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년 : 1503-1544
- 시대 : 조선
- 분야 : 문신/관료 > 문신-조선중기 > 문신
이여(李畬)에 대하여
이여(李畬)
1503(연산군 9)∼1544(중종 3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유추(有秋), 호는 송애(松厓).
색(穡)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진사 인로(仁老)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박지생(朴枝生)의 딸이다.
일찍이, 김안국(金安國)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았고, 1531년(중종 26)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文翰官)에 임명되었다가 1539년 정언이 되었고, 2년 후에 지평이 되었다.
1544년 문학으로 죽었는데, 재직중에도 학문연구에 힘써 역학(易學)에 정통하였다. 형 치(菑)와 함께 진천에 거주하면서 그 지방의 풍속교정에도 힘썼다고 한다. 진천의 백원서원(百源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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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朱雄英〉
조선 중기의 문신 신잡이 세종대의 효자 김덕숭을 제향하기 위해 1608년에 세웠던 서원의 터. 본래는 사우 6칸, 강당 6칸, 동서재 3칸, 전사청 4칸의 건물 규모에 원생 25명, 집사 10명, 모속 30명, 복호 3구의 정원을 갖추었다고 한다.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으며, 현재는 그 위치에 사적비가 져 그 유적을 말해주고 있다. 사적비는 거북대좌 위에 높이 176cm너비 66cm두께34cm의 오석비신에는 화강암 난간을 둘렀다. 비문은 성균관장 박중훈이 짓고 글씨는 성균관도로 진천에서 학문과 효행이 높았던 인재 이종학, 모암 김덕숭행원이부, 송애 이여의ㅣ 4위를 모시는 서원으로 건립하는 모든 행동중에서 가장 근원이라는 의미에서 따온 것이라고한다.
신잡의 본관은 평산, 자는 준백, 호는 독송재이며 명장 신립장군의 형으로 임진왜란 때는 승지로있으면서 왕을 호종하였고 이후 비변사당상으로 활약하였다. 평안도병마절도사로 재임 중 청산군 탈옥사건으로 파직도었다가 다시 형조참판에 기용되어 특진관이 되었고, 1604년 호성공신 2등에 봉해지고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노년에 노원리로 낙향하여 백원서언과 백원정을 세워 후학양성에 힘썼다. 한편 신잡이 노년에 이월면 노원리 무제봉 아래로 낙향하여 살았으므로 이곳을 노은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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