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도)

[스크랩] [경남 함양] ?문효공 옥계 노진[文孝公 玉溪 盧?]선생 묘역

장안봉(微山) 2012. 12. 15. 15:50

문효공 옥계 노진[文孝公 玉溪 盧禛]

1518(중종 13)∼1578(선조 1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자응(子膺), 호는 옥계(玉溪)ㆍ칙암(則庵). 함양출신. 예조참판 숙동(叔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반(盼)이고, 아버지는 참봉 우명(友明)이며, 어머니는 사성원 권시민(權時敏)의 딸이다.

 

1537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의 천거로 박사가 되고, 전적ㆍ예조의 낭관을 거쳐 1555년 지례현감(知禮縣監)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선정을 베풀어 높은 치성(治聲)을 들었으며 청백리로 뽑혔다.

1558년 필선ㆍ부응교가 되고 이듬해 장령ㆍ검상ㆍ사인ㆍ집의ㆍ직제학을 지냈다. 1560년 형조참의를 거쳐 도승지가 되었는데, 시골에 계신 늙은 어머니의 봉양을 위하여 외직을 지원하여 담양부사ㆍ진주목사를 지냈다.

1567년 이조참의로 있다가 충청도관찰사와 전주부윤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고, 다시 부제학에 임명되어 중앙으로 들어왔다. 1571년(선조 4) 늙은 어머니의 봉양을 위하여 다시 외직으로 나갈 것을 허가받아, 친가와 가까운 곤양(昆陽)의 군수(郡守)가 되었다.

이듬해 대사간ㆍ이조참의가 되고 경상도관찰사ㆍ대사헌 등을 지냈다. 1575년 예조판서에 올랐으나 사퇴하고 그 뒤 대사헌ㆍ이조판서ㆍ형조판서ㆍ공조판서ㆍ예조판서 등의 벼슬에 연배(連拜)되었으나, 모두 병으로 나가지 않았다.

평소에 기대승(奇大升)ㆍ노수신(盧守愼)ㆍ김인후(金麟厚) 등의 학자들과 도의(道義)로 교유하였다. 효로써 정려(旌閭)가 세워졌고, 남원의 창주서원(滄州書院), 함양의 당주서원(溏州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옥계문집』이 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재실(이로각)

 

 

옥계선생 묘소 오르는 길

 

옥계 노진선생 묘소 전경

노진신도비-李廷龜가 짓고 申翊聖이 썼으며 두전은 金尙容이 썼다

 

 

 

 

 

 

 

 

 

 

자헌대부이조판서겸동지경연춘추관사예문관제학증시문효공옥계노선생지묘

정부인안씨지묘-순흥인 安處順의 딸이다

 

 

 

 

 

 

 

옥계선생의 부모 노우명과 안동권씨 묘소 전경

 

 

 

정부인 권씨지묘-안동인 권시민(權時敏)의 딸이다. 옥계 노진선생은 권씨 소생이다

 

 

노우명신도비-盧守愼이 지었다

 

 

 

 

 

 

 

 

 

 노우명의 모친 거창신씨 묘소-노우명의 묘후에 있다

유명조선국 증정부인신씨지묘-동지중추부사 신선경(愼先庚)의 딸이다

거창신씨 묘 후경

노우명의 초배 순흥안씨 묘 원경 

 

노우명의 초배 순흥안씨 묘- 남학교수를 지낸 안기(安璣)의 딸이다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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