사주를 돈벌이 대상으로 삼아선 안된다.”
_대학에서는 신문방송학(원광대)을 전공했는데 어쩌다 사주 연구에 접어들었나.
“대학 때 산이 좋아서 산을 다니다보니 절을 다니게 됐고 절에서 스님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한의학, 풍수, 사주를 접하게 됐다. 그런데 스님들이내 사주를 맞추는데 신기하게 맞더라. 그 다음부터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됐다. 나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인간의 정체성과운명에 관한 거부할 수 없는 질문 아닌가. 불로장생에도 관심이 많아 도교의 양생술도 공부했다.
원래 사주명리학은 도교의 방사(方士=도사)들이 오래 살기 위해 자연의흐름에 인간을 순응시키는 방법을 찾자는 수련체계였다. 밤과 낮이 음양이되었고, 사계절이 오행이 되었다. 여름과 가을 사이 정 가운데에 자연의중심이 되는 흙(토)을 넣은 것이다. 그래서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가 됐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사주 풍수 한의학 전문가를 찾아서 잡과라는 과거를 두었다. 이처럼 어렵던 학문이 점차 대중화하면서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자리잡았다. 86년쯤인가, 친구스님과 와선을 하고 있는데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야말로 벼락치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 다음부터는 바위산을 가면 발 뒷꿈치부터 정수리까지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고 온몸이 가뿐해진다. 바위산에서 명상을 하면 상징적인 꿈을 꾸기도 한다. 바위는 신령스런 땅의 에너지가 올라오는 곳이라서 그 에너지가뇌속의 어느 부위를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_신문에 소개하긴 좀 황당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을 미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신속에 한국의 상상력이 있다. 그런데 그걸 미신이라고 때려잡으니까 상상력도 함께죽는다. 우리가 모르는 정신세계가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미국의 세도나에 있는 벨락이라는 바위산에 갔을 때 일이다.
이 곳에는 독수리의 영혼이 깃들어 있어서 독수리의 계시를 볼 수 있다고미국인들이 그러더라. 그곳에서 1시간 명상을 하고 왔는데 꿈에 10m가 넘는 인디언 여자가 나타났다. 아주 조그만 내가 그 여자한테 매달려 젖을빨아먹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국인들에게는 독수리로 나타나는 산신령이한국인인 내게는 여성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냥 꿈이라도해도 좋고, 상상력이라고 해도 좋다. 미신으로만 때려잡기는 아깝지 않은가. 우리가 21세기를 문화콘텐츠의 세기라고 하는데, 우리만 갖고 있는 독특한 상상력이 아니면 세계 시장에서 승부할 수 없다.
나는 사주명리학과 풍수 등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이 애니메이션과 영화, 소설로 살려내야 할 상상력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시야는이미 너무 미국화해있다. 가령 우리 전통 가운데는 무속이 가장 연구가 많이 됐다. 왜 그런 줄 아는가. 외국인들이 무속이 아름답다고 하니까 우리도 뒤늦게 따라간 것이다.
탱화도 외국인들이 아름답다니까 연구가 된다. 반면 사주 명리학은 한문도 알아야 하고 음양오행설에 대한 복잡한 철학을 공부해야 하기에
외국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사람치고 점을 한번은 봤을 텐데 이 현상을 무시할 것인가. 현상이 있다면 그 이유를 캐야
하는 것이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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