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수맥피해
산소가 수맥의 영향을 받아 관 안에 물이 차 있으면 시신이 썩지 않고 그대로 있어
후손들이 자살. 이혼. 가난. 가출. 난치병 등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목격하고 있다. “미이라”는 썩지 않은 시신으로 그것이 바짝 말라 있던 물에 불어서
있는 것과 마찬 가지이며 후손은 좋지 않다.
특히 조상의 산소가 수맥의 영향을 받으면 足(발족)빠지게 일을 해도 애들 학원비 주기
바쁘고 가난을 벗어나기 힘 든다.
그리고 수맥의 측정은 현대에서는 엘로드(기구가 영어의 L자 모양으로 생겼다)로 측정하고
있다. 수맥 피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보면...
○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은...
낮에는 신하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政事(정사)에 힘써 한글창제와 측우기 등을 만들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밤에는 건강한 체력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房事(방사)에 열중하여
6명의 왕비와 후궁들로 부터 22명의 왕자와 공주를 생산하여 왕손을 번성 시켰으니
누가 세종임금을 聖君(성군)이라 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가 조선시대 역사를 보면 방사에만 집중한 “燈臺(등대)”같은 연산군이 폐위되듯
어느 한쪽만 추구하면 성군이라는 칭호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 燈臺(등대)는 선박들의 항해를 도와주기 위해 야간에 불을 밝히는 것인데 요즈음은
여자를 밝히는 사람을 일컬어 등대라고 한다.
○ 세종대왕의 강한 효심.
세종대왕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승하하기 직전
상지관(궁중지관)과 대신들이 세종에게 아뢰고 있습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의 身後之地(신후지지. 살아 있을 때 묏자리를
잡아 두는 것)를 어디로 정했으면 좋겠사옵니까?”
“아버지 태종(이방원)이 묻혀 있는 헌인릉(서울 강남구 내곡동 대모산 아래)밑에다
장례를 지내라 그러면 죽어서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겠노라”
“전하 그곳은 부왕이신 태종께서 이미 명당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 아래쪽은
물구덩이여서 안 됩니다 다른 곳을 천거 하시옵소서”
“아니다 다른 곳이 아무리 좋다한들 내 아버지 밑보다야 더 좋은 데가 있으랴 ! 그리고
임금인 짐이 불경스럽게 역장(조상보다 위쪽으로 올라가서 쓰는 산소)을 하란 말이냐?
경들은 나의 유언을 소홀히 하지 말고 부왕의 아래로 장지를 정하도록 하라.”
상지관과 대신들이 극구 만류 했으나 세종의 고집이 완강하여 할 수 없이 수맥이 흐르는
곳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이로서 왕실은 참혹하리만치 처참한 비극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세종이 붕어하자 큰아들 문종이 대를 이어 즉위 했으나 2년 만에 종기로 병사, 문종의
아들인 단종은 3년 만에 숙부인 세조에게 에게 왕위를 빼앗기면서 사약을 받아 비명횡사,
조카에게 왕권을 빼앗아 천년만년 부귀를 누릴 것 같았던 세조도 얼굴과 몸에 부스럼이
나는 병에 걸려 살이 문드러지는 고통에 시달리면서 13년 만에 병사하고,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는 20세에 이유 모를 가위눌림에 즉위도 못하고 죽음을 당했으며,
둘째 아들 예종은 19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1년 만에 그 또한 병사하니 도합 19년의
세월이 흘렀다.
○ 그래서 궁중에서는...
세종대왕의 묘가 수맥에 들어가서 계속 흉한 일이 일어나니 이장을 해야 한다는 강력한
여론이 형성되어 상지관(궁중지관) 안효례의 주도로 예종 1년(이장 후 병사함)에 이장을
하려고 광중(시신을 묻은 구덩이)을 파니 관에는 물이 가득 차 있고 시신은 물론 수의
하나 썩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거짓말이 아니다. 현장을 봤냐고? 예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음).
○ 우여곡절 끝에 여주로 이장한 세종대왕의 영릉은...
회룡고조형(용이 머리를 돌려 할아버지 용을 바라보는 형, 또는 비룡승천형.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으로서 능 뒤에서 들어오는 용맥(산맥)은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며 여의주를
물고 금방이라도 승천할 듯 기세 왕성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며 능 앞으로
전개되는 좌청룡 우백호의 경치도 장관을 이룬다.
가깝고 멀리 있는 모든 산들은 하나도 배신한 것이 없이 영릉을 향해 공손하게 절하는
모습이여서 조선 왕조는 세종대왕의 영릉 발복으로 100년은 더 연장 됐다고 하며 왕릉
중에 제일로 치는 명당중의 명당이다.
※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 중 여주의 세종대왕 영릉, 이성계의
동구릉과 태종의 헌릉을 踏山(답산)하지 아니하면 풍수가가 아니다 할 정도로 유명한
명당임.
○ 세종대왕의 시신이 여주 영릉으로 이장한 후...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인 성종 임금이 보위에 올라 25년간 재위 하면서 새로운
정치기구로 내사성(內史省)과 문하성(門下省)그리고 어사도성(御事都省)을 두어
삼성체제를 완성하고,
홍문관(弘文館), 존경각(尊經閣), 독서당(讀書堂)을 창설해 어진 인재들을 등용하는 등
훌륭한 치적을 남긴 반면, 당시 당대의 여인으로 회자되었던 어우동을 궁으로 불러들여
연희를 즐겼고 그녀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야사가 전해오고 또 폐비 윤씨와의 대립 등
여난도 있었다.
○ 자!!! 그러면 당연직인 임금에게도 수맥의 피해는 이렇듯 엄청난데 일반 서민들은 물어
볼 것도 없다.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서, 집안에 줄초상이 나거나 계속 흉한 일만
일어날 때 “우리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조상의 산소가 수맥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산소에는 쑥만 자란다.
“우리 집안은 뼈대 있는 가문이다”라고 하는 것도 조상의 묘를 명당에 두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 뼈가 그대로 남아있어 후손이 조상의 음덕을 받아 부귀를 누린다는
뜻이며, 반대로 타인을 욕할 때 “뼈도 못 추린다”.는 것은 수맥파의 영향을 받아 뼈가
녹아 없어져 후손이 이장할 때 뼈가 없어(추릴 뼈가 없다) 후손이 불행해 진다는 것을 뜻
합니다.
또 4대(부모. 조부. 증조부. 고조부) 奉祀(봉사) 제사를 지내는 것은 땅속에 매장된
조상의 뼈는 120년(1대가 30년으로 계산)이 지나면 더 이상 자손에게 음덕을 주지 못한다
하여 고조부 이상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등 모두 풍수에서 유래된 것이다.
○ 설마 우리 집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지 마시고 휴가 때나 벌초 때 혹시 수맥파의
영향을 받지 않나 세심히 살피자. 그리고 나는 여자이니까…안 된다. 요즘은 자녀가
대개 두 명뿐이다 같이 가 보자.
○ 산소에 가서 이것을 확인 합시다.
봉분에 잔디를 심었는데 잘 자라지 않고 잡초만 무성하다.
봉분에 물풀이나 이끼가 낀다든가 쑥이 많이 자라고 있다.
(서북방 이끼는 제외함)
봉분에 금이 가거나 갈라지거나 함몰 된다.
봉분에 구멍이 뚫렸거나 개미집이 많다.
이상의 4가지만 관심 있게 살피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길지와 흉지의 감별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조상에게 효도 합시다. 끝.
수맥의 영향
1. 수맥이란?
수맥(水脈)이란 한마디로 우리 몸의 혈관(血管)과 도 같다고 표현할 수 있다.
땅속의 혈관(血管)이란 말이다. 그만큼 우주(宇宙) 아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生命體) 심지어는 무생명체(無生命體)에 까지도 깊게 관여를 하고 있다.
물은 우리가 식수,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으로 편리하게 사용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사용되어지지 않는 물은 강으로 바다로 깊은 땅속 어딘가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간혹 흐르는 물을 보면서 과연 저 물은 어디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한번쯤은 가져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작점을 찾기란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시작점 자체를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다고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 혹은 동식물의 배설물 등에서부터 비롯하여 생길 수도 내리는 빗물이나 눈에 의해서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물줄기는 분명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거나, 고여 있는
곳에서
부터 길을 만들어 흐르거나, 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고여 있는 곳에서 혹은 흐르는 중에도
많은 양의 물은 땅속으로 스며들며 각각의 길을 만들어 가며 이동을 합니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지상식물, 지중식물은 땅속에 흐리는 물에서 영양분을 취하게
되며 그 영양분에 의해 식물은 좀 더 생명력을 유지 및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며 흐르는
물 또한 점점 정화가 되어져 어디에선가 웅덩이를 만난다면 이는 사람들이 식수로
이용할 수 있는 약수물이 되기도 하며 땅속의 모래나 흙 혹은 암석 사이에 고여 있는 물,
즉 지하수(地下水)가 되어 사람들의 식수, 공업용수, 농업용수 로도 이용을 하는 것이다.
즉 수맥(水脈)은 흐르는 물줄기를 말하며 수맥의 좋고 나쁨을 판별하는 기준은 그
물줄기가 얼마나 많이 이로운지에 따라 사람들은 좋고 나쁨을 판단한다.
2. 인간과 물의 관계
물은 천지가 개벽한 맨 처음부터 인간과 공존을 하며 살아왔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이 물에 의존하며 살았다고 해야 맞는 말일지 모른다. 인간의 몸 중
78%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모두가 아는 사실이면서도 물에 대한 고마움이라든가 물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해
본적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물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지나 않으면 다행일 경우도 우리는 간혹 볼 수 있다.
물에 대한 이로움과 또한 물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교차하기 때문에 그
고마움을 내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땅속 깊이 수맥이 흐르는 것을 보면 어느 물줄기는 흐르는지 흐르지 않는지도 모를
정도로 약하게 흐르는 물줄기도 있는 반면에 어떤 물줄기는 수 백톤 가량의 힘으로
흐르는 물줄기도 있다.
엄청난 두께의 암석을 관통하기도 하며 그렇게 수맥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수맥의 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이렇듯 수맥은
태초(太初)에서부터 계속적인 흐름 속에서 인간들 그리고 동식물들은 생명을 유지해 온
것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수맥(水脈)으로 인하여 많은 인간들이 피해를 입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위치, 심지어는 사후의 일까지도 생각을 해 묘 자리를 정할
때에도 수맥을 보고 정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자신이 있는 위치란 집, 즉 거주하는 곳을
말하는데 그 위치 또한 수맥(水脈)의 흐름을 보고 정하는 것이다.
흔히들 사람들이 말하는 땅에 물이 많아서 좋지가 않다든가 혹은 물이 너무 부족하여
좋지가 않다던가 하는 말들이 모두 수맥(水脈)의 중요성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물의 흐름이 좋은 곳에 있으면 사람들은 무병장수(無病長壽)한다고 믿었으며
그렇지 않은 곳에 있으면 비록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오래 지나지 않아 병에 걸린다고
믿어왔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생각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더라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물은 우리가 시작한 곳이며 다시 돌아가는 곳이다.
음양(陰陽)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세상의 만물이 생겨났듯이 우리는 수맥(水脈)과
인간과의 조화를 이룰 때에 비로소 공존(共存)할 수 있는 것이다.
3. 수맥과 건강
수맥의 파괴력은 대단해서 땅과 콩크리트도 갈라지게 합니다. 그 같은 현상은 갈라진
틈으로 빗물, 건수 등을 끌어 들여 흘러가버린 만큼의 물을 보충해야 하기위한 생존
수단의 결집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수맥줄기에서 쏘아 올리는 파괴력은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쳐 피로에서부터 뇌졸증, 암 등 개인의 취약한 신체부분부터 쇠약해지기
시작하여 큰 중병까지 우리 몸을 오염시킵니다.
지금까지 수맥탐사 결과 통계로 환자의 90% 이상이 수맥의 오염지역에서 발생했으므로
수맥을 피하는 것을 생활화 해야겠다는 생각을 되새겼습니다. 그런데 수맥의 기에 민감한
사람들은 10명중 약 4명 정도 입니다. 6명 정도는 처음에는 잘 느끼지를 못합니다.
산에 가면 옻나무를 만져도 괜찮은 사람, 스쳐 지나가도 옻을 타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지만 수맥의 유해파에 둔감한 사람도 5년 이상 장기간 오염되면
갑자기 쓰러지고 한 번의 큰 충격으로 어려운 상태에 빠져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수맥의 파괴력을 꼭 피해서 생활하셔야 할 것입니다.
미래예측학과
정의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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