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전씨(天安全氏)
천안(天安)은 본래 마한의 땅이었고, 백제의 대록군(大麓郡)과 감매현(甘買縣)·순치현(馴雉縣)이었다가 고구려의 사산현(蛇山縣) 지역이 되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대록과 백성군(白城郡)의 영현이었다. 930년(고려 태조 13)에 3국의 요충지라 하여 천안부(天安府)로 개칭하였고, 군병을 주둔시켜 도독(都督)을 두었다. 목종 때 이를 폐지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천안군이 되어 지사부(知事府)를 두어 1개의 속군과 직산 등 7개의 속현을 거느리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천안을 영주(寧州)로 고쳤고, 1362년(공민왕 11)에는 다시 천안부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영산군(寧山郡)으로 고쳤고, 1416년 다시 천안군으로 개칭하고 문종 때 명산(明山)으로 불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천안군이 되었고, 1896년 충청남도에 속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목천군·병천군을 합하여 천안군이라 불렀고, 1963년 천안읍과 환성면이 합쳐져 천안시로 분리되었다. 1995년 천안군이 천안시에 통합되었다.
도시조(都始祖) 전섭(全聶)은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로 BC 18년 온조(溫祚)가 백제를 개국할 때 오간(烏干), 마려(馬藜), 을음(乙音), 해루(解婁), 흘간(屹干), 곽충(郭忠), 한세기(韓世奇) 등 9사람과 함께 공을 세워 십제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전씨(全氏)는 도시조인 전섭으로부터 18본이 분적되었으며, 우리나라 전씨는 단본이라 할 수 있다.천안전씨(天安全氏)는 도시조 전섭(全聶)의 16세손인 전낙(全樂)을 중시조로 시작되었다. 그는 고려 개국공신이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싸울 때 신숭겸과 함께 순절하였다. 그 후 삼사(三司) 좌복야(左僕射)에 추증되었고, 천안부원군(天安府院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천안을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시중공파(侍中公派), 문효공파(文孝公派), 두평공파(兜平公派), 삼재공파(三宰公派),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판결사공파(判決事公派)로 나뉘어졌다.
시조 전섭(全攝) 신도비(좌), 문충공 전승(全昇)신도비(중), 문효공 백헌 전신(全信)신도비(우)
시조 단소 전경-시조단소 아래에 문충공 단소(좌), 문효공 단소(우) 단소가 있다
천안전씨 시조 단소 전경
밀직사 문충공 전승(文忠公 全昇)
?∼1302(충렬왕 28).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천안(天安). 우정승 인량(仁亮)의 아들이다. 1297년(충렬왕 23) 우부승지가 되고, 다음해 충선왕이 즉위하자 정방(政房)을 폐지하고 한림원에서 인사권을 관장하도록 하였는데, 이때 승지로서 참여하였다.
그 뒤 관직개편으로 숭문관학사 병조상서(崇文館學士兵曹尙書)가 되었다가 승지방(承旨房)이 복설되자 다시 승지가 되었다. 이어서 좌부승지 판비서시사 보문각직학사(左副承旨判秘書寺事寶文閣直學士)로 고쳐 제수되었다.
1300년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이자세(李資歲) 등 33명을 선발하였다. 1302년 밀직사로 별세하였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밀직사 문충공 전승(全昇) 단소 전경
문효공 백헌 전신(文孝公 栢軒 全信)
1276(충렬왕 2)∼1339(충숙왕 복위 8).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이립(而立), 호는 백헌(栢軒). 밀직사를 지낸 승(昇)의 아들이다.
음서로 관직에 나아간 뒤 내의직장(內衣直長)으로 1301년(충렬왕 27) 문과에 급제하고, 다음해 숭경부승(崇慶府丞)이 되었다.
이어서 정방관(政房官)에 발탁되었고, 비서랑(秘書郞)에 올랐다. 1304년 국학직강(國學直講), 1307년 안동부판관, 1309년(충선왕 1) 전의부령(典儀府令), 1311년 김해부사, 1314년(충숙왕 1) 사헌장령ㆍ선부의랑(選部議郎)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317년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에 오르고 1319년 계림부윤, 1321년 복주목사(福州牧使)를 지낸 뒤 면직되었다.
1330년(충혜왕 즉위년) 감찰대부 진현관대제학 상호군(監察大夫進賢館大提學上護軍)에 올랐고, 다음해 동지밀직사사 상의 회의도감사(同知密直司事商議會議都監事)가 된 뒤 1332년(충숙왕 복위 1) 은퇴하였다. 그는 성품이 엄격하고 근면하였으며, 집이 가난하였으나 산업에 뜻을 두지 않았다.
일찍이 백이정(白頤正)ㆍ김제안(金齊顔)ㆍ이제현(李齊賢) 등 현사들과 교의(交誼)가 두터웠으며, 또한 최해(崔瀣)와도 친교가 있었으므로 그의 묘비문을 썼다. 충청남도 천안의 검계서원(儉溪書院)에 봉향되었으며,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문효공 백헌 전신 단소 전경
재실및 사당 전경
천안전씨 시조 전섭(全攝)을 모신 사당 충훈사
문충공 전승(全昇)과 문효공 전신(全信)을 모신 사당 양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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