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種學
1361(공민왕 10)~1392(태조 1).
고려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문(仲文), 호는 인재(麟齋).
조부 - 가정 곡(穀)
부 - 목은 색(穡)
◎ 14세 - 1374년(공민왕 23) 성균시에 합격
◎ 16세 -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하여 장흥고사(長興庫使)가 됨.
밀직사지신사(密直司知申事)·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 재임
◎ 29세 - 1389년(창왕 1) 기사 洪武 22 29 厚德府尹으로 同知貢擧가 되어 進士試를 주관, 金汝知 등 33인을 뽑다.동지공거(同知貢擧)를 역임
12월, 부친과 함께 파직되어 順天으로 유배되다. 이때에 지은 詩가 〈南行錄〉
◎ 30세 - 1390년(공양왕 2) 윤이와 이초의 옥사로 부자가 함께 청주의 옥에 갇힘. 홍수가 나서 청주 중앙공원 압각수에서 화를면하고 사면.
◎ 31세 - 공양왕 3 1391 신미 洪武 24 31 4월, 五臺山ㆍ鏡浦臺 등 關東地方을 유람하다. 이때에 지은 시가 〈關東錄〉
○ 6월, 간관의 탄핵을 받아 常山(鎭川)에 유배되다. 이때에 지은 시가 〈南遷常山錄〉이다. ○ 11월, 召換되다.
◎ 32세 - 공양왕 4 1392 임신 洪武 25 32 정몽주가 피살된 후 그의 黨으로 몰려 이숭인 등과 함께 巡軍獄에 갇혔다가 咸昌에 유배되다. ○ 8월, 조선이 건국되면서 정도전 등이 그를 살해하려 했으나 문하생인 김여지의 도움으로 長沙縣으로 移配되던 중 孫興宗이 보낸 사람에게 茂村驛에서 絞殺당하다.
◎ 후일 신원(神寃)되고 문헌서원(文獻書院)에 제향
◎ 저서 - 〈인재유고〉
중종 14 1519 기묘 正德 14 - 5대손 李耔가 李惟淸 집에서 遺稿를 얻어 이를 1책으로 편집ㆍ繕寫하다.(李耔의 跋)
남천상산록 (南遷常山錄)
-常山卽今鎭川縣也-
출전 : <인재유고麟齋遺稿>
南遷常山錄 常山卽今鎭川縣也
(一) 客中懶情
--余於六月初吉。離松都到長湍。侍湯藥有日矣。當月旣望。憲司以前事再封章。逐老親於嶺南。與予從之。及到驪江。聞門下府亦上狀論及僕罪。不敢從西踰嶺。則拜送于江上。還至郡樓。與南計定宿。明日欲行指常山。雨大作。歸甓寺留四日。乍晴。卽來陰竹。雨又大作。天民水漲不可渡。留五日。移農所又留四日。察訪,監郡皆與僕素善舊。而監郡卽上舍同年也。談笑從容。如在順境。今月初二日臺吏踵來。蓋將置余于常山也。雨又適晴。明日。與臺吏遂來于此。今已十餘日矣。自七夕以後絶不作詩。客中之情。似難傾寫矣。於是哦成數首。以志吾懶。十四日也--
내가 6월 초하룻날 송도를 떠나 장단에 이르러 아버님을 탕약으로 모신지 며칠이 되었다. 6월 열엿새날 헌사에서 앞서 있었던 일을 가지고 다시 상소를 올려 아버님을 영남으로 추방하고 나로 하여금 따라가게 하였다. 그런데 여강(여주강)에 이르니 또 문하부에서 나의 죄를 가지고 글을 올려 나로 하여금 아버지를 따라 서쪽으로 고개를 못 넘어가게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를 강위에서 절하여 작별하고 군청의 누각으로 돌아와 남계정과 함께 잤다. 다음 날 상산(진천)으로 가려고 하는데 큰비가 내렸다. 벽사(甓寺 : 신륵사)로 돌아와 나흘을 머물렀다. 날씨가 조금 개어 곧장 음죽陰竹에 이르니 비가 또 쏟아졌다. 하늘의 백성된 자가 물이 불어 다시 닷새를 머물다가 농소(農所 : 음죽에 국농소가 있었음)로 옮겨가서 나흘을 머물렀다. 이곳의 찰방과 감군은 나와 예로부터 잘 아는 친구이다. 게다가 감군은 나와 상사(上舍 : 생원)에 함께 급제한 사람이다. 그들과 함께 조용히 담소하지나 마치 아무런 일도 없는 순탄한 환경과 같았다. 이달(7월?) 초이튿날 대리(臺吏 : 대관의 아전, 죄인 감시자)가 뒤따라 왔는데 이는 나를 상산에 안치시키기 위함이었다. 비가 마침 개어서 다음날 대리와 함께 마침내 이곳에 왔는데 그 동안 벌써 열흘 남짓 걸렸다. 칠석(七夕 : 음력 7월7일) 이후로 시를 짓지 않았는데 나그네 생활 중의 정서를 집중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다. 마침내 두어수 시를 지어 나의 게으름을 표현해 보았다. 14일이었다.
나그네 생활 중에 회포를 푸는 일은 시뿐인데 - 客裏開懷只有詩。
오늘까지 못 썼으니 나의 어리석음이 부끄럽네. - 茫然今日愧吾癡。
가을 바람은 밤중에 뜰안의 나무를 흔드는데 - 秋風半夜吹庭樹。
머리 돌려 아버지 생각하니 괴롭고 슬퍼지네. - 回首思親意苦悲。
南遷常山錄 常山卽今鎭川縣也
(二) 二十日。近絶不作詩。聞南先生行李在淸。
*해설 : 7월20일. 근래 시를 짓지 않다가 남선생의 행차가 청주(?)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여주강 강위에 다행스럽게 서로 만나서 - 驪江江上幸相逢。
밤내 이야기하다 새벽종 소리 들었는데. - 夜話仍聞曉寺鐘。
행차는 언제 진천고을에 다다를 것인지 - 旌旆何時臨鎭邑。
차를 끓이며 다시 한가로운 생활했으면. - 煎茶更欲暫從容。
*진읍鎭邑 : 진천? 아니면 진이 있는 고을?
(三) 八月二十日夜吟 - 팔월 스무날 밤에 읊음.
벌레소리 끊이지 않고 새벽닭 울 때까지 - 蟲聲不絶曉鷄鳴。
밤새 일어나 까닭 없이 나의 삶을 비웃네. - 夜起無端笑此生。
좋은 시대에 합당한 도리로 임금을 섬겼다면 - 盛代事君如合道。
당시에 여러 사람을 따라 명예를 구했겠는가? - 當時從衆豈干名。
산은 맑고 땅은 외진 곳 마음도 함께 쓸쓸한데 - 山靑地僻心供寂。
이슬도 희고 하늘도 높으니 공기도 또한 맑구나. - 露白天高氣共淸。
끊임없이 일어나는 어버이 생각에 잠 못 자고 - 耿耿思親頻不寐。
여덟 구의 율시를 생각 없이 지어 읊조리었네. - 吟來八句偶然成。
(四) 九月初四曰 2首 - 구월 초나흗날
1.
냇둑에 서리 내리고 국화 향기 뿜었으니 - 霜落川原菊已芳。
나그네 생활 중에 중양절이 가까워졌네. - 客中佳節近重陽。
그 날은 꼭 술병 들고 높은 곳에 올라가 - 携壺準擬登高去。
구름 아래 고향 하늘을 한껏 바라보려네. - 極目浮雲俯視鄕。
2.
송도의 유항 마을에 높은 언덕이 있는데 - 松都柳巷有高岡。
연전에 거기서 어버이께 헌수 잔 드렸지. - 忽憶年前獻壽觴。
오늘 이렇게 헤어진 것은 누구때문일까? - 今日分離誰所使。
머리 들어 반복하여 푸른하늘 바라보네. - 擧頭時復仰蒼蒼。
(六) 十一日失馬 - 열 하룻날 말을 잃고
화복을 어떻게 알랴, 말을 잃은 이늙은이 - 禍福焉知失馬翁。
나는 지금 홀로 서서 푸른 하늘 쳐다보네. - 吾今獨立仰蒼穹。
인간의 만사는 헤아리기 어렵지 않느니 - 人間萬事非難料。
좋은 시대에 늙은 농사꾼에게 배우려네. - 擬向淸時學老農。
*실마옹失馬翁 : 새옹지마塞翁之馬에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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