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기도)

[스크랩] 창덕궁 8 - 후원 정자(後苑 亭子)

장안봉(微山) 2013. 4. 11. 00:01

 

 관람정(觀纜亭) -  창덕궁 후원, 반도지(半島池)에 있는 정자로, 부채꼴(선형.) 기와지붕을 한 굴도리집이다.

건물의 일부가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이며 6개의 원주()를 세우고 원주마다 주련()을 달았으며 난간을 돌렸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추녀마루 6개가 각각 3개씩 모였으며 그 사이에 용마루를 설치하는 양식을 취하였다. 건축적이기보다 공예적인 수법을 많이 구사한 정자이다.  

 관람정과 승재정.

 관람정의 현판은 독특하게 나뭇잎 모양을 사실적으로 새겼다. 

 승재정(勝在亭) - 반도지 서쪽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정면 1칸, 측면 1칸의 사모지붕을 한 작은 전각으로 반도지를 내려다 보면서 독서를 했던 건물로 보이나 특별한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다. 다만 동궐도에는 이 자리에 초가 모양의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승재정을 지은 것으로 특히 난간의 모양과 구조가 특이하여 고건축을 연구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잦다.

승재정의 난간은 운두가 높은 편이고 궁판 위에 살대 얹어 이중으로 조성한 구조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경우이다.

                     

존덕정(尊德亭)은 규모는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는 정자로 앞에는 반도지를 뒤로는 반월지를 끼고 있으며, 특이하게도 지붕이 겹으로 되어 있다. 존덕정 뒤에 놓인 작은 연못인 반월지에 두 발을 담그고 있으나 몸체 절반이 반월지에 나와 있다. 이는 엉덩이의 절반을 땅에 대고 두 다리를 뻗어 물 속에 담근 모양을 하고 있어 이곳에서 보는 존덕정은 한 여름 시원한 물 속에 발을 담그고 탁족을 하듯이 경쾌하고 시원한 모습이다. 존덕정 앞 일영대는 시각을 측정하던 기구의 받침대이지만, 시각을 측정하던 기구는 사라지고 현재는 일영대 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변 석물은 그 용도를 알지 못한다.

 정조의 친필 제액이 쓰여진 글판.

 존덕정의 천정에는 청룡과 황룡이 새겨져 있다. 황룡과 청룡이 서로 붉은 여의주를 희롱하는 모습은 그 어느 곳에 있는 용들보다도 활력 넘치고 역동적인 모습이다.

  존덕정은 인조 22년(1644)에 정자를 짓고 육면정이라 불렀으나 곧 현재의 이름인 존덕정으로 고쳐 불렀다. 존덕정이라는 현판은 현종의 어필이다. 존덕정은 특이하게 육각형 건물로 처마 아래로 또 지붕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를 눈썹지붕이라 한다. 위에 있는 본래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주기둥 좌우로 눈썹지붕을 받치는 얇은 기둥 두개씩이 있어 한 곳에 세 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들고 있다.

 펌우사 - 존덕정에서 서편으로 10여 미터 떨어진 낮은 언덕 위에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누마루 형식의 작은 건물이다. 펌우사는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독서를 하기 위해 만든 건물로, 반도지 위에 있는 존덕정 뒤편 언덕 위에 정면 3간의 맞배지붕의 작은 건물로 방과 마루가 조성되어 있다. 이 건물에서 익종과 정조가 멋진 시를 남겼다고 한다. '펌우'란 괴팍하고 어리석은 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사(木+射)'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곳이 활터 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취규정(聚奎亭) -  인조 18년(1640)에 세운 정자로, 존덕지에서 옥류천 쪽으로 가는 언덕 위에 서 있다. ‘학자들이 모인다’라는 뜻의 취규정()은 휴식과 독서를 위한 공간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에 사방이 트인 초익공 홑처마팔작지붕 건물이다.

한벌대 장대석의 낮은 기단 위에 사다리형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워 납도리로 엮었다. 정자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천장 중앙은 우물천장으로 만들었다. 전면의 중앙 칸 외에는 모두 난간이 둘러져 있다. 

 취한정(翠寒亭) - 후원의 옥류천 정원 어귀에 있다. 임금이 옥류천의 어정()에서 약수를 마시고 돌아갈 때 잠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소박한 정자이다. 정확한 건축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취한정에 대한 숙종과 정조의 시()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1720년 이전에 지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로, 팔작지붕을 올리고 납도리로 엮은 민도리집이다. 바닥에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으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단청으로 치장했다. 

 원래 이 주변은 소나무가 많아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서늘해 한기가 오래 머물렀다고 한다. 그래서 취한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옥류천(玉流川) -   후원 북쪽의 깊은 골짜기에 있으며 인조 14년(1636)에 조성하였다. 북악산 동쪽 줄기에서 흐르는 물과 인조가 팠다고 알려진 어정()으로부터 계류가 흐른다. 

 소요암이라는 널찍한 바위에 U자형 홈을 파고, 샘물을 끌어 올린 다음 작은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게 만들었는데 임금은 이곳에서 신하들과 더불어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소요정(逍遙亭) - 인조 14년(1636)에 세웠으며 탄서정()이라 부르다가 후에 소요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자에 앉으면 옥류천과 소요암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정면 1칸·측면 1칸의 익공계 사모지붕 형식 정자이며, 계자난간을 둘렀다. 숙종·정조·순조 등이 이곳의 경치를 묘사한 시()를 남겼다. 옥류천변의 소요정·청의정·태극정은 상림삼정()이라 칭해졌다. 

 

소요암에는 인조가 쓴 옥류천()이라는 글씨를 비롯하여 숙종이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

 

 어정 - 청의정과 또 다른 옥류천 주변 정자인 소요정 사이에는 어정()이 있으며, 어정에서 나오는 샘물은 옥류천으로 흘러든다. 

 청의정(淸漪亭) - 옥류천 주변 정원의 가장 안쪽에 있는 정자이다. 인조 14년(1636)에 세워졌다. 궁궐에서 유일하게 초가지붕을 이고 있다. 정면 1칸·측면 1칸 크기이며, 익공계 사모지붕을 얹고 난간을 둘렀으며, 단청으로 장식하였다.

임금은 정자 앞쪽에 논을 만들어 벼를 심고, 수확 후에는 볏집으로 정자의 지붕 이엉을 잇게 하였다.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청의정의 천장.

 아름다운 주춧돌.

 태극정昌(太極亭) - 인조 14년(1636)에 세웠으며, 원래 운영정()이라 불렀다가 태극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굴도리를 엮은 정면 1칸·측면 1칸 크기의 겹처마 사각정자이다. 내부에 마루를 깔고 퇴를 달아 평난간을 둘렀다. 천정은 우물천정이고, 지붕 꼭대기는 절병통을 얹어 마무리하였다. 정조의 ‘태극정시()’, 숙종의 ‘상림삼정기()’ 등 태극정을 노래한 어제()가 전해진다.

 태극정과 청의정.

농산정(籠山亭) -  후원 옥류천 바로 옆에 있는 정자들 중 하나로 인조 14년(1636)에 지었다. 임금이 옥류천으로 거동했을 때 다과상을 올렸던 장소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두벌장대의 낮은 기단 위에 돌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웠으며 납도리로 엮은 홑처마맞배지붕을 올린 건물로, 행랑채처럼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정면 5칸·측면 1칸 규모의 직사각형 모양이다. 2칸은 대청·2칸은 온돌방·1칸은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바람 통신
글쓴이 : 문화 탐험가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