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형세론과형국론)

[스크랩] *** 朝鮮王의 諡號 分析 ~~~

장안봉(微山) 2013. 4. 17. 21:52

이 부분에 대해서 정말 많이 많습니다. 政國이 어지러울 때 이를 바로 잡아주는 王이 ~祖, 德을 많이 쌓고 태평성대를 이룩한 왕이 ~宗, 폐주가 된 왕은 ~君 이러한 論理가 主體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여러분들이 한가지 숙지할 점이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마다 그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卽, 이 朝鮮王들의 諡號에 對해 理解하려면 客觀的 論理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만의 歷史를 볼 줄 아는 眼目, 卽, 主觀的 要素도 開入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朝鮮王들의 諡號에 對해 살펴보겠습니다.

태조 - 정종 - 태종 - 세종 - 문종 - 단종 - 세조 - 예종 - 성종 - 연산군 - 중종 - 인종 - 명종

선조 - 광해군 - 인조 - 효종 - 현종 - 숙종 - 경종 - 영조 - 정조 - 순조 - 헌종 - 철종 - 고종

순종

 

일단 설명드리기에 앞서 왕의 시호는 業積과 正統性에 依해 決定된다는 것입니다. 흔히 왕의 업적으로 ~祖, ~宗, ~君 이렇게 되는 걸로 아시는 분이 많은데, 그것은 앞의 諡號입니다. 위에 색깔별로 表示했는데 눈 뜨고 그냥 봐도 앞의 글자가 嚴然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卽, 王의 살아生前 功勞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바로 앞의 諡號입니다. 그렇다면 뒤의 諡號는? 當然히 王의 正統性에 依한 것이지요. 史劇을 보면 임금이 정통성이 없어서 당파 싸움에 어찌할 줄 몰라하는 것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선조 임금입니다. 선조는 명종의 아들이나 형제가 아니었거든요. 왜 정통성에서 어긋날까?

 

우선 순서대로,

 

태조: 朝鮮을 建國했습니다. 高麗를 建國한 王建도 太祖라는 諡號를 얻었습니다. 그러니 朝鮮을 建國한 이성계 또한 당연히 태조라는 시호를 얻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지요.

 

정종: 이성계의 아들입니다. 태조의 아들이니 당연히 정통성이 있지요. 그래서 ~宗을 받은 겁니다. 고려시대를 보면 태조 이후로 그 누구도 ~조 라는 시호가 없지요. 卽, 高麗王의 諡號처럼 나가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태종: 역시 이성계의 아들입니다. 정종은 힘이 약했기에 세력이 막강한 동생 이방원에게 세자 책봉을 하고 용상에서 물러나지요. 태종의 아버지는 태조였습니다. 만약 정종이 아닌 태종이 태조에 의해 세자에 봉해지고 왕이 됐다면? 태조(아버지) > 태종(아들) 이니까 당연히 정통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종의 동생이기도 하니 서열 순에 어긋나지 않죠.

 

세종: 태종의 아들입니다.

 

문종: 세종의 아들입니다.

 

단종: 문종의 아들입니다.

 

세조: 여기서부터 말이 많아지죠. 여기서부터가 論点의 始作입니다. 정통성에서 어긋나죠. 先王이었던 단종에겐 三村입니다. 단종의 자식만이 정통성이 있었죠. 또한 단종의 아버지가 왕이었다는 조건하에 단종의 동생들도 정통성이 있었습니다. 즉, 왕의 정통성 조건은 바로 왕의 직계 자손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왜 세조는 안 될까요?

 

세조는 세종의 아들이었고 문종의 동생이었습니다. 만약, 문종이 자식이 없어 세조에게 왕위를 물렸다면 세조는 ~종이라는 시호를 받았겠죠. 그러나 문종은 단종에게 왕위를 물렸습니다. 그렇다면, 단종이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거나, 자식이 없어서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줘야만이 정통성이 성립된다는 것이지요. 단종의 동생은 결국 그 동생의 아버지가 문종이니, 바꿔말하면 왕의 아들이니 당연히 정통성이 성립되니까요.

 

그러나 세조의 경우는 문종의 동생이었다고는 하나 선왕(先王)의 입장에서 보면 세조는 단종의 삼촌이었습니다. 모든 정통성은 선왕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세조는 삼촌이었으니 정통성에 어긋난 것이기에 ~종이 아닌 ~조라는 시호를 받은 겁니다. 족보로 엄밀히 따져서 보자면, 아버지 밑으로 자식들이 있습니다. 이 자식들 중에서 형, 아우들이 있겠죠. 계급상으로 따져보면 아버지 밑으로 다 같은 계급입니다.

 

-선왕(아버지)-

~~대군 혹은 ~~군(자식 1)

~~대군 혹은 ~~군(자식 2)

 

여기서 순서를 장남부터 정하죠. 그러다 서서히 차남 > 삼남 > 사남 순으로 가는 겁니다. 엄연히 아버지 밑으로 다 같은 자식이고 형제이기에 나이 서열만 빼곤 다 같은 왕자 출신들이죠. 그래서 이들은 정통성이 있는 겁니다. 만약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만약! 여기서 장남이 태어나지 않았고 차남이 태어났다면, 차남이 장남인거죠. 이런셈입니다. 그래서 선왕이 죽으면 자식에게 왕위 우선 순위가 있었으며, 자식이 없으면 형제, 이 형제까지가 정통성을 논할 수 있는 위치였죠. 형제가 없으면, 위로 올라가서 친족, 아래로 내려가서 친족들에게 우선순위가 정해지는게 되는데 이땐 먼 친척을 데려오는 것이니 기존의 전통성에서 배제됩니다. 예를 들면, 태조의 손자였다고는 하나 태종의 아들은 아니므로 정통성에 어긋난다 뭐 이런식입니다. 세조는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조선시대 관료들은 왕의 계보는 나이 순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았을 것입니다. 태조를 시조로 본다면, 그의 아들 정종, 정종의 동생 태종, 태종의 아들 세종... 이런식으로 나이 순에 의한다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런데 단종에 가서 그의 아들이나 동생이 아닌 삼촌에게 갔습니다. 나이 순의 형평성이 깨지는 순간이었죠. 그래서 세조라는 시호를 받은 겁니다. 즉, 세조부터 다시 계보를 이어가자는 뜻이 담긴거죠. 나이 순의 서열이 깨졌으니까요.

 

예종: 세조의 아들입니다. 세조가 이러한 일들을 겪고 이 시호를 받고 나서 그 이후 세조를 중심으로 정통성이 있는 왕들은 모두 ~종 이라는 시호가 붙게됩니다.

 

성종: 세조의 아들입니다.

 

연산군: 성종의 아들이지만, 폐비된 왕비의 자식입니다. 어머니가 억울하게 폐비가 되어 사약을 받았다는 것을 잘 아실겁니다. 폐비된 왕비는 한마디로 말해 정통성에서 배제됐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법적으로 부모가 이혼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따라가면 어머니는 법적으로 어머니가 아니게 되죠. 이런식입니다. 덧붙여서 스스로 왕위를 물려준 것이 아닌 폐주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선왕들과는 다르게 표현하기 위하여 왕자시절 붙여졌던 시호를 그대로 쓴 것입니다.

 

중종: 중종은 반정으로 오른 사람입니다. 위에서 사람들이 흔히 언급한 대로라면 중종이 아닌 중조라고 해야합니다. 그런데 왜 중종일까요? 중종은 바로 성종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정통성이 있었죠.

 

인종: 중종의 아들입니다.

 

명종: 중종의 아들입니다.

 

선조: 우선 선조는 중종의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아들입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중종의 손자인데 왜 시호가 ~조 라고 붙여졌을까요? 여기서 또다시 정통성에 어긋나게 됩니다. 세조에서도 설명했지만 선왕(先王)을 중심으로 자식, 자식이 없으면 아랫동생까지가 나이 순 서열에 의해 정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조는 명종의 자식도 아닐뿐더러 동생도 아니죠. 조카입니다. 나이 순으로는 이상이 없지만 선조를 중심으로 자기 아버지가 왕위를 지내신 분이 아니기에 정통성에 어긋나죠. 세종을 보자면 아버지 태종이 왕이었고 성종을 보자면 아버지 세조가 왕이었죠. 명종도 아버지 중종이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조의 아버지는 왕이 아니었죠. 그래서 정통성에서 배제되어 선조라는 시호를 받고 다시 서열 순을 시작하는 겁니다.

 

광해군: 어머니가 왕비도 아니었고 따라서 폐비된 사람도 아니죠. 그러나 연산군처럼 폐주가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확실한 표현을 위해 연산군처럼 왕자 때 시호를 그대로 쓴 것입니다.

 

인조: 선왕이었던 광해군의 자식도 아니요 그렇다고 선조의 아들도 아니죠. 중종처럼 인조의 아버지가 선조였다면 인조라는 시호가 붙여지지 않았겠죠. 선조의 아들이었던 광해군에겐 조카인 셈이죠. 따라서 다시 시작이라는 겁니다.

 

효종: 인조의 아들입니다.

 

현종: 효종의 아들입니다.

 

숙종: 현종의 아들입니다.

 

경종: 숙종의 아들입니다.

 

영조: 여기서 좀 논란이 일겠군요. 왜냐면 이 영조서부터 주관적 요소가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즉, 그 시대의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생각하여 나름대로 분석하고 해석해야 이해가 좀 되거든요. 우선 경종의 경우 어머니가 희빈 장씨입니다. 희빈 장씨는 잠깐이나마 중전의 자리에 올랐으며 그의 오라버니 장희재는 양반직을 지냈죠. 천민 출신이었던 장희재는 동생 장희빈을 통해 벼슬길에 올랐으며 역관의 집안을 양반의 집안으로 만들었습니다. 즉, 장희빈의 배경 세력을 만들어나갔다는 거죠. 그리고 장희빈을 따르는 무리들 중에 숙종의 당숙이었던 동평군이 장희빈의 뒷배경이 되어줬습니다. 즉, 천민 출신이지만 한때 중전, 그리고 집안이 양반 집안으로 상승, 장희빈을 따르는 왕의 친척과 양반 등등 이러한 사유로 인해 장희빈의 아들 경종은 경조가 아닌 경종이라는 시호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영조는 숙종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왜 영종이 아닌 영조일까요? 단순히 자기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였기 때문일까요? 영조의 어머니는 숙빈 최씨로 무수리입니다. 집안? 없죠. 부모도 형제도 없었습니다. 그저 궁에서 조용히 시종이나 드는 궁녀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궁녀중에서도 계급이 무지 낮았죠. 영조의 아버지는 왕인 숙종이었기는 하나 어머니는 뒷배경도 없는 그저 천민 출신이었으니 출신성분 따지는 조선시대에선 엄청나게 형평성에 어긋났죠. 그러나 장희빈을 몰아내기 위한 정책으로서 이를 감행한 것이니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정통성을 따지는 그들은 결국 영조를 영종이 아닌 영조로 시호를 썼지요. 이제껏 역대 조선왕들의 어머니는 모두 양반 집안의 소생들이었습니다. 장희빈은 천민 출신이었다고는 하나 살아생전 그의 오라버니가 양반으로 출세했으니 그래도 감안해줬겠지만 영조의 어머니는 그게 없었지요. 천한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니 시호를 다시하자 하여 영조로 했을겁니다.

 

정조: 영조의 손자입니다. 정조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가 왕이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인 영조가 왕이었지요. 그럼 왜 할아버지는 안 되느냐? 그 당시엔 직계손으로 기준을 정했을 겁니다. 직계라는 것은 1촌인데 2촌을 넘어갔으니 정통성에서 어긋나게 되지요. 그래서 정조로 시작한 것일겁니다.

 

순조: 정조의 아들입니다. 본래 순종이었는데 훗날 순조로 바뀐 겁니다. 고종의 아들 순종 때문에? 아니죠. 이것 역시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주관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순조 ~ 고종 초기까지 안동김씨의 세도 정치가 지배하게 됩니다. 순종 > 헌종 > 철종 모두 안동김씨들이 세운 왕들입니다. 헌종의 경우 어머니가 풍양조씨이긴 하나 헌종의 부인은 안동김씨 집안의 여식입니다. 실질적 권한은 안동김씨가 지배적이었죠.

 

안동김씨들은 생각했을 겁니다.

순종(당초 순종이었음 - 순조)

헌종(순조의 손자)

철종(철종 때 순종을 순조로 바꿨으니... 그 당시로선 현 임금)

 

자기네들 세력이 평생 갈 줄이라도 알았는지, 아니면 기념으로 할려고 했는지, 그래서 순종을 순조로 고쳤을 겁니다. 왜 태조 - 정종 - 태종 - 세종 - 문종 .... 이런거 보면 뭔가 끌리지 않습니까? 우리 안동김씨의 무궁한 권력을 위하여 순종을 순조로 바꾸고 순조 - 헌종 - 철종 - 고종 .... 이렇게 간다면 그야말로 안동김씨의 세상이니까요. 이 당시엔 자기네들 마음대로 왕을 정하고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아마도 순종을 순조로 바꾼게 아닌가 싶습니다.

 

헌종: 순조의 손자입니다. 효명세자(익종)의 아들이죠. 기존의 조선왕들의 정통성에 비교하여 보자면 순조를 중심으로 아들이나 동생(그 동생의 아버지가 정조)이 왕이 된게 아니죠. 헌종의 입장에서 봐도 아버지가 왕도 아니었으니까요.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 헌종의 할아버지 순조, 그런데 헌조가 아닌 헌종이 됐다는 것이죠. 익종이라는 것은 추존하는 겁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장조라고 하는 것처럼요. 엄연히 헌조가 되야겠지만 앞서 말한바와 같이 안동김씨들의 농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철종: 헌종의 자식도, 그렇다고 순조의 아들로서 헌종의 동생도 아니죠.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은 은언군의 아들이었고 은언군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었습니다. 정통성에 비교하면 좀 먼 친척이라고도 할 수 있죠.

 

-사도세자(장조)-

정조 - 은언군(서로 2촌)

순조 - 전계대원군(서로 4촌)

익종 - 철종(서로 6촌)

헌종 - 철종(서로 7촌)

 

그러나 전주 이씨였고 당시 남자는 친가 8촌, 외가 4촌까지는 가족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왕위를 계승 받을 자격은 있었던거죠. 역시 철조가 되야하는데 철종이 된거죠.

 

고종: 역시 전통성에서 많이 어긋나죠.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영조의 5대손입니다. 철종을 중심으로 봤을 때 고종이 아닌 고조가 되야 정상이겠지요. 그러나 고종이라는 시호를 받게 됩니다. 왜? 고종이 서거할 당시엔 일제 치하에 있었고 국호도 대한제국이었으며 여러모로 수많은 혼란기에 있었던 터였고 역사 기록에 제대로 심혈을 기울일 수가 없었죠. 그래서 조선왕조실록 중에서도 고종실록, 순종실록에 역사 왜곡의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종의 경우 크게 2가지로 나뉠 수가 있는데, 하나는 정국이 너무 혼란스럽다보니 그냥 종이라는 시호를 썼을 거라는 것과 또 하나는 대왕대비 조씨(헌종의 어머니)의 양자로 들어갔으니까가 될 수 있겠네요. 원칙적으로 철종의 양자로 들어가야 하는게 맞겠지만 이 당시 고종이 왕이 되고 나서 대왕대비, 왕대비가 된 사람들이 모두 헌종의 비였습니다. 그리고 안동김씨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은 그나마 풍양조씨였으니, 대왕대비의 양자로 들어가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 더 맞는 것이겠지요.

 

흥선대원군은 대왕대비였던 조씨를 찾아가 둘째아들 고종을 양자로 주었습니다. 대왕대비였던 조씨로서는 안동김씨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서 받아들였겠지요. 왜냐면 그 당시엔 고종이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수렴청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즉, 그의 부모가 나서서 대신 정사를 돌본다는 것이지요. 이에 가장 우선순위에 있던 사람은 바로 대왕대비 조씨였습니다. 양자로 들이기는 했으나 법적으로 따지면 엄연히 고종의 어머니이니까요.

 

헌종의 아들이나 헌종의 동생으로서 헌종과 그 동생의 아버지가 같고 그 아버지가 왕위를 지낸 사람이어야만이 철종이라는 시호가 되는 것인데, 이 시기에는 안동김씨 세력이 아직도 판을 치고 있었고 이미 철종으로 시호가 작정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왕족 계보만 보면 왕의 시호만 있으므로 개념을 달리했다는 것도 있을 수 있죠. 고종을 헌종의 아들로서, 선왕이었던 철종의 동생으로서의 입장으로 봤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헌종-

그의 아들 철종(자식1)

그의 아들 고종(자식2)

 

이러한 개념이 있을수도 있다는 것이죠. 왕위 연대표에는 재위 기간만이 기록되니까요.

 

순종: 말이 필요없죠? 고종의 아들. 순종을 마지막으로 조선의 왕은 끝이납니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요소를 첨가해서 설명한 건데요, 나름대로의 역사 분석으로 해서 올린 것입니다만, 역사 교육을 하고 계시는 여러 교사/교수분들의 의견과 가르침을 받고 분석을 한 것입니다. 고려시대에는 간단명료하게 했겠지만 조선은 달랐기에 무엇이 타당하고 옳은지가 딱히 잘라 말할 수가 없군요. 누구왕 때는 이래서 이렇게 된거고 누구왕 때는 저래서 저렇게 된거고 하니까요. 그래서 아무래도 간단히 답하기 위해 맨 위엣말처럼 얘기하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스크린 / Screen
글쓴이 : 草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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