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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
林半仙的故事在高雄縣林園鄉一帶是家喻戶曉的傳奇,台灣文獻和高雄縣志(清版)均有記載「清水巖半仙鑿水」的軼事。
筆者從小嗜武,家居屏東縣枋寮鄉的水底寮村,曾聽到一些來自林園的武師談起‘林半仙’的故事,也大致了解‘林園’的起落和傳奇。
[번역문]
서
임반선에 관한 스토리는 高雄縣 林園鄕일대에서 잘 알려져 있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臺灣文獻(대만문헌)과 高雄縣誌(淸代版)에 모두 「淸水巖半仙鑿」라는 逸話(일화)가 기재되어 있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武術을 좋아했다. ‘屛東縣(병동현)’ ‘枋寮鄕(방료향)’의 水底寮村(수저료촌)에 살고 있을 때, ‘林園’출신의 무술고수로부터 林半仙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어, ‘林園’의 성쇠와 그 지역의 전설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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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喻(깨우칠 유) *戶(지게 호) *曉(새벽 효) *軼(번갈아 질) *嗜(즐길 기)
一九七九年定居‘高雄’,服務港務局即開始接觸五術,首先是命卜,後專研堪輿,舉凡三合、九星、四大局、三元玄空、水法、贛州派巒頭、符籙等等,無不涉獵,從一九八七年至今已舉辦過數十次的堪輿實地勘察活動,見識過全省各名人祖墳、祖厝,也收集了各門派的風水秘笈和台灣文獻數千冊,花費上百萬台幣。
1979년에 ‘高雄’에 정착하여‘ 港務局에서 취직하면서부터 五術을 접하게 되었는데, 먼저 命卜공부부터 시작했고, 나중에 堪輿, 舉凡三合, 九星, 四大局, 三元玄空, 水法, 竷州派巒頭, 符籙 등을 안 해본 것 없었는데, 1987년부터 현재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堪輿現地의 踏査活動을 통하여, 대만의 각 유명인사의 조상의 분묘나 家屋을 조사하는가 하면 백만 臺灣달라를 들여 각 학파의 風水秘本과 臺灣文獻을 수천 권 입수했다.
*贛州(감주): 중국 江西省의 지명.
為了進一步探討全省各地之民俗文化與名人發跡和風水之源由,也十餘次到大陸和東南亞各地堪輿,尤其是香火旺盛之廟宇,名人發跡之祖厝、祖墳,這些均曾刊載於「天心雜誌」上,頗受各界好評。
대만 각 지역의 民俗文化 및 유명인사의 성공이유, 그리고 風水의 起源을 탐구하기 위하여 십여 차례에 걸쳐 중국대륙과 동남아 각 지역에 가서 풍수조사를 하였는데, 특히 참배자가 많은 廟宇, 성공한 유명인사 조상의 가옥이나 분묘에 대해서 샅샅이 조사하여 “天心雜誌”에 발표했더니, 각계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一九九○年,無意中得到一份林半仙的錦囊,就此和它結下了不解之緣,授我地理自然法、觀氣脈、鎖氣法、定神法、祈禳法,和一百廿甲子擇日法,並因緣在「天心雜誌」連載了林半仙的傳奇故事,這期間受到各地人士熱心提供資料和解說軼聞,使預定三期刊完的故事一直連載了三年多,這豈非半仙之指引乎!
1990년에 어쩌다가 입수된 林半仙의 저서가 나와 끊으려야 끓을 수 없는 인연이 되었다. 그 책을 통하여 나는 地理自然法, 觀氣脈, 鎖氣法, 定神法, 祈양법 그리고 120甲子擇日법 등을 습득하여, “天心雜誌”에 林半仙에 관한 전기적인 이야기를 소개하였는데, 그간 각 지역인사들이 적극적으로 자료제공도 해주고 일화에 대한 설명도 해주는 덕분에, 3회 게재로 예정되었던 이야기가 3년 이상 연재된 것도, 林半仙의 引導이겠지요?
本書‘林園’篇承蒙‘吳振明’先生提供,‘東港’篇也承蒙‘千里彬’命相館‘陳重安’先生提供,人稱‘和仙’的‘陳重安’是盲眼相士,住在‘東港鎮海宮’七王爺‘附近,對於地方掌故很有心得。
‘吳振奎’선생이 ‘林園’篇의 자료를, ‘千里彬’命相館의 ‘陳重安’선생이 ‘東港’篇의 자료를 제공하셨다. ‘和仙’이라고 불리는 ‘’陳重安선생은 ‘東港 鎭海宮 七王爺’ 근처에 살고 있는 맹인점술인으로, 그 지역의 歷史沿革을 잘 알고 있다.
‘小琉球’篇則是祖籍小琉球的‘東港先結群漁業公’‘蔡龍結’董事長所提供,‘萬丹潮州’篇由‘萬丹’的地理名師‘莊文壽’提供,枋寮篇由‘青隆擇日館’‘楊進財’先生提供,文獻部份則由台灣文獻收藏家‘曾彥傑’先生提供,十分感謝這幾位賢達人士熱心提供資料,使本書更臻完美。
原籍이 ‘小琉球’인 ‘東港先結群漁業公’의 ‘蔡龍結’회장이 小琉球篇의 자료를, ‘萬丹’의 地理名師인 ‘莊文壽’선생이 ‘萬丹潮州’篇의 자료를, ‘青隆擇日館’의 ‘楊進財’先生이 物枋篇의 자료를, 台灣文獻收藏家인 曾彥傑先生이 文獻部份을 提供하셨다. 재능과 덕망을 겸비한 이분들의 자료제공덕택에 이 책을 보다 더 완벽하게 만들 수 있었다.
‘林半仙’所鑿之泉水在‘清水巖寺’旁,海軍陸戰隊內,受軍方管制,泉水依然滔滔,軍方和附近廟宇居民照舊作為日常生活飲用水,‘金臉盆’穴的廖家祖墳幾經整修今尚在,可前往一睹名家點穴之手筆。‘林半仙’死後所葬的箭刀穴在‘林園鄉’公所前,現已立國父銅像制煞。
‘林半仙’이 파놓은 샘은 ‘清水巖寺’옆, 군사통제구역인 해병대안에 위치한다. 군대와 근처 묘우의 주민들이 끝없이 솟아나오는 샘물을 생활용수로 쓰고 있다. 몇 번의 수리를 거친 ‘金臉盆’穴의 廖家祖墳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므로 거기서 그 명사의 묘소선정필적을 구경할 수 있다. 林半仙이 사망 후 묻힌 장소인 箭刀穴이 ‘林園鄕’公所(면 사무소에 해당)앞에 있고 현재 그 자리에 國父孫文의 동상을 세워 살을 막고 있다.
看完‘林半仙’傳奇,不禁令人感嘆真功夫賣不到錢,功夫好不如口才好,口才好不如賺錢技巧好,學了‘林半仙的’堪輿功夫祇能說悠悠蒼天,何薄於我。是為序!
‘임반선’ 전기를 보고 나면 진짜 실력이 있어도 돈을 못 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실력보다는 말재주, 말재주보다는 장사수완이 낫다는 이야기다. 林半仙의 감여기술을 습득하여 받은 감회는----“넓은 세상이여 어찌 나를 박대하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럼 이것으로 서문을 마친다.
陳啟銓 高雄市前鎮區翠亨北路399巷30號宜易園 電話 : (0七)八一五三二四一 핸드폰: O九O七一八六O
진계전 고웅시전진구취형북로399巷30호의역원 전화 : (0七)八一五三二四一 핸드폰: O九O七一八六O
在台灣堪輿界,清朝乾隆年聞從‘唐山’到‘台灣’來的堪輿名師,北有「林螂 仙」,中有「蝨母仙」,南有「林半仙」,其中以‘台灣’南部‘林圍’鄉的‘林半仙’最為傳奇,也令‘林圍’鄉人又愛又恨,為何?
대만 감여계에서 청나라 乾隆시절에 중국대륙에서 대만에 건너온 감여명사 중 북부지방에는 “林螂仙”, 중부지방에는 “蝨母仙”, 남부지방에는 “林半仙”이 있었다. 특히 대만남부 임원향의 임반선이 가장 전기적인 인물로 임원향 주민들로부터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받았다. 어째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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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回
半仙濃海到林圈,清水嚴畔鑿靈泉
第一回 반선이 바다를 건너 임원에 와 淸水巖畔에서 靈泉을 팜
1. 鳳鼻頭的好風水
1. 鳳鼻頭의 풍수 좋은 곳
林半仙本名林鎮仙,清朝‘乾隆’年間,‘福建’有一位總兵派了四位地理名師到‘臺灣’‘高雄縣’‘林園鄉’的‘鳳山’上,欲遷回其祖先的風水,‘林半仙’就是其中之一。船經‘小琉球’,因為當天天氣晴郞,能見度寓,在‘小琉球’附近即可看到‘鳳山’那隻鳳在飛翔,他鳳迎接‘半仙’來到‘林園’,也註定了‘半仙’一世和‘鳳山’的不解之緣。
임반선의 본명은 임진선이다. 청나라 乾隆시절에 복건성의 한 사령관이 4명의 풍수지리명사를 ‘대만’ ‘고웅현’ ‘임원향’의 ‘鳳山’으로 보내 조상의 유골을 되찾아오려고 했다. ‘임반선’이 파견된 사람 중의 한명이었다. 배가 小琉球를 지날 때, 날씨가 맑아 가시도 높아 小琉球근처에서도 그 봉산을 볼 수 있었다. ‘임반선’을 맞이해준 ‘봉산’이 임반선의 일생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
總兵的父親當年為‘林園’一窮困的漁民,三餐難繼,生前常在‘鼻頭’附近抓魚,但身體 十分衰弱,時常向友人說他若死後要葬在鳳鼻洞內。
有天突然一病不起,因家貧買不起棺材,只好用草席捲起來,放在裝魚的竹籃內抬到‘鳳鼻’頭山根處的岩洞內放置,地理學上稱之為「軟葬」。
사령관의 부친이 당시 ‘임원’의 한 가난한 어부로, ‘鳳鼻頭’부근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지만 끼니도 이어갈 수 없었다. 몸이 쇠약한 사령관의 부친이 생전에 친지들에게 죽으면 묻혔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어느 날 사령관의 부친이 갑자기 앓아누웠다 숨을 거뒀다. 가난해서 棺柩를 살 형편이 안 되어 돗자리로 시신을 말아 물고기를 담는 다래끼에 넣어 ‘봉비’두산기슭에 있는 동굴안어 옮겨놓았다. 지리학에서는 이를 “軟葬”이라고 부른다.
此洞為‘鳳山’之盡頭,得到‘鳳山’全部之地靈氣,為鼻孔內,適合軟葬,如用棺木,必會使他鳳嗆到鼻孔反成大凶。‘鳳山’之來龍有二十餘里,在此盡頭東氣溫海峽以結‘小琉球’ 守住‘高屏溪’,‘高雄’港、‘東港’、‘林邊’、‘物寮’之水口氣脈最旺,行運也最快。
이 동굴은 봉산의 끝자리에 있어 봉산의 모든 靈氣를 받고 있다. 콧구멍속이라 軟葬이 적절하다. 만약 棺柩를 쓰면 마치 봉황의 콧구멍을 찌른 듯이 대흉이 될 수 있다. 20여 리가 된 봉산의 來龍이 이 끝지리에서 靈氣가 모아져 해협을 건너 小琉球와 뭉쳐 高屏溪를 수호하고 있다. 高雄港、東港、林邊、物寮의 水口氣脈이 가장 성하고,運의 실현효과도 가장 빠르다.
死者身後留下一位十七、八歲的癩痢頭兒子,多半靠行乞為生。有一天這癩痢頭的 小子忽然失蹤了,五年後的一天,忽然傳來消息,說是癩痢病頭小子在大陸‘福建’某地當了 「總丘」,派人前來修整祖上墳瑩,擬帶由大陸重新安葬。
사망자의 슬하에 17-8살짜리의 독창에 걸린 아들이 한명 있었는데 주로 구걸로 생계를 이었다. 어느 날 잡자기 실종되었다 5년 뒤에 대륙 福建省의 모 지역사령관이 된 그 못난 녀석이 사람을 보내 조상의 묘소를 단장하고 본토로 이장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當‘林半仙’和總兵家人一來到‘鳳鼻’頭岩洞內,使驚嘆說:「這真是一塊好穴地,難怪 會大富大貴」,便向其他間來之人建議道:「這個風水動不得,那個總兵就是這塊風水 地庇蔭出來的,若一動,立刻會招致災殃!」
‘임반선’이 사령관의 가족들과 鳳鼻頭의 석굴 안에 들어서자 “여기가 정말 좋은 혈지로군. 어쩐지 사령관이 큰 부귀를 누리더라니 ”라고 탄성을 질렀다. 곧 이어 동행자들에 건의하였다. “이 묘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사령관이라는 벼슬도 이 자리의 풍수가 좋아서 하게 된 것이다. 만약 손대면 바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但是那此一間來的地理帥不聽‘半仙’之言,而且也不敢自作主張,怕回去無法向總兵交差,而照著總兵原先的指示把屍體掘出來,帶回去交給總兵。‘林半仙’居指一算,知道災難將至,遂獨自開溜。
하지만 일행 중의 다른 풍수지리사들이 임반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고 돌아가서 복명하지 못할까 봐 제멋대로 결정하지 못해 사령관의 지시했던 대로 유골을 파내어 가져다 사령관에게 인계하려고 했다. 임반선이 손꼽아 세어보니 재난이 다가온다고 판단하고는 줄행랑을 쳤다.
結果船到海上忽然颱起大風,沈入海底,船上之人和屍骨全都沈入海中,無一生遷, 總兵的差事也因小人暗算而辭職,返回‘台灣’途中又落海身亡。
결국 배가 돌아가던 중 태풍을 만나 배에 있던 사람과 유골이 모두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아 생환 자가 한명도 없었다. 사령관 본인도 소인배의 모략에 걸려 사직하여 대만으로 돌아오던 중에 역시 물에 빠져 죽었다.
自此以後,‘林半仙’到處遊山玩水,過著閒雲野鶴的生活。有一天來到‘新園’,突然口渴向農民乞水喝,卻遭白眼,心中大怨‘新園’人這麼沒有肚量,於是就在‘大寮’的‘鳳彈山’上 造了七枝石箭,目標對準‘新園’,持咒一唸‘新園’全村遭殃, 災病連連,後得觀世音菩薩慈悲才平息這場糾紛,挽救‘新園’人災危。
그 후부터 ‘임반선’이 이리저리 놀아 다니며 자유자재의 생활을 하였다. 하루는 신원에 왔다가 목이 마라 농부에게 마살 물을 얻으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신원’사람이 너무 도량이 좁다고 원망하면서 ‘大寮’의 ‘鳳彈山’에서 7자루의 돌화살을 만들어 신원을 겨눠 주문을 외자 신원마을 전체가 재앙이 일어나 재해와 질병이 끊이지 않았다. 나중에 관음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비로소 이 번 분규를 가라앉혀 신원사람들을 재난에서 구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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