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원 양성산
- 진달래가 핀 양성산 능선에서 멀리 대청호가 내려다보인다.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유서 깊은 낮은 산이다. 충북 청원 양성산을 얘기하자면 삼국시대로 거슬러간다. 백제 때는 일모산(一牟山), 통일신라 때는 연산(燕山)이라 불렸다. 이후 승병을 길렀던 곳이라 하여 양승산(養僧山)으로 불리다 지금은 정상부에 산성 흔적이 있다고 해서 양성산(壤城山)이 되었다.
그냥 시골이 아니다. 청원군 문의면에 닿자 여느 시골에서 볼 수 없는 떠들썩한 분위기다. 늘어선 관광버스와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 생기가 넘쳐 번잡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관광 명소가 된 대통령 별장, 청남대로 가려는 사람들이다. 문의문화재단지 주차장에 닿자 산꼭대기의 팔각정이 보인다. 오늘 산행의 정상인 해발고도 378m 봉우리다. 주차장의 고도가 90m이므로 대략 고도 300m를 오르면 된다.
◇대청호 전경 펼쳐져
산행은 시작부터 오르막이다. 낮다고 얕보지 말라는 양성산의 엄포처럼 코가 닿을 듯한 오르막이다. 아직 몸도 풀리지 않았지만 입산하였으니 다른 방법은 없다. 꾸역꾸역 느린 걸음으로 오른다. 하기 싫은 숙제 같은 오르막이 힘들지 않은 건 진달래 덕이다. 나뭇가지 뼈대만 남아 여전히 겨울 풍경인 숲 속에서 홀로 분홍빛을 틔웠다. 흑백사진 속의 유일한 컬러처럼 진달래의 도발은 강렬하다. 진달래는 겨울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제국에 홀로 반기를 든 무모한 혁명가처럼 용감하고 순수하며 도발적이다.
"아니 벌써"하는 말이 절로 툭 튀어나올 정도로 금방 능선이다. 보통 가파른 오르막이 끝나는 능선에 닿으면 성취감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섭섭할 정도로 오르막은 짧다. 마침 벤치가 있어 쉬었다 가라 권하지만 낮은 산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바로 통과다.
산의 인기를 말해주듯 등산로는 뚜렷하고 사람들이 많이 다닌 흔적이다. 그러나 소나무가 무성하고 솔잎이 깔려 있어 발 디딤이 푹신하다. 푹신한 숲길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힘이 있어, 낯선 곳을 찾은 긴장과 피곤한 마음도 지워버린다. 물결 치는 능선을 따라 올라서니 모처럼 커다란 바위가 있다. 둥글둥글 순둥이 흙산인 줄 알았더니 불끈 치솟아 성질 부릴 줄도 안다. 독수리바위란 이름이 어울리는 날카롭고 늠름한 모양새다.
바위에 올라서자 산등성이 너머 대청호가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펼쳐진다. 마을 유래지와 문의면 홈페이지의 마을 소개에 따르면 고려 초 일륜선사가 양성산에 올라 절을 세울 터를 찾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사방의 정기가 영명하다. 문(文)과 의(義)가 크게 일어나 숭상될 것이다. 육로와 수로가 사통팔달했으니 마을과 인물이 번성하리라. 그러나 어이 하랴. 천 년 뒤에 땅의 운세가 물 아래 잠기니 그때 가서 새 터전을 마련케 되리라"는 예언을 남겼다고 한다.
잔잔한 오르내림이 이어지지만 힘들지 않다. 문득 시야가 터지며 전망터로 딱 좋은 곳이 나온다.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건 팔각정으로 이어진 산줄기다. 아무런 계산 없이 산이 가진 것을 드러내 보이는 양성산 줄기가 한눈에 든다. 마침 산줄기가 옆으로 휘어지며 정면으로 가감 없는 모습을 드러냈다. 산이 작아서 뛰어가면 곧장 정상에 설 것만 같다. 하지만 길목에 핀 진달래와 곡선으로 가라앉은 대청호 경치 때문에 아껴서 야금야금 걷는다.
◇꽃샘추위에 피어난 진달래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를 기대했으나 아직 봄이 아니라고 산이 말한다. 먼저 핀 진달래꽃이 능선의 세찬 바람에 쓸려 떨어진다. 봄이라고 꽃 보러 왔더니 꽃샘추위만 달려든다. 국태정(國泰亭)이라 적힌 팔각정에 올라서자 대청호의 정상에 선 것 같은 정점의 경치가 펼쳐진다. 대청호는 4월이라 가물기는 했지만 여전히 차분한 색조와 부드러운 곡선의 몸짓을 가지고 있다. 정자 아래에는 진달래가 꽃샘추위 속에서도 봄기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진분홍 속마음을 터뜨려 놓았다. 여린 꽃망울은 바람 앞에서도 꼿꼿이 고개를 들고 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정상 표지석에는 '작두산 능선 378m'라 적혀 있다. 작두산은 양성산과 어깨를 맞댄 산으로, 430m로 더 높은 손위 어른 격의 산이다. 살벌한 이름은 사실 까치머리를 닮았다 해서 유래한다. 산길을 내려서면 갈림길에 있는 봉우리가 지도 상의 진짜 양성산 정상(301m)이다. 그러나 정상다운 경치가 없고 흔한 표지석도 없어 이정표를 따라 곧장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왠지 떨어진 꽃잎을 밟기가 미안해 슬쩍 비켜 디디며 내려선다.
여행수첩
378m의 작은 산이며 이정표가 많아 길 찾기는 쉽다. 문의문화재단지 주차장을 기점으로 산줄기를 한 바퀴 돌아내려 오는 원점회귀 산행이 일반적이다. 주차장에서 청소년수련관 방향으로 올라가면 왼편에 초입을 알리는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갈림길이 있는데, 여기서 이정표에 '양성산'이라 적힌 곳으로 가야 한다. 총 거리 3㎞에 2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흙으로 된 편안한 산길이라 등산초보자나 가족산행지로 알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