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해미 상왕산 개심사 일주문.
구당 여원구가 쓴 현판. 단청을 하지 않아 겨울 산사의 을씨년 스러움이 그대로 나오지만 자연 그대로의 멋도 운치가 있다.
극락이든 세속이든 다시금 마음이 열리는 곳...세심동.
개심사 영지. 상왕 즉 코끼리산이다 보니 풍수적으로 영지를 만들어 코끼리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있다.
개심사는 전체적으로 구릉형을 따르면서도 산지형(山地形)으로 변천한 일탑형(一塔型) 가람배치를 보인다. 평탄한 지역에서 북으로 자연계단을 오르면 3단 가량으로 조성된 평탄한 사지(寺址)가 보인다. 2단에 안양루(安養樓)가 남면(南面)하여 서 있고 중정(中庭)으로의 입구는 안양루와 무량수전(無量壽殿) 사이의 협소한 가설문으로 되어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심검당(尋劍堂)과 무량수전이 있고 정면에 안양루가 있는 표준형이다. 이외에도 명부전(冥府殿)과 팔상전(八相殿) 등의 당우가 남아 있다.
개심사는 충남
해강 김규진이 쓴 현판. 해강의 사찰 현판글씨 중에 백미가 아닐까 싶다.
다듬지 않은 기둥을 사용해서 자연스런 멋이 일품인 범종각.
개심사〈사적기 事蹟記〉에 의하면 654년(무열왕 1) 혜감국사(慧鑑國師)가 창건할 당시에는 개원사(開元寺)라 했는데, 1350년(충정왕 2) 처능대사(處能大師)가 중건하면서 개심사라 했다고 한다.
1484년(성종 15)에 대웅전을 중창했으며 1740년 중수하고 1955년 전면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개심사의 주불전으로 조선 초기의 목조건물로, 보물 제143호이다. 1941년 대웅전 수리 때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1484년(성종 15)에 세워져 1644년(인조 22)과 1710년(숙종 36)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평면은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지대석(地臺石)과 판석(板石)을 놓고 다시 장대석의 갑석(甲石)으로 마무리한 기단 위에 약간의 흘림이 있는 기둥과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내부는 고주(高柱)가 없이 통간(通間)으로 되어 있고, 종도리를 받고 있는 대공은 화려하게 초각된 파련대공(波蓮臺工)을 사용했다. 종도리와 중도리 사이에는 솟을합장재를 두었다. 연등천장으로 상부에 가구(架構)가 노출되어 있다. 공포는 내삼출목·외이출목으로 초제공과 이제공의 외부살미 형태가 아래로 강직하게 내려뻗은 초기형태인 수서[垂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서 다포계형식의 건물에서는 흔치 않은 것으로 주심포형식에서 다포계형식으로 옮겨가는 절충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개심사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심검당.
해우소.
개심사는 한국의 가장 사찰다운 면모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명부전.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는 전당으로, 기록에 따르면 조선 인조 24년(1646)에 세웠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의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은 천장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으며 기둥이 없어서 넓어 보이는 공간에 천불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十王像)을 모시고 있다.
경허선사가 머무시던 선방. 경허는 구한말 선승으로 월면 만공과 수월, 혜월 등 당대 쟁쟁한 선승들의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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